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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4. 저녁 8시. 예술의전당IBK홀 알렉상드르 바티 리사이틀 르네상스 양식의 고성(古城)이 보인다. 세 명의 귀족이 급하게 말을 몰며 입성한다. 최고위 법률가 토마스 크롬웰이 튜더가의 헨리 8세를 알현한다.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 한때 잉글랜드의 여왕이었던 앤 볼린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돌아오는 길이다. 헨리 8세의 집무실의 문이 닫히고 그 위에 왕가의 권위가 서린 문장이 보인다. 그리고 트럼펫의 팡파르가 웅장하게 울려퍼진다. -1969년작 영화 천일의 앤 중에서- 알렉상드르 바티, 그는 상남자였다. 훤칠한 키, 귀족적 콧대, 그윽한 눈매, 그리고 부드러운 입술...일단 그는 여심을 뒤흔드는 수려한 용모를 지녔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 빼어난 연주!! 지금부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오늘밤 그의 멋진 모습을 생생히 전할터인데, 다소 주관적이고 장황하다 생각될지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후기, 그것은 본래 감흥의 기록이 아니던가!! 제오르제 에네스코, 트럼펫과 피아노를 위한 전설 트럼펫이라...고백하건데, 독주악기로서의 트럼펫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클래식에서는 교향곡의 의미심장한 부분을 한층 더 부각시키는 악기?? 소규모의 재즈에서조차도 몇몇 악기 속 우정출연 정도??한 마디로 비유컨데 정식김밥(교향곡)과 꼬마김밥(재즈) 속의 단무지??꼭 들어가야 하는데 단독으로 먹기엔 좀 그런.... 그런데 첫 곡부터 수십년간의 이러한 편견이 무참히 깨지더란거지. 아주 가끔씩 "저, 살아있어요"하고 다급히 윽박지르는 악기가 더 이상 아니더라고. 세상에!! 오보에처럼 부드러운 음색이 가능하더라니!! 서정적으로 노래하더라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반음계 처리는 어떻고?! 수백년 동안 독주 악기 중 대명사 자리를 지켜온 피아노가 뒤로 밀리더라니깐!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트럼펫의 황금기'라 불리며 위대한 트럼펫터가 칭송을 받았던 바로크 시대로 돌아간 듯 했어. 바실리 브란트, 전원풍경(연주: 바티 브라스 아카데미) 스승이 들어가고 제자 4명이 나왔어. 볼쇼이극장의 명망높던 트럼펫 연주자 바실리 브란트의 에튀드를 연주하더라고. 교회, 라임나무 아래, 그리고 축제로 이어지는 곡이었지. 난 그네들을 눈여겨 봤어... 스무살은 참 좋은거야. 뭐든 가능할 테니까... 더구나 그 나이에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건 인생 최고의 선물이겠지... '유서깊은 교회', '거목(巨木)아래' 느낌은 물론 아녔어. 그보단 '신축 교회', '묘목(苗木 )'에 가까운 분위기였지. 하지만 ' 청춘이라는 싱그러움이 뭍어나는 축제'더라고! 난 이래서 대학생들로 구성된 음악회도 기회가 닿는다면 가 보는 편이야. 기성세대들은 결코 따라할 수도, 흉내조차 낼 수도 없는 뭔가가 있거든. 바로 작가 오스카 와일드식의 '젊음(youth)' 이라는 미학이겠지. 요제프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b 장조 다시 바티가 등장했어. 미리 밝혔듯이 트럼펫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게 없다 했잖아. 그래도 이 곡은 너무도 자주 들어서 잘 알아. 근데 나 뿐만 아니라 아마 당신도 알거야. 인내심을 가지고 3악장을 기다리라고. 그래, 맞아...그 유명한 '장학퀴즈' 타이틀 음악이야!! 대작곡가의 친구라는 건 대단한 영예인거야. 친구 슈타틀러에게 헌정한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622번, 그리고 오늘밤 연주된, 바이딩거를 위해 작곡한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을 보라고!! ...하이든 특유의 화려하고 멋들어진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있었어.... 당신은 인정할거야. 모짜르트의 품에는 쉽사리 안길 순 있어도 하이든은 그러기엔 거북한 상대라는 걸...그래도 호방하고 경쾌하면 됐지 뭘...아마도 그렇기때문에 이 협주곡의 독주악기로 트럼펫이 딱인 듯 해! 2악장 서두의 선율은 들을 때마다 어딘가 그의 현악 4중주 Op76, No.3 황제 2악장과 흡사하단 인상을 준단 말야. 금관악긴데도 목관악기처럼 포근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지...유명한 3악장의 초절기교 패시지에서는 바티의 진가가 어김없이 드러나더라고. 정확성과 침착성, 그 가운데 여유로움!! 근데 관악기 주자들은 연주 도중 침을 그때그때 제거하느라 분주하드라고...그리고 항상 촉촉히 유지되어야 한다며? 동영상을 보다보면 간혹 무대 위에 아예 물병을 들고 나오는 연주자들도 있더라고. 요한 훔멜, 트럼펫 협주곡 E장조 오늘밤 프로그램에서 하이든의 협주곡과 더불어 내게 익숙한 음악이라면 아마도 이 곡일거야. 