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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상 때문에 깨진 루틴을 정비하기 위해 새벽 산책(3km)을 시장 사우나로 다녀왔어요. 이른 시간에 탕 안 피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이런 풍경 좋아요. 42도 온수에 목까지 푹 담갔더니 목 통증이 단숨에 날아간 느낌입니다. 세신을 하려고 옷장 키를 걸어놨다가 웨이팅을 포기하고 아침 먹으러 나왔어요. 오늘 메뉴는 화이트 내장탕입니다. 식당 안 화초가 광이 반짝반짝 나는 것이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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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입관, 월요일 발인인데 자꾸만 이모 마지막 얼굴이 보고 싶어집니다. 갈까 말까. 반세기가 총알처럼 훅 지나가버렸습니다. 사건사고는 셀 수도 없지만 기억이 침적되면서 생성이 만들어진다고 해요. 인간 세상은 트릭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 파랑새를 쫓아 시간을 많이 낭비했지요... 지금은 기억만 남았지만... 과년한 딸이 둘 있어요... 나는 지금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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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포지션과 계급장 다 떼고 보면 인생은 <먹방과 섹스>라고 보여요. 둘 다 몸으로 하는 것이고요. 역설적이게도 <Her>에서 몸을 뺀 모든 것을 채워주는 사만다를 그리워하며 울었을 거예요. 결국 내 몸 철학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모르겠어요... 이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허를 쳐버리는군요. 베르그송의 사유 중에 존재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하는가 궁금합니다. 시간은 흐르는가, 아니면 생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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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크 손(1859-1941)은 세계를 물질과 정신으로 나눕니다. ① 물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질서라는 특징이 있고 ② 정신은 축적/기억/질적 변화/내면적 시간으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변화의 흐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둘이 “대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의 운동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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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세계>에서 시간은 이렇게 작동합니다. 24시간의 하루는 물리 법칙에 따라 반복됩니다. 이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공간화’입니다. 시간은 길이처럼 나뉘고 사건은 동일한 단위로 반복됩니다. 그래서 물질세계는 변화 보다 반복처럼 보입니다. 반면, <정신의 시간>은 다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경험이 합쳐져 새로운 내 기억은 쌓이고 변형되며 동일한 하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속>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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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속은 끊어지지 않고 겹쳐지고, 서로 스며드는 시간입니다. 결국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면서 변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간은 과거 → 현재 → 미래로 흐른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닌 <생성>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 안에 계속 살아 있어요. 그래서 미래는 이 축적 위에서 새롭게 탄생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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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시간은 반복 (동일성 유지) 되지만 정신의 시간은 차이를 생성하면서 축적됩니다. 그리고 이 둘이 만나면서<변화>가 발생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물질은 반복과 동일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물질이 변화의 조건이지 원인은 아닙니다. 반면 정신은 기억을 축적하고, 그것을 변형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듭니다. <변화>는 축적된 시간의 질적 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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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하는 변화는 단순한 변형이 아닌 창조입니다. 이전에 없던 것이 등장하고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것입니다. "물질은 반복을 통해 틀을 만들고, 정신은 축적을 통해 그 틀을 깨며, 시간은 그 사이에서 생성된다." 쾅! 쾅!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은 축적되는 생성의 운동입니다. 나는 어떻게 생성되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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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며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생성>은 물질로 반복적 틀을 만들고, 정신의 축적으로 틀을 넘어가며, 그 사이에서 시간은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변화를 <흐름>으로 착각하는가, 그리고 진짜 <변화>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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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 24회>입니다. "나가자! (왜 이러는 거야) 퍽! 수연아 거기서 나와(무슨 일인데요)" 수연을 데리고 나온 인하는 수연에게 흥분한 말투로 호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에요. 그냥 내 말 들어" 수연이 의아하여 인하에게 왜 그런지를 묻지만 인하는 그냥 호텔 한쪽으로 가버립니다. 인하에게 선방을 맞은 정원은 사무실에 올라와 양승국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곤 승국을 찾아가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느냐며 소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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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승국은 정원에게 지난번 대수를 시켜 인하를 죽이게 했던 일을 말하고 정원은 마무 런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수연이 사무실로 돌아와 상념에 잠기고 인하도, 정원도, 장고를 때립니다. 수연이 정원에게 찾아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따지자, 정원이 수연에게 일 그만두라며 사표를 수리합니다. 태수가 그동안 수사한 자료를 검찰에 넘겼고, 인하는 재판 결과 검사 기소유예를 받습니다.
