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四十八回 刺先克五將亂晉 召士會壽餘紿秦
제48회: 선극을 찔러 다섯 장수가 진(晉)나라를 어지럽히고, 사회를 불러들이려고 위수여가 진(秦)나라를 속이다.
話說,箕鄭父、士穀、梁益耳三人商議,只等秦兵緊急,便從中作亂,欲更趙盾之位,不意趙盾襲敗秦兵,奏凱而回,心中愈憤。先都為下軍佐,因主將先蔑為趙盾所賣,出奔於秦,亦恨趙盾。湊著蒯得被先克以軍事奪其田祿,中懷怨望,訴於士穀。穀曰:「先克倚恃趙孟之屬,故敢橫行如此。盾所專制,惟中軍耳。誠得一死士,先往刺克,則盾勢孤矣。此事非得先子會不可!」蒯得曰:「子會因主帥為盾所賣,意亦恨之。」士穀曰:「既如此,則克不難辦也。」遂附耳曰:「只須如此恁般,便可了事。」
한편, 기정보(箕鄭父), 사곡(士穀), 양익이(梁益耳) 세 사람이 서로 모의하여, 다만 진(秦)나라 군대가 급히 쳐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문득 그 중간에 난을 일으켜, 조돈을 중군 원수의 직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 조돈이 진(秦)나라 군대를 기습하여 패퇴시키고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오자, 그들의 마음속 분노는 더욱 깊어졌다. 선도(先都)가 하군의 보좌가 되었는데, 그의 주장이었던 선멸이 조돈에게 배신을 당하여 진(秦)나라로 달아나자 그 역시 조돈을 원망했다. 또한 괴득(蒯得)은 싸움 중에 휘하의 전차를 진(秦)나라 군사에게 뺏긴 잘못을 선극(先克)에 의해 추궁당하여 그의 전답과 녹봉을 빼앗긴 일에 대해 마음속으로 원한을 갖고 있다가 사곡에게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곡이 말하기를, “선극이 조맹(조돈)의 배려로 중군부원수가 되어 그를 믿고 이같이 전횡하고 있다. 조돈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군사들은 오로지 중군일 뿐인데 만약 우리가 자객을 얻어 먼저 선극을 찌른다면 조돈의 형세는 고립될 것이다. 이 일은 자회(子會 : 선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니, 괴득이 말하기를, “자회는 지금 그의 주장 선멸이 조돈에게 배신당하여 마음속으로 분개하고 있습니다.” 했다. 사곡이 말하기를, “이미 이와 같으면 선극을 죽이기는 어렵지 않다.” 하고, 마침내 귀에 대고 말하기를, “다만 이러저러하게 하면 일을 쉽게 이룰 것이오.” 했다.
蒯得大喜曰:「吾當即往言之。」蒯得往見先都,倒是先都開口說起:「趙孟背了士季,襲敗秦師,全無信義,難與同事。」蒯得遂以士穀之言,告於先都。都曰:「誠如此,晉國之幸也!」時冬月將盡,約至新春,先克往箕城,謁拜其祖先軫之祠。先都使家丁伏於箕城之外,只等先克過去,遠遠跟定,覷個空隙,群起刺殺之。從人驚散。趙盾聞先克為賊所殺,大怒,嚴令司寇緝獲,五日一比。先都等情慌,與蒯得商議,慫恿士穀梁益耳等作速舉事。梁益耳醉中洩其語於梁弘。弘大驚曰:「此滅族之事也!」乃密告於臾駢,駢轉聞於趙盾。盾即聚甲戒車,吩咐伺候聽令。
괴득이 매우 기뻐하며 말하기를, “제가 당장 가서 말을 전하겠습니다.” 하고,선도를 만나러 갔다. 오히려 선도가 먼저 입을 열어 말하기를, “조맹(조돈)이 사백(선멸)과 수계(사회)를 배신하고 진(秦)나라 군사를 기습하여 패퇴시킨 일은 전혀 신의가 없는 짓이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할 수 없다.” 하니, 괴득이 선도에게 사곡이 한 말을 전했다. 선도가 말하기를, “진실로 이같이 된다면 진(晉)나라의 다행이다.” 했다. 