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위해 설치했던 무대를 철거하는 망치소리 옆으로 야생화전시회와 산약초 그리고 수석 분재를 전시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마당 앞에는 야한 고추화분이 전시되어 있어 백주에 남의 고추를 볼 수 있어서인지 카메라를 들이대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얼굴엔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들이 있어 보기가 좋습니다. 산약초 전시회장 입구에서 타주는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가랑비에 차가와진 마음을 녹이며 전시회장을 둘러봅니다. 우리네 산과 들에서 자라는 어느 풀하나 약초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만 흔하디흔한 풀들과 귀하디귀한 약초 까지 언제나 그 이름과 긴 설명 앞에 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그들 앞에서면 아리송해지고 맙니다. 엉겅퀴 뿌리로 담근 술 앞에서는 정력에 좋다는 설명문을 보고는 친구가 입맛을 쩍하고 다시는 것 같군요. 올 늦봄에 꽃과 함께 담궈논 술이 익거든 한 잔 대접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약초 술들 앞에서 유난히 술을 즐기는 친구의 눈이 빛났다면 야생화 코너 앞에서는 내 마음이 급해집니다. 정성들여 가꾼 흔하디흔한 풀하나가 아름답지 않느냐고 자꾸만 내게 물어오지만 글쎄요, 어떤 것들은 들에 있는 것보다 조금 낯설어 보이는 것도 있군요 . 그런데도 제법 굵게 자라 지주대로 세워놓은 나뭇가지를 타고 오른 인동덩굴을 보며 나도 한번 그리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만 고개를 드는 걸 아서라, 아서라 하고 타이릅니다. 작은 것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분재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분재 전시장에 나와 있는 분재들은 어떤 것은 내 키를 능가하는 것들까지도 있어 보이는군요. 어느새 분재도 그 키와 부피를 저렇게 늘려왔는지 크고 많은 게 좋다는 생각들이 이 분재에게 까지도 자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부디 저 나무들이 잘려지고 가꾸어지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들이 구경꾼들의 놀라움과 감탄 앞에서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이제는 수석도 글로벌화가 되었는지 중국에서 또 멀리 아프리카에서 까지 모셔온 돌들도 제법 많이 눈에 뜨이는 군요. 그 좋고 귀한 취미들이 좀 더 사랑까지 함께 곁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들의 땅에서 강제 이주당해 화장하고 앉아있는 그들의 작은 비애를 보는 것 같은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발걸음을 타오르는 불꽃들의 속으로 옮깁니다. 언제부터인가 국민 야외활동복이 되어버린 등산복차림의 사람들과 어깨를 맞부딪히며 걷다보면 귀에 익은 가위소리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와 함께 엿판 앞에서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는 엿장수 아저씨가 지키고 있는 일주문이 나옵니다. 일주문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거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어서 이채롭다는 생각도 잠시 왜 절집 앞에 그리 큰 문을 세워 절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주눅 들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행여 이문에 절의 위엄을 얹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면 너른 가슴으로 감싸 안으려는 부처의 생각을 알기나 하는지 염려스러워 집니다. 일주문을 벗어나오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에 상사화의 타오르는 그리움들이 그대로 옮겨져 그들도 누군가를 못 견디게 그리워하고 또 사랑하기를 바라며 일주문을 지나 절집 안으로 들어섭니다. 오늘이 지나면 또 쉬어갈 수 있는 날들입니다. 그 쉬어 감을 생각하며 오늘도 미소 지으십시오. 또 그 미소 속에서 행복하십시오. -성산리에서 행복/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