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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믿음을 갖고 마음을 같이하면 길하리라_오십의 마음
제1절 마음이 사람 사이를 잇고 세상을 발전시킨다_정
처음 팔괘를 그으니 그로써 신명의 덕을 통하게 하고, 그로써 만물의 정을 분류한 것이다.
始作八卦, 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 (계사하전 제2장 ; 231쪽)
역경은 팔괘가 만물의 '정'을 분류해서 제시한 것이라 말한다. 팔괘는 64괘를 대표해서 말하는 것이니, 이는 역경의 64괘가 만물의 '정'을 64가지로 분류해서 제시한 것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이는 우선 만물에는 각기 그 '정'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서 흥미롭다. (231-232쪽)
사람에게는 깊은 심연에 자리한 영성으로부터 싹터 올라오는 마음이 있으니, 그 마음이 바로 '정'이다. 이 때문에 마음은 이성적 판단(의식, 생각)을 넘어서게 된다. 무의식의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233쪽)
* '情'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할 것임. (1) 實情, 實相, 眞如 (2) 人情, 常情, 眞情이 그것임. (박희택)
효사와 괘사는 정으로써 말하는 것이다.
爻彖以情言. (계사하전 제12장 ; 235쪽)
역경은 이 세상의 전개 법칙을 계시한 경전인데, 이 세상을 그와 같이 전개시켜 온 힘이 바로 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전개시켜 온 원동력을 이성이 아니라 정으로 규정하는 것이어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를 이성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성은 오직 논리만을 따진다는 한계가 있다. (...) 아인슈타인 역시 이와 비슷한 통찰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진리를 찾는 것은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교적 감정(religious feeling)이며, 인간의 이성은 이렇게 찾은 진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한 종교적 감정이 바로 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이성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역경은 이 점을 밝혀 계시한 것이다. (235-236쪽)
역경의 효사와 괘사가 정으로써 말한다는 위의 언명은 역경에 실린 내용이 미래에 대한 예측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한다. 인지상정을 포함한 만물의 정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정이 지닌 경향성으로 ㅁ라하기 때문에 예측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정은 사람의 의식이나 생각보다 앞서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소인과 비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 정으로써 말하는 역경의 괘사와 효사의 서술대로 미래가 전개되어 가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전개될 미래가 정의 발현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앞으로 전개되어 나갈 미래가 긍정적 방향일 것임을 암시한다. 이 역시 사람에게 큰 희망을 준다. (237-238쪽)
결국 이 지상세계가 변칙과 예외로 늘상 흔들리는데도 결국은 영원의 추세로 되돌아가는 이유 역시 정이 그 원동력인 것이다. 또한 그 정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기인(其人)이 있어서 그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대체로 기인의 역할을 해낸다. 어떤 때는 소인으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소인배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기인의 역하을 해낸다. 이 역시 정의 작용이다. (239쪽)
* '기인'은 65쪽에도 나왔음. (박희택)
제2절 사람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어야 한다_위
괘를 베풂은 그로써 정과 위를 다하려는 것이다.
設卦以盡情僞. (계사상전 제12장 ; 240쪽)
역경은 (...) '정' 외에 '위'를 또 말하고 있다. 이 위를 마저 이해해야 역경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에 이 글을 통해 '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위악(僞惡, 짐짓 악한 체함)에도 '위'가 쓰인다. '위'는 이러한 위악의 의미로 읽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정'이 심연의 영성에서 자연스레 솟아나는 마음의 발로라면, '위'는 군자가 짐짓 악한 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제3장에서 설명한 간(艮)의 도에서 군자가 일부러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앟고 굳게 버티는 행동이 '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역경이 담고 있는 군자의 행동에는 '정'의 발로만이 아니라 '위'의 발로인 행동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역경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240-241쪽)
곤의 길은 (...) 서남 방향에서는 친구를 얻어야 하고,
동북 방향에서는 친구를 잃어야 이로우리라.