때는 겨울이 거의 다 끝나 새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선극이 기성(箕城)에 가서 그 할아버지 선진(先軫)의 사당에 배알한다는 소식을 들은 선도가 자기 집안 장정들을 동원하여 기성 밖에 매복시키고 선극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선극의 일행이 나타나자 멀리서 따라가 빈틈을 노려 한꺼번에 일어나 선극을 찔러 죽였다. 종자들은 놀라 달아났다. 조돈은 선극이 도적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로하여 사구(司寇)에게 엄명을 내려 5일 이내에 도적들을 잡아들이도록 했다. 선도가 황망하게 되어 괴득과 상의하여 사곡과 양익이를 권하여 빨리 거사하게 했다. 양익이가 취중에 양홍(梁弘)에게 그 말을 누설하니, 양홍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것은 멸족될 일이다.” 하고, 몰래 유병(臾騈)에게 알렸다. 유병은 다시 조돈에게 전했다. 조돈은 즉시 병사들을 무장시킨 후에 자기의 명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先都聞趙氏聚甲戒車,疑其謀已洩,急走士穀處,催並速發。箕鄭父欲借上元節晉侯賜酺,乘亂行事,議久不決。趙盾先遣臾駢圍先都之家,執都付獄。梁益耳蒯得慌忙之際,欲與箕鄭父士穀團集四族家丁,劫出先都,一同為亂。趙盾使人反以先都之謀,告於箕鄭父,請他入朝商議。箕鄭父曰:「趙孟見召,殆不疑我也。」遂輕身而往。原來趙孟為箕鄭父見為上軍元帥,恐其鼓眾同亂,假意召之。鄭父不知是計,坦然入朝。趙盾留住於朝房,與之議先都之事。密遣荀林父、郤缺、欒盾領著三枝軍馬,分頭拿捕士穀、梁益耳、蒯得三人。俱下獄訖,荀林父等三將,至朝房回話。
선도가 조돈이 무장된 군사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들의 음모가 이미 누설되었다고 의심하여 급히 사곡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빨리 군사를 출동시키라고 재촉했다. 기정보는 정월 대보름날 진(晉)나라 군주가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어 잔치를 베풀 때를 이용하여 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오래도록 논의했으나 결정하지 못했다. 조돈은 먼저 유병을 보내어 선도의 집을 포위하고 그 일당을 모두 사로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양익이와 괵득이 황망하게 되어 기정보와 사곡과 함께 네 집안의 가병들을 모아 우선 선도를 옥에서 구해낸 후 일제히 난을 일으키자고 했다. 조돈이 그들의 음모를 역이용하여 사람을 기정보에게 보내 상의할 일이 있으니 입조하라고 했다. 기정보가 말하기를, “조맹이 보자고 부르니 거의 나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고, 마침내 가벼운 차림으로 입조했다. 원래 조돈은 기정보가 상군 원수가 된 뒤로부터 휘하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거짓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기정보를 조당으로 부른 것이다. 기정보가 조돈의 계획을 모르고 편안하게 조당으로 들어왔다. 조돈이 기정보를 조당의 방에 머물러 두고 선도의 일을 의논했다. 조돈은 비밀리에 순림보(荀林父), 극결(郤缺), 난돈(欒盾) 등 세 갈래 군마를 보내어 각각 사곡, 양익이, 괴득 세 사람을 잡아 오게 했다. 모두 잡아서 감옥에 넣은 후에 순림보 등 세 장군이 조당의 방으로 돌아와 조돈에게 보고했다.
