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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갈라진 교육 / 심지현
오빠 내가 화장실 가다가 들었거든, 내일 아줌마가 우릴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잖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넣어야겠다. 그년의 욕심만큼 쓸데없이 큰 젖. 여긴 아줌마가 오기 전부터 우리 집이었어, 난 절대 쫓겨나지 않을 거야.
너 시들지 않는 새엄마를 시기하고 있구나. 아버지가 무능해서 고생하는 예쁜 나의 새엄마. 그녀가 나를 버려도 괜찮아. 개처럼 기어가서 굶겠다고 말하면 그만인걸. 그게 안 먹히면 그녀의 가슴을 빨고 엄마라고 부르면 되지. 잠 설치는 아이를 달래는 척 밤마다 날 찾을지도 몰라. 자꾸 커지는 나를 본다면 오히려 그녀는 아이가 되겠지. 아, 못생긴 엄마가 떠나면서 주고 간 선물. 예쁜 우리 새엄마!
심사평
“불편·설렘 동시에 안겨주는 당당함…생생하다”
본심에 넘어온 10인(장혜령·김영미·서진배·서명옥·이현우·김묘숙·박승렬·이호준·엄기수·심지현)의 후보작들을 검토하며, 오늘의 삶과 의식이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후보작들 다수가 그 음울과 살풍경을 막막하게 앓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고통의 복판을 피해갈 시의 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시는 ‘참말’을 하려 한다. 담긴 메시지가 논리적·도덕적으로 맞다거나 합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태초 이래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갔지만, 그럼에도 모두의 생이 진부하기는커녕 매순간 새롭고 아프고 기막힌 것이며, 누구에 의해 대신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참이다. 그때 ‘참말’은, 설사 낯익은 메시지를 싣고 있는 듯 보일지라도 반드시 새롭고 절실하다. ‘참말’은 또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습성화된 느낌과 생각과 말의 회로로부터 우리를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그러한 참말의 힘은 겉을 꾸며 흉내낼 수 없다. 오직 온몸을 던진 낮은 포복을 거쳐 이루어질 뿐이다.
신춘문예가 일부 문학 지망생들의 잔치를 넘어, 전 한국어 사용자들의 공동 관심사이며 그래야 마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의 기꺼움과 설움과 고뇌를, 우리의 아름다움과 매혹과 깊이를, 나아가 우리의 공포와 분노, 우리의 파렴치와 비열함까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예민하게 앓고 노래해줄 새 소리꾼, 새 만신, 새 예언자를 기대하는 사회적 형식이기 때문이다.
재독을 거쳐 우리는 이호준·엄기수·심지현 3인으로 일단 후보를 압축했다.
이호준의 감각과 솜씨는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매력적인 언어들은, 필요하다면 신선함조차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노련함과 자신감의 과잉이 오히려 시적 모험의 기개와 순결성을 손상하기도 한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엄기수도 이미 능숙한 시인이었다. ‘이끼소녀’ 등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바 비애를 갈무리해 내는 낮은 톤의 목소리는 오랜 습작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어투와 시적 조형방식에는 선배 시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낯익음이 없지 않았고, 시들이 좀 더 다채로울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심지현의 당돌함 앞에서 우리는 불편한 동시에 설렜다.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시들은 어딘가 불균형한 듯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새롭고 생생한 발화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면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을 삶과 세계의 잔혹과 비극성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슬픔과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언어들은 감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노련과 안정감보다 심지현의 이 용기와 젊은 당당함 쪽을 선택했다. 세상의 고통과 환희를 자신의 것으로 깊이 앓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빈다.
심사위원 : 황현산, 김사인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오리시계/ 이서빈
겨울, 오리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이면 다시 걸어 나온다.
연못으로 들어간 발자국과 나간 발자국으로 눈은 녹는다. 시침으로 웅덩이가 닫히고, 방수까지 되는 시간들.
오리는 손목이 없는 대신 뭉툭한 부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무심한 시보(時報)를 알린다. 시침과 분침이 걸어 나간 연못은 점점 얼어간다.
여름 지나 가을 가는 사이 흰 날짜 표지 건널목처럼 가지런하다.
시계 안엔 날짜 없고 시간만 있다.
반복하는 시차만 있다.
오리 날아간 날짜들, 어느 달은 28마리, 어느 달은 31마리
가끔 붉거나 푸른 자국도 있다.
무게가 덜 찬 몇 마리만 얼어있는 웅덩이를 보면
손목시계보다 벗어 놓고 간 시계가 더 많을 것 같다.
결빙된 시간을 깨면
수 세기 전 물속에 스며있던 오차들이
꽥꽥거리며 걸어 나올 것 같다.
웅크렸던 깃털을 털고
꽁꽁 얼다 풀리다 할 것 같다.
오늘밤 웅덩이는 캄캄하고
수억 광년 연대기를 기록한 저 별빛들이 가득 들어있는 하늘은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 시계다.
심사평
이담하 조상호 정지윤 성지형 유준상 김본희 임수현 문희정 임승훈 이인숙 이서빈, 열한 분의 시가 본심에 올라왔다. 첨단과 전위는 없었다. 열린 감각, 언어 감수성, 시를 찾아내는 촉(觸) 같은 시의 기본 재능을 갖춘 시들이다.
이인숙의 ‘갈대모텔’, 임승훈의 ‘순종적인 남자’, 문희정의 ‘몽유 이후’, 임수현의 ‘노곡동’, 이서빈의 ‘오리시계’를 최종 결심작으로 골랐다. ‘갈대모텔’은 깔끔한 서정시다. ‘흔들리는 것들은 흔들리는 것들을 잠재우고/흔들림에 기대어 다시 일어선다’라는 시구 정도는 예사로 쓸 수 있는 시인이다. 다만 갈대숲을 새들과 바람의 모텔로 본 발상이 평이했다.
‘순종적인 남자’는 낯선 이미지들을 엮고 시공을 확장하는 재능이 놀라웠다. 큰 재능의 잠재성을 확인했지만 조탁(彫琢)이 더 필요하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유기적 관련도 느슨했다. ‘노곡동’은 홍수 속에 내팽개쳐진 이들의 시련을 따뜻한 관조와 유머에 버무려 시로 써냈다. 유머는 이 시인의 장점이다. 더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해 사유의 입체성을 갖추시길.