坤 (...) 利西南得朋,
東北喪朋. (제2괘 중지곤괘 괘사 ; 242쪽)
서남과 동북이라는 방위가 등장하는데, 이는 음양오행의 체계에서 각각의 방위가 담당하는 소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음양오행이 상식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식이 전제된 가운데 쓰인 것이다. 여기서 서남은 건의 도가 과잉으로 치달은 후 곤의 도가 새로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이행기를 상징한다. 바로 인생에서 오십대에 해당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 건의 도가 작용하는 인생의 전반기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혼자서 빨리 가는 데 주력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했던 건의 도가 과잉에 이르면서 부작용을 초래했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의 발걸음을 늦추고 '친구를 얻어야 하는' 시기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242쪽)
* 서남과 동북에 관한 여러 학설이 있음. 북송의 정이천은 [역전]에서 서남=음, 동북=양으로 보고 음이 양에게 공양함으로써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공간이라 하였음. 황태연 교수는 서남=문왕(文王)의 공간, 동북=주왕(紂王)으로 보았음. 서대원은 서남=상생, 동북=상극으로 보았으며 채택할 만한 학설이라 하겠음. (박희택)
동북 방향에서는 친구를 잃어야 한다는 말은 이렇게 함으로써 종국에는 경사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
東北喪朋 乃終有慶. (제2괘 중지곤괘 단전 ; 243쪽)
결국 최종적으로 좋은 결말을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장은 힘들더라도 위악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친구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상황을 상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당장은 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어 괴롭지만, (...) 이처럼 역경이 담고 있는 군자의 여러 행동 중에는 '정'의 발로만이 아니라 '위'의 발로인 행동도 많이 있다. (243쪽)
* '僞'의 사용은 '방편'의 구사와 같은 뜻이 됨. 따라서 '情'은 '진실'을 뜻함. (박희택)
천하의 지극히 깊숙한 도리를 말하고 있으니 추하게 여길 수 없고,
천하의 지극한 움직임을 말하고 있으니 어지럽힐 수 없다.
言天下之至賾 而不可惡也,
言天下之至動 而不可亂也. (계사상전 제8장 ; 244쪽)
역경을 읽다 보면 상당히 노골적이고 불편한 진실을 덤덤하게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들이 있고, 권모술수의 느낌을 주는 조언조차 적지 않다. (...) 그러한 내용도 하늘의 계시의 일부이기에, 위의 풀이처럼 천하의 지극히 깊숙한 도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243-244쪽)
제3절 어떤 상황에서든 약해지지 않으려면_마음
거듭 구덩이에 빠지더라도 믿음을 갖고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 형통하리라.
習坎 有孚維心亨 行有尚. (제29괘 중수감괘 괘사 ; 245쪽)
감의 괘사는 군자가 최악의 고난에 처했을 때를 위한 조언을 담고 있다. 여기서 '거듭 구멍이에 빠진다'는 말은 구덩이에 빠지는 고난을 당한 사람이 털고 일어나서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 보려고 하는데, 또 다시 구덩이에 빠지는 고난이 연거푸 닥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 군자로 하여금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역경은 '믿음을 갖고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 형통할 것'이라 말한다. 형통할 것이라는 말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째서 역경이 마음을 유지할 것을 중요한 조건으로 내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마음이 우리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 머리가 냉철한 것임에 비해 가슴은 뜨거운 것이라서 진폭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 이 때문에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는 것이다. (245-247쪽)
역경이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제시하는 조건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조건은 믿음이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有孚)'는 앞서 제1장에서 살펴본 '정(貞)하다', '가고자 하는 바가 있다(有攸往)'와 함께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에 해당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 이는 앞서 말한 영원의 추세를 믿는 것이다. (...) 영원의 추세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면 이 세상이 덧없는 세계가 아님을 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두렵겠는가? (247쪽)
*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에 대한 언급은 38, 49, 51쪽 등에서도 나왔음. (박희택)
* '영원의 추세를 믿는 것'은 진리를 믿는 것이며, 이는 불교로 말하면 인과를 믿는 것을 말함. (박희택)
두 번째 조건은 한자 維에 담겨 있다. '마음을 유지한다(維心)'에서 維는 '벼리'라는 뜻과 '유지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유지하다'는 말은 벼리[維]를 지탱한다[持]는 뜻이니, 결국 벼리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그 말의 참뜻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벼리라는 단어는 그물과 그물 주인을 연결하는 한 가닥 줄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維 자의 원형적 의미는 새와 새 주인의 연결된 관계를 상징하는 시치미 줄을 의미하는 것이다. (...) 매의 다리에 매인 시치미는 매가 주인과 연결된 존재임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매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지만, 사냥감을 잡는다는 임무를 달성하고 나서는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 사람이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이 처음에 비롯한 근본인 하늘과 맺어져 있는 한 가닥 줄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이 하늘로부터 왔고 하늘의 일을 하며 하늘로 돌아갈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 마음의 벼리를 잊지 않는 것이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이다. (249-251쪽)
역경은 거듭 구덩이에 빠지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믿음을 갖고 마음의 벼리를 지탱해낼 수만 있다면 형통할 것이라 조언하고 있다. 이는 근본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나는 무엇 하러 여기 왔나' 묻는 근본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거듭 구덩이에 빠지는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견뎌 내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반면 근본지식을 확립해서 마음의 벼리를 놓치지 않고 지탱해낸다면 형통할 것이다. 즉 인생 최악의 위기일지라도 어떻게든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51-252쪽)
제4절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_사귐
믿음을 발굴하여 사귀는구나.
