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야. 식사하러 갑시다."
아내는 입맛이 없다며 선뜻 일어나려 하지 않지만, 나는 재촉하듯 아내를 깨운다. 식당은 숙소에서 나와 언덕길을 50여 미터쯤 올라가면 나온다.
식당에 들어서려면 비닐장갑을 끼고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과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이 함께 이용하는 전용 식당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면 아내와 나는 날씨가 허락하는 한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뒷산 둘레길을 걷는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아내는 수술 후유증으로 체력이 크게 떨어져 멀리 걷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열흘 남짓 지나자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걸음도 차츰 길어졌고, 그동안 가 보지 못했던 산책길에도 발길을 옮길 수 있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회복되어 가는 아내를 보면서 나도 조금씩 안도하기 시작했다.
양평 서종의 깊은 산골에 자리한 명달리.
언제부터인가 이곳에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몸이 아픈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찾아오는 황토 장수마을이 자리 잡았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제법 높직한 산들이 솟아 있으며, 오르막길을 따라 한옥들이 정갈하고 멋스럽게 늘어서 있다.
장작불로 데우는 구들장과 맑은 공기, 신선한 채소를 중심으로 영양을 고루 갖춘 자연식 식단. 이곳의 생활은 몸과 마음을 천천히 추슬러 가기에 알맞아 보였다. 우리가 한 달 간 머물기로 한 곳은 장수 황토마을에 있는 ‘다나헌’이었다.
벌써 삼 년 전의 일이다.
아내가 수술을 받고 퇴원을 앞두었을 때, 나는 뜻밖의 걱정에 부딪혔다. 병원 치료는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당장 아내의 식사부터 걱정이었다. 아직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아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막막했다.
마침 자식들이 모두 문병을 온 날, 나는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희 엄마를 한 달 정도 요양시켰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괜찮은 요양 시설을 한번 알아봐라.”
하루가 지나자 아이들은 좋은 곳을 찾았다며 소식을 전해 왔다. 직접 찾아가 식사도 해 보고 숙소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여러모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의 판단을 믿고 입소하기로 했다. 예약과 수속도 모두 아이들에게 맡겼다.
아내가 아프고 나니 평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식들의 고마움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부모가 자식에게 의지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미안하면서도, 어려운 순간에 기꺼이 힘이 되어 주는 자식들이 있어 든든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멀리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짐을 꾸려 명달리로 향했다. 한 달 동안 두 사람이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350만 원가량이었다. 우리가 머문 곳은 새로 지은 한옥으로, 거실 하나에 방 하나가 딸려 있어 두 사람이 지내기에 넉넉했다.
숙소에서 나와 언덕을 조금 오르면 식당이 나온다. 식사는 뷔페식으로 제공되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물론, 찌개와 국, 흰밥과 잡곡밥까지 갖추어져 있어 한식 뷔페를 떠올리면 된다. 영양을 골고루 고려한 식단이 마음에 들었고, 음식 맛도 집에서 먹는 밥처럼 편안했다. 입맛을 잃었던 아내도 조금씩 식사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조금 더 올라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참나무 숲이 나온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는 완만한 구릉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많은 사람이 오가곤 했다. 아내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우리도 식사 후 운동 삼아 그곳을 찾았다.
천천히 걸으며 숲길을 돌아보는 데 왕복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참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맞으며 나무들이 내뿜는 싱그러운 향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도시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맑은 공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노라면 몸의 무거움이 조금씩 가시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숲은 말없이 우리를 품어 주었다.
하지만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 답답함이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낯선 곳에서 생활한다는 일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아내를 지켜보는 일도 때로는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다행히 입소한 지 일주일쯤 지나자 아내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인근으로 드라이브를 나가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문호리부터 다녀왔다. 몸에 무리가 없는지 살펴 가며 조금씩 거리를 늘려 서종리에도 가 보았고, 나중에는 정배리를 지나 양평읍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길을 다니다 보니 예전에 친목회 사람들과 찾았던 곳이 바로 이웃 동네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 여름날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치며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추억이 뜻밖의 장소에서 되살아나니 반가웠다. 아내와 나는 여기저기 드라이브를 즐기고, 맛집에 들러 점심을 먹으며 하루의 작은 즐거움을 누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딸기나 사과 같은 과일을 사 오기도 하고, 소고기를 조금씩 사다 간식처럼 구워 먹기도 했다. 특히 서종리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몇 번 사 왔던 살치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프라이팬에 살짝 익혀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그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군침이 돌 정도다. 몸을 회복하러 온 곳에서 이런 소소한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었으니, 그 또한 한 달 살이의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문병을 온 친지들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맑은 공기를 보고는 하나같이 잘 왔다고 했다. 좋은 곳에서 푹 쉬며 몸을 추스르라며 우리를 격려했다. 그들의 따뜻한 말도 아내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였다. 처음에는 식당까지 오르는 짧은 언덕길조차 버거웠던 아내가 산책을 하고 드라이브를 즐길 만큼 기운을 되찾았다. 한 달의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의 막막함을 떠올리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삼 년이 흘렀다.
이제 아내는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우리는 함께 운동도 하고 외식도 즐기며, 목포와 부산처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이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때의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명달리에서 보낸 한 달은 이제 아득한 기억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서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함께 생활하던 환우들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서로 이름을 깊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마음으로 건강을 바라던 사람들이었다. 부디 모두 건강을 되찾아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갔기를 바란다.
명달리로 가는 길은 강원도 미시령 고갯길을 떠올리게 할 만큼 구불구불했다. 몇 굽이의 산길을 돌아서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던 날, 우리에게는 막막한 걱정이 앞서 있었다. 아내의 건강이 언제쯤 나아질지,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 년이 지난 지금, 그곳은 걱정만으로 기억되는 곳이 아니다. 맑은 공기와 참나무 숲, 따뜻한 밥상, 함께 걷던 산책길, 그리고 조금씩 기운을 되찾던 아내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자식들의 마음과, 평범한 하루를 다시 누릴 수 있게 된 감사함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명달리에서의 한 달은 단순한 요양 생활이 아니었다.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배우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명달리에서 보낸 한 달은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그곳에서 우리가 회복한 것은 아내의 몸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함께 밥을 먹고,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평범한 행복을 잊고 살았던 내 마음도 그곳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명달리의 한 달은 내 인생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을 되찾는 기쁨을 넘어,
오늘도 아내와 함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선물인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첫댓글 형수님이 많이 아프셨는데 선배님의 극진한 간호로 회복되셨네요. 명달리, 문호리, 정배리 제가 양평 근무할 때 들었던 지명이라 글의 친근감이 가깝게 다가오네요.
건강할 때 건강은 지켜야겠어요. 명달리의 추억이 깊게 남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