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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원문보기 글쓴이: 가온해
부가티(Bugatti, 1909년) 자동차
프랑스의 최고급 자동차 제조회사. 과거에는 초고성능 경주차에서 최고급 세단까지 각종 최고급 자동차를 생산했으며 현재는 슈퍼카를 전문으로 생산한다.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엔지니어 에토레 부가티가 설립한 자동차 회사. 당시 독보적인 최고급 차량을 생산했지만,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지나치게 비싸고 사치스러운 모델만 생산했기 때문에 몇번이고 망했다가 다른 회사에 팔려 다니곤 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 인수처럼 사원은 그대로 있고 경영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명맥이 끊겼던 것을 상표권만 사와 "부활"시키는 형식이었기에 부가티 매니아 중 일부는 원래의 에토레 부가티가 세운 회사만 부가티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는 폭스바겐 그룹 산하 회사며, 공장에서는 조립만 하고 핵심 부품인 엔진은 독일 폭스바겐 공장에서 제작한 것을 가져다 쓴다.
2014년 12월 17일 네이버캐스트에서 "과잉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부가티의 역사가 지나치게 강력하고 지나치게 고급스럽고 지나치게 비싼 차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참 적절한 제목이라 할수 있다. EB110에 대한 언급이 쏙 빠진 건 아쉽지만, 그럭저럭 역사를 잘 정리해 놨으므로 한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또한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지닌 회사답게, 현재도 클래식 카 경매에서 최고가로 팔리는 차량들이 많다. 일례로, Type 57SC Atlantic이라는 모델은 무려 3000만달러에 팔렸다. 경매 최고가 차량들은 메르세데스-벤츠, 부가티, 페라리, 롤스로이스, 마세라티등의 브랜드가치가 뛰어난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량들인데, 이 중에서도 부가티 클래식카의 가치는 독보적이다. 하지만 57SC Atlantic의 3000만달러를 2012년에 페라리의 1962년형 250 GTO가 3500만 달러로 넘어섰으며, 2014년에 다시 1962년형 250 GTO가 3811만5000달러로 경신했고, 2016년에 1957년 제작된 335S Spider Scaglietti가 3200만유로로 다시 한번 최고가를 경신했다.
반면 57sc의 다른 버전은 2016년에 973만 달러에 팔렸다. 페라리는 오랜 역사와 역사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모델들이 존재하고, 아직까지도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자동차 브랜드이므로 당연히 세계 경매가 최상위권에 많이 랭크 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부가티는 시작은 1909년으로 페라리보다 앞서지만 1940년을 전후로 장남과 설립자의 사망과 세계대전등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하여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데다 그 완벽주의로 인해 판매량이 적어 경매에 상대적으로 덜 나오며, 팬층도 페라리에 비하면 빈약하다.
물론 희소가치가 높아 향후 경매시장에 나올 경우 얼마든지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은 있다.참고로 경매가 아닌 거래로 판매된 자동차 중 가장 비싼 것도 페라리 250 GTO로 폴 파팔라도가 2013년10월에 무려 5200만 달러에 판매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
현재 가장 비싼 클래식카 중 하나인 Type 57 아틀란틱(Atlantic). 에토레의 장남 장 부가티(Jean Bugatti, 1909 - 1939)가 디자인했다. 베이론의 디자인 모티브가 되었다.
1909년 설립된 이후 세계 최고급 자동차들을 생산하던 회사였다. 본사는 알자스 지방의 몰샹(Molsheim)에 위치해 있었다. 모든 차량은 손으로 제작되었으며, 엔진을 제작할때 별도의 밀봉이 필요없을 정도로 각 부품이 완벽히 들어맞을 때까지 일일히 손으로 깎아 모양을 내는 등, 애초에 대량 생산은 기대할 수 없는 체제였다. 그러나 그만큼 차량 하나하나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는 의미이므로, 특유의 뛰어난 마감과 내구성, 그리고 심미성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럭셔리카 회사 중 하나였다.
