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는 34년간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 온갖 법도를 바르게 하였고 모든 정사를 구비되게 하였으며, 총명한 예지와 뛰어난 문무(文武)로 머나먼 곳에서 사신들이 찾아오고 만백성들이 황제로 추대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는 단군(檀君)과 기자(箕子)가 나라를 세운 이래 4.000년 동안에 없었던 일이며 훌륭한 선대 임금들이 나라를 세운 이래 500년간 성취하지 못한 정통을 이룬 것입니다.
원구단(圜丘壇)에 대한 것을 더욱 밝게 닦고 홍무(洪武)의 기원(紀元)을 크게 드러내서 큰 명령을 받들어 대황제의 칭호를 받았으며 하늘에 고하고 백성들에게 알려서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하늘과 땅, 이름난 산, 큰 강에 음양(陰陽)의 귀신이 백 가지 상서로운 것을 내렸으니 끝없이 전해 내려갈 위업이 실로 여기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조칙(詔書)을 내려 위로 천자의 예로써 선대 임금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니 폐하(陛下)의 큰 효성은 지극하고 극진한 것입니다.
예(禮)는 그렇게 하였으나 아직 채 갖추지 못한 의식 절차가 있는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주(周) 나라의 황제가 천하를 다스릴 때 후직(后稷)을 제사지내면서 해, 달, 별을 함께 제사지냈고 문왕(文王)을 제사지내면서 하늘을 함께 제사지냈으니 이는 곧 높은 이를 존중하고 가까운 이를 친근히 여기는 예입니다. 그러나 다만 주공(周公)이 제도를 만들어 성왕(成王)의 시대에 행함으로써 오히려 무왕(武王)이 왕위를 물려받던 초기에 미치지 못한 것이 유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조(太祖) 대왕이 네 조상을 추증한 것은 곧 왕위에 오르던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폐하(陛下)는 옛 제도에 의거하여 왕실의 법을 이었으니 응당 묘호(廟號)를 높이는 의식 절차가 있어야 하며 훗날을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이미 ‘대한(大韓)’으로 나라의 이름을 고쳐 세웠으니 ‘광무(光武)’라는 연호(年號)는 바로 대조선(大朝鮮)의 대군주(大君主)의 연호(年號)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다시 ‘대한’으로 원년(元年)을 고친 데 따라 다시 역서(曆書)를 반포하는 의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의복과 관직 이름에서 오행(五行)을 숭상하는 오등(五等)의 반열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은 보잘것없는 천한 몸으로서 어찌 더없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처럼 드문 경사를 당하여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앉은뱅이들도 모두 기뻐서 날뛰는 판에 신도 역시 미친 사람마냥 망녕되게 행동한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제 딴에는 옳다고 생각하면서 공명당도(公明堂圖)를 올린 고사에 견주고자 하니 폐하(陛下)께서는 유의하여 보아주길 바랍니다.
신이 또한 선대 임금 때의 일을 상고하여 보건대 태조(太祖)께서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영흥(永興)의 요락지(瑤樂池)에서 용(龍)을 본 상서로움을 가지고 시(詩)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습니다.
요락지(瑤樂池)의 한 가운데 살던 그 옛날 용(龍)이
오늘은 못을 떠나 이 세상 용 되었네
사나이 그 어찌 심상한 사람이랴
조만간 그 자신이 패택(沛澤)의 용 되리라
왕위에 오른 후 중서성 사인(中書省舍人) 조서(曺庶)를 시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서 연회 때의 악곡으로 올리게 하였습니다. 나라가 장차 흥하려면 상서가 있어야 하는데 하수(河水)의 가라말과 낙수(洛水)의 거북 같은 감응은 예로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지난달 상순(上旬)에 날씨가 대단히 따뜻하였는데 신령스러운 비가 갑자기 쏟아지고 번개 소리가 요란하였으며 온종일 그치지 않았습니다. 북악산(北嶽山)의 구름이 혹 붉은빛을 띠었다가 혹 푸른빛을 띠기도 하면서 그 기상이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었는데 온통 산을 덮어버린 가운데서 신기한 물건이 꿈틀거리다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비늘과 갈기가 간혹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여 수도의 백성들이 보고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시끌벅적 떠들면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때에 하늘에서 나타난 이로운 상서가 있은 것은 요락지(瑤樂池)에서 있은 그 날의 일과 꼭 들어맞습니다. 그러니 글을 짓는 관리로 하여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악곡을 잇대어 지어서 황제의 생일에 부르는 노래로 삼기 바랍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네가 말한 것은 옳은 말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