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길은정은 이미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이란 여명선고를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무대위의 그녀는 평상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내내 밝고 환한 미소를 띠었습니다.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긴 했지만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서서 부르겠다고 고집하기도 했습니다.
혼신을 다한 그녀의 아름다운 무대는 이틀후인 21일 방송에서 볼 수 있는데요. 녹화장 방청석의 팬들 처럼 시청자들도 그저 안타까움으로 지켜볼 수 밖엔 없겠지요.
◇ 길은정은 '열린음악회'에서 휠채어에 탄 채 노래를 불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
그리고 자신의 홈페이지의 '화려한 시작'이라는 일기를 통해 "어제 가족과 함께 내 자리를 맘에 드는 곳으로 예약하고 돌아왔다"고 담담히 심경을 밝혀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가까이서 그녀를 지켜본 지인들은 남은 시간을 차분히 정리하는 모습에서 경외로움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엔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두는 분들이 꽤 많은데요. 인터넷에 유언작성 서비스를 하는 곳까지 생겼습니다. 불확실성 시대를 살면서 조금이라도 가치있는 삶을 영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요.
알고보니 길은정 뿐만 아니라 개그맨 이홍렬과 탤런트 박원숙도 그곳에 납골묘를 예약했더군요. 아내와 함께 사후 안식처를 마련한 이홍렬은 곧 일산의 한 교회에 묻혀있는 부모님까지 이곳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원숙은 작년 11월 비운의 사고로 숨진 아들 곁에 자리를 예약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되돌아게 마련이지요. 세상에 머무는 시간의 길이가 행복의 척도는 아닙니다. 길든 짧든 스스로에게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 인생이 아닐까요.
◇ 지난 16일 고 서재호의 생일날 팬클럽 회원들이 그의 스물 네번째 생일식을 가졌다. |
자유로 청아공원은 기자도 두어번 다녀온 인연이 있습니다. 지난 여름 개그우먼 고(故) 윤혜영을 기리기 위한 KBS 희극인실 동료들과의 동행이었지요. 개그맨들은 그녀가 복막염 수술후 사망한 지 한달만에야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찾아가 오열했습니다.
맞은편에는 폐암과 교통사고로 숨진 탤런트 이미경과 개그맨 양종철의 위패가 안치돼 있어 슬픔을 더했는데요. 며칠전엔 불의의 사고로 팬곁을 떠난 가수 고(故) 서재호의 스물 네번째 생일(16일)을 기리는 생일식이 추모관에서 열려 그를 아끼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줬습니다.
그곳엔 동료들 곁에 마음이나마 머물겠다는 흔적도 많습니다. 양종철이 떠나던 2001년 11월 이상운 조정현 엄용수 황기순 양원경 김흥국 방실이 김상배 최진희 서원섭 등이 화장서약을 했고, 지난해 5월엔 이경실 홍석천 박준규 김동우 이홍렬 박미선 송은이 현진영 이봉원 김정렬 표인봉 백지영 등이 참여했지요.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다 똑같을 겁니다. 지워질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가슴깊이 간직하는 것이지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채 음반을 내고 방송진행에 불꽃을 피우고 있는 길은정의 모습은 애처롭지만 아름답습니다.
'나 떠나도 멀리가도/ 눈물 흘리지 마요/ 하늘보고 나를 보고/ 이 노래를 불러요' 그녀가 직접 쓴 노랫말처럼 많은 세월이 흘러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조차 모두 떠난 뒤에라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오래 오래 남겨지길 희망합니다.< eel@>
< 취재후기> 길은정이 자신의 납골묘를 직접 예약했다는 얘기를 듣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아는 분의 부모가 경기도 어느 양지바른 곳에 당신들의 가묘를 미리 마련해놓고 틈틈이 찾아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과는 한참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어차피 한번은 떠나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동안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고 합니다. 적어도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경기도 일산 외곽에 있는 자유로 청아공원은 세상을 먼저 떠나간 연예인들이 꽤 많이 안장돼 있습니다. 제가 그곳을 처음 알게 된건 3년전 개그맨 고 양종철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인데요. 많은 동료개그맨들이 그곳을 방문해 양종철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었지요.
올여름 개그우먼 고 윤혜영이 그곳에 묻히면서 다시한번 다녀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참 많은 연예인들이 그곳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개그우먼 김미화(부) 황기순(형수), 탤런트 유호정(모) 박원숙(아들), 가수 현진영(부) 백지영(숙부) 장재남(처) 등이 있습니다. 또 양종철의 영정이 있는 바로 부근에는 개그맨들과 동고동락했던 MBC 예능국의 고(故) 심승근 PD가 있습니다. 원로가수 원방현과 폐암으로 영원히 브라운관을 떠난 탤런트 이미경도 잠들어 있습니다. 처음엔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는데요. 알고보니 연예인들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김영복 대표의 숨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여자분인데요. 성격이 남자못지 않게 대범하고 소탈해 연예인들과도 친분이 돈독합니다.
얘길 하다보니 좀 빗나갔네요. 개그맨 이홍렬이나 탤런트 박원숙이 훗날에 세상을 모두 떠났을때 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도 그래서 이해가 갈만했습니다. 길은정이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 화장유언 서약식을 하고 사후 자신이 묻힐 곳을 직접 선정하는 그 마음을 생각하며 눈물이 난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전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삶을 마무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위로해준다고 믿으니까요. 누구에게나 딱 한번 주어진 삶을 살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뒤 떠나는 날까지 차분히 정리하면서 사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