역시나 당대 가장 빼어난 트럼펫터 바이딩거만이 한동안 연주 할 수 있을 정도로 고난도의 작품이었다더군. 공연이 끝난 지 벌써 2시간이나 흐른 지금에와서도 이토록 흥에 겨운 이유가 뭘까? 그래...오늘밤 연주된 음악들이 마치 디베르티멘토풍이어서, 죄다 즐겁게 부담없이 들을 수 있어서 일거야....가끔 나는 자문해보지. 과연 음악이란 왜 생겨났을까 하고...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은 인류가 보다 행복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 클래식계는 음악의 유흥성을 곧잘 간과하더라고. 물론 심오한 러시아 문학작품 같은 교향곡도 필요하지. 하지만 식욕을 돋구는 흥겨운 음악도 중요하다고. 육덕진 고기류만 계속 먹을 순 없잖아. 상큼한 과일과 신선한 채소가 땡길 때도 있는 법이라고. 여흥문화라.....그 분야엔 뭐니뭐니해도 예술적 기질이 넘치는 골족, 즉 프랑스인들이 최고지!! 오!! 바티의 연주에 대해 짤막하게 묘사해주지. 최상급 둄페리뇽 한잔 마시는 기분이었어!! 이사크 알베니즈, 이베리아 제 2집 중 트리아나 처음에 브로셔를 볼 때 '엥!! 왠 피아노 독주곡?'이란 의문이 들었지. 분명 트럼펫터 바티의 리사이틀이었으니까...그러다가 훔멜까지 왔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어. 아무리 세계 정상급의 트럼펫 연주자라도 인간인지라 잠시 쉬어줘야 한다는 걸....사실 오늘밤 바티의 반주자는 피아니스트 김다솔군이었어. 그래, 맞아! 퀸 엘리자베스 콩쿨을 비롯하여 세계 유수의 콩쿨을 석권한 27살의 젊은 피아니스트! 당신은 의아해했을거야. 그토록 피아노 음악 좋아하는 내가, 어떻게 지금껏 반주자 피아니스트에 대해선 잠자코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말해주지. 그만큼 바티의 연주가 황금처럼 찬란하게 빛났어. 물론 독주자의 기량이 돋보이도록 김다솔씨가 자신을 낮춰서도 그랬겠지. 일전에 그랬잖아?! 실내악은 피아노와 다른 악기와의 대결이라고...한쪽은 피아노 뚜껑을 열려하고 다른쪽은 닫으려 한다고... 김다솔군의 독주!! 소품물(小品物)단 하나만으로 젊은 대가의 위대성이 표출되고도 남더군. 유연한 손가락들이 빚어내는 매우 가벼운 터치, 건반 위 매우 자유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절도(節度)있는 연주법, 이국적인 스페인에 어울리는 회화성...모든 훌륭한 수식어를 총동원한들 그 감흥을 정확히 되살릴 수 있을까?! '스페인의 쇼팽'이라 불리던 알베니즈의 유지(維持)를 받든 명연주였어!! 오스카어 뵈메, 트럼펫 협주곡 Op.18 어느덧 마지막 곡이야.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가더군. 바실리 브란트처럼 오스카어 뵈메도 당대 빼어난 트럼펫 연주자이자 트럼펫 작곡가였데. 왕년에 마린스키 연주자였고 말야. 비록 스탈린 체제에선 오직 독일계란 이유로 어이없이 찬밥신세가 되었지만... 바티,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그는 매사에 매너남이더군. 여지껏 난곡을 완벽에 가까운 경지에서 소화했잖아. 그런데도 끝까지 유지되는 그 일관된 겸손이란....정말 마지막까지 초심을 잃지 않더군. 난 그의 멋부리지 않는 침착한 연주법이 아주 맘에 들어. 사실 진정한 멋이란 건 멋을 모를 때 되려 멋있는 법이지. 그런 의미에서 절제된 아르페지오와 스케일은 탄복할 만했어. 매 연주마다 터져나오는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마지막 곡에 와서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는데, 오늘밤의 주인공 바티는 대성공으로 인한 영광을 그의 어린 동료 김다솔과 나누려 하더군. 서로를 치켜세우는 그들의 끈끈한 우정이 진심 보기 좋더군. 이상이 트럼펫이란 매혹적인 악기와의 첫만남이지. 난 여지껏 픔어온 트럼펫의 두 극단적 이미지를 벗어던졌어. 트럼펫은 더이상 신성을 지닌 왕같은 악기도 아니고, 음악회장에서 잠꾸러기들을 깨우는 기상(起牀)용 나팔도 아니야. 요컨데 트럼펫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악기인거지. 그러나 무얼 갖고 취하는가? 술로 또는 시로 또는 당신의 미덕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샤를르 보들레르 <취하게 하라.>- 당신은 오늘밤 무엇으로 취하고 싶은가?! 나 자신을 알렉상드르 바티의 트럼펫 금빛 선율로 취하게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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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같은 공간에서
같이 감상했음에도
이토록 표현을 재밌게
잘 해내는 글솜씨에 매료되네요~^^
'크리스 보티'의 트럼펫 연주에
매혹되어 좋아하게 되었는데,
바티의 연주 역시 최고였죠?
걸맞는 김다솔군의 반주가
더욱 빛나는 무대로
만들어줬던거 같아요~^^
호흡이 잘 맞는,
완벽한 연주였기에,
큰박수 보냈어요~^^
가슴이 뻥~^^시원스럽게 ㅋ
담에 같은 음악회장에 있을 땐 우리 서로 인사나눠요♥맵시자님 뵙고프니까요♥ 늘 감사해요~읽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