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부터 6월까지의 북경은 유사 이래 최대의 격변이었습니다. 지금 모두들 당시 상황을 다 잊은 듯하지만 필자가 중국에서 일한 10년 동안 중에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때에 쓴 글인데 지금 보니 새로운 생각이 들어 옮겨 봅니다. 아마도 그 어려운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북경 정착이 이루어진게 아닌가 합니다.
북경의 늦은 새 소식을 전합니다.
안녕 하시지요?
매일 하는 인사가 이제는 새롭습니다.
저와 가족은 지난 해 9년 동안이나 일하던 정든 과학기술대학을 떠나
저는 지난 주 새집으로 이사를 마쳤구요
이번에 아들이 진학한 대학이 있는 곳 북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두 딸도 이곳 북경에 있는 한족중학교와 한국초등학교로 전학 했구요
아주 좋아들 하지요 도시로 왔다구..^_^ 맥도날드로 있고 켄터키프라이치킨점도 있다고...
아직 아이들은 2주간 사스 때문에 더 연장 휴교이고
제가 강의하는 북경건축대학도 2주간 더 연장 휴교로 결정을 했답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가족과 오붓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저는 작년가을부터 1년간 북경 청화대학 건축과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일을 해 왔는데
북경건축대학 건축과 연결이 되어 이곳에서 초빙교수로 올해 3월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이 학은 5년제로 북경시립이고 50여년 된 학교입니다.
주로 북경에 호구를 둔 학생들이고 대부분 졸업 후에도 북경에서 남아서 일하구요..
일주일에 학부생 설계과목 6시간 대학원생 4시간을 맡아 가르치는데
처음이라 아주 힘들게 버티고(?)있습니다.
다행히(?) 사스로 휴교하는 바람에 좀 여유를 갖게 되네요.
덕분에 이사한 집도 정리하고 한어도 공부하고...
항상 어디에 있던지 이곳을 기억하시길 바라면서.
계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리오며 이곳의 소식을 전합니다.
여기 북경은 괜찮은 듯 싶더니..
여전히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차라리 이곳의 상황은 최악을 치닫고 있는 느낌이구요
우리 가족이 북경에 온 지도 벌써 5개월이 되었네요
이제 이곳 학교에서도
완전히 외출을 금지하고 교문을 닫아
안에 있는 학생들은 밖에 나오지 못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제 아들 희석이도 현재 인민대학 기숙사에만 있는데 물론 한국 유학생은 논문을 앞둔 대학원생 몇을 빼면 90%이상이 출국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북경건축대학에서도
매일 가족의 체온을 측정해서 건강상황을 첵크해서 보고하라고 합니다.
아이들도 아직 집에서만 있는 상태입니다
중국 TV뉴스에 촉각을 세우고는 있지만...
온통 사스와의 전쟁에 관한 내용에
영웅적인 간호사나 의료진의 얘기...판에 박힌 기자회견...
북경은 거대한 병동이 된 느낌이에요..
모두들 마스크에... 모든 건물의 출입을 통제하니까요.
사무실의 엘리베이터 버튼에도 비닐로 버튼을 가리고 시감마다 교체한답니다.
택시는 소독한차가 아니면 못 다니고요..
물론 악습이던 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어 졌네요...
길거리에 공중전화도 시간마다 소독하는 광경은 정말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이 실감납니다.
이솝 우화가 생각납니다.
거센 바람도 폭풍우도 눈보라도 농부의 옷을 벗기지 못했지만
따뜻한 햇빛이 옷을 자연스레 벗게 만들었지요.
이곳 북경은 중국의 수도이자 심장입니다.
천안문도 있고 만리장성도 있지만.
부유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가난한 이들도 많이 있답니다.
제가 사는 이곳도 한 달에 100위엔-150위엔/월 하는 지하1-2층집들이 많이 있지요.
거의 지한 카타곰 같이 미로 연결되어 있고
1인당 0.7평정도의 공간에 살고 있지요.
북경에 처음 정착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곳에 살고 있는지를 이번에 알았어요.