‘몽유 이후’는 성장통을 다룬 시다. ‘쥐젖이 돋아난 어머니의 팔 안쪽을 더 이상 만지작거리지 않았다’같은 시구처럼 체험의 구체성이 도드라졌다. 안정되었으나 화법이 새롭지는 않았다. 사유의 도약이 필요하다. 고심 끝에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선택한 것은 이서빈의 ‘오리시계’다. 완결미가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놀랄 만큼 새롭지는 않지만 발상이 천진하고 관찰력이 좋았다.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교향(交響)이 있고, 특히 우주 시공을 한 점 구체적 사물로 전환시키는 마지막 연이 좋았다. 신기성(新奇性)에 쏠리고 감각의 착종에 매달리는 시류에 휩쓸려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자기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심사위원:오세영, 장석주
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_ 대화 / 김진규
대화 / 김진규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가 구겨져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부리 위를 기어 다니는 어두운 벌레들
작은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는 꺾인 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의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다
누군가가 억지로 밀어 넣은 새의 몸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의 속을 채워보기 위해
아귀가 맞지 않는 열쇠를 한 번 밀어 넣어 보듯이
혼자 날아가지도 못할 말들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둥근 머리통을 한참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이쪽의 눈과 저쪽에 있는 새의 눈이 마주치자,
여태껏 맞아본 적 없는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머리통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어딘가 머리를 드밀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때의 걸음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이곳과 저곳의 국경을 넘는 사람인 거 같아
누워있는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할 때
구겨진 새의 몸을 손으로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 듯
나도 어떤 말인지 모를 말들을 했던 것 같아
새의 부리가 날보고 웅얼거리는 것 같아서
내 귀가 어쩌면, 파닥거리다가 날아갈 것 같아서
나무옹이를 나뭇가지로 쑤신다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삼키지 못할 것들을 밀어 넣듯이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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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착한 척 하며 숨지 않고 시로 아직 옮기지 못한 많은 것들에 말 걸겠습니다
별 하나 뜨지 않은 새벽에 조용한 방안에서 전화를 끊고 난 뒤는, 담담하다 못해 암담했습니다.
베란다에 가끔 기타만한 갈매기가 앉아 한참을 울다갑니다. 밤길에는 라쿤들이 구석에 모여 자기 그림자를 빚습니다. 시로 아직 옮기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캐나다에서도 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에게 말 걸어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쁜 역할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빠서 주목받느니 착하게 뒤에 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착한 척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에게만 나쁜 역할을 주어볼까 합니다. 착한 척, 거짓으로 사는 걸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못난 저에게 많은 걸 알려주신 김용범 선생님, 이윤학선생님, 홍우계 선생님, 윤한로 선생님, 조동범 선생님, 박주택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양예고 문창과와 경희대 국문과 선후배 동기, 왓 형님들, 오록당 멤버들, JJ 덕분에 살고 있습니다. 경희 문예창작단 식구들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가고 싶습니다. 무뚝뚝한 아들 때문에 힘드셨을 부모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어설픈 저에게 기회를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 드립니다.
◆ 김진규 /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안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 경희대 국문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세심한 관찰력…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진화
응모자는 884명이었다. 이분들의 시 4,000여 편을 예심해서 우선 30여 편을 추렸다. 이 시들에는 소위 '미래파'가 많았다. 기존 시단의 미래파가 예비 시인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징표일 테다. 최종 본심에 김동수('새가 그려준 지도'외 2편), 이재근('토르소' 외 5편), 김진규('나무라기엔' 외 2편)를 올렸다. 다른 분들이 최종 본심에 못 든 이유는 2%가 모자라서다. 미래파건 전통파건, 앞의 '유행'에 젖은 뒤 그것을 돌파해야 하는데, 강력한 경향이랄지 추세에 흔들렸다. '영향에 대한 불안'이 부족해 보였다. 휘둘리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이재근의 '토르소'는 시적 논리가 이미지의 다양성을 제압할 만큼 탄탄하고 스케일이 큰 시다. 우리 삶에 대한 긍정적, 남성적 힘이 있다. 그런데 굳이 흠을 잡자면 논리가 과해서 이미지를 밀어낸다. 이 부분을 해결하면 뚝심 있는 큰 시인이 되리라. 김동수는 시를 상당히 많이 써 본 솜씨다. 이미지 전개가 조화롭고 참신하다. 기발하면서도 튀지 않는 시어들로 논리와 이미지 사이가 친근하다. 그런데 전하는 바가 또렷하지 않다. 물론 좋은 시는 해석의 지평이 열려 있게 마련이지만, 시에 허용되는 '모호함'에도 한계가 있다. 두 분 시 모두 이만하게 쓰기 쉽지 않아 아쉽지만, 한 편만 뽑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는다.
김진규의 '대화'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 구겨져 있다', 죽은 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고통을 '구겨진 새의 몸을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듯'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같은 시구가 달래준다. 김진규는 관찰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세심한 관찰로 잡아낸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전화(轉化)한다. 아마도 죽음을 아는 게 성년이리라. '비성년' 이미지에서 시작해 '비성년'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스런 움직임이 고통스러우리만큼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당선을 축하 드린다. 새로 태어나는 시인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심사위원 : 정호승, 김정환, 황인숙
201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반가사유상 /최찬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2014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풍경에 놀다/ 송지은
하나의 풍경을 읽었다 찬 냉기의 한쪽 모퉁이부터 뜯어내는 봄비의 가느다란 손놀림에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모르는 비 맞은 고양이 울음에
가슴 안에서 빗방울처럼 또박또박 싹이 돋아나는 걸 무심히 들여다보다가 또 다른 카드로 얼굴을 바꾸는 계절의 어디쯤에서
하나의 풍경에 빠졌다 내 몸까지 다 내어주고 버려진 사마귀의 심장을 법당을 급하게 빠져나오다 문살에 찍힌 구름의 숨소리를
발뒤꿈치 갈라진 틈으로 새어나오는 겨울의 쓸쓸한 문장으로 읽다가 바람이 긴 바퀴를 돌리며 어둠을 몰아가는 산 어디쯤에서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고요는 소란을 낳느라 고요를 주저앉히고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끝내 다른 풍경으로 일어서는데
죽은 쥐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는 것을 엿보다가 문득 나도 그 삶의 연속무늬 쪽으로 줄을 섰다
교회의 철탑이 모텔 건물에 지그시 그림자를 얹듯이 달이 제 몸을 지우며 죽음이 낳는 새로운 시간을 보여주듯이 풍경이 내 배경이었으므로 나도 풍경의 배경으로 지기로 했다 너에게
심사평
"미적 형상화 시도 탁월"
신춘문예란 말 그대로 한 겨울의 눈보라와 삭풍을 견뎌내고 새봄에 피어나는 꽃과 같이 가장 찬란하면서도 권위 있는 등단의 관문이다. 따라서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하는 작가에게는 지난겨울을 힘들게 이겨낸 치열함, 새봄에 태어나는 참신성, 앞으로 멀고도 힘든 길을 나아가야 할 가능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지역의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한라일보 신춘문예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올해 1100여 편의 작품이 시 분야에 응모했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이 일상의 현실에 숨겨진 대상을 치밀한 묘사력과 참신한 비유로 표현해내거나, 인간과 세상의 모습을 개성 있는 언어로 변주해내는 시적 능력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지은의 '풍경에 놀다', 송재선의 '발로 읽히는 유서'를 만난 것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풍경에 놀다'는 현실의 삶을 '풍경'의 모습으로 역동적으로 끌어당기거나 체감하여 미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탁월했다.
