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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예쁜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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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에 읽는 임진왜란 이야기
육상 최대의 전쟁이 벌어졌던 진주성.
그 슬펐던 이야기.
4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슬픔은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인데…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는 진주성의
슬픈 노래.
임진왜란 육상 최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진주성.
그곳에는 두 명의 성주가 있었다.
1차전의 성주는 김시민!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 2차전의 성주는 누구였던가?
아무도 모른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서예원, 그는 도저히 상대할 수없는
압도적인 왜적을 맞아 끝까지 싸우다가
온 가족이 함께 죽어갔건만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주에 있는 진주성에 가보시라.
아무리 둘러본들 그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는 마땅히 진주에 있어야 하건만 진주에는 없고 뜻밖에도
저 멀리 횡성과 밀양에 가야 그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다.
진주 사람들은 왜 그를 잊고 있을까?
그가 다시 진주로 돌아갈 날은 언제이련가?
◎ 이 소설에서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할 것
*김성일은 간신이었을까?
*논개는 존재했을까?
*서예원이 도대체 누구인가?
*진주성 2차전의 주역은 누구였을까?
*과연 2차전이 불가피한 싸움이었을까?
*진주성 2차전에서 죽은 사람의 수를 오늘날의 인구비례로 따지면
수십만 명이나 되는데,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이 꼭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건만 옆에 있으면서 돕지도 않고
도망쳐 버린 육군 최고 지휘관들은 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왜 진주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진주성 성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을까?
*횡성의 육절려는 무엇이며 밀양의 육절각은 또 무엇인가?
◎ 진주성 전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임진왜란 육상 최대의 전투로 유명한 진주성 전투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지만 의외로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1차전에서는 김시민이 대승을 거두었고 2차전에서는 김천일등이 들어와서 도왔지만 결국은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전멸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 과연 김성일은 간신이었나?
먼저 김성일에 대해서부터 논해야 진주성 전투를 풀어나갈 수 있다. 김성일,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간신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통신사로 왜국에 갔다 온 뒤 임금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보잘 것 없는 위인이라 조선으로 쳐들어오지는 못 할 것이라는 보고를 해 조선을 임진왜란의 수렁 속으로 몰고 간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면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성일 때문에 조선이 임진왜란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대파들의 교묘한 말장난일 뿐이었다. 국가끼리 벌이는 전쟁의 근본 책임은 마땅히 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임금에게 돌아가야 하거늘, 반대파들이 책동을 부려 마치 임금보다는 김성일의 책임이 더 큰 것처럼 여론을 조작해버렸다. 그 반대파가 다름 아닌 노론의 전신인 서인이었다. 다만 임진왜란의 책임 소재를 따질 때, 그의 실언이 비켜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나라를 말아먹을 의도로 임금에게 그런 보고를 올린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김성일의 보고와는 상관없이 조선은 왜의 침입에 대한 대비를 끝까지 하고 있었다.
◎ 조선 후기는 노론의 나라라 할 만큼 노론이 지배한 시대
조선 후기의 역사는 노론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역사였고, 나중에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 중에도 그 노론의 후손들이 많이 탄생하게 되었다. 결국 김성일은 말 한마디 잘못 삐끗하는 순간 그 당대는 물론 대대손손 간신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될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책임 소재를 잠깐 접어 두고, 김성일이 전란 중에 했던 행위를 살펴보면 감히 그를 간신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경상도 지역을 돌며 몸소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자의 도덕적 책무)’ 정신은 이미 많은 학자들 사이에 검증이 되었고, 이 책에서도 드러나 있다.
◎ 간신 김성일에 겁쟁이 서예원(?)
그 김성일이 진주성 1차전의 성주로 발탁한 인물이 김시민이었고, 2차전의 성주로 발탁한 인물이 서예원이었다. 김시민이야 영웅대접을 받고 있고 또 마땅히 그럴만한 인물이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서예원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서인들, 즉 노론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었고 또 외면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결국 김성일이 서예원을 임명하는 순간 두 사람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묘하게 얽혀들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숙명처럼 말이다. 간신 김성일에 겁쟁이 서예원이라는.
◎ 서예원이 겁쟁이로 왜곡이 된 근거
이순신, 유성룡, 한석봉 등과 같은 동네(한양 건천동) 출신인 그는 임진왜란 개전 초, 김해성 성주였다. 그는 만 명이 넘는 왜군과 맞서 하루 동안 잘 버텨냈지만 마지막에 그만 도망치고 말았다. 이 도망이 그에게 겁쟁이라는 굴레를 씌워버렸다. 그는 훗날 진주성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온 가족과 함께 죽어 가건만 붓 쥔 자들은 처음의 구차한 삶만 끝까지 지적한다. 그리고 나중의 진실 된 죽음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또 왜곡해 버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진주성 2차전을 기록한 사람들이 서예원의 반대 당파인 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처음의 김해성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죽었더라면 겨우 두 시간 또는 서너 시간 버티다가 죽은 송상현이나 정발보다 한 차원 높은 충신 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막판에 가서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 소설에서 그의 도망을 미화시키고자 한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도 있는 그대로 밝혔지만 분명 이때의 그는 비겁했다. 또한 참수를 당해도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는 행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의 그는 비겁한 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 쥔 자들은 처음의 비겁함만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뿐 나중의 진실 된 죽음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외면만 한 것이 아니라 왜곡까지 했다. 치열한 전투 중에 질질 울고 다닌 찌질이라고.