林父大聲喝曰:「箕鄭父亦在作亂數內,如何還不就獄?」鄭父曰:「我有居守之勞,彼時三軍在外,我獨居中,不以此時為亂,今日諸卿濟濟,乃求死耶?」趙盾曰:「汝之遲於為亂,正欲待先都蒯得也。我已訪知的實,不須多辯!」箕鄭父俯首就獄。趙盾奏聞晉靈公,欲將先都等五人行誅。靈公年幼,唯唯而已。靈公既入宮,襄夫人聞五人在獄,問靈公曰:「相國如此處置?」靈公曰:「相國言:『罪並應誅。』」襄夫人曰:「此輩事起爭權,原無篡逆之謀。且主謀殺先克者,不過一二人,罪有首從,豈可一概誅戮?邇年老成彫喪,人才稀少,一朝而戮五臣,恐朝堂之位遂虛矣。可不慮乎?」
순림보가 큰소리로 외치기를, “기정보도 역시 반란을 일으킨 일당 중 한 명인데 어찌하여 감옥에 넣지 않습니까?” 하니, 기정보가 말하기를, “나는 도성에 남아서 지키고 있었고, 당시 삼군은 출전하고 나 혼자 성안에 있었소. 내가 그때에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지금 여러 장군이 떼지어 생사람을 잡고자 하십니까?” 했다. 조돈이 말하기를, “네가 반란을 지연시킨 것은 바로 선도와 괴득을 기다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변명할 필요 없다.” 하니, 기정보가 머리를 숙이고 감옥에 갇혔다. 조돈이 진영공(晉靈公)에게 선도 등 다섯 사람을 처형하겠다고 아뢰었다. 그때 영공은 나이가 어려서 그리하라고만 했을 뿐이었다. 진영공이 궁으로 들어가니, 모후인 진양공 부인은 다섯 사람이 옥에 갇혔음을 알고, 진영공에게 말하기를, “상국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합니까?” 했다. 진영공이 말하기를, “상국의 말이 ‘죄를 지었으니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했다. 진양공 부인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은 권세를 다투려는 마음으로 난을 일으켰지, 원래 찬역의 모의를 한 것은 아닙니다. 또 선극을 죽이자고 주모한 것은 한 두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죄는 주범과 공범이 있는데, 어찌 한꺼번에 모두 죽인단 말이오! 머지않아 늙어 시들면 인재들이 드물게 될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다섯 사람의 신하를 죽여 버린다면 조당의 자리가 텅 비게 될까 걱정입니다. 어찌 염려스럽지 않습니까?” 했다.
明日,靈公以襄夫人之言,述於趙盾。盾奏曰:「主少國疑,大臣擅殺,不大誅戮,何以懲後?」遂將先都、士穀、箕鄭父、梁益耳、蒯得五人,坐以不君之罪,斬於市曹。錄先克之子先縠為大夫。國人畏趙盾之嚴,無不股栗。狐射姑在潞國聞其事,駭曰:「幸哉!我之得免於死也。」一日,潞大夫酆舒問於狐射姑曰:「趙盾比趙衰二人孰賢?」射姑曰:「趙衰乃冬日之日,趙盾乃夏日之日。冬日賴其溫,夏日畏其烈。」酆舒笑曰:「卿宿將,亦畏趙孟耶?」
다음날, 영공이 진양공 부인이 한 말을 조돈에게 전하니, 조돈이 아뢰기를, “군주가 어리니 나라가 안정이 되지 않고, 대신들이 제멋대로 사람을 죽이니, 크게 죽이지 않으면 어찌 뒷날을 징계하겠습니까?” 하고, 마침내 선도, 사곡, 기정보, 양익이, 괴득 등 다섯 사람은 군주를 잘 모시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시정에서 참수형에 처하게 했다. 선극의 아들 선곡을 대부로 삼았다. 나라 사람들이 조돈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호사고가 노국(潞國)에서 그 일을 듣고 놀라며 말하기를, “다행이다! 내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했다. 하루는 노국대부 풍서(酆舒)가 호사고에게 묻기를, “조돈과 조쇠 두 사람 중 누가 더 어집니까?” 하니, 호사고가 말하기를, “조쇠는 겨울철의 태양이고, 조돈은 여름철의 태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의 태양은 따뜻하고 여름철의 태양은 뜨거워서 두렵습니다.” 했다. 풍서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경은 백전노장이지만 역시 조맹을 두려워하는 군요?” 했다.