일단 우리 집에 건축과 졸업생은 묵고있어요
이미 모든 지하실이 폐쇄되어서요..
천안문은 탱크로 막을 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고
박테리아보다 작은 이번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막을 수가 없나봅니다.
천안문을 탱크로 막았는데...
바이러스가 천안문을 여는 건가 봅니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인 태양 빛으로 중국의 옷을 벗기시나봅니다.
지금의 이곳 북경은 주변 한국 사람은 거의 다나가서..
주택단지는 텅 비어 있습니다.
곳곳이 격리 지역으로 폐쇄되거나 격리되어 있습니다.
조기유학생이나 교환 학생들은 이미 다 한국으로 돌아 나갔고...
대학원생들 일부만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투명성과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의 발표보다는 소문에 더 의지하며
상가에서 사재기를 하고.
병이 걸리면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립니다.
감기라도 잡히면 끌려가서 격리 수용되고 아무도 만날 수 없고
강제로 진짜 사스 환자들과 있게 되어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번 사스 사건을 계기로 투명성이 그리 중요한지를
그리고 서민들의 배려하지 않는 경제성장의 한계를 알게 되었겠지요.
진정한 힘은 인민을 고려한 정치와 투명함, 도덕성에서 나오는 거지요
그리고 가난한자들의 배려가 없이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에게 자기들의 숙소(지하실)를
강제로 떠나게 하고 일터를 없애면
그들이 무얼 하고 어디로 가나요.
아무리 마스크 없이는 출입금지고..
관공서는 체온제고 통과시키고..
모든 물건을 소독하느라 난리를 펴도
진짜로 가난한 이들은 일당10-20위엔인 사람들은 어찌하지요.
배고파죽으나 맞아 죽으나 아파 죽으나 마찬가지지요.
북경에서만 환자가 하루에 80-10000명씩 불어나
어제까지 격리된 사람이 20000명이 넘었고
오늘도 85명이 발 병했다고 하고..
사망자도 100명이 넘었다고 보도 하네요..
발표상으로는요.....
북경은 환자증가수가 매일매일 좀처럼 줄지 않아요
북경의 주요도로는 폐쇄되고
북경에서 오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1주일씩 격리한다고 알려지고 있구요.
사망자도 북경이 이미 130명을 넘었다고 하구요
남부의 광주와 홍콩은 진정기미를 보이지만 이곳 북경은
점점 가속화되어 불어나고 있는 상태지요.
탈 북경의 럿쉬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경은 지금 난리입니다.
대재난으로 인한 패닉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전쟁터라고 할까요... 모든 문마다 지키고 통행증이 없으면 못 들어가요.
그나마 사스에 노출된 가난한 이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무방비 상태 입니다.
이들이 대한 조치가 없는 한 지금의 상태는
인위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입니다.
이제 날씨가 더워지면 진정이 된다니까.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지요.
저는 오늘은 데리고 있던 졸업생 두 명을 안전한 해변가 도시인 청도 지역으로 보내느라
북경순이 공항에 다녀왔는데 그 큰 북경공항이 국내외선
전체에서 한 개의 문만 열고있는 상태이고 공항이 마치 문닫은 상점 같이 조용...
더욱이 입구에서부터 체온 검사하고 비행기표가 없으면 그나마 출입금지에요
할 수없이 입구에서 전송했지요.
하지만 이곳 공항에서 미리 검사를 받으면 다른 곳에 이동하는 것은 아직 괜 찮습니다
어제는 북경 교외의 하북성에 다녀왔는데
가는 길목마다 차에서모두 내려서 체온검사에다 신체검사를 세번이나 하고
차량 내 외부 소독을 네 차래나 받았답니다.
그리고 가다보면 중간중간에 계속 검사하고 또 소독하고...
북경은 거대한 병동인듯싶어요
마스크 쓴 사람들...
어디를 가나 통제된 환경
진동하는 소독약냄새...
어딜 가나 북경 사람들은 격리의 대상입니다.
올림픽도 세계무역박람회도 이제 바이러스로 치명타를 입게 되구
북경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 여자축구선수권 대회도 물건너 갔지요.
