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17일 모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 이은숙
시대 상황을 이해해야할 것 같다.
문장의 아름다움, 문체의 시적임 묘사.
순수함에 관하여 생각해 봤다. 나의 순수함은 없구나. 순수함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기차역에서 과일가게의 어떤 과일, 표현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 여은영
어려운 문장이 많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름 등을 적는다. (고마꼬)의 습관이 나와 비슷하다.
무의도식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의 의미도 알 것 같다.
*. 조아름
읽기가 어렵다.
설국은 느껴진다.
다 읽을 게요.
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순수함보다는 경제적인 면을 보게 된다.
*. 김유경
시마무라가 나쁘다.
남편의 순수함을 보고 결혼했다.
*. 조은영
피부를 지지미 옷감에 비교한 건 왜 그랬을까요? 50년? 오랜 사랑은 가꾸어 가는 건가? 이루어 가는 건가?
- 사랑이 스킵쉽으로부터 시작된다면 그 것 역시 헛수고라는 의미로, 이성간에 느끼는 욕정이 옷감의 수명보다 짧다는 의미로, 그걸 강조한 게 아닌가 싶네요.
*. 신이비 독서감상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설국에 다녀왔다. 노벨문학상을 탔을 만큼 유명한 소설 설국은 한마디로 문학의 정수,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내용상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건 아니지만, 문체가 그렇다. 문체란 작가가 언어를 사용하는 색깔이다. 그 문체가 동양의 미를 보여준다고 하지만 지극히 일본의 미를 보여준다. 한국의 미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이나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확실히 일본의 미와 한국의 미는 다르다. 어떤 식으로든 이 다름을 표현한다면 일본의 미는 비현실적이고 한국의 미는 현실적이다. 일본의 미는 정적이고 한국의 미는 동적이다. 일본의 문학은 서정이고 한국의 문학은 해학이다. 물론 이렇게 나누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단편을 단정한 표현이지, 느낌은 아니다. 느낌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인데 그걸 정확하게 표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불가능하다.
이 소설 설국이 1948년에 발표 됐다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그 문장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청량하여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슬픔을 보고 있다는 괴로움 없이, 꿈의 요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흰 눈 빛에 가옥의 낮은 지붕들이 한층 낮아 보이고, 마을은 고즈넉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했다.” 등에서 보는 것처럼 꾸민듯하나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그래서 독자는 문장 하나하나에 깊이 빠진다. 내용은 잊어도 좋다. 이런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면 정말 설국을 다녀온 느낌이다.
구성상으로 보아 독특한 것은 처음에 국경을 넘어 설국으로 들어가고, 그때 밤의 밑바닥은 하애졌다. 또 중간쯤 국경(75쪽)을 넘어 이쪽으로 나온다. 그때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즉, 밤이 하얀 설국과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간 현실, 이런 식으로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다시 설국으로 간다. 어떤 인연을 찾아서. 그러고는 더는 설국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설국은 마치 꿈과 같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아련한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시마무라는 이러한 것을 모두 헛수고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헛수고일까? 모든 인연이 정말 헛수고일까? 인간은 결국 죽는다. 그렇다면 헛수고가 맞나? 이런 질문을 해본다.
그리고 작가 야스나리가 했던 것처럼 설국 어떤 여관에, 어떤 소중한 인연과 함께 가고 싶다. 또 필사를 시작한다.
**. 다음 모임은 3월 31일 일요일 4시입니다.
신이비 원고 [개티오빠스파] 읽고 - 오타, 맞춤법, 어색한 문장, 기타 어색한 내용. 기타 바라는 점 등등
가차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6월 20일 출간되고 국제도서전에 출품됩니다.
시간되시는 분은 서울 국제도서전에 함께 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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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기행은
4월20일 토요일 입니다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