시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방식의 감수성과 화법도 두드러졌다. '발로 읽히는 유서'는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고뇌의 흔적이 담겨 있어서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다. 하지만 한 편의 시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자 하고 다소간에 사변적이어서 주제의식이 산만해졌다. 두 작품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을 거듭했으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은 신춘문예의 의의에 더욱 어울리는 작품으로 송지은의'풍경에 놀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송미선의 '꼬리연', 남상진의 '섬', 조성필의 '물허벅'과 같은 작품들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허상문(문학평론가)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발레리나 / 최현우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밀고 잔다
이불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듯이
길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에 보니 당신의 맨발이 반짝거린다
간밤에 어딘가 걸어간 것 같은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맨발로 춤을 췄다고 한다
발롱*! 더 높게 발롱!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
당신이 자꾸만 가여워지고 있다
*발레의 점프 동작
최현우: 1989년 서울 출생, 추계예술대 문창과 4학년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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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눈이 내렸다… 오늘은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랭보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팠다고, 외로웠다고 자랑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시를 앓는 사람들이 다 아프고 외로워서 혼자 특별하게 피 흘린 척할 수가 없다.시와 현실의 압력 차이로 사람이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며, 희망과 절망을 양 겨드랑이에 한쪽씩 목발 삼고 걸었다. 편한 쪽으로 기대려다가 자꾸 넘어졌다. 주저앉는 곳은 어디나 골목이 되었다. 그 담벼락에 실컷 낙서나 하다, 침도 뱉다가, 날아다니는 나방을 세어보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희망과 절망에 같은 힘을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십원짜리 동전을 세우는 일 같았다. 그러니까 아주 가끔씩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다.
김혜순·송찬호 두 심사위원께서 호명해주셨다. 스무 살 때 허연 시인이 영혼에 열병을 심어주셨다. 불치병이 되었다. 박찬일 교수님과 김다은·윤호병 교수님께 목구멍의 생선가시처럼 걸려 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형우 교수님과 많은 술잔을 기울였고, 임경섭 선생님과 거짓말처럼 한 약속이 있다.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추계 학우들의 축하 때문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고, 부모님께 아직도 반찬 투정하는 아들이고, 내게 미현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간밤에는 목발을 잠시 내려놓고 주저앉아 길게 자란 발톱들을 깎았다. 날이 밝았다. 이곳에 눈이 내렸다. 그 위로 누군가 모스부호처럼 흘린 발자국, 오늘은 해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심사평]
발뒤꿈치 들고 도약을 시인이여, 더 높게 발롱(점프)!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의 말과 현란한 드라마 대사 속에서 시가 나아갈 길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꽃·별·구름·사랑과 이별, 버려진 구두 한 짝, 창문의 덜컹거림, 전화기 속의 흐느낌… 등을 질료 삼아 늘 그래 왔듯 묵묵히 시를 쓰는 것. 황지우 시인은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고 하였다. 갑갑한 소화불량의 사회에서 시는 더욱 예민해졌고 더욱 갈급한 형식이 되었다.
이번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송민규의 '곰팡이로 만드는 바람소리'外, 조창규의 '불안한 상속'外, 서문정숙의 '시간여행자들'外, 최현우의 '발레리나'外를 주목해 읽었다. 위 응모작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인으로서 외침은 있되 아직 그 울림이 뚜렷하지 않고 자기만의 웅얼거림에 갇혀 있는 듯했다.
고심 끝에 최현우씨의 '발레리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발레리나'는 '한 번의 착지를 위해' 거듭 삶을 연습해야 하는 발레리나의 내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시에서 계절로부터 '부슬비'의 가는 발목을 발견하거나 바람으로부터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원시의 무용을 발견하는 응시의 시선이 돋보인다. 발레는 발뒤꿈치를 들고 돌거나 도약과 착지를 거듭해야 하는 고된 춤이다. 시도 이와 다를 게 무어랴. 당선자는 오래 습작기의 열정을 내려놓지 말기 바란다. 새로운 시인에게 시가 발롱! 더 높게 발롱!
심사위원 : 김혜순, 송찬호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주방장은 쓴다 / 이영재
눈은 이미 내렸다 새가 날아온다 그리고 새는 날아간다 이곳에서 시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먹을 것이 참 없다 먹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허기가 시보다 나은 점이라면 녀석은 문을 두드릴 줄 안다는 것 요리는 곧 완성 된다 완성되기 전에 이 깨끗한 접시를 쓰레기통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내 몸에겐 건강한 학대가 필요하고, 다행히 이곳은 학대에 매우 알맞다 떠나는 새조차 둥지를 훌륭하게 지을 줄 안다
시를 포기하고 시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더 멋진 건, 죽어서 시인이 되는 일
거짓이다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 담배를 문 주방장만이 오래도록 써왔을 뿐이다
휘파람이 휘파람을 불 생각이 없듯 우체통은 붉을 필요가 없다 다행히 라면집은 가끔만 문을 연다
요리는 완성될 필요가 없다 이 깨끗한 접시를 온전하게 버리기 위해
철새가 돌아올 둥지를 삶아 먹고 이사를 할 것이다 겨울과 더 가까운 곳에 주방을 열고 문을 닫을 것이다 어디서든, 시작하지 않기 위해
거짓인 명제가 가득한 접시 위에만
쓴다
심사평
"기발한 詩想·세련된 언어감각 지녀 "
올해도 900명이 넘는 예비시인들이 응모해 주셨다. 현실적 보상이 따르기 어려운 이분들의 고독한 헌신에 한국문학은 크게 힘입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일일이 기려야 하겠지만, 차라리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적시하는 것으로 상투적 덕담에 대신하려 한다.
우선 긴장이 떨어지는 설명조의 사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장황한 관형어구의 습관적 사용과 무관하지 않은데, 그것으로는 산문과 구별되어 마땅한 시적 촌철살인을 구현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언어 일반에 대한 자각, 모국어에 대한 자의식이 부족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생활언어의 많은 부분이 ‘국영문 혼용체’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구미 중심의 가속적인 세계화 추세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누구보다 언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인들은 모국어의 쓰디쓴 현실에 좀더 깨어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편협한 외래어배척운동을 다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해요’ ‘∼이에요’ 투의 어미가 유행처럼 많았다는 점도 지적하고자 한다. 여성스러운 경어체 입말의 실감이라는 특수 효과가 없지 않지만, 이것은 시를 주관화, 연성화하고 자칫 시를 사적 독백 쪽으로 끌고 가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 듯하다. 역시 자각과 절제 속에서 제한적으로 구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컨대, 작위적으로 시를 꾸려가고 있거나 낡은 시적 투식을 답습하는 투고작들 대부분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시작에 임하는 태세의 안이함’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검토를 거쳐 김동환 민현 이영재로 범위를 좁힌 다음 재독에 들어갔다. 서민적 삶의 그늘을 침착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 김동환의 시들은 고르고 품위가 있었다. 반면, 시적 긴박감이 부족한 느낌과, 안정적인 대신 선도가 떨어지는 비유와 이미지들이 지적되었다. 민현의 시들은 일견 낯익은 듯했지만, 절실함이 그 내부를 채우고 있는 ‘간곡’ ‘아이가 자는 방’ 등은 아름다웠다. 어투의 기시감을 극복한다면 그는 더 높은 시적 성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영재는 언어에 대해 좀더 민첩하고 세련된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은 존재의 미세한 기척들에 대한 민감함과 결부된 것이었다. 빠른 리듬은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으며, 좋은 발상과 표현이 신인으로 손색없었다. 그를 당선자로 합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언어의 운용에 깊이와 신중함이 더해지기를 당부하는 우리의 노파심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심사위원 : 김사인·최승호