특히 차의 마감 품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남들이 차축에 스프링을 나사로 박아 대충 고정시킬 때 부가티는 차축에 스프링이 꼭 맞을 만한 크기의 홈을 파 끼워넣었고, 엔진 룸을 열면 엔진 룸 내부와 엔진 블록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었으며, 그 엔진은 다른 차들처럼 무슨 패킹 같은 걸 하지 않고도 오로지 부품 간 단차만으로 기름 한방울 새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제작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실제로 에토레 부가티는 경쟁사 벤틀리의 차들이 견고하긴 한데 마감이 영 좋지 못하다고 달구지에 비유하기까지 한 양반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럭셔리카만 만들던 회사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럭셔리카 사업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레이싱 모델이나 스포츠카 제작에서도 이름이 높았고 모터 스포츠에도 많이 참가했으며 Type 35 단일 모델로만 7년동안 2000번 이상 우승하는 등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실적을 거뒀고, 지금의 폭스바겐 산하 부가티가 그러하듯 세계 최고속의 자동차를 만드는데도 힘을 썼다. 이 중 1939년 르망24시에 출전해 우승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드라이버 이름이 피에르 베이롱(Pierre Veyron)이었다. 당시 부가티의 위치는 현재 시각으로 보자면 페라리의 경주성능에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그리고 현재의 베이론의 속도에 롤스로이스의 품격까지 더한, 말 그대로 독보적인 위치였다.
부가티는 그 엄청난 품질과 성능, 그리고 명성에 걸맞게 가격도 대단히 비쌌으며, 전세계의 왕족과 부유층이 주요 타겟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대를 잘못 골랐던 탓에 하필이면 1차 세계대전, 대공황, 2차 세계대전과 시대가 겹친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당시는 각국에서 군주제가 폐지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판매량은 망했어요.
에토레 부가티의 장남이자 차기 사장감이었던 장 부가티가 1939년에 자동차 시험 주행 도중 사고로 사망하고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공장이 파괴되면서 회사는 걷잡을 수 없이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에토레 부가티가 1947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리더를 잃은 회사는 1952년 파리 모터쇼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치고는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 후 크라이슬러의 엔지니어 버질 엑스너(Virgil Exner)와 장의 동생 롤랑 부가티(Roland Bugatti)를 포함한 몇명이 회사를 다시 살려보고자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 1963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여담으로 창업주 에토레 부가티는 정식으로 엔지니어링에 대해 배운 적 없이 독학과 어깨 너머로 배운 것만으로 이런 사기차를 뽑아내던 천재였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에서도 내로라 하는 공예가 가문 출신이라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조예도 매우 깊었다. 그러나 그는 괴팍하기로는 엔초 페라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격이 특이했는데, 그의 몇몇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참고로 카더라 통신이 아니고 전부 실화다.
• 동물 애호가였던 에토레는 집에 작은 개인 동물원을 두고 있었는데, 특히 개의 혈통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던 그는 시중에 분양되는 개에 만족하지 못해 자신이 직접 개 분양업에 착수했었다.
• 프랑스의 달걀값이 폭등하자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닭을 키워 계란을 얻으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었던 성격 탓에 직접 닭을 키울 이동형 닭장을 제작하고서야 만족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얻는 달걀이 훨씬 더 비쌌다.
• 그는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자신이 정한 배열로 식기를 배열하고서야 밥을 먹었다.
• 부가티의 고객 중 한명이 추운 날씨에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자 그는 자사의 차를 살 정도의 재력이 되는 양반이면 당연히 차고에 난방을 설치할 정도는 돼야하는 것 아니냐며 쏘아붙였다.
• 알바니아의 국왕 조구 1세가 그의 차 중 가장 고급이던 Type 41 르와얄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부가티 본인이 조구 1세의 밥 먹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매를 거절했다고 한다. 참고로 Type 41은 군주제 폐지와 대공황의 여파 때문에 판매부진에 시달려 목표 판매량 25대중 꼴랑 3대만 판매되었다.
• Type 35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불평한 고객이 있었는데, 에토레는 그에게 "나는 달리는 차를 만들지 서는 차를 만들지 않는다"라고 대꾸한 적도 있었다.
• 어느 고객은 기차역에서 부가티 본사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차를 구매하겠다고 했는데, 에토레는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내쫓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타고 온 택시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들어서.(...)