◎ 진주성 2차전에서 모든 가족들과 함께 죽다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는 그리고 전혀 필요도 없는 싸움이었지만,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벌여야 했던 진주성 2차 싸움에서, 서예원은 왜군과 맞서 끝까지 싸우다가 온 가족과 함께 죽어간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를 겁쟁이로 묘사하고 있고 전투의 주역은 모두 서인들(김천일, 최경회, 황진등)로 둔갑시켜 버렸다. 또 어떤 기록에서는 전 가족이 왜적에게 투항했다고도 해놓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다행히 서예원의 둘째 아들인 서계철이 죽지 않고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고, 그 외 진주성 2차전에서 죽지 않고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예원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억울하게 기록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조선 정부의 조사 결과 서예원과 그 일가의 공적이 인정된다. 그렇다 할지라도 정부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야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 대신 조선 정부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서예원과 그 가족들의 공을 인정해준다. 먼저 서예원의 벼슬을 증직하고 강원도 횡성에 그와 가족들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을 세워 주는 것이다. 이름 하여 육절려(강원도 유형문화재)이다. 그런데 왜 진주가 아니라 강원도 횡성일까? 더 신기한 것은 경남 밀양에 가면 그들을 기리는 육절각이 또 있다. 이 소설에서는 여기에 얽힌 이야기들과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논개의 실체에 대해서도 조명해놓았다.
◎ 작가 소개
저자 조열태.
61년생으로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가 생계를 이어나가는 방편인데, 역사와는 동떨어진 과목이다. 하지만 시간이 날 때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역사에 관한 책 읽기이다. 역사가 묘한 매력으로 그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심과 흥미에 대한 허기와 갈증이 읽는 것으로만 해소되지 않아 그를 항상 감질나게 했다. 결국 그는 역사 소설을 쓰게 되었다.
◎ 소설 속으로(줄거리)
1591년 가을, 밀양성 축조 공사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진주성 2차전 성주 서예원(46세)과 밀양 평촌 마을의 최억술(41세)이다. 전반부 축성과 개전전야를 통해 그 당시 민초들이 전쟁준비로 해서 겪었던 고통이 그려진다. 1592년(임진년)에 전쟁이 터지는 것은 밀양 장날 최억술이 봉화 신호를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최억술이 장에 갔다가 봉화를 본 직후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피난 준비를 하게 되고, 이때 김해성에 있던 서예원 역시 봉화를 보고서는 즉각 교전태세에 들어간다.
김해성 전투 중에 주인공인 서예원은 잘 버티어 내다가 막판에 가서 도망치고 만다. 이때 밀양의 최억술은 두 아들과 천치인 칠득이를 데리고 낙동강을 건너 창원으로 피난 간다. 서예원은 함안을 거쳐 진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최억술은 창원에서 함안으로 피난 가는 도중에 서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죽을죄를 짓고도 김수의 배려로 다행히 참수만은 면한 서예원은 삭탈관직이 되어 김면 휘하의 의병에 들어간다. 억술은 함안서 당분간 피난 생활을 한다. 이후 서예원의 의병 전투와 최억술의 피난 생활이 여러 사건과 함께 전개 된다.
1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서예원은 용인으로 파견되고 최억술은 피치 못 할 사건에 얽매여 진주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억술은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과 성수경 밑에서 용감하게 싸우지만 오른쪽 다리에 총을 맞아 부상을 입게 된다.
1차전에서 치명상을 입어 자리에 누운 김시민의 후임으로 용인에서 활동하고 있던 서예원이 김성일에 의해 임명된다. 임진년이 끝날 무렵이다. 진주성에서 서예원은 우연히 억술과 재회한다. 서예원은 죽을 각오로서 진주성을 방어하겠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북쪽에 피난을 가있는 가족들을 모두 진주성으로 불러들인다.
진주성 이차전이 벌어지기 전의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이차전이 벌어진다. 전혀 필요도 없는 싸움을 임금과 대신들의 무지로 벌이게 되는 과정과 공성(성을 비움)에 대한 갈등도 다루어진다. 아무튼 모두들 다 죽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이때 서예원의 처는 왜군의 회유를 뿌리치고 남강에서 식구들과 자결한다. 다만 죽기 직전에 억술의 맏아들인 최재식을 수양아들이라고 속여 왜군의 포로로 끌려가게 한다.
전쟁이 끝나고 13년 후 포로 송환선을 타고 부산으로 돌아오던 억술의 아들 최재식은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서예원의 아들 서계철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알고 보니 서계철도 왜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것이다. 이후 서계철은 함양에서 최재식은 밀양 수산에서 정착해 산다. 그리고 십 수 년 후 서계철의 장남이 최재식의 사위로 함양서 밀양으로 장가들게 된다. 이후 서계철의 장남, 즉 서예원의 손자는 밀양 수산에서 정착하게 되고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밀양 수산에는 서예원일가의 충절을 기린 육절각이 있는데, 천만 뜻밖에도 강원도 횡성에 또 서예원 일가의 충절을 기린 육절려(강원도 유형 문화재)가 있다. 그런데 정작 진주성에는 서예원에 대한 흔적이 전혀 없다. 여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논개의 실체에 관한 이야기도 뒷이야기로 펼쳐진다.
◆ 응모방법: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적어주세요.
◆ 모집 기간 : 5월 21일 ~5월 27일
◆ 모집 인원 : 10명
◆ 발표일 :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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