201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단단한 물방울/김유진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밤을 깐다
복도가 나오고 수많은 문이 보인다
벌레는 아주 가끔씩 빛처럼 부서졌다
그때 흔들린 손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한 말을 다시 반복하는 뉴스는 보았다
나는 물을 마신다 물이 흩어진다 수많은 문이 열린다
흩어진 수많은 껍질을 문이라 할 수 있을까
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윗부분 중간을 칼집 내어 잡아당긴다
형광등은 자주 깜박거렸다
천장 한쪽 구석에 거미줄이 불빛에 걸려 움찔하면
아무도 없을 때 더 시끄러워지는 나는
그동안 꾼 꿈과 마주치고 다양해진다
초인종이 울린다 나는 다시 한 곳에 모인다참 단단한 물방울이라 여기면서
거울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어본다
웃음이 길게 늘어지며 읽을 수 없는 표정들이 지나간다
냉장고에 붙여 놓은 명언들이 노랗게 바래지고 있다
자주 삶은 베갯닛과 닮았다
인쇄해두고 한 번도 가지 않은 여행지를 자꾸 머리 속에서 내몬다
종이를 본다 얼룩진 곳이 단단하다창문 위에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고
방에서 물방울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당선소감]
아버지 붙들고 흘리던 눈물, 영광으로 다가와
날씨가 몹시 흐렸고 이내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하루를 생각하고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흐릿하게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의 당선 소식. 잠시 휴대전화를 의심하고 귀를 의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올여름 폐암 수술을 하신 아버님께 제일 먼저 이 기쁨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술하지 않으시겠다던 아버지 붙들고 울며 흘리던 그 눈물이 바로 오늘의 영광인 '단단한 물방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숨 고르고 돌아보니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참신한 상상력으로 늘 새로운 시의 길을 안내해 주신 김영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의 손을 놓으려 할 때마다 다시 용기를 북돋아 준 이기홍 선배님, 심명수 선배님, 그리고 정동진역 회원들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언제나 저를 최고로 믿어주는 송경수 씨, 당신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첫 독자가 되어 쓴소리를 거침없이 해준 지혜, 지연, 나경에게 사랑한단 말 전합니다.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는 동생들 완희, 영진, 병관, 정희, 종일이와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음지의 숨소리를 건져 올려주신 김명인 선생님, 박태일 선생님, 최영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을 약속하오며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국제신문사에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1963 년 서울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
[심사평]
온건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일상의 풍경 자아내
신춘문예 투고시가 두 켜로 나뉜 지는 오래다.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소수 전문시와 흔한 생활시 다수가 그들이다. 그만그만한 표현력을 갖춘 전문시는 우리 사회에 시를 꾸준히 학습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생활 감각을 담아낸소박한 생활시 또한 문학이 삶의 중요한 취향문화임을 한결같이 일깨워 준다.
문제는 이런 속에서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한 작품이나 새로운 시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적당한 수준의 언어감각을 바탕으로 소극적인 표현성에 머문 작품이 대종이다. 올해 투고 시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뽑는 이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셋이었다. 조유희의 '고양이의 대화법', 김태형의 '비 내리는 공단', 그리고 김유진의 '단단한 물방울'이 그들이다.
'고양이의 대화법'은 고양이를 대상으로 삼은 날렵하고도 예각적인 인상화다. 글감으로서 흔한 고양이를 시인 나름의 신선한 서정 공간으로 감싸고자 했다. 표현주의 적인 필치까지 겨냥한 역량이 뛰어났다.
거기에 견주어 '비 내리는 공단'은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 풍경에 대한 집중적인 응시가 빛나는 작품이다. 대범한 수사로 그려 담은 날카로운 현장성은 시인의 넉넉한 뒷심까지 엿보게 한다. 앞서 가는 삶보다 뒤서는 삶이 차라리 건강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시다. 그럼에도 두 편 모두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완성도가 떨어졌다.
'단단한 물방울'은 방에 앉아 밤을 까는 가벼운 일상을 독특한 상상적 직조술로 즐긴 작품이다. '고양이의 대화법'처럼 표현성을 극도로 좇지도 않았고, '비 내리는 공단'과 같이 현실의 무게에 표현이 밀리지도 않았다. 그만큼 온건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풍경을 자아낸 셈이다. 이 작품이 지닌 나날살이에 대한 섬세한 상상력은 아무나 넘볼 경지가 아니다. 함께 보낸 '핀셋' 또한 좋은 작품이었다. 당선작으로 밀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두어 군데 막연한 진술이 흠을 키웠다. 따라서 뽑는 이는 김유진의 '단단한 물방울'을 즐겁게 당선작으로 민다. 힘차게 날아오를 앞날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더욱 가혹한 말의 형벌 속으로 쉼 없이 내려서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명인 박태일 최영철 시인
2014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상강 / 최영숙
장독대 옆에 살던 뱀은 산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허술해져 경계처럼 빗금을 긋는다
저렇게 주먹 불끈 쥐고 가는 길
너를 향해 가는 고추 벌레 구멍 같은 길
툭 부러지고 싶다 이제 그만 자리 잡고
눕고 싶은 생각
생각은 자면서도 깨어 있을까
꿈틀 나의 손을 치우는 돌서덜
그 돌서덜 위에서
숲은 작은 몸을 하고 툰드라의 바람으로 운다.
당선소감
비탈길 눈 녹듯 한 우물 판 지 15년 만에 기쁨 만끽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러나 오늘은 눈이 녹아내린다. 처마 밑에 서서 손을 내밀어 본다. 목숨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21g의 무게가 줄어든다 한다. 한 방울의 몸, 차고 가볍다. 응달의 눈은 여전히 녹지 않는다.
눈을 치우며 보니 내가 다니는 곳만 눈이 두께로 앉아 있다. 이 넓은 세상에 소심한 나의 발자국이 어둑어둑 보인다.
어두워지도록 눈을 치우고 있는데 당선 소식이 왔다. 일시에 얼었던 몸이 쫙 녹아내리는 듯, 불꽃으로 타오른다.
너무 기뻤다. 이 길에 들어선 지 어언 15년 만의 기쁨이다. 한 우물을 파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몸은 어느새 하늘로 둥둥 떠 찬 비탈길 눈을 다 녹인다. 이 길을 걷는데 가끔 발목을 걸던 남편에게도, 그리고 늘 힘을 실어 준 나의 아이들과, 한림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교수님과 교우들, 빛글문학 동인들, 홍천문협회원님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최영숙(58)
양구군 출생
한림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수료
심사평
군더더기 없이 행간의 여백 만드는 솜씨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일정한 수준을 상회했고 개성적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조의 경우, 시와 시조가 한 자리에서 경합한다는 점에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응모작이 늘고 있어 반가웠다. 그러나 시조의 율격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와 시적 언술에 미치지 못하거나 진부한 소재와 발상을 보여 아쉬웠다.
