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재 가는 길 흥전리사지를 찾아서
포토에세이 삼척 명품길 江山海
제8부 무건리 이끼폭포·4
피재 가는 길 흥전리사지興田里寺址를 찾아서
도계읍 흥전리에서 서쪽 매바위골로 들어가 도계광업소 흥전갱에서 1km 산을 향해 올라가면 산중턱 송림 속 평탄면에 흥전리사지興田里寺址가 있다. 길을 잘못들어 피재[삼수령] 아래에서 30분간 혜매다 하산하여 다시 길을 찾았다. 흥전갱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계곡 길가 빈농가 앞 화장실 뒤인 농로3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야 되는데, 직진으로 가서 힘을 뺐다. 농로 3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니 대단위 산머루와 오미자농원의 농로를 따라 오른다. 금계화 꽃밭길을 걸으니 솔숲이 보이고,그 솔숲 너른 평지에 통일신라시대의 격조 높은 사찰인 흥전리사지가 거기 있었다.
포장농로 3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대단위 산머루와 오미자 농원의 농로를 따라 오른다.
흥전리사지가 있는 솔숲이 보인다.
피재가는 길에 흥전리사지ㅣ도계에서 피재[삼수령]로 가는 길목 중간에 자리잡은 흥전리사지는 요지에 있다. 대규모로 드러난 절터나 유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격조 높은 사찰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삼척향토지『척주지陟州誌』에 의하면 <돈각사頓覺寺는 느릅재[유현楡峴]에서 북쪽으로 심유한 골짜기 10리를 가면 있다 -돈각사자유현북입학십리頓覺寺自楡峴北入壑十里>는 기록이 남아있고, 『대동여지도』에는 유현이 도계道溪와 태백太白의 중간에 표시되어 있고, 주민들이 현재도 이 고개를 유현[느릅재]로 부르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이 사지는 ‘돈각사’이였었다가 폐사된 후 ‘한산사寒山寺’가 다시 중창되었던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흥전리사지 60m 담장 서에서 동으로 촬영ㅣ문화재청은 2014년부터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 사업’으로 ‘삼척 흥전리사지三陟興田里寺址’ 발굴조사를 시행 중이다. 통일신라 시대 승단 조직에서 사용한 청동 승관인僧官印 인장 2과가 출토되었으며, 12점의 대호[大壺, 항아리]를 묻었던 장고[醬庫,장독보관시설]가 확인되었다. 흥전리사지는 통일신라 시대 영동지역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형 산지가람[전각 중심의 배치]이다.
흥전리사지 발굴현장[사진: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l 금당지 익사翼舍형태의 부속 건물ㅣ그간 발굴된 유물은 ‘당조장대장경이지함唐朝將大藏經而至咸’이 새겨진 비조각, 귀면와鬼面瓦, 가릉빈가상 수막새 등 통일신라 시대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이 유물들은 매우 완성도가 높아 신라왕경[경주 지역]에서 장인을 파견해 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문화재청은 분석했다. 금당지金堂址, 탑지塔址 등 주요 가람시설이 확인되었고, 특히 신라 시대에 왕이 임명하는 승단의 최고 통솔자인 ‘국통國統’이 새겨진 비조각碑片을 비롯하여 청동정병靑銅淨甁, 금동번[金銅幡,깃발] 등 중요 유물이 출토되어 위세 높은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문화재청은 언급했다.
흥전리사지 답사|시계방향 뒤로 강복순,노조현,최세영,홍인선,하종수,최형순,정연휘,이순희 2017,6,4.
삼척시는 흥전리사지의 실체와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여 체계적인 보존ㆍ관리ㆍ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차 발굴조사 성과를 집성한 학술대회를 통해 도출된 조사 성과와 의의, 정비 방안 등을 담아 사적 지정 신청을 하고 있다고 한다.
흥전리사지 답사를 마치고 내리기
흥전리사지에서 서쪽 피재(삼수령) 풍경
흥전리사지 기와 파편들과 청동정병靑銅淨甁 발굴현장과 청동정병 <사진: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사진설명 시계방향 1)흥전리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國統’ 글자가 새겨진 비석 조각 2)청동인장 3)가릉빈가상 수막새 4)귀면와鬼面瓦 5)대장경이 새겨진 비조각< 사진: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