중경 여행기
이 영 혜
<제2일>
깊은 잠을 자고 한 번에 깼다. 이 호텔에서 3일 동안 유숙할 것이기에 짐을 쌀 필요가 없어서 좋다.
아침은 호텔식, 즉 뷔페다. 일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우리가 무척 일찍 갔나보다. 이번에 혼자 온 유일한 사람이 테이블에 이미 와서 앉아있고 우리가 두 번 째다. 그 테이블에 앉았다. 쟁반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가서 음식을 조금만 덜어왔다. 그리고 그 사람이 흰 죽을 먹기에 나도 흰 죽을 한 공기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해맑게 생긴 초로의 남자다. 말소리도 조용하다. 그 사람이 어제 집결시간에 늦게 나타났던 사람이다. 가이드가 얼굴이 새파래졌었다. 난 몇 살이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반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고 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해오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다 먹어갈 때쯤 그 사람이 커피를 가져오겠다고 일어서서 갔다. 그런데 딸이 먼저 커피를 가져왔다. '어떻게 해 커피 가질러갔는데' 하며 하나는 치우자 하고 있는데 그가 커피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래서 난 커피가 두 잔이 됐다. 조금 미안했다.
아침을 먹고 버스로 이동하여 보정산 대족석각을 보러 갔다. 입구 광장에 조지풍이란 사람의 동상이 아주 높이 서 있다. 가이드가 동양의 미켈란젤로라고 한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얼마 안 있어 벽에 새겨진 조각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불상이 서 있다. 손에는 탑을 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앉아있는 것만 보았지 서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배경에는 작은 무수한 불상들이 둥근 원 안에 빼곡히 둘러쳐져 있다. 배경의 불상 조각들은 칼라다. 계속해서 걸어가니 어떤 것은 장군의 모습을 한 것이 도열해 있는가 하면스토리가 있는 무대의 장면 같은 조각도 있다. 특히 감탄이 나오는 것은 커다란 사람의 얼굴인데 미소 지은 표정이 얼마나 자연스럽던지 사실주의(寫實主義)의 극치를 보는 듯 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다른 점은 미켈란젤로의 것은 흰 대리석이고, 조지풍의 것은 화강암에다 색채를 입힌 것이다.
전자가 개별적 조각이었다면 후자는 주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도 다르다. 동양조각의 진수를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여행에서 이런 예술품을 본 것은 처음이다. 이것만으로도 성과 있는 여행이 될 듯싶다. 가이드가 조지풍이 미켈란젤로보다 낫다는 말까지 했는데 과연 그 소리가 나올만 했다. 화강암에다 조각을 새기자니 얼마나 어려웠을까 말이다.
대족석각은 당나라 초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5대를 지나 양송(兩宋)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선명한 민속화, 세속화, 지방화된 특색을 갖고 있는 석각은 역사자료로 많이 활용되며 당송시기 석굴예술의 품격과 민간신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 한 9세기 말부터 13세기 중엽까지의 세계석굴 예술사에 가장 찬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날은 제법 걸은 셈이다. 사진을 찍는 일이 아주 사업이다. 사진 두 방 찍고 나면 벌써 사람들은 저만치 가고 없다. 열심히 좇아 다니며 설명 들으랴 내 짝궁 찾으랴, 팩키지 여행은 언제나 다급하다. 언젠가는 자유여행을 해봐야겠다. 이것으로 이날 일정은 반쯤 이루어진 셈이다. 저녁에는 양쯔강에서 유람선을 탈 것이다.
대족석각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중경으로 귀환했다. 점심을 먹고 조천문부두 관광을 하였다. 조천문부두 관광은 생략한다.
저녁을 먹는데 너무 이른 저녁이다. 모두 하나같이 저녁생각이 없단다. 나도 그렇다. 실은 오전에 많이 시장했었다. 아침을 시원찮게 먹었던가보다. 거기다 걸음도 많이 걷고 해서 점심은 좀 든든히 먹은 데다. 저녁시간이 당겨졌다. 시큰둥하며 식당엘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메뉴가 샤브샤브다. 마음이 좀 놓인다. 다행이다.
식탁 가운데 끓는 냄비를 놓고, 각가지 야채를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옆엣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야채를 넣고 건져먹으며 계속 음식에 대한 논평을 했다. 내 옆에는 서울서 온 두 여성 친구가 앉았다. 70학번이란다. 그간 지켜본 결과 가장 교양 있어 보이는 팀이었다.
참 중요하다. 여행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이 중요하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배불러서 싫다던 저녁 식사가 의외로 즐거운 식탁이 되었다. 아침에 조식을 같이 했던 남성이 우리 좌석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우리 여행단이 모두 29명이어서 언제나 10명,10명,9명으로 나누어 앉는다. 우리가 9명인데 8명이 여성이고 그 사람만 남성이다. 그가 맥주를 따랐다. 요즘 내가 술 실력이 늘어 3잔이나 마셨다. 한 잔은 가이드가 따라주었고. 화기애애, 무르익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 옆의 70학번이 나를 보고 '분위기메이커' 란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가서 잠간 정리하고 내려왔다.
