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0호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릴 적 자주 불렀던 한 동요가 떠오른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미국 민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티븐 포스터(Steven C. Poster)의 곡에 윤석중 선생이 가사를 붙인 이곡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을 마치 기러기를 부르는 인간의 손인 양 비유했다.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밀튼 올슨(Milton Olson)은 철새, 특히 기러기의 이동 생태를 연구한 학자다. 그는 가을 하늘 위로 V자 대형을 이루며 먼 길 떠나는 기러기의 이동비행을 연구하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기러기들이 V자 형태(밑에서 보면 V자이지만, 옆에서 함께 날면서 보면 뒤따르는 기러기는 앞의 기러기보다 조금 위에서 난다)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이유는, 장거리를 날기 위한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앞에 나는 기러기의 날개 밑에서 뜨는 힘, 즉 양력(揚力)이 발생하여 바로 뒤에서 나는 기러기는 훨씬 힘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리 지어 비행하면 혼자 날 때보다 무려 72%나 멀리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러기들은 V자 대형에서 이탈하여 공기 저항을 느끼면, 즉시 자기 자리를 찾아 본래의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로, 선두 기러기가 피곤하게 되면 이 기러기는 대열의 맨 뒤로 가고, 대신 바로 그 뒤를 따르던 기러기가 앞으로 치고 나가 흐트러짐 없이 대열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놀라운 협동이고 리더십의 순환이다.
셋째로, 선두의 리더 기러기는 비행 중에 언제나 뒤따르는 기러기들에게 계속해서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지치지 말라는 격려의 응원 소리라는 것이다. 기러기의 울음소리를 영어로는 ‘honk’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아자, 아자’ 힘내!‘ 쯤 될 것이다. 한 조직에서 리더의 격려와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준다.
넷째로, 함께 날던 기러기 중 아파서 뒤처지거나 포수들의 총에 맞아 땅에 떨어지는 기러기가 있다면 반드시 두 마리의 기러기가 대열에서 빠져나와 뒤쳐진 동료를 도와준다는 점이다. 이 기러기들은 낙오된 동료의 죽음을 확인하거나 혹은 그 동료가 소생하여 다시 날 때까지 끝까지 곁을 지켜준다. 참으로 감동적이다.
아프리카에 이런 속담이 있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저기 보이는 나무 아래 사탕을 한 봉지 놔뒀는데, 달리기에서 일등을 하는 아이가 다 가질 수 있단다. 출발!” 그런데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나무까지 뛰어가 사탕을 나눠 먹었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물었다. 일등하면 혼자 다 먹을 수 있는데 왜 같이 뛰었느냐고. 그러자 아이들의 입에서 합창하듯이 ‘우분투(Ubuntu)’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다.
인생길은 순례 길이다. 그 길은 혼자 빨리 가는 길이 아니다. 함께 손잡고 가야 하는 먼 길이다. 그 길은 하늘의 별자리와 지구의 자장(磁場)을 참고 참아 수천수만 리 날아가는 기러기의 비행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기러기들의 비행을 닮으면 참 좋겠다. 따로따로 가지 말고 대열을 지어 앞서 가는 잘난 사람들은 뒤따르는 사람들이 좀 더 편히 올 수 있도록 바람을 헤쳐 주면 좋겠다. 그러다 지치면 잠시 뒤로 가 쉬면서 다른 이에게 리더의 자리를 내줘 보면 좋겠다.
선두에 서면 혼자 잘난 척하지 말고 뒤따르는 무리들에게 끊임없이 격려와 칭찬을 해 주면 좋겠다. 힘내라고, 이제 다 왔다고. 하지만 쇠약하거나 사고를 당해서 낙오되는 동료가 있다면 그의 아픈 삶의 자리로 내려가 다시 일어나 본진에 합류할 때까지 돌보고 지탱해 주면 좋겠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그리고 우리의 사회가 기러기의 비행을 닮으면 좋겠다.
자연에게서 배운다! 자연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Creation)는 그것을 지으신 이의 지혜와 섭리와 은총으로 가득 차 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편 8:1)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성경을 주셨다.
하나는 ‘듣는 성경’ 즉 성경책이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로마서 10:17) 다른 하나는 ‘보는 성경’ 즉 자연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20)이다. 기후가 붕괴하고 하루에도 1백여 종의 생물이 멸종하는 생태 위기의 시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성경을 하늘의 별자리와 지구의 자장 삼아 먼 생명의 순례 길을 훨훨 날아갈 일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11)
- 장윤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한국교회 환경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