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산(四佛山) 대승사(大乘寺)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
창건 및 연혁
“죽령 동쪽 100리쯤 되는 곳에 우뚝 솟은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587년)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사방여래의 상을 새기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싸여 있었다. 하늘에서 그 산마루에 떨어진 것이다.
왕이 듣고 그곳으로 가서 예를 올렸다. 그리고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대승사라 이름하였다. <<법화경>>을 독송하는 비구스님을 청하여 절을 맡겼다. 사면석불에 공양을 올렸으며, 향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산을 역덕산이라 하고, 혹은 사불산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권3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다. 이때는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지 불과 70여 년이 지난 때였다. 그러므로 대승사는 신라불교의 개척자와 같은 사찰이다. 왕이 행차하여 창건을 명하였으므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다.
고려 고종 때 뛰어난 문인으로 상주 목사를 지냈던 최자가 절의 서남쪽에 있던 백련사를 중수하였다.
조선 초기 기화(己和)스님이 주석하면서 『반야경』을 연구하였고, 반야사(般若社)를 결성하여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기화스님은 조선 초의 유명한 스님으로 유학자들의 배불론에 맞서 <<현정론>> 등을 저술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1604년(선조 37)부터 중창이 시작되어 근 100년간 중건과 보수가 이어졌다.
1862년(철종 13) 명부전과 응진전을 제외한 대부분 건물이 소실되자 이후 중건하였다.
1899년 염불당(念佛堂)을 만들고 미타계(彌陀契)를 설치하였으며, 동별당(東別堂: 祖師堂)에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설치하여 7년 동안 정진하였다. 이때 동별당이 좁아서 많은 대중이 정진할 수 없었으므로 1906년 동별당 동쪽에 건물을 짓고 쌍련암만일회(雙蓮庵萬日會)를 개설하였다.
1956년 화재로 대부분 건물이 소실되었고, 1966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보문화재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 나한전, 시왕전, 선원,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 1960년 이후 중건하였다.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셨다.
무엇보다 후불목각탱화가 눈에 띈다. 이 탱화는 조선 후기에 조성하였으며, 관계 문서 등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본래 영주 부석사에 모셨던 것을 1869년 무렵 대승사로 이운하였다. 아미타후불탱을 나무에 조각하였다. 이러한 목각 탱화는 예천 용문사, 상주 남장사,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등에만 남아 있다.
극락전 : 금동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목조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응진전 : 석가여래 삼존상을 중심으로 주위에 오백나한을 모셨다.
명부전 : 목조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소조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모셨다. 주위로 목조로 된 시왕 등을 모셨다.
선당 :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보물로 지정된 금동 관음보살좌상(15세기 조성)을 모셨다.
마애여래좌상 : 윤필암에서 묘적암으로 가는 산길에 있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239호다.
<<대방광불화엄경소>> : 보물로 지정된 경전이다. 본래 대승사와 관련된 문화재지만,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목경찬 작가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는 <반야심경 마음공부>, <아미타경 마음 공부> 등 불교 마음공부 시리즈를 출간한 출판사 유노콘텐츠그룹의 이지윤 대리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작가님께 출간 제안을 드리고 싶어 이렇게 댓글 남겼습니다.
혹시 작가님의 연락 가능하신 메일 주소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메일로 보내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