그 모습이 위엄이 있으면 길하리라.
厥孚交如.
威如吉. (제14괘 화천대유 제5효사 ; 253쪽)
앞글에서 소개했던 곤의 괘사는 오십 대(서남 방향에 놓인 사람)가 '벗을 얻어야(得朋) 이로울 것'이라 말하고 있다. (...) 역경이 오십에게 권한 벗이 '朋'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友'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갈 만큼 친한 사이임을 표현한 것이다. (...) 朋은 단지 친하게 지내는 벗이 아니라 나와 동류인 벗을 표현하고 있다. 동류는 나와 같은 부류라는 뜻인데, 특히 나와 같은 정신적 지향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254-255쪽)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논어 학이편 제1장 ; 256쪽)
역경이 오십 대에 이르러 새로이 사귀라고 권하는 벗은 友가 아닌 朋이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벗을 사귀라는 말인데, 이를 달리 말하면 물질의 삶이 아닌 정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군자를 사귀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256쪽)
交는 사람이 다리를 꼬며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고대에는 사람들이 성곽 밖의 교외에 나가서 춤을 췄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성곽 안의 邑은 질서가 잡혀 있어서 사람들이 그 질서(법과 규칙)에 복종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곽 안의 대로변에서는 춤을 출 수가 없고, 대신 성곽 밖의 郊로 나가는 것이다. 이곳 郊는 인간이 만든 질서, 법과 규칙에서 벗어난 공간이다. 여기서 왕은 하늘에 바치는 제사를 올리며, 邑의 백성들이 참여하는 축제가 벌어진다. 이때 사람들은 춤을 춘다. 그 모습이 바로 交인 것이다. (...) 사람은 전반생을 거친 후 후반생에 이르러 정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의 삶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정말 깊이 있는 사귐이 가능한 것이다. (257-259쪽)
대유의 길에서 처음에 양이 오는 것은 아직 사귐이 없는 것이어서 해로우나 허물은 아니리라.
어렵게 여기면 허물이 없으리라.
初九 无交害 匪咎.
艱則无咎. (제14괘 화천대유 제1효사 ; 259-260쪽)
오십이 사람을 만날 때는 자연스러운 사귐[交]이 아직 부족한 상태에서 만나게 된다. 1효사에서 '아직 사귐이 없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다. (...) 사귐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분명 해로운 점이 있지만, 허물은 아닐 것이라 한다. 동시에 비인을 만날 위험성도 있으므로 어려운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염두에 두도록 조언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되 아직 경계심을 풀지 않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라 한다. (260-261쪽)
대유의 길에서 양이 두 번째에 올 때 큰 수레로써 싣는 것은 가고자 하는 바를 두는 것이니 허물이 없으리라.
九二 大車以載 有攸往 无咎. (제14괘 화천대유 제2효사 ; 261쪽)
1단계에서 만남을 가진 상대를 자기와 같은 수레를 타고 갈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는 곧 그 사람을 자기와 함께 갈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앞서 1단계에서 상대방에 대해 아직 유지하고 있던 경계심을 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역경은 '가고자 하는 바를 둘 것(有攸往)'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261쪽)
추구하는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 법이다.
道不同,不相爲謀. (논어 위령공편 제39장 ; 262쪽)
대유(大有)의 길이 권하는 오십의 사귐은 같은 도를 추구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道伴)을 사귀라는 것이다. (...) 친밀한 사귐에 도달하는 방식은 시간을 두고 경험을 공유함으로써가 아니라 공통의 믿음을 발굴함으로써 그와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공통의 도에 대한 믿음이다. 이는 앞서 2단계에서 '가고자 하는 바'가 같은 사람을 골라서 수레에 태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오십은 자신의 도를 이루어 가는 나이다. 이러한 오십은 같은 도의 길을 걸어가는 다른 도반을 사귀는 것이며, 동일한 믿음에 기초한 벗을 얻는 것이다. 동류란 이처럼 같은 도에 대한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을 의미하며, 오십에 얻어야 하는 벗 朋은 바로 이러한 동류를 가리킨다. (263-264쪽)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예리함은 쇠라도 끊을 수 있다.
마음을 같이했을 때 나오는 말은 그 향취가 난꽃과 같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계사상전 제8장 ; 264쪽)
서로 간에 공통의 믿음을 발굴하여 사귀는 단계에 도달하면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할 수 있다. 역경은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했을 때 나오는 말은 그 향취가 난꽃과 같다고 했으니, 그 사귐은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다. 오십의 고상한 삶에는 이처럼 위엄 있고 아름다운 사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고상한 삶에 어울리는 고상한 사귐이라고 할 수 있다. (264-265쪽)
제5절 오십이 보여 줘야 할 희망의 증거_책임
군자의 광채가 믿음을 얻으니 길하리라.