부가티는 당시 세계 최고성능의 자동차로 이름이 높았던 덕에 엔진만 만들어 타사에 납품하기도 했으며 이 중에는 열차와 (성공하진 못했지만) 비행기 전용 엔진까지 있었다. 이후 이 엔진 제작 분야는 스페인의 이스파노 수이자(Hispano-Suiza)에 매각되어 근근히 명맥을 이었다. 이스파노 수이자는 1968년 프랑스의 비행기 제조사인 스네크마에 인수되었으며, 부가티는 현재 스네크마와 같은 사프란(SAFRAN) 그룹 소속이자 비행기 착륙장치를 만드는 회사인 Messier-Bugatti-Dowty라는 회사로 남아있다. 부가티의 원래 공장부지도 현재 이 회사 소유이다. 다만 에토레 부가티의 생가와 그의 개인 실내 과수원 등은 현재 폭스바겐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부가티 쇼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명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룸이라고도 불린다.
EB110. 부가티 고유의 디자인이라기보다는 람보르기니의 느낌이 더 강하게 난다. 람보르기니 디자이너가 만들었으니까(...). 람보르기니의 전매특허인 시저도어까지 달려있다.
1987년에 이탈리아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가 부가티 상표권을 인수해 만든 회사이다. 즉, 원래의 부가티 회사와는 이름 빼고는 별 관계가 없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캄포갈리아노(Campogalliano)에 공장을 짓고,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쿤타치를 디자인한 마르첼로 간디니 등을 영입하여 만들어낸것이 유명한 EB110이다. 이 차는 원래의 부가티 차들이 그러했듯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였다.
한동안은 꽤 성공적으로 회사가 운영되었기에 부가티가 제대로 부활하나 싶었지만, 이번에도 90년대의 세계적 경제 악화와 사장 아르티올리의 무리한 기업 인수로 EB110을 100여대 판매한 채로 1995년 파산해 문을 닫았다. 이때 공장에 남아있던 미완성 EB110들은 독일의 다우어사가 사들여 약간 손을 봐서 "다우어 EB110"이란 이름으로, 2008년 문 닫을때까지 몇 대 판매했다. 회사가 망한 후에 남은 공장은 어느 가구 회사에 팔았는데, 그 가구 회사가 이 공장에 입주하기 직전에 갑자기 폭삭 망해버려서(...) 지금까지 빈 건물로 남아있다.
부가티 팬들은 대체적으로 EB110을 부가티로 취급하지 않는데, 부가티의 정체성인 마감이나 심미성을 갖다 버리고 웬 이탈리아 스포츠카를 뽑아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박한 평가는 EB110의 경매가에 그대로 반영되어, 프랑스에서 제작된 클래식 부가티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한화 수십억원부터 시작하는데반해 EB110은 경매에서 10억원 이상의 가격이 붙는 일이 드물다. 대략 3~4억원 근처에서 거래되며, 그나마 미하엘 슈마허 등의 유명인물이 소유한 기록이 있어야 10억원 근처까지 올라가는 식이다. 베이론의 중고가도 10억원은 무조건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참고로 이때 EB112라는 4인승 세단형 컨셉카도 발표했었다. 디자이너는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말 그대로 컨셉카였기 때문에 단 두대만 생산되었는데, 이중 한대는 행방이 묘연하고 나머지 한대는 모나코에서 가끔 보인다. 비록 컨셉카로 끝나버렸지만, EB112의 디자인은 후에 폭스바겐이 부가티를 인수한 이후 발표한 컨셉카 EB118, EB218, EB18/3 등으로 이어져내려왔으며, 베이론의 디자인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차라고 할수 있다.
1999년에 발표된 컨셉카 18/3 시론(Chiron). 베이론이 레이서 피에르 베이롱의 이름에서 유래했듯이, 이 모델은 레이서 루이 시롱(Louis Chiron)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후 이 이름은 베이론의 후속작에 다시 쓰이게 된다.
이번에는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을 인수한 독일의 초대형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이 1998년 부가티 상표권을 매입함으로써 부가티는 폭스바겐 소속이 되었다. 프랑스에 공장을 다시 짓고 곧바로 같은 해 파리 오토쇼에 컨셉카 EB118을 내놓아 회사 부활을 선언한다. 그리고는 몇년 동안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고 밍기적대고 있다가(...) 200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동차를 하나 내놓았는데 그것이 양산차 사상 최초로 시속 400km를 돌파한 하마이다.