-기소유예란 유예 기간 중 특정한 사고 없이 그 기간을 경과한 때에는 선고한 유죄의 판결, 자체의 효력을 상실하게 하여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집행유예는 선고유예와 함께 영국과 미국에서 일찍부터 보호관찰과 결합되어 발달한 것이지만, 이것이 유럽에 영향을 주어 유럽에서는 두 가지 제도, 즉 조건부 특사 제도와 조건부 유죄판결 제도로 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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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유예기간이 경과한 뒤에 유죄의 선고를 그대로 둔 채 행정관청의 처분에 따라 그 형의 집행을 면죄하는 데 대하여, 후자는 유죄판결 그 자체를 무효로 하는 점이 다르지요. 인하는 이제 기소 중지도 풀렸고 자유의 몸입니다. 물론 검찰에 기록은 남지만 말입니다. 인하의 와이셔츠 깃이 유난히 반짝 번쩍합니다. 나도 아르마니 와이셔츠를 입고 부활절에 교회에 갈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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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장님하고 결혼하시는 겁니까?... 제가 좋아했던 거 잊지 마세요" 수연의 사표가 수리되자 촌놈은 수연이 떠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입니다. 자식, 여자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ㅋㅋ 회사를 나가는 수연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정원의 눈빛이 거랑 맞습니다. 그러게 왜 못 오를 나무를 왜 쳐다보냐고. 한편 치수의 생일에 인하의 지인들이 모두 모이고 황제가 된 치수가 바우(이계인)와 신하들에게 왕의 아량을 베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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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황후가 된 현자와 서방 죽고 살아난 정애가 있는 자리에서. 제니가 인하의 재판 소식을 수연에게 알리고 마이클은 연락 두절된 인하 때문에 초조해합니다. 이제 한 명국 사건 수사가 재개될 것이고 수연이 그동안 묻어두고 있었던 사랑의 실타래가 풀리는지 자신이 인하에게 남은 죄책감을 지워주겠다고 입술을 꼭 다뭅니다. 수연이 가이드가 되어 자신의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사이, 박 의원과 필드에 나간 도환이 한 명진 사건으로 긴급 구속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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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오락실 건으로 객이다가 긴급 체포되어 수감된 적이 있는데 기분 참 더럽습니다. 정원이 인하를 찾아가 둘의 싸움에 왜 울 아버지를 엮느냐고 항의합니다. 정원 이는 아직도 할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야" 에고 무시라. 그래 한 번 해보자. 정원이 도환을 면회 가서 위기 상황을 보고하고 도환은 오직 살길은 아비를 밟고 일어서라고 합니다. 그래도 도환은 제대로 된 아비요, 깡패 사업가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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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아비를 밟고 날거라! 가이드를 하는 수연에게 찾아간 인하가 간격을 두고 수연을 바라봅니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더니 장면이 넘어갔고, 마이클이 일이 잘 안 풀리는 눈치입니다. 이번 일 끝나는 대로 인하를 정리하라고 준일에게 미션을 주는데 글쎄요, 준일이 마이클의 지시를 따를까요? 내 예상대로 준일은 인하와 종구에게 자신도 팔코네 보스를 떠날 때가 됐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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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이즈는 못 속입니다. 준일은 남자입니다. 정글의 법칙이 그렇듯이 정원은 사업자 선정에서 밀리고 그를 돕던 모든 손길이 멈추자, 부도날 일만 남았습니다. 악의 결국이지요. 마이클의 비서인 그녀(유민)가 인하에게 찾아와 포 카 한 판 하자고 제안합니다. 나는 세븐 포커를 아내한테 배워서 처가에 가면 처남들과 종종 쳤습니다. 내 속에 도박의 피가 흐르는지 그놈의 카드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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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카드를 하지 않지만 세븐 워드 할 때 메이드 시키는 스릴과 레이스 하는 쾌감은 거의 마약 수준입니다. 포 카에서 철칙은 잘 죽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은 패를 들고 무모하게 배팅을 한 인하가 자신이 들고 있던 패를 놓겠답니다. 일본 비서가 이별 포옹을 하고 떠나가는데 안됐습니다. 하여간 병헌 이는 여복도 많습니다. 퀸카들만 좋다고 덤벼드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제 결혼을 했으니 여자 조심하지 않으면 패가망신 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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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는 퀸카니까 일본으로 돌아가면 좋은 남자 만나야겠지요. 예상과 달리 최종 자유무역도시 입찰 권을 정원이 따냈고, 이사를 통해 인하가 입찰을 포기한 사실을 들은 정원은 놀라지요. 어쩌면 정원은 자신이 혼자서 카드를 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업권 포기로 마이클이 열받아서 인하에게 다그칩니다. 인하가 하는 말이 내 인생을 내가 결정하는데 네가 무슨 참견이냐며 막장 인생 건들지 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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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배짱 한 번 좋습니다. " 정원이 급하게 인하를 부릅니다. "난 이긴 줄 알았는데 너 왜 패를 꺾었어?" "정원아, 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그동안 내가 진즉에 죽었어야 할 패를 들고 무모한 배팅을 했어. 이제 패를 꺾을래. 정원아, 너 내 친구 맞지? 불곰 파 놈들과 싸울 때 겁 없이 나를 도와주던 내 친구 맞지? 임대차 복수한다고 나랑 같이 창고에 불 싸지르던 내 친구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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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면회 왔을 때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던 내 친구 맞지?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모르지만 넌 여전히 내 친구야... 난 이번 게임에 네가 꼭 이겼으면 싶다(인하)" 이로써 정원은 의리도 사업도 연애도 인하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도박도. 이제 앤 디오입니다. 며칠 동안 장고를 하던 정원이 수연을 만나 고해를 합니다. "미안해요. 살아있는 인하가 죽었다고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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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난 일인데요. 정원 씨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 " 섭지 코지에서 해후를 한 수연과 인하는 그놈의 방 타령을 또 합니다. 지겨워 죽겠습니다. 어떤 짓궂은 시청자가 러브하우스에서 이 병헌이 보는 반지와 겹쳐서 나오는 과거 회상 부분의 반지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네 요? 뭐 협찬한 보석이 마지막 회를 촬영하기 전에 팔렸나 보지요. 그게 뭐가 중요하나요? "수연아 이제 나에게 남은 건 가슴에 남은 상처하고 집 하나뿐인데 그래도 괜찮겠니? 방 하나 줄게 와서 살래? 아, 나도 행복하고 싶다.