추락한 중국의 자존심은 바닥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는 상태라고 할까요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을 추락시키더니
이제 중국을 쓰시려나 봐요.
도저히 그냥은 쓸 수 없고 고쳐야하니까.
그분을 기대합니다
이제는 모두 마스크에 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이 보이지 않네요.
그 많던 사우나 안마실 노래방 호텔은 모두 휴업이구요..
문화, 경제, 사회는 계속 변해 가지만 투명하지 못한 정치와
천민 자본주의, 폐쇄적인 종교정책이 이제 한계에 부딪히나봅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을 목도할 따름 입니다.
그분의 역사를 바라볼 시간입니다.
어째든
좀 두고 봐야 지요
밖에 다닐 수 없어서 없이 집에만 있으니
학교에 강의 부담도 없고
오랜만에 가족과 좋은 시간을 갖으니 아주 편안한데...
아이들은 아주 답답한 지경입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곳의 출입을 삼가고 매일
가족의 체온과 건강상황을 보고하라고 하니.
가능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국도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외국인 전문가는 보호 1순위라나요..^^
새 학교에서는 전문가 증도 나오고 3월달 봉급도 비록 많지는 않지만 받았어요..
3000위엔(한화 45만원정도)
어째든 5월 말까지 이곳에서 사태를 지켜본 후에 움직일 작정입니다.
아이들을 계속 집안에만 있게 할 수 없어서...
어제는 주일이라서 같이 모임에 다녀왔어요
모든 예배는 금지되었는데 그중 한 곳 북경 한인교회만 모이고 있어요
일단 남은 사람들끼리 격리된 곳에 보낼 물건들 포장하고
서로의 안전을 격려하구요...
일단은 이곳 국제 교회와 격리된 자들에게 보내는 구호품을 모으는 일인데
사랑의 꾸러미 보내기입니다.
survival kit를 만들어서 격리된 학교와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에게 보내는 일인데
수건 마스크 치약 비누 칫솔등 생필품과 쵸코파이 껌 쵸코랫 컵라면과 격려의 글을 넣은 사랑의 카드를 동봉하여 격리된 지역의 병원과 학교에 보내는 일이지요.
이 일은 중국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환영하고 있어요.
이곳 북경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협조를 얻어 보낼 곳을 선정하고
이곳 인터네셔널 교회하고 한인 교회와도 협력하고 있어요.
봉투하나에 20위엔(3000원)정도인데 아주 좋아들 한답니다.
사스로 인해 갑자기 대거로 한국인들이 썰물처럼 철수했는데
이 일로 인해 남아있는 사람들도 서로 위로가 되구요
그나마 남은 이들이 할 일이 있어 다행이에요
이번 기회에 그들과 우리가 더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해요
다들 고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이들끼리 모여서..
이곳에서 남은 사람들과 격리된지역에
이곳 북경 cbmc와 같이 survival kit ( 소독약, 쵸코파이, 라면, 과자, 마스크, 비타민 씨, 위문 편지등을 넣은 구호상자)를 보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곳 외국인 교회와 같이하는데 ..아주 좋아들해요..물론 통제와 격리 안전조치가 아주 삼엄하구요..
이곳 대사관의 협조를 얻어서 장소를 결정하구요..
물론 출입증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는 불가능한 지경입니다.
허나 그동안에 서먹했던 관계가 회복되고.....
전 이곳에서 좀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내와 가족도 모두 이곳에 계속 있자고하네요..
비로서 할 일이 생긴거 같다구...^_^
남은 자들의 할일이라나...한국에가도 별로 환영을 못받을 테고..^^...
그래요...맡은 바 자리에서 할 일을 해야지요..
그분이 하시는 일을 바라 봅니다.
감사의 마음을 대신 전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 을 찬양합니다.
건강하세요.
승리하세요
샬롬
북경에서 김준봉, 안경미, 김희석 김희람 김희진 드림.
2003. 4.
추신 : 총장님과 사모님께도 안부 전해 주시고 혹 이곳이 생각날 때마다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사스가 잠잠해져 혹 이곳 북경에 오시면 연락 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