閒話休提。卻說,楚穆王自篡位之後,亦有爭伯中原之志。聞諜報:「晉君新立,趙盾專政,諸大夫自相爭殺。」乃召群臣計議,欲加兵於鄭。大夫范山進曰:「晉君年幼,其臣志在爭權,不在諸侯。乘此時出兵以爭北方,誰能當者!」穆王大悅,使鬥越椒為大將,蒍賈副之,帥車三百乘伐鄭。自引兩廣精兵,屯於狼淵,以為聲援。別遣息公子朱為大將,公子茷副之,帥車三百乘伐陳。
이런 한가한 이야기는 접어두자. 한편, 초나라 목왕은 왕위를 찬탈한 후에, 그 역시 중원의 우두머리를 다투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때 첩자가 보고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새로 서서 조돈이 정권을 오로지하자 대부들이 서로 다투고 죽입니다.” 했다. 초목왕이 즉시 군신들을 모아 의논하고 정나라에 군사를 투입하려고 했다. 대부 범산(范山)이 나와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주가 나이 어리고 그 신하들은 권력을 다투는 데 뜻이 있지, 제후들에게 뜻이 없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군사를 내어 북방을 도모한다면 누가 능히 감당하겠습니까?” 했다. 초목왕이 크게 기뻐하여 투월초(鬪越椒)를 대장으로 삼고, 위가(蔿賈)를 부장으로 삼아, 전차 300대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치게 하고, 스스로 양광(兩廣)의 정예병을 이끌고 낭연(狼淵)에 주둔하여 지원하고자 했다. 따로 식공자(息公子) 주(朱)를 대장으로 삼고, 공자 패(公子茷)를 부장으로 삼아, 전차 300대를 거느리고 진(陳)나라를 치게 했다.
且說,鄭穆公聞楚兵臨境,急遣大夫公子堅、公子龐、樂耳三人,引兵拒楚於境上,囑以固守勿戰,別遣人告急於晉。越椒連日挑戰,鄭兵不出。蒍賈密言於越椒曰:「自城濮之後,楚兵久不至鄭矣。鄭人恃有晉救,不與我戰。乘晉之未至,誘而擒之,可以雪往日之恥。不然,遷延日久,諸侯畢集,恐復如子玉故事,將奈何?」越椒曰:「今欲誘之,當用何計?」蒍賈附耳曰:「必須如此恁般……。」越椒從其謀,乃傳令軍中,言:「糧食將缺,可於村落掠取,以供食用。」自於帳中鼓樂飲酒,每日至夜半方散。
한편, 정나라 목공은 초나라의 군사들이 국경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대부 공자견(公子堅), 공자방(公子龐), 낙이(樂耳) 세 사람을 보내어 군사를 이끌고 국경에 나가 초나라 군사를 막게 하고, 싸우지 말고 굳게 지키라고 당부했다. 한편으로 사람을 진(晉)나라로 보내어 위급함을 알렸다. 투월초가 연일 싸움을 걸었지만, 정나라 군사들이 나오지 않았다. 위가가 은밀히 투월초에게 말하기를, “성복의 싸움 이후로 초나라 병사들은 오랫동안 정나라에 오지 못했습니다. 정나라 사람들이 진(晉)나라의 구원군을 믿고 우리와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晉)나라 군사가 오기 전에 정나라 군사들을 유인하여 붙잡으면 옛날의 치욕을 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시간만 끌다가 중원 제후들이 다 모이면 다시 자옥(성득신)에게 닥친 옛일이 다시 닥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장차 어찌하시겠습니까?” 하니, 투월초가 말하기를, “지금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무슨 계책을 써야 하겠소?” 하니, 위가가 귓속말로 말하기를, “반드시 이러저러하게 해야 합니다.” 했다. 투월초가 그 계책에 따라 군중에 명령을 내리기를, “군량이 떨어지게 생겼으니 촌락에 가서 빼앗아 와서 식량을 공급해야겠다.” 하고, 투월초 자신은 막사 안에서 음악을 즐기고 술을 마시며 매일 밤이 깊어서 그만두었다.
