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르쿠츠크 시내 관광
Irkutsk 중심지는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고 앙가라 댐과 즈나멘스키 수도원 관광은 버스나 마르시룻카(маршрутка, 미니버스)를 타면 된다.
Irkutsk 버스는 약 4종류가 있다. 제일 안전한 것은 전철식으로 된 ⓵전철버스다. 도로 바닥에 철길이 깔려있고 버스 위로는 전선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거의 이르쿠츠크 중심지역만 돈다.(이르쿠츠크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등 한 바퀴 도는데 30분 정도 소요) ⓶그 다음 버스는 도로 바닥에 철길은 깔려있지 않지만 버스 위로 전선이 연결되어 있다. 이 버스는 도심 중심을 좀 더 넓게 돈다.(약 1시간 정도) ⓷그 다음으로는 전선과 철길이 없는 일반 버스다. 이 버스는 어떤 한 구역을 기점으로 외곽을 돈다. 그리고 나머지 특정한 행선지만 다니는 일반 미니버스다.(봉고차와 비슷함. 바이칼의 알혼섬이나 리스트비얀가 등 관광지로 가는 버스) 첫 번째 버스와 두 번째 버스만 타 봐도 시내 중심지의 위치는 거의 파악된다.
◐트램 타는 곳
전기 줄에 동그라미 T마크가 있고 그 옆에 트램번호(노선번호)가 붙어있는데 그 숫자가 있는 방향을 잘 보고 정류장을 찾아가면 된다. 구글맵 어플 유용하다. 갈 수 있는 교통수단과 가격을 보여준다. 단점은 인터넷 없이 안 된다는 점이다. 트램 타는 곳은 기차역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쭉 걷다보면 기등과 전선줄에 트램 표식이 보인다. 역에서 중앙시장까지는 1, 2, 4a(버스터미널) 트램이 가고, 6정거장, 30분 정도 거리다.
◐키로바광장(Kirov Square)
볼세비키 혁명 이후, 백군이 장악하고 있던 이르쿠츠크 지역에 몰래 잠입하여 공산당 지하 조직을 만들었던 "키로프"에서 따온 이름이다. "키로프"는 백군의 수장 "콜자크"를 제거함으로써 시베리아 전역을 공산당의 수중에 넣는데 성공한 인물이다.
이르쿠츠크의 중앙공원으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바이칼 호에서 발원하는 앙가라 강과 승리 광장을 끼고 있다. 주 정부청사, 세계대전 희생자를 기르는 영원의 불, 러시아 정교회 등을 볼 수 있으며 이르쿠츠크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와 신정 연휴가 되면 얼음조각으로 광장을 장식해 동화 속 마을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광장 북쪽에 있는 건물은 이르쿠츠크 주 정부 청사다. 1932년 카잔 성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1938~1959년에 걸쳐 이르쿠츠크 소비에트 위원회 건물을 지었다.
볼세비키 혁명의 종교 탄압으로 거대 규모였던 카잔 성당은 철거되고 지금은 종탑 모형의 건물이 카잔 교회를 대신하고 있다. 오른쪽 정부 청사 앞에 금색 돔의 조그마한 건물이 옛 카잔 교회의 상징물이다. 틈새로 보이는 붉은색 교회 건물은 로마 카톨릭 교회다.
◐영원의 불꽃
"영원의 불꽃"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이 지방 출신 용사들의 영혼을 지키는 불꽃이다.
◐벨로보로도프의 흉상
승리 광장에서 앙가라 강변으로 넘어가는 육교 입구에 세워져 있다. 아파나시 벨로보로도프 (Afanasy Pavlantyevich Beloborodov, 1903 ~ 1990)는 이 지역 출신으로 유명한 소비에트 군대 지휘관 이었으며, 모스크바 군관 총사령관, 국방성 감찰총장, 소련 최고회의 대표의원을 역임 한 인물이다.