君子之光 有孚吉. (제64괘 화수미제괘 제5효사 ; 266쪽)
역경은 군자에게서 광채가 난다고 말한다. 어째서 사람에게서 광채가 나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이 몸을 넘어 발현될 때 광채가 난다. 좁은 몸을 지닌 사람, 유한한 존재인 사람이 무한한 마음을 보여 줄 때 광채가 난다. 사람이 그 몸보다 큰 존재임을 보여 줄 때 광채가 나는 것이다. (266쪽)
* 제63괘가 기제이고, 제64괘가 미제인 것이 의미심장함. 다 이루었는가 하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역경의 순환논리를 보여줌. (박희택)
정(貞)한 노력과 함께 군자의 경륜이 빛을 발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실패를 성공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의 광채가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는다고 말하며, 그처럼 믿음을 얻으니 길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 역경에서 군자의 인생 여행길을 돌아보면 64갈래 384굽이를 헤쳐가는 동안 숱한 좌절을 맛본다. 하지만 한 번도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적은 없다. 그와 같은 군자의 자세 및 태도가 미제의 길에서도 광채를 발하여 사람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길한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뉴욕의 샌드위치 가게 사장님이 말하는 모습을 티비에서 봤을 때도 그분에게서 광채가 남을 볼 수 있었다. 따스한 정과 위엄이 함께 어린 모습, 그 의젓한 품격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이처럼 빛을 발하는 군자의 품격에 도달하는 것, 기질을 성품으로 완성해 내는 것이 나이 오십에게 부여된 천명이라고 할 수 있다. (267-268쪽)
음이 네 번째에 오면 나라의 광채를 봐야 한다.
이로써 왕의 빈이 되면 이로우리라.
六四 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제20괘 풍지관괘 제4효사 ; 268-269쪽)
역경의 20번째 괘인 관괘의 길은 위기가 닥쳤을 때 군자가 사태를 어떻게 보아 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조언한다. (...) 4효사에 등장한 관국지광이 관광의 유래가 되는 말이다. 이는 '군자가 자신의 몸을 의탁할 나라를 고를 때 그 나라의 광채를 살펴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 이러한 조언을 통해서도 자신의 행동에 따라 길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고를 때도, 나라를 고를 때도 광채를 발하는지 여부(이런 것이 기미다)를 살필 줄 알아야 길한 결과를 마지할 수 있는 것이다. (269쪽)
사람이 아닌 국가는 어떻게 해서 광채를 발하게 되는 것일까? 마음이 사물에 내려앉았을 때 그 사물에서 광채가 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나라의 제도와 문물에 배어든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 광채를 발한다. 관광을 갔을 때 그 나라의 광채를 본다는 것은 이처럼 그 나라의 문물에서 배어나는 그 나라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 한국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물질에 불과한 콘크리트 빌딩이 아니라 한국의 마음이다. 이 나라가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은 것을 위해 살아가는 나라임을 느낄 때 손님들은 한국 관광에서 큰 기쁨을 얻을 것이다. (269-270쪽)
우리나라는 식민 지배를 겪고도 이를 이겨 내고 선진국으로 올라선 거의 유일한 나라다. 오늘날 한국은 민주주의를 이루었고, 국민 소득은 3만 달러를 넘으며, 첨단 IT산업이 발달했다. 거기에 더해 '한류'로 불리는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에 어필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이 인류 사회를 위해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인들에게 이 세상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다. 인류가 언제나 알고자 갈망하는 근본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271쪽)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도아보면 온통 '돈, 돈, 돈'이다. 돈에 혈안이 되어 투기판을 쫓아다닌다. 오늘날 한국은 물신만을 숭배하는 삭막한 곳이 돼 가고 있다. (...) 오늘날 한국인은 영원히 남는 것이 없다고 착각한 채 오직 썩어 없어질 것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한국인의 인지상정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72쪽)
한편에서 한국인들은 근현대사의 굴곡을 헤쳐 오는 동안 자신의 마음인 한국의 마음을 의식 수준에서는 놓쳐 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한류가 세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도 정작 한국인 자신들이 어리둥절한 것이다. 이처럼 방심해서 놓쳐 버린 한국인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오십 대의 사명이다. 이는 무의식에 잠긴 채 남아 있는 한국인의 마음을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우리 의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서 형통할 것이다. (...) 오늘날 한국의 군자들은 뜻을 같이하는 도반을 서로 사귀어야 한다.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소중한 뜻을 잊지 않으며, 서로에게 자극받아 힘을 낼 수 있다. 한국의 오십 대가 힘을 내 그 책임을 이룬다면 한국이 세계를 위한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274-2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