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성(山东省) 서남부에 있는 지닝시(济宁市, 제녕시)의 현급시(县级市)로 성회(省会)인 제남에서 남으로 130㎞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역사문화명성(1차, 1982)으로 지정되었다. 시인민정부는 루청가도(鲁城街道, 노성가도)에 소재하며 행정구획은 2개 가도, 6개 진, 4개 향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내는 남북 최대 35.8㎞, 동서 최대 25㎞로 면적은 896㎢, 인구는 64만이다.
취푸(曲阜, 곡부)는 선진시대 저명한 사상가, 교육가, 유가 창시자인 공자가 탄생하고 학문을 가르쳤으며 묘장(墓葬)과 후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역사가 유구하고 문물이 많으며 기후가 적합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산이 푸르고 물이 맑아 인걸이 많이 배출되었다. 기원전 21세기 전후 취푸는 요순시대 구주(九洲)의 하나인 쉬저우(徐州)에 속하였으며 기원전 16세기 후반 상대(商代)에는 엄국(奄国)의 국도였고 또한 일시적으로 상(商)의 도성이 되었었다.
기원전 1066년 서주 무왕이 상의 주왕을 멸망시킨 후 무왕은 그의 동생 주공 단(周公旦)을 이곳에 봉하여 노(鲁)를 건국하도록 하였다. 노(鲁)는 취푸(曲阜, 곡부) 역사상 황금시기로 당시 주(周) 왕조의 수도 호경(镐京)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발달한 제후국이었으며 특히 춘추 말기 저명한 사상가이며 교육가인 공자가 노(鲁)에서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면서 취푸는 전국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원전 223년 진(秦)이 초(楚)를 멸하며 노현(鲁县)은 진(秦)에 편입되었고 진시황 26년(B.C. 221) 중국을 통일하며 군현제가 실시되며 노설군(鲁薛郡)이 설치되며 군치(郡治)가 되어 쉬저우부(徐州部)에 예속되었다.
취푸시(曲阜市, 곡부시)는 공자의 탄생지이며 춘추시대 제후국인 노(鲁)의 수도로 1994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공자의 사당인 공묘와 공자 후손들의 주거와 관서를 겸한 공부(孔府),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지인 공림(孔林), 노(魯)의 도성 유적인 취푸노국고성(曲阜鲁国故城), 한노왕묘(汉鲁王墓), 공자의 제자인 안회(颜回, B.C. 521~B.C. 481)의 사당 안묘(颜庙)가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등 현재 문물보호단위 300여 개소, 중점문물보호단위 112 개소가 있으며 또한 취푸명고성여유구라는 명칭으로 2007.5 국가 66개 5A급 여유경구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취푸 쿵먀오
[ 曲阜 孔庙 (곡부 공묘) ]
'즈성먀오[至圣庙]'라고도 한다. 공자가 세상을 뜬 후 그 이듬해인 기원전 478년에 축조되었다. 당시에는 3칸의 사당에 지나지 않는 작은 규모였으나 공자사상이 중국 봉건문화의 정통으로 인정받고 역대 통치자들이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공자를 “지성선사(至圣先师)”로 받들었다.
황제가 직접, 혹은 관원을 파견하여 제사를 올렸고, 쿵먀오의 규모는 점차적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이곳의 비각이 유명한데 현재 2,100여 개가 현존하고 있으며 그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
다청뎬[大成殿]은 중심 건축물로 화려하며 웅장한 외형이 돋보인다. 크기 1m의 황금색 글자는 청(淸)나라 옹정제(雍正帝)의 친필이며, 사방의 복도는 용이 새겨진 28개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전면에 세워진 10개의 기둥인데, 매 기둥마다 두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두 마리의 용은 하나의 진주를 함께 물로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를 “二龙戏珠(이룡희주)”라고 불렀다. 다뎬[大殿] 안에는 높이 3.3m의 공자조각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모습은 위엄이 넘친다. 그 양쪽에는 안회(颜回), 증삼(曾参), 공급(孔及), 맹가(孟轲)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으며, 각각의 높이는 2.6m이다. 이 밖에도 높이 2m의 “十二哲(십이철)” 조각상이 있다. 다청뎬은 매년 공자의 제사의식을 거행하는 주요장소이다. 공자탄신일(음력 9월 28일)이 되면 다청뎬 앞에서는 제사가무인 “바이우[八佾舞]”공연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