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쿤의 대 역전승. 팔 힘이 떨어지자 어깨로 누르는 걸 볼 수 있다 |
팔씨름이라는 이름의 스포츠
사실 팔씨름만큼 보편적인 동시에 디테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도 드물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스포츠라는 말 자체에도 거부감 혹은 이질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만큼 별다른 규칙이나 기술 없이 서로의 힘을 가늠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겨루기이기 때문이다. 세계팔씨름연맹(World Arm Wrestling Federation)이라는 엄연한 공식 기구가 있고, 국내에도 공식 협회와 국가대표가 있어서 세계 대회에 도전한다는 건 그래서 스포츠보다는 이색 대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팔씨름이 스포츠라면 단순히 기구나 선수, 대회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진지하게 종목 그 자체의 디테일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공을 이용한 패싸움에 가까웠던 영국 초기 축구가 드리블과 패스 등 오직 그 자체만의 기술을 발달시키며 유일무이한 종목이 된 것처럼. 학창시절에 했던 팔씨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정말 고스톱처럼 동네마다 방식이 다르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교실 책상에서 할 때 대부분은 의자에 앉아서 했고, 반대편 팔로 책상 귀퉁이를 잡는 걸 반칙으로 치는 경우도 있었다. 손목을 꺾는 건 치사하다고 해서 서로 손을 잡는 대신 손목을 걸고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승부의 신>에서도 초반 세 경기는 이렇게 치러졌다.
손을 잡는 방법도 팔씨름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
공식적인 세계 랭킹이 집계되는 대회에서의 팔씨름 룰은 다르다. 우선 <승부의 신>에서 사용된 것처럼 팔꿈치 패드와 터치 패드, 손잡이로 이루어진 테이블을 이용해 반대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하며, 방송에서처럼 서서 승부한다. 방송과 다른 건 손목 대신 손을 맞잡는 것인데, <오버 더 톱> 마지막 장면처럼 손의 잡는 모양을 바꾸는 그립 기술, 그리고 종종 반칙으로 치부되는 손목 꺾기 등이 정당한 기술로서 인정받는다. 2PM에게 팔씨름 기술을 전수한 정지헌 챔피언은 시작과 동시에 팔을 자기 몸으로 끌어오는 기술을 가르쳐줬지만, 그 외에도 손목을 꺾은 뒤 당기거나, 어깨를 손목 근처에 붙여 어깨로 찍어 누르는 등, 다양한 기술이 존재한다. 닉쿤이 세 번째 주자인 에릭에게 역전할 때 막판에 힘이 빠지자 어깨로 누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공식 팔씨름 대결에서는 정당한 방법이다. 팔씨름을 영어로 암 레슬링(Arm Wrestling)이라고 하는데 씨름과 레슬링이 그렇듯, 힘을 바탕으로 여러 기술을 사용해야 승리할 수 있다.
‘짐승돌’들이 보여준 팔씨름의 묘미
전완근의 힘을 강조하는 전진 |
이번 <승부의 신>이 프로 수준은 아니더라도 팔씨름의 재미를 제법 보여준 건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어쩌면 단판 승부에서는 가장 강할지 모를 전진은 택연의 팔뚝 굵기를 걱정하는 탁재훈에게 “팔뚝 굵기는 상관없다”며 전완근의 힘을 강조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제작진은 44㎝라는 수치의 임팩트를 위해 정지헌 챔피언의 이두근 둘레를 측정했지만, 더 중요한 건 전완근과 손목의 둘레다. 꺾기를 비롯한 기술을 쓰고 팔의 힘을 손까지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손목이 튼튼해야 하는데 손목 강화 운동인 리스트 컬을 하면 전완근 역시 굵어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줬던 닉쿤의 경우, 과연 단판에서 전진이나 택연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뛰어난 지구력을 보여줬다. 전설적인 팔씨름 선수 존 블젱크의 경우 장력이 강한 악력기로 저반복 운동을 하기보다는 장력이 약한 걸로 고반복을 하며 지구력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닉쿤이 팔이 꺾인 상태에서 에릭이 지칠 때까지 버텼다가 역전한 장면은 지구력의 중요성을 증명했다.
역대 최고의 팔씨름 선수 중 한 명인 알렉세이 보에보다의 무시무시한 리스트 컬 |
남자들의 유사 싸움, 팔씨름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흥미로운 건, 스포츠가 가진 유사 전쟁의 치열함 때문일 것이다. 앞서 팔씨름에 대해 일상적인 겨루기라고 했지만, 정말 많은 남자들이 팔씨름을 한다. 마치 학원 액션 만화에서 새 학기마다 반의 싸움짱을 뽑는 것처럼, 학기 초마다 팔씨름 최강자를 가리는 건 남학생들의 흔한 통과의례다. 밖에서 운동깨나 했다는 신병이 들어오면 바로 소대 혹은 중대 내 팔씨름 강자와 붙이는 것 역시 군대의 흔한 풍경이다. 흔하기에 대수롭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다.
수컷끼리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승부 |
홍상수 영화의 찌질한 남자들부터 만화 <바람의 파이터> 속 최배달과 역도산 같은 파이터들까지, 팔씨름은 힘 대 힘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자존심 대결 역할을 한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신마적은 구마적과의 팔씨름 승부에서 이긴 걸 훈장처럼 이야기하고 다닌다. 존 블젱크나 알렉세이 보에보다 같은 전설적인 팔씨름 챔피언들은 월드 스트롱맨이나 역도 금메달리스트 같은 세계적 역사(力士)와 동급으로 여겨진다. <승부의 신>에서 다른 어떤 종목들보다 팔씨름 대결 이후 유독 패배한 신화의 허탈한 모습을 비춘 건 우연이 아니다. 전체 스코어 대결에서 볼 때 중 팔씨름은 그저 많은 종목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다수 남자들에게 팔씨름은 유사 싸움 즉 가장 평화롭게 서로의 서열을 정하는 의식이다. ‘짐승 대결’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수컷끼리의 싸움이라면 더더욱. 글쎄, 무식하고 무의미하다고?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공놀이가 그렇듯, 그런 무의미한 열정이야말로 스포츠의 본질이지 않을까.
첫댓글 택연이 팀원들끼리 팔씨름 하다가 팔이 부러졌다던데요 그 팀원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아 의문이였는데 이제보니 닉쿤 인가봐요 ㅎ
ㅎㅎㅎㅎ 그렇겠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