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 김삼웅
<읽고 밑줄 그은 내용을 옮긴>
소크라테스는 참으로 멋있는 사내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받자, 그의 제자는
‘스승님께서 부당하게 처형되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듭니다’ 라고 말하자
‘그러면 너는 내가 정당하게 처형되는 것을 원하느냐?’ 라고 말했다 한다.
세상에는 정신이면서 물질인 것이 두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책이다.
누군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은 불, 바퀴, 문자.
불은 야수로 부터 인간의 종을 지켜주었고
바퀴는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단축시켜 주었고
문자는 의사소통을 위한 시각적 기호체계 여서 기억의 축적을
가져옴으로써 역사시대를 열어주었고 문명과 문화를 일구고
과학시대, 정보사회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백(701-762)과 두보(712-770)를 둘러싸고 어느 쪽이 위인가에 대한 논쟁.
흔히 이백을 시선 이라 칭송하고 두보에게는 시성 이라는 왕관을 씌운다.
仙 과 聖 을 따지는 일은 형이하학자들이나 할 일이다.
일리아드의 서사시 한 편만을 읽기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도
결코 억울할 것이 없다고 말한 이는 시인 쉴러다
옛 사람들은 책을 천고상우/天古尙友 라고 했다.
천년을 사귄 벗이라는 뜻이다.
미국 코넬 대학의 머민 교수는
보는 사람이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 라는 물리학상 명제를 제시했다.
어느 시대나 권력투쟁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알메르 카뮈는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헤어진 연인을 만난 듯이 밥 먹는 것조차 종종 잊는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인간이 발명한 무수한 도구 중에 가장 놀랄만한 것은 책’이고
그 이유는 ‘기억의 확장이고 상상력의 확장‘ 이라고 했다
그런 보르헤스가
‘천국은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 라고 선언 한 것.
흔히 사림과 양반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차이가 크다.
사림은 어디까지나 지식인과 선비의 한 묶음이지만
야반은 계급적 세습적 특권이었다.
양반 중에서 선비와 사림이 나왔다 해서 양반이 곧 선비는 아니다.
글쟁이가 먹고 사는 길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유일한 시대에
두보는 과거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사발농사로 평생을 살았다.
그런 정황에서도 두보는 시와 벗과 술을 좋아했다.
중국문학사에 이백과 두보가 있다면
러시아에서는 톨스토이와 도소토예프스키가 있다.
동시대에 태어난 작가로써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던 톨스토이는 그가 죽고 15년이 지난 후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서적, 특히 문학서적은 내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다 불살라버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만은 예외다.
그의 작품은 모두 남겨두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간의 ‘영생론’을 짧은 글에서 적절하게 표현했다.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식을 낳는 것과 책을 남기는 것‘ 이다.
상정일련/嘗鼎一臠 이란 말이 있다.
가마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국의 맛은 한술만 떠먹어도 알수있다는 뜻.
책도 마찬가지.
임어당이 <생활의 발견>에서
청년시기에 책을 읽는 것은
문틈을 통해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중년시기에 책을 읽는 것은
자기집 틀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노령시기에 책을 읽는 것은
창공아래 노대에 서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독서의 깊이는 체험의 깊이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한명회(1415-1487)
그 처럼 살아있을 때는 세속적인 영화를 누리고
죽은 지 20년이 못되어 부관참시를 당한 사람도 드물다.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정권을 쥔
계유정난의 일등공신.
영의정을 다섯차례나 맡았으며 원상/元相 이라는 특권도 누렸다.
두 딸은 예종비와 성종비로 들여보냈고
다른 두 딸은 세종의 사위 윤사로의 며느리와
영의정 신숙주의 며느리로 보냈다.
또 손자는 성종의 사위가 되었다.
얼마나 재물을 탐했던지 경기도 여주의 천녕현이 온통 한명회의
땅이 되어 현 자체가 없어지기도 했다.
권모술수와 타락한 권력의 상징인 한명회는 노후에 한강가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지어놓고 노후에 한강 가에 한껏 허세를 부렸다.
그리고 일세/一世를 풍미하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白首臥江湖
그런데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을 지나다
현판의 글자를 슬쩍 고쳐 놓았다.
扶를 危로
臥를 汚로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靑春危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더럽혔네 白首汚江湖
공운탁월 供雲托月
달을 그리려는데 달을 그릴수 없음으로
구름을 그리는 것.
뜻이 구름에 있는 것이 아닌데
그리다보니 그냥 구름을 그리고 마는 경우.
망문생의 望文生義
글자를 힐끗보고 그럴싸하게 해석하는 것
글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읽고 적당히 해석하는 것을 경계.
