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알렌의 워크북 친구 293과
두려움은 모두 지나갔고,
사랑만이 여기에 있다.
All fear is past,
and only love is here.
실습 설명
워크북 파트 II 실습 설명을 읽으세요.
이것을 짧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읽기: 레슨의 해설 문단을 천천히,
나의 이야기처럼.
◉ 기도: 레슨의 기도문대로 기도하기.
여러 번 할 것을 권합니다.
◉ 아침과 저녁: 그 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열린 마음 명상(Open Mind Meditation )을 하세요.
◉ 매시간 기억하기: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열린 마음 명상을 하세요.
◉ 자주 상기하기: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잠시 명상을 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세요.
◉ 유혹에 대응하기: 마음이 상할 때마다 그날의 아이디어를 반복하여 평화를 회복하세요.
◉ “워크북 특별 주제”읽기: 하루에 한 번, 그날에 해당되는 워크북 특별 주제를 천천히 읽으세요.
실습 제안:
아래의 실습은 두려움이
당신의 과거 실수에 의해 일어난다는
오늘 레슨의 가르침에 근거하였습니다.
과거의 실수가
당신의 기억에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처벌이 진행되고 있음을,
당신이 그 처벌을
두려워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런 과거의 실수는
사라졌습니다.
눈을 열어 현재를 보면
당신은 오직 사랑만이
여기에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연습을 위해
당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
당신에게 걱정이나
불안을 일으키는 것,
당신이 피하고 싶은 것
몇 개를 찾아내세요.
각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세요:
나의 과거의 실수는
사라졌기에,
두려움은 지나갔다.
그리고 오직
사랑만이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신이
여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해설
저는 두려움은
미래와 관련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레슨은
“두려움은 모두 사라졌다.”
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경험하는
모든 두려움이 끝났다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레슨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두려움 자체가
과거에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과거로부터 오며,
오직 과거에 있습니다.
“내 과거의 모든 실수들이
세상을 짓누르고”(1:3)
과거가
나에게 실재할 때만,
나는 두려워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과거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가
실수와 죄책감 있는 일들로
채워져 있을 때,
그리고 내가
그런 과거를
실재로 여길 때,
이것은 미래에 대한
나의 현재의 두려움을
발생시킵니다.
두려움의 근원은 바로,
과거를
현재에 실재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기적수업은 우리에게
‘네가 기억하는 과거는
결코 있었던 적이 없다.“
(T,14:38)라고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
”내가
과거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어난 적이 없다.
그것들은 실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과거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게 더 쉬울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더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것은 도움이 되는
중간 단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우리 기억이
최소한 왜곡되어 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각각의 사람은
그의 개인적인 과거에서 온
등장인물들로
그의 세상을 가득 채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 사적인 세상들은
서로 너무도 다르다.
그러나
각 사람이 보는 인물들은
결코 실재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인물들은
오직 형제들에 대한
그의 반응을 가지고
지어내진 것이며,
그에 대한 형제들의 반응은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T,12:34)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상상하는 과거는
죄의식과 공격을 일으키는
원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해진 잘못들,
우리가 한 잘못들을 기억합니다.
그런 지각은 반드시
전환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의 판단을
받아들인다면
죄의식을 지각하는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용서는 일종의
<선택적인 기억하기>입니다.
우리는 과거와
과거 안의 모든 것을
사랑이나 사랑의 요청으로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과도기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과거가 실재한다고
(혹은 실재했다고) 믿고 있지만,
과거를 다르게 보기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진리는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유희>일 뿐입니다.
이것을 물리적인 현상으로
비유를 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바다의 파도가 존재할까요?
하나의 파도가 존재할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아닙니다.
바다와 분리된
파도 하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파도라고 부르는 것은
물에 가해진 물리적 에너지의
작용일 뿐입니다.
물, 바다가
(이 물질 평면에서)
실재하는 것이며
파도는 한 순간 왔다가
다음 순간 사라집니다.
이 순간에는
이런 물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다음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물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도는 그 자체로
다른 모든 것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우주 전체가
단지 전체 마음(Entire Mind)의
하나의 파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미에서
과거의 어느 것도
실재가 아닙니다.
과거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파도입니다.
과거의 파도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과거의 파도가 지나간 곳은
이제 조용하고 고요하며,
파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파도는 바다를
바꾸지 않습니다.
과거가
최소한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이것을
다른 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일어난 적이 없어.
죄에 대해
책임을 질만한 것은
실재가 아니었어.”
라는 식의 형태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단순한 형태는
결국 완전한 형태로
이끌어줄 것이므로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지각할 때
찾아야 할 것은
두려움 뒤에 있는,
숨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있는
과거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직
과거만이 나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어린 아이들이 종종
두려움이 없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은
두려움을 일으킬만한
과거의 끔찍한 일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두려움을 느낄 때 나는
두려움은 과거에 대한
나의 지각에
의존함을 기억하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일어난 적이 없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 확언하겠습니다.
현재에 대한 나의 고려에서
의식적으로
과거를 제외하기로 선택할 때,
“현재 안에서, 사랑은
명백히 드러나 있으며
사랑의 결과도 분명합니다.
(1:4)
과거의 끊임없는 부담,
들춰지는 두려운 기억은
이런 사랑의 현존을
나의 지각으로부터 가로막습니다.
우리의 배움이란 단지
과거에 대한 아이디어가
집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은 무(無)입니다.
우리는
<탈학습>하기 시작하며,
의식적으로
과거가 우리에게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참된 지각>을 발견하고
마침내 <앎>을 발견합니다.
과거에서 온
두려움 없이 보는 세상이
바로 실재 세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레슨에서
우리가 오늘 보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세상입니다.
모든 두려움의 소리 밑에
그 세상은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성령의 자각은
우리가 실재위에 씌워놓은
두려움의 얇은 껍질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자각을 공유할 때
우리는 과거는 사라졌음을 깨닫고,
“사랑이
명백히 드러나 있는”
현재에 있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오늘 제 눈앞에서
실재 세상만을 보려 합니다.“
(2:4) 라는
기도에 동참하겠습니다.
원문 출처:
http://www.circleofa.org/library/acim-commentary/workbook-companion/lesson-293/
ㅡ 기적수업ㆍ공부모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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