2009년에는 과거 부가티 럭셔리카 특유의 미칠듯한 사치스러움을 그대로 재현한(...) 갈리비에(Galibier)이라는 4인승 컨셉카를 내놓고 2014년 즈음 출시하겠다고 공언하였지만, 새로 부가티의 사장으로 취임한 볼프강 슈라이버(Wolfgang Schreiber)는 "부가티는 스포츠카만 만드는 회사이다"라는, 부가티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의 어이를 날려버리는 말을 하며 이 프로젝트를 그대로 백지화시켰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를 보면 부활의 여지는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같은 폭스바겐 그룹 내의 라인업이 겹치게 되는 문제 등이 있는듯. 이 시기 역시 폭스바겐 자회사인 람보르기니도 세단을 만들다가 포기한 걸 보면 세계금융위기라던가 하는 외적인 요인이 컸던 모양. 사실 폭스바겐 그룹이 만든 대형 세단 중 포르쉐 파나메라나 벤틀리 플라잉스퍼를 제외하면 영 잘 된 모델이 없다. 폭스바겐 페이톤은 처절하게 망했고 아우디 A8은 폭망한 페이톤에게까지 팀킬(...)을 시전당하면서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에 한참 밀리며 현재 폭스바겐 그룹의 기함인 벤틀리 뮬산은 롤스로이스 L410 엔진을 마개조해서 얹고 공장도 과거 롤스로이스 공장인 크루 공장을 쓰는 등 어떻게든 고급이라 홍보하려 애쓰지만 현실은 롤스로이스 고스트 등에 밀린다. 그나마 플라잉스퍼와 파나메라가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서 브랜드 내부에선 효자 모델이긴 하다.
베이론이 상당한 호평이었기 때문에 일견 꽤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또 그놈의 부가티 징크스(...)가 들러붙었는지 불행히도브랜드 런칭 이후로 지금까지 주욱 천문학적인 적자만 보고 있다. 원래 이렇게 소규모로 만들어 극소수에게만 파는 회사는 기본적으로 재정상태가 좋을 수가 없는 게 당연한건데, 부가티는 그 중에서도 특히 심한 케이스. 총 판매량은 450대 한대 팔 때마다 약 460만 유로(한화 약 64억)이라는 정신나간 적자를 기록 중이다. 베이론 한대당 평균 가격은 230만유로이니 100억원은 받았어야 본전치기를 면한다는것. 베이론으로 입은 총 적자는 2조 1천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2014년 들어 판매량이 저조한 모델을 단종시키고 연구개발 인력을 줄여가는 폭스바겐이 부가티만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바로 부가티 인수의 장본인이기도 한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 폭스바겐 이사회 의장 때문이다. 그는 현재까지도 폭스바겐 그룹 내에서 독보적인 힘을 행사중이며, 폭스바겐 신화를 주도한 주역이기 때문에 그의 결정을 섣불리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피에히는 원래부터 부가티 매니아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부가티를 버리자는 결정에 동의할 일은 없을듯 싶고, 따라서 고령이긴 하지만 그가 눈뜨고 살아있는 한 부가티는 계속 폭스바겐의 돈먹는 하마로 존재할 듯하다.
그래도 회사를 이어나가려는 의지는 아직 있는지, 2015년 8월에 대대적으로 홈페이지를 손보면서 게임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용 컨셉카 Vision Gran Turismo를 발표했다.
폭스바겐 그룹이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홍역을 치루면서 판매량이 저조하고 개발비가 많이 드는 라인업은 가차없이 정리될 예정인데, 부가티도 이에 따라 단종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폭스바겐 그룹 측에서 직접 부가티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하며 부가티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와 같은 폭스바겐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개발 중인 베이론의 후속 모델은 201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되었고, 이름은 위의 EB18/3 컨셉카와 동일한 시론(Chiron)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부가티의 차량들은 원래부터 뛰어난 성능과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는데, 이런 부가티의 차들 모두, 심지어 EB110과 폭스바겐 산하 부가티에게도 공통되는 특징 하나는 특유의 동그란 전면 그릴이다.