◐쌈지 공원과 알렉산더 3세 동상
칼막사 거리의 끝에 위치하며 앙가라 강변을 따라 있는 광장이다. 알렉산더 3세는 러시아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한 장본인이다. 이 동상은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기념하며 1908년에 세워졌다.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입상만 세워졌었으나 1960년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지게 되었고, 2003년에 오벨리스크 반쯤을 자른 뒤 그 위에 알렉산더 3세의 동상을 올려놓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동상이 세워진 쌈지공원에서는 무명화가들의 초상화 그리는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으며, 거리악사들의 흥겨운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스파스카야 교회(Spasskaya Tserkov)
Храм во имя Спаса Нерукотворного Образа(구세주 교회) "스파스까야 교회(Spasskaya Tserkov', 구세주)"는 외벽에도 벽화 장식이 있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벽화는 교회 건축물로는 보기 드문 것으로 문화재급 보존 가치가 있다고 한다.
벽화는 3개의 주제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맨 왼쪽은 원주민들의 세례 장면,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의 세례 장면, 오른쪽에는 이르쿠츠크 정교회의 첫 주교였던 이노켄트 대주교의 서품식 장면이라고 한다.
▶바가야블레니야 성당
바가야블레니야 성당(Cathedral of the Epiphany, 이피하니 성당 = 주현절성당)은 승리 광장 동쪽의 앙가라 강변에 위치해 있다. 외관이 독특하여 이르쿠츠크의 명물이 되었다.
◐모스크바의 문
안가라 강변에 노란색과 희색으로 채색된 건물로 눈에 확 띄는 건축물이다.
◐즈나멘스키 수도원(Znamensky monastery)
이 수도원은 12월의 난이라고 불리는 데카브리스트 혁명가들이 처형된 후 묻힌 곳이다. 혁명가들 뿐 아니라 그들의 부인들도 함께 묻혀있다. 혁명가들의 부인들은 남편을 버리고 귀족의 신분을 유지, 재가할 것과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날 것, 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부인들은 남편들을 따라나섰다고 한다. 그 중에도 트루베초코의 아내인 예카제리나가 유명하다.
안가라 강의 호반에 있는 수도원으로 하얀색의 아름다운 외관이 인상적인 곳이다. 시내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황금색 돔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폴란드가톨릭교회
러시아 정교회가 국교인 이르쿠츠크의 중심부에 위치한 가톨릭교회다. 이르쿠츠크의 가톨릭 역사는 1831년 시작해 1863년까지 폴란드 정치범이 시베리아에 유배되며 시작되었다.
◐카잔 성당(Kazan Church)
카잔 성당은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 풍으로 건축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다.
이르쿠츠크의 필수 관광 코스인 카잔 성당은 1885년 7월 27일 시작으로 1892년 4월 9일에 완공되었다. 러시아 동방정교회 성당으로 외관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성당 내부와 외부의 정원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 유럽의 카톨릭 성당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특이한 점은 성당 내에 의자가 없는데 기도할 때 무릎을 꿇거나 서서 한다.
참고로 러시아 전역에는 카잔이란 이름이 붙은 성당이 132개가 있다. 바로 카잔 성모의 이콘 때문이다. 이 카잔 성모의 이콘은 러시아를 수호하는 대표적인 이콘으로 러시아 전역에는 이 카잔성모의 이콘을 복제하여 만든 카잔성당이 132개가 있는 것이다. 이곳 이르쿠츠크 카잔성당도 그 중의 하나다.
※카잔성모 이콘
카잔성모의 이콘은 ‘길의 인도자이신 성모’ 이콘의 또 다른 하나의 변형으로 성모님의 머리는 아기 예수님 방향으로 숙여져 있다. 예수님은 오른손으로 축복을 주고 계시는데, 왼손은 겉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성모님의 양손 또한 묘사되지 않는다. 카잔의 성모 이콘은 13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돼 러시아로 건너온 것으로 모스크바 북동쪽으로 500마일 떨어진 볼가 강 유역의 카잔이라는 도시에 보관 되고 있었으나, 1438년 타타르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이 이콘은 사라져 한 세기 이상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고대 러시아 연대기에 따르면 1579년 이 카잔 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던 마트로나라는 8살 난 소녀에게 성모님께서 여러 차례 나타나셔서 한 장소를 알려주며 성화상이 묻혀 있을 것이니 교회에 알리라고 하셨다. 이에 그 소녀가 교회에 알렸으나 아무도 이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믿으려 하지도 않자 마침내 그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그 장소를 파내어 천으로 감싸여진 대단히 오래된 성화를 발견했다. 이 소식을 듣고서야 교회 당국도 나서게 되어 장엄한 행렬을 지어 카잔의 대성당으로 성화를 옮겨 모셨다고 한다.
