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2년 2월 12일 욥기 11장 찬송가 485장(새찬송가 366장)
0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0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0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04.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0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06.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0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0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09.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15.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18.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할지며 두루 살펴 보고 안전히 쉬리니
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리리라
20.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
“소발의 1차 변론”
이제 마지막 변론자로 소발이 나섭니다. 엘리바스가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면(4:2), 빌닷은 욥에게 약간 거친 태도를 취했습니다(8:2). 그러나 소발은 무자비하게 그를 공격하며 매우 거친 말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는 성격이 가장 성급하며 열렬한 것으로 보이며,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의 신지식(神知識)을 가지고 욥을 공격합니다. 그는 자기가 견지하고 있는 주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고집스러운 사람임이 그의 언사에서 배어나오고 있습니다. 엘리바스가 자기의 신비적 체험에 근거하여 말하고, 빌닷이 전통, 논리 등에 근거하여 욥에게 말하였다면, 소발은 맹목적인 감정으로 욥에게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욥을 비난하는 소발(1-4절)
【1-4절】지금의 고난을 받을 만큼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욥의 태도는 나아마 사람 소발을 자극하여 또 다른 논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믿겠느냐?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라며 욥을 거세게 비난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소발의 변론은 다분히 감정적이며 무례하고 독선적입니다. 그는 욥이 지금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가 확실하며, 그래도 그의 죄의 크기에 비하면 경한 것인데도 욥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무지한 말을 많이 하고 있다고 인신공격을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는 소발(7-12절)
【5-10절】소발은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열거하고 찬양함으로써 다시 한 번 간접적으로 욥의 항변을 묵살하고 있습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의 오묘는 하늘보다 높고 음부보다 깊으시며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십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하나님의 섭리를 측량할 수도 없고 전능자를 결코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소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찬양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오류는 하나님의 진정한 섭리를 알지 못하고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하나님의 특성에 비추어 기계적이며 독선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한 데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가 오묘하다고 설명하며 찬양하고 있으나, 사실은 지금 현재 욥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야말로 그런 오묘한 지혜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는 그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도무지 알지 못하면서도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를 배우라고 충고하고 있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11-12절】소발은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깨달음이 없는 욥을 ‘허망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머리가 빈 사람’, 즉 ‘바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를 들나귀에 비유하는데, 동물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이 바로 나귀입니다. 소발은 욥에게 직접적인 욕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소발은 ‘최악의 위로자’입니다.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소발(13-20절)
【13-19절】단순한 흑백논리를 가진 소발은 욥에게 거듭 회개를 촉구하며 회개한 뒤에 누릴 복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13-1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면 우리는 곧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리는 성령의 평화와 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발의 논리는 전혀 오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모든 문제가 그렇게 흑백을 가리는 단순한 논리로 이해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삶의 고난의 문제는 우리에게 보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신앙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20절】소발은 마지막으로 악인의 비참한 최후를 묘사함으로써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5-19절에 묘사된 회개한 자의 형통과 대조를 이룹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소발은 욥을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1-12절)
2. 소발이 보기에 욥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14절)
◈오늘의 기도◈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임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고전 13:4-5)
◈믿음의 글◈ “하나님은 없다?”
고집이 센 데다 더없이 교만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즐겨하는 일이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GOD IS NOWHERE!(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다)”라는 자신의 주장을 지껄이는 일이었습니다. 하얀 종이를 보면 거기에 또 “GOD IS NOWHERE!”를 갈겨쓰곤 했습니다. 그 짓을 평생 동안 계속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정한 이웃이나 친구가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늙은이가 된 그는 마침내 자신의 외로운 생애를 마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텅 빈 방에 홀로 누워 죽음을 기다리다가 문득 자기가 아직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정신이 가물거렸지만 평생 동안 수천 번도 더 익숙하게 써 왔던 글귀이기에 겨우 그것을 써서 유언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동네 사람들이 그의 주검과 한 장의 종이를 발견하고는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GOD IS NOW HERE!(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십니다)”
- 이만재, ‘막 쪄낸 찐빵’ 중에서
첫댓글 작년 한해동안 이 카페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NOWHERW의 철자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NOWHERE로 정정해 주심이~~
틀린 것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세요!!!
@boaskorea 아직 안 고치셨네요^^
자기직관적이고,무례한소발의말이,욥에겐얼마나상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