부가티 베이론
BMW의 콧구멍 모양 그릴을 콩팥 그릴(kidney grilles)이라고 부르듯이 부가티의 이 독특한 그릴을 말발굽 그릴(horseshoe grille)이라고 부른다. 다만 말발굽 모양을 따와서 만들었다는 것은 낭설이고, 실제로는 달걀을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형태"라고 칭송한 에토레의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의 영향을 받아 달걀의 모양을 본따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이 Type 13을 비롯한 초기 부가티 자동차들은 달걀처럼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길쭉한 타원형 그릴을 하고 있었다. 이후 차량의 조항성을 좋게 하기 위해 차체를 낮추면서 타원형 그릴의 아랫부분이 땅에 닿지 않게 평평해졌고, 엔진 양옆에 컴프레서를 달면서 타원형 그릴의 윗부분이 넓어지면서 잘 알려진 말발굽 모습이 되었다.
당시 자동차들은 본넷이 좁고 길었기 때문에 둥근 라디에이터가 아름답게 보였지만, 현재의 자동차들은 본넷이 낮고 넓기 때문에 베이론의 둥근 그릴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인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위의 르와얄 모델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후드 위에 올라가있는 앞발을 치켜든 코끼리 모양의 조각이다. 동그란 라디에이터 그릴과 달리 이 장식은 오직 부가티 클래식카에서만 볼수 있는데, 그나마도 스포츠카나 레이싱 모델에는 달려있지 않고 오로지 럭셔리 세단에만 달려 나왔다. 당시에는 롤스로이스의 유명한 환희의 여신상과 동급이거나 오히려 그 이상의 위상을 지녔지만, 부가티가 도산함에 따라 현재는 부가티 매니아만 아는 정도이다. 베이론의 마지막 한정판인 Les Légendes 라인업을 보면 전부 실내에 이 코끼리 조각이 붙어있는데, 여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생각보다 많이 생산되고 또 많이 팔린 브랜드이기도 하다. 물론 부가티 시론 항목에서 500대 한정 판매로 생산한 차량이 반도 채 팔리지 않았다는 내용을 본다면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차량의 가격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베이론만 하더라도 150만 달러에서 시작되고 시론의 경우엔 아예 300만 달러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가격을 자랑한다. 시론의 경우 슈퍼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람보르기니와 페라리의 엔트리급 차량들 가격의 거의 10배에 가까운, 하이퍼카라는 자칭이 어색하지 않을 만한 몸값이다. 이런 차가 200대가 넘게 팔렸으니 이는 절대로 적게 팔린 숫자라고 보기엔 힘들다. 물론 윗 문단에서 보듯이 베이론만 해도 1대당 60억에 가까운 손해를 보는 정신 나간 수준의 손익율 때문에 많이 팔린 것이 곧 많은 적자를 의미하기는 한다. 그래도 절대적인 판매량을 생각하자면 30억 짜리 차가 200대가 팔렸다는 건 결코 적은 숫자라고 볼 수 없다. 산수적인 계산만 해보아도 우라칸이 비슷한 매출을 내려면 2천대 가까이를 팔아야 한다. 생산량 역시 같이 하이퍼카임을 자부하는 코닉세그가 22년간 130대를 생산한 것에 비해 부가티는 베이론과 시론을 합쳐 근 천대에 가까운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1대당 수십억짜리 차량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생산량이다.
베이론과 시론 모두 4리터 8기통 엔진 두개를 이어 붙인 다음 터보 4개를 꽂은, 8리터 16기통 쿼드러플 터보 엔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을 탑재하고 있기에 차량 자체가 매우 무겁다. 두 차종 모두 아반떼와 비슷한 크기임에도 공차 중량이 약 2톤에 육박하기 때문에 안티들에게 돼지나 하마 소리까지 들을 정도. 그나마 시론은 탄소섬유로 차체를 만들어 무게 증가를 줄였음에도 베이론보다 더 무겁다. 그래도 이 무게 덕분에 주행의 안전성이 높아져 차량의 운전 난이도가 급감하여 운전하기 쉬운 차라는 평가는 빠짐없이 듣는 편이다. 같은 수준의 고성능을 자랑하는 코닉세그의 차량들이 너무 가벼운 차체 때문에 전문 프로 드라이버들이라도 차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운행에 애를 먹는다는 점에 비하면 이는 분명한 특징이다. 그밖에도 무거운 차체가 주는 의외의 장점은 바로 편의 장비의 추가에 부담이 없다는 점. 극도의 경량화를 추구하는 차량이라면 빼버리거나 넣어도 고민할 만한 물건들을 어차피 무거운 부가티의 차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추가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