이후 1612년 폴란드가 침입했을 때 이 성모 이콘을 앞에 들고 나아가 크게 승리할 수 있었고, 1709년 스웨덴이 침입했을 때, 그리고 1812년 나폴레옹의 군대들이 모스크바를 점령 했을 때도 카잔의 성모님께 보호해 주심을 청하면서이 이콘을 앞세우고 전투에 나아가 승리했다. 그로 인해 이 카잔의 성모 성화는 러시아의 수호자로 크나큰 공경을 받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 러시아 각 도시에 이 카잔의 성모께 봉헌한 성당들을 건립하고, 이 성화의 사본들을 모셔 자신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1917년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많은 성당들이 폐쇄되고 파괴되면서 이 카잔의 성모 성화의 원화도 갑자기 사라졌다. 많은 이들은 이 성화 또한 파괴돼 없어진 것으로 생각했으나, 1953년 백만장자 미셀 헤지스가 아서 힐만에게서 이 이콘을 구입하면서 다시금 세상에 등장했다. 1963년 파티마의 푸른 군대는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고… 나의 티 없는 성심은 승리할 것이다.”라는 성모님의 말씀의 실현을 확신하며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 국제센터에 비잔틴식 성당을 건립하고, 1970년에 이 이콘을 미셀 헤지스의 딸 안나 미첼 헤지스에게서 사들여 그 안에 모셨다. 1993년 이 성화는 교황청으로 보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증정했다. 그런데 교황은 이 성화가 러시아 정교회의 종교적 유산이기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에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2004년 8월 28일 발터 카스퍼 추기경을 단장으로 한 사절단을 모스크바에 보내, 카잔의 성모 이콘을 러시아 정교회의 알렉세이 2세 총대주교에게 전달했다.
◐중앙시장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1층은 식품판매장, 2층은 의류품을 팔고 있는 대형시장이다. 다량의 의류품들은 도매시장처럼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싱싱한 식료품들이 매일 거래가 되고 있는 활기찬 도심의 시장이다. 물건 중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여왔다.
◐발콘스키의 집
요금: 발콘스키의 집 만 돌아보면 200루블, 트루베츠코이 집을 포함하면 300루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실존 인물 발콘스키의 집이다. 톨스토이의 친척인 발콘스키는 1825년 12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주도한 젊은 귀족 장교들을 말하는 데카브리스트 중 하나였다.
이 집은 이르쿠츠크 근교에 위치한 우클릭 마을에 제1차 사면 받았던 데카브리스트들이 1838년 건축했던 건물로 1846년 제2차 사면을 받으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발콘스키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이며, 음악을 좋아했던 아내 마리아 여사와 문학을 좋아했던 발콘스키 덕에 이 집에서는 음악회나 시 낭송, 가면무도회 등의 문화 활동이 쉬지 않고 열렸다고 한다.
1985년 12월 10일에 11년간의 재건축 공사를 마친 후 조립형 나무주택은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130번가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한 나무집 마을이다. 1879년에 소실되었던 도심 속의 목조 건축물들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하여 350주년 이르쿠츠크 도시 건설을 기념했다.
▶시베리아철도청
▶드라마극장
▶이르쿠츠크 국립대학교
◐안가라 강과 샤먼바위
‘바이칼의 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안가라 강은 바이칼 호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강이다. 길이가 약 1800킬로미터에 달하며, 계속가면 예니세이 강에 이르게 된다. 수온이 8℃정도 되는 아주 차가운 강으로 가끔 해수욕을 즐기는 러시아인들을 볼 수 있다.
강의 입구에 이르면 "샤먼 바위"라고 불리는 유명한 바위가 있다. 오래된 전설을 가진 이 바위는 안가라 강이 예니세이 강으로 흘러들어가기 전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이다.
예전에 바위 위에 죄인을 올려놓고 하루 밤 동안을 그대로 방치한 후, 만약 그 다음날 살아남으면 무죄를 선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유노스찌(Юность, 청춘) 섬
이르쿠츠크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다. 안가라 강에 위치해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