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꾸민 우리 고장 민담․전설<14>
수양버들에 얽힌 애절한 사랑이야기
권영세/아동문학가
새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수양버들의 연두빛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길게 늘어뜨린 가지에 총총 맺힌 새잎자락에 초록물이 번지면서 봄이 차츰 깊어 갑니다. 강가 줄지어 선 수양버들 가지가 하늘거리는 모습은 연두빛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는 끝내 이루지 못한 수양버들에 얽힌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미모의 낭자와 늠름한 도령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 앞에는 낙동강이 긴꼬리를 끌고 흘러갑니다. 봄이 오면 강기슭에는 진달래가 온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입니다. 강바람을 맞으며 자란 도령은 남자답게 씩씩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낭자 역시 사철 산과 들에 피는 꽃을 보며 자라 예쁜 얼굴에 마음씨가 비단결 같이 고왔습니다. 또한 늘 떠나지 않는 미소 때문에 낭자는 한층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 두 사람을 두고 천생연분이라고 했습니다.
도령은 늙으신 부모 밑에서 농사일을 하면서도 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등잔불을 밝혀두고 글을 읽은 소리가 집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열심히 주경야독하는 도령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한편 도령의 글 읽는 소리에 이끌린 낭자는 밤마다 그의 집 가까이 맴돌았습니다. 어느 날 글을 읽다 쉴 참에 잠시 집밖으로 나온 도령은 낭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도령은 낭자의 미모에 끌려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만남이 계속되면서 결국 이들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도령은 결코 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나라에서 과거를 본다는 소식이 마을로 전해졌습니다. 도령은 그동안 공부한 실력으로 과거를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나야 하는 도령과 낭자는 얼마동안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도령은 과거를 보고 돌아올 때까지 낭자와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이 너무나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양으로 떠나는 날 도령은 낭자에게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낭자, 낭자를 두고 떠나기가 심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으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꼭 나를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예, 도령님. 꼭 기다릴게요. 아무 염려 마시고 과거를 잘 보시도록 하십시오.”
낭자 역시 사랑하는 도령과 잠시 동안의 이별도 서러워서 몰래 눈물을 흘리며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리겠다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도령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떠난 후 낭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도령이 급제하여 돌아오기만을 신령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한 해가 바뀌도록 기다렸지만 도령은 돌아오지를 않고 소식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도령의 어머니는 아들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그만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낭자는 홀로된 도령의 아버지를 돌봐 드리기는 했지만 결혼한 몸도 아니고 해서 안타까운 심정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해를 더 기다리던 낭자의 부모는 낭자를 결혼시키기로 하고 강 건너 사는 도령과 혼인날을 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낭자는 눈비를 무릅쓰고 매일 나루터에 나가 강 건너 편을 쳐다보며 도령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는 낭자의 부모 역시 마음이 아팠지만 새로 정한 도령과의 혼인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낭자는 도령과의 굳은 약속을 차마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의 영을 견디지 못한 낭자는 높은 절벽에 올라가 강물로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낭자가 뛰어내린 강변에는 수양버들이 한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강으로 뿌리를 뻗은 그 수양버들을 가늘고 긴 가지를 늘어뜨렸습니다. 봄이 되자 연두빛 수양버들 가지들은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애절한 모습으로 바람에 휘날렸습니다.
한편, 한양에 과거를 보러간 도령은 몇 번이나 실패를 하였습니다. 반드시 과거에 급제한 후에 고향에 돌아가 낭자와 혼인을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해를 거듭하면서 과거를 보았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열 번을 본 끝에 비로소 과거에 장원급제한 도령은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 강가 나루터에는 지난 날 낭자와 헤어져 한양으로 떠날 때는 보지 못했던 수양버들이 도령의 금의환향을 환영이라도 하듯 하늘하늘 춤을 추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도령은 그토록 보고 싶던 낭자를 찾았지만 끝내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낭자의 소식을 알게 된 도령은 슬피 울고는 그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사당을 지었습니다. 이른 봄이면 사당 주위에 키가 우뚝 솟은 수양버들 긴 가지의 흔들림이 마치 누구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그 사당은 화재로 소실되어 볼 수가 없고 그 주변에는 잡초만 우거져 있습니다.
※ 이 글은 《우리 지방의 민담․전설 및 지명 유래》(88․고령․문화원).「수양버들에 얽힌 이야기」(김태명)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이야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