시의 경우, 좋은 작품이 많아 즐거운 고민을 하는 가운데 의구심도 있었다. 새로운 독법을 요구하는 듯 보이는 낯설게하기가 지나친 기교주의로 흐른다는 느낌. 비틀리고 장황한 언술들을 독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 공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최종에 오른 작품은 `적멸보궁', `디딤돌이 있는 풍경', `모서리의 비밀', `상강'이었다. `적멸보궁'은 사유의 깊이와 묘사력이 돋보였으나 참신성과 독창성이 부족했다. `디딤돌이 있는 풍경'은 한 폭의 동화를 보는 듯 시상이 맑고 깨끗하게 다가왔으나 시는 사상과 형식의 등가물이란 점에서 볼 때 내면적 깊이가 약했고, `모서리의 비밀'은 전체를 견인하는 결미의 주제의식이 부족했다. 최종적으로 최영숙의 `상강'은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은 가운데 산뜻하게 응축된 시상이 참신하고 진정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다가와 당선작으로 올렸다. 상강 절기의 자연이법을 선명한 이미지로 포착하면서 고도의 상상력과 직관으로 군더더기 없이 행간의 여백을 만드는 솜씨가 탁월했다. 함께 응모한 `풍장' 역시 절제된 비유와 표현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영예의 당선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며 시인으로서 대성하길 축원 드린다.
이영춘·홍성란 시인
01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소가 있는 풍경 / 노동주
시소는 늘 기울어 투석기처럼 한쪽 팔을 바닥에 떨구고 있다
빈둥거리는 그 사내의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울까
쏘아 올리기에는 시소의 두 팔이 너무 길다
곤장이라도 맞은 듯 매번 엎어져 있다
사내도 굄돌처럼 하늘을 인 듯 무겁다
햇빛 그늘진 저 받침점이란 건 뭔가?
가슴팍에 점 아닌 섬처럼 박힌 저것
누구도 그 중심에 안착해 본 적 없다
시소는 늘 중심을 빗나간 기웃거림의 형식으로 흔들리며 웃고 운다,
끽끽거린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가 가볍게 시소에 앉는다
브라보콘을 흘리는 일곱 살의 오후가 번쩍 들린다
그 기울어진 시소의 경사면을 따라
문득 이삿짐 트럭이 오르고 영구차가 내려간다
눈길에 미끄러지는 출근길이 열리고
이부자리에 맨발을 모으는 저녁 냄새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사내의 엉덩이도 시큰거린다
중심으로부터 몸이 무거울수록 가깝게
가벼울수록 멀리 앉는 게 균형을 맞추는 법이라지만
늘 빈손인 사내는 거구여도 뒷자리에 앉고
천근의 추를 몸에 단 흐릿한 얼굴은 맞은편에 앉았다 간다
시소는 땅 속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나무처럼 직립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곗바늘처럼 좌우로 훅훅 언젠가 돌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진짜 시소의 균형이란
때를 기다리는 것, 엉덩이 짓무르도록방아를 찧을 때마다
꺽꺽 시소가 울고 있다
당선소감
"문우들에 대한 고마움 잊지 않겠다"
경적이 울립니다. 뒤돌아보니 택시입니다. 혹시나 싶어 앞사람 등짝에 툭 던지는 소리, 그 생활의 방식을 ‘시’라 믿습니다. 굳게 뒤돌아선 사물의 뒤통수에 대고 오래 말을 걸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게 늘 퇴짜일지 몰랐지만, 힐끔 고개 돌린 옆모습이라도 기억했다가 그걸 받아 적는 밤은 늘 깊었습니다. 영혼의 반을 시인이 되는 길에 걸었습니다. 내 반쪽만을 통과한 사람들아, 아이들아 미안하고 고맙다. 퇴근 후 방문을 닫고 무언가 헛것만을 쓰고 있는 아들의 어깨를 보며,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시간을 사셨을까. 오래 살아계시라. 아들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들으소서. 금이 번진 벽에 새로 도배를 하던 날, 몇 번의 귀얄질로 벽지 속 국화꽃이 천장까지 피어오르던 오후가 있었습니다. 쥐가 달그락거릴 때마다 아버지가 천장을 치대던 그 밤도 생생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 삶의 실금 위로 떨어져 내려쌓인, 그 따뜻한 국화꽃잎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나. 시 쓰는 삶에 한 아름 꽃잎을 보태주신 종호 선배, 지웅 형, 안성덕 선생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박성우 선생님, 정양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제 생활의 반인 가족과 친구와 진봉초 식구들에게 고마움 전합니다. 나를 시인처럼 살게 해준 하연, 사랑합니다. 문우들에 대한 고마움은 생활로써 대신 갚겠습니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두 선생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번 제 시의 뼈대를 부러뜨리던 강연호 교수님, 저는 언제나 강골이 될까요. 은혜가 깊지만 갚을 수 없는 깊이이므로 갚지 않겠습니다. 더 빚을 지렵니다. 늘 건강하세요.
심사평
"시 정신의 집중과 몰입 매우 뛰어나"
지금 시는 산업화 광속의 감각 때문에 멀미를 앓고 있다. 인쇄 언어의 앞날이 걱정이다. 그럼에도 시와 시인은 여전히 존재하고 증가하면서 진화하는 추세에 있다. 한 마디로 시대적 아이러니이다. 본심의 작품들 중 「금강」외3편(이인애),「거울을 긁다」외2편(박평숙),「즐거운 독」외4편(문화영),「장수 한우축제」외4편(이근영),「생골 아지매」 외 3편(임미성) 등은 모두 한 사람이 쓴 작품처럼 진술 형태가 비슷비슷하다.
평범한 어조에다 일상적 서정이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 관객이 무용 공연장에서 춤은 사라지고 패션만 보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시는 사라지고 언어만 난무한다면 헛심이 팽길 것이다. 옥석을 가리는 작품에서 언어와 시정신은 섬광처럼 빛나야 한다. 끝까지 남은 작품으로 「나무의 관상(觀相)」(한병인)은 서정 묘사에 치중, 비교적 안정된 심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무’에 대한 깊은 인식과 언어 구조의 층이 얇아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것 같다.
바다의 구두」(이지산)는 사람 중심의 편견에 의한 자연(바다)의 희생과 새만금 방조제와의 불협화를 풍자한 생태학적인 시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미래파적 추구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3·5연의 청신한 진술에 비해 끝부분 8·9연은 긴장이 풀어져 어색한 상투성과 불투명하고 난삽한 언술로 되어 있다.
짱짱하고 단단하게 응축시켜 공력을 살려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작품이다. 당선작 「시소가 있는 풍경」(노동주)은 인간 사회의 중심축과 평형감각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에 천착, 치열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언어의 함축적 의미나 비유의 정확성과 긴밀성, 그러한 심층 구조의 역동성에 의해 흡인력과 시안(詩眼) 전개의 안정감도 돋보인다. 덧붙이면 대상의 내면을 투시할 줄 아는 시정신의 집중과 몰입,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상쾌하고 투명한 미의식 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 두 사람의 의견도 일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더불어 초심을 잃지 말고 이제부터라는 각오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 시인들의 중심에 우뚝 서 주기를 바란다.
