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인근인 3가와 라치몬드에 가면 작은 휴식공간이 있다. 가끔 갈 때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는 걸 느낀다.
얼마전 저녁때 차를 마시러 갔는데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우리 한인들은 좋은 곳은 잘 찾아다닌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타운 주변은 물론 외곽에 이르기 까지 요즘은 한인이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학군이 좋다면 맹모삼천지교의 투철한 교육열기로 가득한 한인 학부모들은 못하는 영어에도 불구하고 백인과 유대인이 북적 거리는 곳에 잘도 뚫고 들어간다. 지난달 굉장히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바로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는 판결이었다.
어퍼머티브액션은 쉽게 말하자면 대학, 대학원 입학과 정부 수주공사등에서 소수계에게 기회를 주는 법이다. 만들어질 당시엔 흑인들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것이었다.
그들을 고향에서 강제로 납치해와 노예로 부려먹고 해방을 시켜준 뒤에도 제대로 인간대접을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백인사회의 양심에 대한 가책 그리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차원에서 당시 진보적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태어난 것이 바로 어퍼머티브 액션이다.
물론 가열찬 흑인사회의 민권운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법이다. 여기에 덩달아 혜택을 보게된 것이 히스패닉, 여성, 아시아계등 소위 말하는 소수계다.
이런 어퍼머티브 액션도 세월이 흐르면서 보수 백인사회의 역차별론에 직면한다. 소수계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다보니 자격 조건이 넘치는 백인들이 피해를 입는다며 어퍼머티브 액션의 폐지 운동이 보수백인들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지난 6월말에 있었던 대법원 케이스도 이의 연장선상으로 보면 된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지난 1978년 한번 대법원의 심사를 받은 바 있다(Bakke v. UC Regents). 당시 대법원은 할당량을 정해놓고 소수계를 입학시키는 쿼터제는 위헌이지만 어퍼머티브 액션 자체는 합헌이라는 약간 아리송한 판결을 내리고 넘어갔다.
25년만에 다시 도전을 받은 어퍼머티브 액션. 특히 이번 대법원 케이스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25년전과 달리 대법원의 보수화가 두드러져 어퍼머티브 액션의 위헌 판결까지도 점쳐졌기 때문이다. 대법관 9명중 대법원장을 포함한 5명의 판사는 2001년 부시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보수론자들이다.
이번 케이스가 더욱 흥미를 끈 것은 미시건 대학과 미시건 법대를 상대로 소송, 어퍼머티브 액션의 반대편에 선 두명의 원고가 백인 여성이었다는 것. 사실 백인 여성만큼 어퍼머티브 액션의 수혜를 본 그룹은 없을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어퍼머티브 액션은 이번에도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대법원은 미시건법대의 입학 프로그램은 합헌, 미시건 대학은 위헌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판결속에 어퍼머티브 액션을 존속시켜줬다.
어퍼머티브 액션 찬반 양쪽 모두 승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론 찬성쪽이 어정쩡하게 승리한 것으로 보면된다.
이 어정쩡한 승리 공신은 다름아닌 샌드라 오코너였다. 강경보수인 오코너가 예상을 깨고 미시건 법대 쪽에 손을 들어준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백인여성인 오코너는 바로 어퍼머티브 액션 덕에 대법관이 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레이건대통령이 오코너를 임명하기까지 미대법원 2백년 역사에 여성 대법관은 전무했다. 날로 커지는 우먼파워를 인식한 레이건대통령이 용기( )를 내고 오코너 변호사를 임명한 것이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놓고 어퍼머티브 액션이 한인 학생들에겐 불리하다는 인식이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이는 굉장히 근시안적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 한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은 모두 흑인들이 중심이 된 민권투쟁에서 얻어진 열매의 결실이다.
어퍼머티브액션 때문에 능력이 뛰어난 한인학생이 뒤처지는 흑인학생에게 입학 기회를 뺏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한인학생들도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준 흑인사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양보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아직도 인종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사회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이 존재해야만하는 이유는 실용성을 넘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