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ias, 엠마와 아나
묵은 짐을 정리하던 어느 날, 오래된 앨범 책장 틈에서 오래전 사진 한 장이 순간 얼굴을 내밀었다.
사진 속에는 엠마와 아나, 그리고 그 아이들을 양옆에 품은 채 맑게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아이 어머니가 셔터 소리에 담아주었던 그날, 햇살의 따스함이, 십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인화지 너머로 전해 온다. 지금보다 훨씬 푸르고 푸릇했던 내 젊은 날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날의 미소때문인지 아름답고, 마치 내가 그 어린 아이들의 진짜 엄마라도 된 듯 가슴 한구석이 아지랑이처럼 훈훈해진다.
사진에 시선을 묻은 채 아득한 기억의 결을 더듬어본다. 엠마와 아나는 스페인어를 쓰던 이민자 가계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 문을 두드리곤 했던 엠마 어머니의 모습이 안개 너머 잔상처럼 아른거린다. 아이들만큼이나 맑고 그윽했던 여인. 국적과 언어는 서로 달랐으나, 교차하던 따스한 눈길과 소박한 미소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늘 파란 하늘처럼 맑은 온기로 통하곤 했다.
빛바랜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무심코 사진을 뒤집었을 때, 그 뒷면 구석에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펜 글씨가 눈에 닿았다.
“Gracias Emma, Ana”
엠마가 작은 손으로 삐뚤빼뚤 적어두었던 스페인어 감사 인사였다. 서툰 글씨체 마디마디에 스며 있는 아이의 정성과 그날의 순박한 온기가 가슴 깊은 곳에서 아련한 파도로 밀려든다.
돌이켜보면 두 아이와 나누었던 구체적인 일상들은 아무리 기억의 타래를 풀어보아도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 작고 큰 소동으로 매일이 시끌벅적하던 교실이었건만, 엠마와 아나는 아마도 두세 달 남짓, 내 삶의 뜰을 잠시 스쳐 간 모양이다.
하지만 그 짧았던 인연 속에서도 사촌 언니인 엠마는 나이답지 않게 늘 참 어른스러웠다. 바쁜 교실 안에서 엠마는 스스로 나의 '작은 길잡이'가 되어 내 마음을 미리 헤아려주곤 했다. 선생님의 손길이 미처 닿기도 전에 알아서 제자리를 정돈하고, 동생 아나를 다정하게 보담으며 교실의 작고 미쁜 일손이 되어주던 아이. 동생 아나 역시 언니의 그늘 아래서 맑고 상냥한 미소로 교실 모퉁이를 밝혀주곤 했다. 놀이터의 햇살 아래서 소꿉놀잇감을 나누며 환하게 웃던 그 고운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말썽은커녕 늘 서로를 아끼고 교사의 손을 보태려 애쓰던 아이들이었기에, 역설적으로 내 기억 속에는 다툰 흔적이나 소란의 흉터 하나 남아있지 않은 것이리라. 너무나 완벽하게 곁을 지켜준 '작은 도우미'들이었기에, 도리어 내가 스승으로서 그 고운 기억들을 더 깊이 품어주지 못한 아쉬움이 서글픔으로 남는다.
세월이 훨씬 더 흘러 훗날 낯선 길목에서 훌쩍 자란 엠마와 아나를 마주친다 해도, 나는 그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그 짧았던 인연의 순간, 낯선 이향(異鄕)에서 찾아와 내가 머물던 교실을 여울처럼 스쳐 지나가며 건네준 미소와 사진 뒤편의 따스한 문자는, 내 삶의 길목에 영원히 반짝이는 이정표(Milestone)로 남아있다.
가끔 우연인 듯 앨범의 책갈피를 뒤적이다 만나는 엠마와 아나. 사진 속에서 변함없이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과, 뒷면에 새겨진 다정한 감사 인사를 향해 오늘 밤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축원의 말을 건네본다.
"엠마와 아나, 어디서든 예쁘고 행복하게 자라라. 너희가 머물다 간 자리 덕분에 내 삶도 참 따뜻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