<뤼신 평전>을 번역한 홍윤기 교수는
3000년동안의 중국문학사 전체를 통털어
가장 빼어난 작가가 누구냐고 자문하고
다음과 같이 대표적인 인물 13명을 골라서 작가들을 짧게 평한 글
인문주의 문학전통을 확립한 공자
짧고 유머스러운 우화를 빌어 우주와 처세를 이야기한 장자
자아의 절대적인 고독을 환상에 휩싸여 노래한 굴원
시간의 역사에서 사람의 역사로 처음 엮어낸 사마천
전원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발견한 도연명
자연의 아름다움을 불가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왕유
술과 달의 아름다움을 거침없이 드러낸 이백
고통 받는 민초들의 모습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 두보
원통하게 죽은 귀신의 모습과 소리를 기괴하고
섬뜩한 음계의 언어로 가슴 저미게 풀어내었던 천재시인 이하
적벽의 아름다움을 역사와 哲理/천리와 엮어 묘사한 소식
삼국 영웅들의 역사를 웅혼하게 그려 낸 나관중
인간의 성적 욕망을 발견하고 타락한 사회를 고발한 소소생
몰락해가는 봉건 대가족의 온갖 인간군상을 그려낸 조설근 등.
정조
책을 읽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독서를 하면 ‘ 폐와 명치 안의 체울滯鬱이 사라지는 듯한 정도’로
독서를 하루의 주요한 일과로 삼았다.
오락이나 여색 승마 등에 취미가 없는 대신 책읽기 글쓰기 고서수집
신료들과의 토론하기를 즐겼다.
나폴레옹
죽느냐 사느냐 정복하느냐 정복당하느냐으 전쟁터에서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전쟁이 나면 으레 책을 한 마차씩 끌고 나갔다.
이집트 원정을 갈 때는 1000여권의 책을 싣고 출전하기도 하였다.
수백명의 사서와 고고학자들을 대동한 기이한 출전이었다.
헤겔이 ‘ 지금 백마를 탄 세계정신이 내 앞을 지나고 있다’고 감탄하고
러시아 원정길에서 만난 괴테가 ‘데몬 중의 데몬’ 이라고 부를 만큼.
세익스피어와 베토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등
세계 지성들이 경탄할 정도로 그의 정신은 높고 깊은 면이 있었다.
그런 힘의 원천은 대부분 그칠줄 모르는 독서에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조각하고 나서
비격을 묻는 사람들에게
‘대리석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냈더니
다비드 상이 나타났다‘ 고 했다.
글쓰기의 요체도 이와 같지 않을까.
<역사의 연구>라는 저서로 20세기의 세계적인 역사학자로 명성을 날린
아놀드 토인비는 대단히 성실한 학자라는 평을 듣는다.
그가 쓴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을 위해>라는 글 소개하면
1. 덥비지 말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두고 문제나 과제를 전체적으로 보라.
2. 행동할 시기가 성숙되었다고 느끼면 즉시 행동하라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은 서두르는 것보다 더 일을 망치기 쉽다.
3. 날을 기다리지 말고 매일처럼 적당한 때를 잡아 정기적으로 글을 써라.
기분이 안 난다고 미루지 말라.
4. 일각의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말라
오늘이 끝났다고 더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5. 언제나 앞을 보라.
자동차 경주 선수들이 목표점이 있는 지평선을 망원경으로 보듯
멀리 앞을 내다보라.
첫댓글 세상에는 정신이면서 물질인 것이 두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책이다 정답중의 정답인것 같습니다
...
위 글중에 한명회가 나와서 한말씀 하겠습니다
본인이 바로 한명회 (충성공파) 16대 손 입니다
고려시대 한 난 시조 할아버지 부터는 32대손입니다 ㅎㅎ
칠삭동이 한명회가 삼국지를 읽고 정치에 통달했는지는 몰라도
어쩧든 권모술수를 많이 부린 사람인건 확실한것 같습니다
세조가 10대의 젊은 단종에게 정치를 맏기기가 불안 했기도 했겠지만 한명회 같은 역적인지 충신인지가
나서서 도와주닌까 정권을 찬탈하기가 쉬워겠지요 ㅎㅎ
"모사는 역적이요 성사는 제천이라" 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요
자네가 한명회의 16대손 인지는 몰랐네.
그리고 나는 책을 읽고 숙지 해야할 부분을 옮겨적었을 뿐...?
한명회에 대해서 사람마다 거의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을 터~~~
영의정을 다섯차례나 맡았으며 원상/元相 이라는 특권을 누릴정도이고
두 딸은 예종비와 성종비로 들여보내고
다른 두 딸은 세종의 사위 윤사로의 며느리와
영의정 신숙주의 며느리로 보낼 정도였으니
그리고, 손자는 성종의 사위가 되었으니
어디, 어지간히 비범한 사람인가?
후대 왕들이 세조같은 왕위 찬탈을 막기위해 세조를 예를 들어 역사를 얘기하다보니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인 한명회가 후대에도 욕을 먹는 점이 있다고 생각이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