有人傳至狼淵,楚穆王疑鬥越椒玩敵,欲自往督戰。范山曰:「伯嬴智士,此必有計,不出數日,捷音當至矣。」再說,公子堅等,見楚兵不來搦戰,心中疑慮,使人探聽。回言:「楚兵四出擄掠為食。鬥元帥中軍,日逐鼓樂飲酒,酒後謾罵,言鄭人無用,不堪廝殺。」公子堅喜曰:「楚兵四出擄掠,其營必虛;楚將鼓樂飲酒,其心必懈;若夜劫其營,可獲全勝。」公子龐樂耳皆以為然。是夜結束飽食,公子龐欲分作前中後三隊,次第而進。公子堅曰:「劫營與對陣不同,乃一時襲擊之計,可分左右,不可分前後也。」於是三將並進。將及楚營,遠遠望見燈燭輝煌,笙歌嘹亮。
어떤 사람이 낭연(狼淵)에 있던 초목왕에게 그 일을 고하니, 초목왕은 투월초가 적군을 가볍게 보고 있지나 않나 의심하여 자기가 직접 가서 싸움을 독려하려고 했다. 범산이 말하기를, “백영(위가)은 지혜가 있는 선비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계략인 듯하니 며칠만 참으면 승전보를 전해 올 것입니다.” 했다. 한편, 정나라의 공자견 등은 초나라 군사들이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사람을 시켜 적진을 정탐하게 했다. 정탐을 나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초나라 병사들이 사방으로 나가 곡식을 약탈하여 식량으로 하고 있습니다. 투월초는 중군에 있으면서 매일 음악을 즐기고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욕을 하면서 정나라 사람은 쓸데없다면서, 쳐들어가 봐야 헛수고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니, 공자견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초나라 군사들이 사방으로 나가 노략질을 하고 있으니 그 진영은 틀림없이 비었을 것이고, 초나라 장수가 매일 음악을 즐기고 술을 마시니 그 마음이 반드시 해이해졌을 것이다. 만약 밤에 그 진영을 덮친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했다. 공자방과 낙이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밤 정나라 군사들은 야습할 준비를 끝내고 배불리 먹었다. 공자방이 군사들을 전중후(前中後) 삼대로 나누어 순서에 따라 진격시키려고 하자, 공자견이 말하기를, “진영을 습격하는 것과 대진하여 싸우는 것은 다릅니다. 일시에 습격하는 계책은 부대를 좌우로 나누어야지 전후로 나누면 안 됩니다.” 했다. 이에 세 장수는 나란히 진격하여, 초나라 진영에 이르니 멀리 등불이 휘황찬란하고 생황과 노랫소리가 맑고 깨끗하게 들려 왔다.
公子堅曰:「伯棼命合休矣!」麾車直進,楚軍全不抵當。公子堅先衝入寨中,樂人四散奔走,惟越椒呆坐不動。上前看時,吃一大驚,乃是束草為人,假扮作越椒模樣。公子堅急叫「中計!」退出寨時,忽聞寨後砲聲大震,一員大將領軍殺來,大叫「鬥越椒在此!」公子堅奔走不迭,會合公子龐及樂耳二將,做一路逃奔。行不一里,對面砲聲又起,卻是蒍賈預先埋伏一枝軍馬,在於中路,邀截鄭兵。前有蒍賈,後有越椒,首尾夾攻,鄭兵大敗。公子龐樂耳先被擒。公子堅捨命來救,馬躓車覆,亦為楚兵所獲。鄭穆公大懼,謂群臣曰:「三將被擒,晉救不至,如何?」
공자견이 말하기를, “백분(투월초)의 목숨도 끝났구나!” 하고 전차를 몰아 직진하니 초나라 군사들이 아무도 막지 않았다. 공자견이 먼저 초군 진영으로 치고 들어가니, 연주하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오로지 투월초만이 멍청하게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 보고 크게 놀랐다. 그것은 풀로 엮은 인형으로 투월초 모양으로 분장시킨 것이었다. 공자견이 급히 부르짖기를, “계략에 빠졌다!” 하고, 초군의 영채에서 물러 나오려 할 때 갑자기 영채의 뒤편에서 포성이 크게 울리더니, 한 대장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달려 나오면서 크게 외치기를, “투월초가 여기 있다!” 했다. 공자견은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공자방과 낙이 두 장수를 만나 함께 달아났다. 일 리도 가기 전에 맞은편에서 포성이 또 일어났다. 그것은 위가가 미리 한 떼의 군마를 중도에 매복시켰다가 정나라 군사들의 퇴로를 끊기 위한 것이었다. 앞에는 위가가 있고, 뒤에는 투월초가 있어 양쪽에서 협공하니 정나라 군사들은 대패했다. 공자방과 낙이가 먼저 사로잡히니, 공자견이 목숨을 걸고 달려와 구하려 하다가 말이 넘어지고 수레가 뒤집혀서 공자견도 또한 초군에게 사로잡혔다. 정목공은 크게 두려워하여 여러 신하에게 말하기를, “세 장군이 사로잡히고 진(晉)나라 구원군이 오지 않으니 어찌하오?” 했다.