박성우, 문신
2014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열화되다 / 이승은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
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
딱 그만 크기의 추를 세우고 조그맣게 서 있다
저 추가 어떻게 뜨거움을 보여줄 것인가
작년 봄 2쪽 그즈음과 같은 모양새여서
땅이 열렸을 때부터 생긴 약속이라고
얼추 들은 터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이 넘나드는 순간
추가 넘어졌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
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매화꽃 일생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도
화르르 소란스럽다
단 한 개의 귀를 지닌 추는 냉정을 잃고
물기에 젖어 파리한 소리는 적막을 뚫고
꽃 이파리 하나 열린다
열화되지 않은 꽃은 없으리
바닥 바닥으로만 음각했던 우리들의 희망이
달리 드러난 것이다
여러 번 꽁꽁 얼어 있던 약속이
심장 속 온도에 팔딱거리는작은 기립을 지지한다
쉿! 다음 쪽 봄꽃도 뜨거워지려 한다
당선소감
겨울임에도 다니고 있는 직장 본 건물 옆에 새로 건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건물 앞으로, 옆으로, 일층에서 이층으로 무수하게 설치해 놓은 철구조물이 보입니다. 비계(scaffolding)입니다. 비계는건설, 보수공사, 건물이나 기계를 청소할 때 작업인부와 자재를 들어 올리고 받쳐주기 위해 쓰며, 알맞은 크기·길이의 발판재를 하나 또는 여러 개를 모양과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됩니다. 건물이 완성되면 흔적 없이 사라져야하는 비계가 유독 눈에 들어봅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볼품없는 나는 내 시를 위한 비계입니다. 세상을 보이게 하고 드러내는 뜨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시를 남기고 비계처럼 사라지면 좋을 것이란 계획을 진즉에 세웠습니다. 나이 오십에 내 시를 세상에 나오게 해준 전북도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를 드리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의 재탄생’
신춘문예를 통해 이 땅의 시인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것은 눈부신 기쁨이다.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37명의 시 569편을 심사했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은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토해 나오는 비단실을 보는 것과 같다. 떨리는 가슴으로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시를 쓰고 응모한 예비 시인들의 문학을 향한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당선작으로 이승은의 ‘열화되다’를 뽑았다.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말아등선이 고운 태아처럼/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라는 첫머리부터 시선을 끌었다. ‘토해낸 숨결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꽃이 열리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호흡을 잠시 멈추고서 한 줄의 시로 완성한 모습이 시를 읽은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이 언어를 통해 재탄생하는 모습이 반갑다. 앞으로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 구민숙의 ‘뒤란’은 오래 들고 있었던 작품이다. 바람처럼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영상과도 같았다. 생각의 깊이를 더하여 시의 언어를 조율한다면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윤정의 ‘풍화’, 김완수의 ‘독방일기’, 김종득의 ‘돌아온 만경들’ 역시 좋은 작품이었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조미애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및 한국문인협회 이사>
2014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맷수쇠 /정원정
한낮이다. 길가 목 좋은 모퉁이에 벌여놓은 보자기가게(坐商)에 들렀다. 무 하나, 애호박 두 개를 사 들고 쉬엄쉬엄 오는 길에, 어찌나 걸음걸음이 팍팍하던지 길녘 벤치에 앉았다. 맞은 편, 눈부시게 하얀 아파트 한끝에 머문 시월막사리 하늘은 푸른빛이 깊다 못해 왕연(旺然)한 반물빛이다. 지난겨울, 이사한 집의 묵은 때를 벗기느라 힘이 들었다. 그 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서 정형외과에 가 보았더니, 엑스선 사진을 살펴본 의사 설명인즉 걸어가다 쉬고 싶을 거라며 척추골 네개가 협착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게, 어느 시인이 어머니 말투를 빌린 시구에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하듯 나도 그랬던가 보다. 척추는 저뭇한 세월에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끈끈한 묵은 정으로 몸 매무시를 지탱해 주었던 걸까. 나는 평소에는 척추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탈이 나고서야 비로소 한평생 직립으로 허릿심을 지탱해 준 척추의 됨됨이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귀한 살붙이임에도 마음 쓰지 못하다니, 내 아둔한 구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 발 건너선 이웃에게야 오죽 무심했겠는가 싶다. 척추한테서 두남받은 고마움에 생각이 머물다 보니, 일상과 그리 멀지 않은 주변에 척추의 역학적 구조와 닮은 사물들이 눈에 띄었다. 세상 만물은 저 혼자 독립해서 생의 무게를 지탱하는 실체는 없다는 것에 수긍이 갔다. 우연찮게 맷수쇠를 알게 되었다. 맷돌 아래짝 한가운데 박힌 아주 작은 뾰쪽한 쇠를 맷수쇠라 하는데, 제 몸보다 엄청나게 큰 맷돌 몸통을 거리낌 없이 지탱해주는 물건이다. 더욱 맷수쇠는 무생물임에도 사람 사는 품과 닮은 데가 있어 흥미롭다. 맷돌은 암 맷돌, 수 맷돌이 포개져 있다. 윗돌이 밑돌을 암팡스레 껴안고 숨차게 돌고 돌며, 알곡도 무거리도 가루로 잘게 부수고 으깬다. 밑돌과 윗돌은 한속이 되어 생명을 살리는 부드러운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암 맷돌에는 곡물을 넣는 ‘아가리’도 있고, ‘어처구니’란 맷손도 있다. 맷돌질할 때 그네들도 맷수쇠 못지않게 힘깨나 쓰는 일꾼들이다. 그 연모들도 서로 감싸주고 도우며 갈기, 부수기, 기피 내기를 하며 제구실을 다한다. 거기에는 밑돌 중심부에서 윗돌과 밑돌이 정확히 맞도록 역할을 하는 맷수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맷수쇠는 비록 작은 부품 같아도 중심을 잡고 버티는 데는 시골집 앞마당에 긴 빨랫줄을 받쳐주는 키 큰 간짓대의 몸짓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아주 작은 몸으로 거대한 위 맷돌을 받치고 제자리를 지키는 맷수쇠는 그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성찰하는 사람 같다. 참으로 겉보기보다 내면이 깊다. 어려운 시대를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 역시 생색내지 않고 제 서 있을 자리를 알고 행동하지 않던가. 사람도 돌덩이 같은 무거운 짐을 지고 한껏 살아가는 게 태반인데 각기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나의 설 자리를 알고, 내 분수를 알면 거기에 따른 책임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노상 빗먹듯, 실수 덩어리를 몰고 다녔다. 여들없이 감정을 헤집어 뒤변덕스레 어디에고 차분히 마음 기대지 못하고, 거처마저도 어느 이국의 유랑민처럼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느라 더 혼란스러웠다.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는데, 어디에고 안착을 못 하고 방황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고, 길이 사라져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럴 적엔 인생길이 꼭 그믐칠야처럼 느껴졌다. 황혼의 저물녘까지 잰걸음으로 걸어온 고빗길마다 참 서툴게 살아왔다. 그 사이 척추는 한눈팔 겨를 없이 제자리에서 한세상을 엄살 한번 피우지 않았다. 나는 그 속사정의 경계를 숫제 거니채지 못하고, 그저 불편한 다리 탓만 했다. 그는 뼈마디가 구부스름히 일긋했으련만 말없이 안으로 안으로만 삭혔을 터, 내 유년의 마을 들목에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비바람이 후려치는 극한의 외로움을 홀로 견뎌냈으리라. 흔히 작고 미미한 것보다는 으리으리한 것에 눈이 간다. 숨겨진 곳에 깊고 아늑한 은혜가 스며있음에도 말이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건 자연과 사람에게서 두남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하고 혼탁한 세상일지라도 그래도 중심을 잡고 인간의 길을 고뇌하며 양심적으로 번민하는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나와 다른 삶과 존재 방식을 존중하고, 서로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하는 따스한 모습은 우리의 위안이고 희망이다. 꽃이 인간의 재주를 제치고 자연의 섭리로 개화의 시기를 알아 자기 몫몫을 펴 가듯 스스로 진정성을 안고 행동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정신적인 맷수쇠인 것이다. 『무신예찬』에서 작가 데일 맥고원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우주적으로 하찮은 존재다. 공간에서는 한 점에 불과하고 시간에서는 한 찰나에 불과한 헤아릴 길 없이 미미한 존재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에게만은 중요해질 수 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우리 서로에게만은 말이다.” 그렇다. 누구나 이 광대한 우주 속에 단 한 사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다. 그럼에도 혼자만이 아니다. 세상 만물이 나와 무관한 존재가 어디 있던가. 별 탈 없이 반복되는 일상도 알게 모르게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있다. 내 존재 역시 누군가를 지탱해 주고 있다면, 살아 있음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인간 삶에서 너와 내가 서로 기대고 받쳐주고 도와주며 살아가는 그 진실을 맷수쇠는 알고 있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도 결코 불의를 보고 눈감지 않았다. 고통을 감수하고 그 사회의 현안을 푸는 일에 함께할 책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풀 한 포기도 우주의 기운을 받아 존재할진대, 어느 한 생인들 존귀하지 않겠는가. 소풍 전야처럼 가슴 설레는 삶이어도 한 생은 짧다. 살아있음이 감동으로 이어져서 서로의 인연을 귀히 여길 일이다.