배를 타러 갈 것이다. 은근히 기대가 된다. 부두에 다다르니 그 부두 가에는 큰 건물이 있는데 그 입구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미 해는 져서 밤이다. 건물 벽 전체에 전광판이 휘황하게 움직이고 있다.
참 중국은 화려함과 초라함의 양극단이 공존하는 듯하다. 아침에 식사 후 딸과 잠간 동네 산책을 나갔었는데 골목길이 무척이나 더러웠다. 발을 갖다 대기도 싫을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이 거의 미개인 수준이다. 우리 앞에 걸어가던 어떤 열여섯살쯤 돼보이는 소년이 우유팩같은 것을 사정없이 길에 내던지는 것을 보았다. 딸과 나는 깜짝 놀라 어이없어했다(이번 여행은 딸과 둘이 나섰다). 특히 나무이파리들이 먼지에 덮여 뿌옇다. 그건 그들의 잘못은 아닌 듯 싶다. 중경에는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날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흐려서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날도 아주 드물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던 날은 햇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그래서 그림자도 선명했다. 가이드가 우리를 복 받았다고 했다.
드디어 배를 타러 물가로 내려간다. 둥둥 떠 있는 가교를 딛고 배로 건너갔다. 오늘 우리는 또 한 번 행운을 맞이했다. 원래 우리가 타려던 배가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못 오고 대신 아주 호화로운 유람선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배로 들어가니 전혀 예상외다. 내겐 그저 유럽 갔을 때, 세느강에서 타던 배만 머리속에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샨데리아가 휘황찬란하게 달려있고 일류 레스토랑? 아니 커다란 무도장 같기도 하다. 테이블, 의자가 중앙에 셋팅 되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니 역시 중앙에는 고급 레스토랑 풍에다가 가장자리 쪽으로는 좌석이 주욱 배열되어있다.
어찌어찌해서 중년의 부부와 어울리게 됐다. 그들은 부부와 아내의 언니, 그 언니의 친구 이렇게 네 명이다. 우리 두 명과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의자를 두 개 끌어다 놓고서.
원래 그 부부는 어제부터 우리에게 관심이 있었다. 나를 어찌 보았는지 좋게 보았다. 그러면서 그 남편 나를 보고 "우리 아내가 여사님을 롤 모델이래요' 라고 어제 말했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우연이 아닌 듯싶다.
그러고 보니 아까 버스에서 대족석각으로 가는 길에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해외여행 중 자기소개시간을 가져본 건 처음이다. 노래도 시키는 쪽으로 유도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내 소개를 좀 윗트 있게 했다.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개하는 중에 박수도 나왔다. 그리고 노래를 '언체인 멜로디' 를 3분의2만 불렀다. 사람들이 충격 좀 받은 것 같다. 좋은? 나쁜? 그건 난 모르겠다. 각 자의 자유니까...
춥지도 않다. 기온이 이렇게 이상적일 수가...밤의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지만 이 배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벅찼다. 매일 나가기만 하면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를 비롯해서 멀리 보이는 무지개 빛깔의 빛을 뿜어내는 건물들은 꿈의 궁전을 방불케 한다.
중국에는 아파트도 많이 지어져 있다. 거의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위용도 당당하게 서 있는 아파트들을 보면서 왠지 우리를 멀지 않아 밀어부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배가 달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바람이 분다. 이제 좀 춥다. 유럽 갔을때는 배 위에서 바람에 날아갈 뻔 했었다. 추웠던 기억밖에 없다. 좁은 강과 차가운 쇠의자, 물론 다 부정적이진 않다. 지금 이곳이 풍요로우니까 대비가 되는 것일 뿐이다.
그 남편이 중국술을, 52도짜리를 사왔다. 언제나 부지런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젊은이다. 연하남편이라고 했다. 그것도 많이... 나는 몇 년 차이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부인은 마음속에 무언가를 가득히 품고 있다. 숫자적으로 알지 않아도 충분히 다 느낄 수 있다.
술을 받았다. 향기가 좋다. 예전에 보았던 빼갈이라는 술 하고는 전혀 다른 듯하다. 맛도 향긋하다. 조금씩 세 번을 마셨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모하고, 격려하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
언니의 친구는 책을 좋아한다며 내 책의 제목을 물었다.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사겠단다.
- 이영혜 약력 -
* 진주여고 졸업
* 신등중학교 강사
* 체신부 발간실 편집장
* 도서출판 예지각 편집차장
* 새마을연수원부설 보육교사교육원졸업
* 월간 <수필문학> '유럽여행기" 등단
첫댓글 재밋네요^^
책 나오면 저도 꼭 사서 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이민호 간사님,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격려가 되는군요.
더운날 건강하게 지나시기 바랍니다.
중경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일러무삼님, 안녕하시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