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2년 6월 18일 이사야서 50장 찬송가 505장(새찬송가 452장)
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0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
0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0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0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0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09.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11.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세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
본 장에는 세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나옵니다. 이 세 번째 종의 노래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는 동시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장차 오실 여호와의 종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자기의 사명을 이루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여호와의 종에게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승리를 주시며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여호와의 종과 같은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라는 것이 본 장의 예언이 의도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항변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1-3절)
【1-3절】이 부분은 전 장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탄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호소(49:14)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하는 불평을 갖고 있었던 것인데,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포로된 것이 그들 자신에게 책임 소재가 있음을 일깨우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 어미’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녀로, 이스라엘 민족(나라)을 그들의 어머니로 비유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것은 혼인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즉 백성들의 어미에게 이혼장이 없다는 것은 부정한 일, 즉 영적 간음인 우상숭배를 했기에 집에서 쫓겨난 것임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간음의 연고 없이 이혼을 당한 여자들은 그 증거로 남편으로부터 이혼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신 24:1-4; 마 5:32).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노예로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들의 죄값으로 스스로 팔린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그들에게 찾아와 권면하고 타일렀어도 그들이 듣지 않았기에 이런 징벌을 받게 되었음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능력이 없어서 그들을 구원해 내시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면서, 출애굽 때 홍해 바다와 요단 강물을 말리우시고 애굽에 흑암의 재앙을 내리시면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던 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십니다.
세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4-9절)
【4-5절】제 1,2 종의 노래가 주로 종의 소명과 영광, 승리와 왕국의 건설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면, 제 3,4 종의 노래는 주로 종의 고난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세 번째 종의 노래에서는 여호와의 종, 즉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는 중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자기의 사명 수행을 위하여 뒤로 물러나지 않는 담대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학자’(림무드)란 말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자”, 즉 제자를 의미합니다. 결국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치심을 받은 대로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시는 사역을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또 그 여호와의 종의 사역은 죄의 세력에 짓눌려 고통 받는 곤궁한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눅 4:18 참고). 그리고“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물러가지도 아니하였다”는 말은 예수님의 사역이 항상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음과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을 묘사한 말입니다(요 5:30; 8:28).
【6-7절】본 절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고난에 대한 예언으로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로마 병정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하며 고난당할 것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은 그 고난이 구속 사역을 위해 필요한 일임을 알고 피하지 않을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그처럼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다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의 겸손한 성품을 예시합니다(요 5:30). 그러나 또한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이란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코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담대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8-9절】여호와의 종은 고난 끝에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죄가 있어서 죽었다고 생각하거나, 그가 하는 사역에 대해서 대적하는 자들은 마치 옷에 좀이 먹어 다 헤어지듯 소멸되고 말 것임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는 신앙의 권면(10-11절)
【10-11절】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고, 여호와의 종이 백성들에게 하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면 여호와의 종은 백성들에게 흑암 중에 있을 때, 즉 환난이나 재앙에 처해 있을 때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자신을 본받아 신실한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란 인간적인 방법이나 계교를 통해서 곤경을 벗어나려고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흑암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은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불’을 가지고 스스로 흑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들은 마치 그 불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자멸하고 말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의인들, 즉 남은 자들에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빛을 구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호와의 종, 즉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고난당하는 의인들과 남은 자들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1-2절의 내용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어떤 것이었다고 생각됩니까?
2. 여호와의 종은 자기의 승리가 어떻게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학자의 귀와 혀를 주셔서 항상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하소서!”
◈믿음의 글◈ “들을 수 있는 귀”
사람들은 들어줄 귀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들어줄 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할 때에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더 이상 귀를 기울여 듣지 못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를 닫아 버릴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내로써 이웃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자들은 지금 이웃에게 웅변을 토한다 해도 빗나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웃에게 말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도 말입니다.
- 본 회퍼, “성도의 공동 생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