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비밀 만남
꽃사슴이 뛰노는 정원
두 남자
노산 이은상과 이순신
난중일기
아침마다 울었다.
"네가 울면 내가 힘들어!"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울음을 멈춘척했다. 울음을 멈춘 날은 없었다. 기실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은 없었다. 흑백의 시간, 사 년의 고통은 잘 키운 정주영 회장이 사랑했다는 명품 소나무가 할아버지 집 마당,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죽어가는 순간에도 이렇게 서럽진 않았다. 소나무 불치병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기찻길 건너, 할아버지의 여동생은 꽃사슴이 뛰어다니는 수천 평의 대저택에 살았다. 아들을 낳다 산후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젊고 아름다운 스무 살 안방마님의 죽음이었다. 슬픈 눈의 아기사슴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저도 마당에 꽃사슴이 노니는 집에 살 거예요."
"사슴이 그리 좋으냐. 가만히 보니 온이는 눈이 꽃사슴을 닮았네."
왜 그토록 조부께서는 열심히 삶을 사셨는지 알 것 같은 오십 대이다. 치열하게 뜨겁게 펄펄 끓어오르는 삶을 나에게 보여주셨다. 격변과 격랑의 시대를 다 살다 가셨다. 배움에도 언제나 노력하는 나의 할아버지! 3개국어를 하셨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고 그 어머니와 닮은 나를 보고 그토록 행복해하셨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황성신문》의 글만이 아닌 나의 절명하고 싶은 삶이었다.
그리움과 그 짧았던 함께 한 세월을 붉은 핏빛으로 그린다. 난 너무 어렸다. 키보드 자판 소리가 "쿵쿵따"로 들리는 적막한 여름밤이다.
할아버지께서 그토록 예뻐했던 나의 일생은 키보드 위로 뚝뚝 떨어지는 사라진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이 탐냈던 '순례자'라는 진주보다 더 고통스러운 눈물의 시간이다. 하나하나가 방울방울 맺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밤이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구하고자 했으나 나의 엄마인 게으른 순자 여사님은 아무것도 간직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망한 삶입니다 어찌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구질한 초로의 두 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미래는 무대 조명이 흐려지듯 점점 어두워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심장을 잡고 우는 뜨거운 밤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꿈처럼 왔다 갑니다. 입안이 다 뜯어지도록 울고 갑니다. 알코올중독 노인 두 명이 한집에 삽니다. 시간을 아끼고 미친 듯이 살았는데 하루에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심장을 도난당했습니다.
"노산 할아버지의 귀는 부처님 같아요."
"네 눈에 그리 보인다면 부처가 맞느니라."
중절모와 감색 두루마기를 입은 두 남자의 만남은 각별했다. 할머니는 사랑방 마루를 닦으라고 뻣뻣한 광목 걸레를 내주시었다. 이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냥 사랑이 아닌 수백 년을 견디며 인내한 사랑이었다. 노산 이은상 선생님은 난중일기를 초역하는 등 충무공 이순신 연구자로서도 명성이 높다.
그는 나라사랑 부모사랑 이웃사랑 자연사랑을 다 실천한 사람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인간, 성웅 이순신이다. 교과서에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싣고 현충사를 건립하고 학교마다 동상 세우기를 두 남자가 시작했다. 대통령 박정희를 만나고 온 날, 할아버지께서 몹시 흥분해서 그가 준 시계와 붓글씨를 보여주셨다.
미켈란젤로의 조각품을 기다리는 대리석처럼 난 두 남자의 비밀 기행을 훔쳐보고 있었다. 전설을 부활시키기 위해 난 달려간다.
이순신을 영웅으로 탄생시킨 두 명의 주역들이 있다. 노산"이은상" 과 나의 조부 "정재한"이다.
할아버지도 노산 선생님도 일본 유학파 출신이다. 소나무 위에 가마니를 씌운 학교에서 할아버지는 다양한 연령과 같이 학교를 다니셨고 가장 어린 나이지만 언제나 일등이었다. 심지어 장가를 간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동창도 있었다. 출중한 외모로 마을의 모든 여인들을 설레게 했던 바람의 신이었다. 지성과 외모와 재력과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셨다.
어느 날 가족들을 다 불러좋고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어제 독립기념관과 현충사에 가보를 기증했으니 이제부터 우리 가족들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영원히 입장료 무료라고 했다. 반드시 돈 내고 들어가도록 해라! 절대로 공짜로 국가의 시설을 함부로 이용하지 않기를 명심해라!"
정말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일을 자랑스럽게 하시고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훈계하셨다. 신념의 남자였다. 자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국가에 바쳐졌다.
하지만 아빠가 재빨리 아무렇지도 않게
"네 그리하겠습니다." 무릎 꿇고 말했다.
난 대단한 완용 리의 손녀이고 싶었다. 이 무슨 비애인가! 정말 대책도 실속도 없는 이 정씨 가문의 위대하지만 초라한 삶을 적어도 피할 기회는 주셨어야 했다. 서울옥션에 올릴 수 있는 가보를 갖다 바치셨다. 시집갈 때 몰래 가져갈 것들이 날아갔다. 플랜 B를 세웠어야 했다. 할아버지의 만행(滿行)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예천 도정 서원에 정충사를 짓는데 거액을 통 크게 기부했다.
아빠를 불러서
"너도 기부금, 꼭 내도록 하여라!"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은 절대로 알리지 아니하셨다.
"여자도 배울 수 있는 한 최대한 배우도록 해라!"
어느 날, 독립자금처럼 할아버지께서 유학 비용을 현금으로 몰래 주셨다. 30년 전 만 원짜리 500장이었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선생을 모델로 한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고사홍대감을 보면 할아버님의 생전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꿈은 어쩌면 할아버지께 칭찬받는 손녀가 되는 것이었다. 돈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사실 단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은 없었다. 나의 실패한 인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나에게 "따뜻할 온(溫)이라는 아주 세련된 이름을 남기고 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뜨겁게 사랑한 어쩌면 나의 첫사랑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덕분에 난 노산 이은상 선생님도 전설의 주먹 유지광도 다 보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후회 없는 삶이다. 뜨거운 여름에 삶겨져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삶이다.
삶과 죽음이 뒤엉켜 몸을 섞는 밤이다. 지인의 뜨거운 죽음을 조우했다. 이 지겨운 경험을 끝내고 싶다. 그는 제주공항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왔고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소용없었다. 지인은 특별 칸에 실려 김포공항까지만 온다. 대전까지 다시 차를 갈아타한다. 제주도에선 절대로 죽지 말자! 중복이다. 난 따뜻함을 좋아해서 견딜만했다. 반딧불이처럼 그는 날아갔다. 날마다 전쟁 같은 내 삶의 이야기도 생각해 보니"난중일기"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코로나 372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승정원 기록처럼 올립니다. 나를 위한 피의 고백서! 삶에서 못다한 말들, 그리고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지나간 시대의 비극인 <코로나 일지>.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입니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상실의 아픔>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망해 버린 삶, 누군가에겐 희망이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