당선소감 - 수필 부문 당선자 정원정씨
모두 안녕하지 못한 어수선한 세모에 당선소식을 전해 받았습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소원해 보는 신춘문예에 당선되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꾼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쓰지 않을 수 없는 기억 저편의 순정한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 또는 지극히 주변이 고요할 때, 종잡을 수 없는 갈등과 공상, 가슴 뛰는 순간마다 자신을 태질하듯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기어이 늦은 나이에 수필을 만나고, 수필을 공부하면서 내 안의 허기를 다독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슴 속 꼬다케는 불씨로 남았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미진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전북도민일보께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섯 해를 한길로 지도해주신 김학 교수님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흉허물없이 함께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문우님들과 이 기쁨 나누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따스한 감성으로 손 마주 잡고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
수필부분 심사평 ‘존재와 기능 역할에 무신경한 현상 겨냥’
나는 평소에 글을 읽을 때마다 “······. 독자는 여러 사람이다. 따라서 가지가지로 요구한다. 나를 즐겁게 해 달라. 나를 슬프게 해 달라. 나를 감동시켜 달라. 나에게 공상을 일으켜 달라. 나를 포복절도케 하여달라. 나를 전율케 하여달라. 나를 사색하게 하여달라. 나를 위로해 달라. 그리고 소수의 독자 만이 당신 자신의 기질에 맞는 최선의 형식으로 무엇이든지 아름다운 글을 지어 달라고 할 것이다.······.”라는, 모파상의 단편소설 서문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오늘도 나는 “당신 자신의 기질에 맞는 최선의 형식으로 무엇이든지 아름다운 글을 지어 달라.”라고 요구하는 독자 중의 한 사람이 되어서 내 앞에 놓인 응모작품 400여 편을 읽었다. 가까스로 30여 편을 골랐고, 그들의 2차 읽기를 통해서 김만년의 ‘헛기침’, 권영애의 ‘여백’, 김옥희의 ‘가객의 노래’, 박금아의 ‘조율사’, 정원정의 ‘맷수쇠’ 등 다섯 편을 어렵사리 선하고 나서야 겨우 한차례 큰 날숨을 쉴 수 있었다. ‘맷수쇠’는 인생살이의 제 국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멘토로 ‘맷수쇠’의 기능을 차용했다. 스스로의 존재감은 극구 부풀리면서도 그 존재의 기능이며 역할에 무신경한 현대인들을 겨냥하여 공동체에서 분골쇄신하는 자세로 주어진 직분을 다하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삶의 모델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객관성을 상실한 채 자기 주장만을 강변하는 현 시대상황의 엇박자를 글의 바탕에 깔고 건강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대사회적 관심과 어떻게라도 대안을 찾아내고자 하는 긍정적 성정에 손뼉을 쳐주고 싶었다. 모두가 놓치기 아까운 대목을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특히 정원정의 ‘맷수쇠’가 수필로서의 제반 요건을 구비하고 글월로써 정제 완결하는 필력의 내성에 신뢰가 컸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사람이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말로 하여서 그것의 절반만 음성언어로 표현을 한다 하여도 연설가 아닌 이 없고, 그 연설가가 한 말의 내용을 반절만큼만 문자언어로 형상화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작가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는, 일설이 있다. 모름지기 기성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이 먼저 스스로의 현주소를 세세히 점검하고 반성하고 수정하고 겸허해져야함을 일깨우는 정문일침이라 하겠다.
공숙자<수필가, 대표에세이 동인회 전국회장 / 전북여류문학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역임>
2014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수필…
◇ 당선작: 등걸에 핀 꽃/김옥매
뒷산에 올랐다. 고라니 뜀박질에 바짝 언 할미꽃이 겨우 숨을 고르는 고갯길, 상수리 잎 성긴 그늘이 연신 산길을 쓸어댄다. 남실바람에 몸을 푼 송화는 구름과 비를 찾아 허공을 탐색한다. 정상에 서니 소나무 등걸 하나가 눈으로 들어온다. 모진 풍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그 남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신산한 바람이 인다. 생명의 끈을 놓아 버려서일까? 수런대는 숲의 기지개에 미동도 않는다. 드러난 뿌리는 소임을 다한 듯 허물어져 간다.
한때는 푸른 꿈을 꾸며 청춘을 불살랐겠지. 쭉쭉 뻗은 가지는 새들을 불러들여 생명을 보듬었을 거야.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젖은 땀방울 식혀주기도 했으리라. 그 영광된 날이 꿈인 듯 지나가 버린 허망함을 어찌 견딜까.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으리라. ‘그래, 원 없이 꽃피워 보아라!’ 뿌리째 뽑아 집으로 가져왔다. 허물어져 가는 몸뚱이에 착생식물인 풍란을 심어 주었다.
이른 아침, 정체 모를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자신이 표시한 영역을 확인하는 들짐승처럼 근원을 찾아 이리저리 코를 실룩거린다. 베란다가 가까울수록 짙어지는 향기, 창문을 여는 순간 향수병을 쏟은 듯 뿜어져 나오는 내음에 정신이 아찔하다. 날름 내민 꽃잎 사이로 살포시 발산하는 우윳빛 향기, 나뭇등걸이 품은 풍란이 주범이다. 꽃을 일으켜 세웠다. 곱게도 키웠다. 온기 한 점 없는 빈 가슴 어디에 힘이 남아 있었을까. 더는 내어줄 게 없었던 초라한 밑동, 그의 봄은 향기로 일어난다.