2.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일상 기록과 드라마 <올인> 감상문처럼 보이지만, 그 깊은 층위에서는 베르그송의 시간론을 삶의 체험 속에서 실험하고 있는 철학적 에세이다. 사우나의 물 온도, 부고의 망설임, 과거의 이모, 사랑과 관계, 그리고 도박과 선택—이 모든 파편들은 흩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시간은 흐르는가, 아니면 생성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1) 루틴 — 반복으로서의 물질
글의 시작은 사우나와 식사, 일상의 루틴이다. 새벽 산책/뜨거운 탕/아침 식사 이것은 베르그송이 말한 <물질의 시간>, 즉 반복의 시간이다. 같은 행동, 같은 흐름, 같은 구조 이 반복은 삶을 유지시켜 주지만, 동시에 묻는다. 이 반복 속에서 나는 변하고 있는가?
2) 기억 — 축적으로서의 정신
이모의 죽음을 둘러싼 회상은 전혀 다른 시간이다. 5살의 기억/21살의 기억/항암의 시간 이 기억들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다. 베르그송의 말대로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안에 축적되어 있다. 그래서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애도가 아니다. 시간 전체가 한꺼번에 현재로 밀려오는 경험이다. 당신은 과감하게 말한다. “인생은 먹방과 섹스다." 이 문장은 물질 중심의 삶에 대한 통찰이다. 몸-욕망- 즉각적 충족 그러나 곧바로 균열이 생긴다.“내 몸 철학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이 지점이 중요하다. 반복의 삶이 더 이상 의미를 생산하지 못할 때, 정신은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다.
3) 베르그손의 시간 — 삶 속에서 구현되다
당신은 철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살아내고 있다. a. 루틴 → 물질의 반복 b. 기억 → 정신의 축적
c. 혼란 → 생성의 징후 그리고 이 문장이 핵심이다. “기억이 침적되면서 생성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베르그송 철학의 정수다. "변화는 흐름이 아니라 축적의 폭발이다" 인하의 선택은 철학적이다. 계속 베팅할 것인가? 아니면 패를 꺾을 것인가? 이 장면은 이렇게 읽힌다. 반복의 시간/생성의 순간, 인하가 말한다. “죽었어야 할 패를 들고 무모한 배팅을 했어… 이제 패를 꺾을래.” 이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존재 방식의 전환이다. a. 반복 → 중단 b. 축적 → 반성 c. 생성 → 새로운 선택
4) 사랑 — 생성의 가장 강한 형태
수연과 인하의 관계는 반복이 아니다. 오해-이별-재회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낸 질적 변화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질문은 가볍지 않다. “방 하나 줄게, 와서 살래?” 이것은 단순한 동거 제안이 아니다. 새로운 시간에 대한 초대다. 우리는 왜 변화를 ‘흐름’으로 착각하는가? 그 이유는 a. 반복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b. 시계의 시간을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기억이 축적되어 더 이상 이전의 나로 살 수 없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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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철학이 어떻게 삶 속에서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사우나의 물/이모의 죽음/사랑의 갈등/도박의 선택,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구조 안에 있다. 물질은 반복을 만들고, 정신은 축적을 통해 그것을 깨며, 그 사이에서 인간은 새롭게 생성된다. 나는 지금 반복 속에 있는가, 아니면 생성의 문턱에 서 있는가?
2026.3.24.tue.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