숲의 편견은 일흔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더는 나무로 봐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푸른 마음은 서슬의 톱날에 무참히 잘렸다. 늘 베푸는 것에 익숙한 삶이었다. 다섯 자식을 건사하며 퍼주기만 했던 사랑이었다. 이제 더는 줄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나. 그의 마음은 첫서리에 내려앉은 나뭇잎처럼 무너진다. 그보다 더한 것은 오랫동안 몸에 밴 일이 순간에 없어진 허탈감이었으리라. 앞만 보고 살아온 당신의 인생이 등걸처럼 허물어져 간다.
아이들의 고운 눈망울이 별똥별처럼 떨어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조롱조롱 매달린 무게가 천근만근이 되었으리라. 농사로는 초롱초롱한 별빛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얼마 되지 않은 땅뙈기를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신 아버지. 험한 골짜기의 쓸모없는 논은 아무도 사려는 이가 없어 남의 손에 맡겼다. 어쩌면 애써 팔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평초처럼 떠돌다 섬으로 남겨둔 그곳에 이르러 쉬고 싶었을까. 고향에 든든한 뿌리를 내려두고 어디에서 든 흔들림 없는 삶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살이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치유의 땅을 원했을 수도 있겠다.
고향에 봄이 왔다. 복숭아꽃들이 속살대는 언덕 아래 서 마지기의 다랑논이 나직이 앉았다. 보리밭 이랑에 몸을 걸친 할머니, 그 뒤로 투덜투덜 밭고랑만 세는 내가 보인다. 새하얀 다리에 거머리를 떼어내며 모를 찌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다. 쟁기질하는 아버지의 소 이끄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밤 숲을 적시던 개울은 쉼 없이 흘렀다. 뒷걸음치던 가재는 사라지고 세월도 휭 지나가 버렸다. 남의 손에서 서른 해를 돌고 돌아 다시 찾은 땅, 그것은 아버지의 풍란이었다.
도시의 골목을 서성이던 발걸음은 깃털 같은 날개를 달고 흙으로 향한다. 정을 느낄 새도 없이 떠나보낸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땅. 홀어미로 노심초사하며 키워 오신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서린 요람의 땅. 두 분의 땀 냄새가 밴 그 아득한 언저리에 앉은 아버지. 과일나무 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또르르 당신의 눈가에 떨어진다.
등걸보다 건조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다시 꽃이 피기 시작했다. 평생을 업으로 잡았던 망치가 아버지의 손에서 가볍게 춤을 춘다. 손끝 매운 솜씨로 작은 쉼터를 지었다. 이랑마다 아버지의 푸른 꿈이 새록새록 자란다. 주렁주렁 열린 과일이 당신의 땀방울을 먹고 쌔근쌔근 자란다. 나뭇가지로 재잘재잘 자식들이 모여들었다.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아버지. 숲에서 밀려난 아버지는 이제 더는 숲을 꿈꾸지 않는다. 푸른 마음은 어디에서나 키울 수 있으니까.
복숭아 자두 꽃이 내려앉은 개울물에 발을 담근다. 두 발 모아 밤송이 가르던 추억 한 자락이 여울을 따라 흐른다. 입안에 텁텁한 밤 껍질이 씹힌다. 가시투성이로 멍들었던 개울은 이제 꽃 그림자를 안았다. 가시밭길 인생의 끝에서 다시 꽃 피우는 법을 터득하신 내 아버지처럼.
감나무 잎을 흔들며 산들바람이 분다. 도미노처럼 스르르 창틈을 뚫고 들어와 풍란의 향주머니를 쓰러뜨린다. 아버지의 땀 냄새인 듯 달콤하다. 그 향기에 취해 눈을 감으면 어느새 아버지의 뜰에 닿아 있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이랑 위에 앉은 아버지. 내 아이의 아이들이 그 뒤에서 이랑을 세고 있다. 아득한 그날의 나처럼.
◇ 수필 당선소감
김 옥 매(1964년생)
학 력 : 고졸
약 력 : 대구수필문예대 수료
: 대구수필문예회 회원
낯선 번호로 휴대폰이 울립니다. 순간, 알에서 깨어난 새 한 마리가 저를 향해 날아옵니다. 원고를 보내던 날 꿈에서 보았던 녀석입니다. 새를 마음에 가둬둔 것을 보니
가당치 않은 욕심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선소식이 믿기지 않습니다. 심장이 다듬잇돌이 놓인 것처럼 방망이질 칩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지난여름 꽃그늘을 만들던 장미 나뭇가지에 매미의 허물이 훈장처럼 달려있습니다. 제 몸을 키우기 위한 녀석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온전한 자신의 이름을 찾아 떠난 흔적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지금 애벌레로 땅속에 웅크려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입니다. 그 암흑을 뚫고 누군가 날개의 존재를 알려 주네요. 내 작은 몸피 어디에 그것이 숨어 있을까요. 믿고 싶어집니다. 탈피의 과정을 인내하렵니다. 언젠가 돋아날 날개가 있다기에 조심스럽게 비상을 꿈꾸어 봅니다. 등걸처럼 허물어가는 영혼을 위해 희망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혼탁한 가슴을 정제하는 향기로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으실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바지랑대처럼 묵묵히 내 인생의 줄을 받치고 있는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신 대구수필문예회 박기옥 회장님 덕분입니다. 대구수필문예대 이동민 학장님과 여러 스승님 고맙습니다. 함께 공부한 문우 여러분 사랑합니다. 날개의 존재를 일깨워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꼭 필요한 만큼의 언어, 문장 구성·이야기 풀어가는 솜씨 남달라
신춘문예는 ‘작가의 꿈’을 실현하는 관문이다. 마땅히 치열한 문장 수련과 문학을 향한 열정이 작품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최소한 수필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 다시 말해서 낱말의 부림이나 문장의 구성, 주제의 설정과 형상화, 그리고 사람살이의 지혜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거기다 신인다운 참신성을 겸비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신변잡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응모작이 태반이었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성찰하는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주체 밖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에 관해 서술할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작가 개인의 자잘한 신변사를 글감으로 삼는데, 자칫하면 무늬 없는 평범한 작품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외당’, ‘순수의 계절’, ‘피아노가 있던 자리’, ‘석곡’ 같은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남편이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또는 사물에 관한 보편적인 현상을 평범하게 나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 ‘외당’, ‘순수의 계절’, ‘피아노가 있던 자리’, ‘등걸에 핀 꽃’, ‘석곡’을 놓고 거듭해서 읽고 토론하였다. 그 가운데 한 편을 가려 뽑는 작업은 힘들면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고심 끝에 문학적 품격이 돋보이는 ‘등걸에 핀 꽃’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등걸에 핀 꽃’은 뒷산에 있는 소나무 등걸에서 착상된 작품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등걸을 집안에 들여놓고 거기다 풍란을 심는다. 어느 날 그 풍란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가족의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본다. 고향을 떠나 도시의 골목을 서성이던 고단한 삶,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환하게 웃음을 되찾은 가족들의 모습을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낱말의 부림이나 문장의 구성이 탄탄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부족할 것도 넘칠 것도 없이 필요한 만큼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읽고 나면 뒷맛이 삼빡하다. 당선,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여 꽃을 활짝 피우기 바란다.
백정혜(수필가)ㆍ김종욱(수필가)
첫댓글 최희명선생님, 고맙습니다.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차근차근 읽어보겠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옮겨 갑니다.
모셔갔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