群臣皆曰:「楚勢甚盛,若不乞降,早晚打破城池,雖晉亦無如之何矣!」鄭穆公乃遣公子豐至楚營謝罪,納賂求和,誓不反叛。鬥越椒使人請命於穆王,穆王許之。乃釋公子堅、公子龐、樂耳三人之囚,放還鄭國。楚穆王傳令班師。行至中途,楚公子朱伐陳兵敗,副將公子茷為陳所獲,打從狼淵一路來見穆王,請兵復仇。穆王大怒,正欲加兵於陳。忽報:「陳有使命,送公子茷還楚,上書乞降。」穆王拆書看之,略曰:「寡人朔,壤地褊小,未獲接侍君王之左右。蒙君王一旅訓定,邊人愚莽,獲罪於公子。朔惶悚,寢不能寐,敬使一介,具車馬致之大國。朔願終依宇下,以求蔭庇。惟君王辱收之!」
여러 신하가 모두 말하기를, “초군의 형세가 매우 성합니다. 만약 항복을 청하지 않으면 조만간 정나라 도성을 깨뜨려서 비록 진(晉)나라 군사들이 와도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정목공이 이에 공자풍(公子豊)을 초나라 진영에 보내어 사죄의 말을 전하게 하고, 뇌물을 바치면서 화의를 청하고 다시는 초나라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투월초가 사람을 초목왕에게 보내어 명령을 청하니, 초목왕이 허락했다. 이에 공자견, 공자방, 낙이 등 세 사람을 석방하여 정나라로 돌려보냈다. 초목왕은 영을 내려 군사를 되돌려 가는 도중에, 초나라 공자주(公子朱)가 진(陳)나라를 치다가 지고, 부장 공자패(公子茷)가 진(陳)나라의 포로가 되어, 공자주가 초목왕을 뵈러 낭연(狼淵)으로 갔다가 바로 회군하는 초목왕을 뵙고 군사를 청하여 복수하려고 했다. 초목왕이 대로하여 바로 진(陳)나라를 치려고 했다. 문득 보고하기를, “진(陳)나라에서 사자를 보내와 공자패를 초나라에 돌려보내고 항복을 청하는 국서를 보내왔습니다.” 했다. 초목왕이 편지를 뜯어보니 대략 이르기를, “과인 삭(朔)은 나라가 작아 아직 군왕의 좌우에서 모시지 못했습니다. 군왕께서 한 떼의 군마를 보내어 훈계하려고 하는데 국경을 지키는 어리석은 백성이 공자를 욕보여 죄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황송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여 삼가 사자를 보내 대국의 거마를 돌려 드립니다. 제가 대국의 그늘에 남아 보호를 받고자 원하오니 오직 대왕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했다.
穆王笑曰:「陳懼我討罪,是以乞附,可謂見幾之士矣。」乃准其降。傳檄徵取鄭陳二國之君,同蔡侯,以冬十月朔,於厥貉取齊相會。卻說,晉趙盾因鄭人告急,遣人約宋、魯、衛、許四國之兵,一同救鄭。未及鄭境,聞鄭人降楚,楚師已還。又聞陳亦降楚。宋大夫華耦,魯大夫公子遂,俱請伐陳鄭。趙盾曰:「我實不能馳救,以失二國,彼何罪焉?不如退而修政。」乃班師。髯翁有詩嘆云:「誰專國柄主諸侯?卻令荊蠻肆蠢謀,今日鄭陳連臂去,中原伯氣黯然收。」
초목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진(陳)나라가 우리의 추궁을 두려워하여 항복을 청하니 가히 형세의 기미를 아는 사람이다.” 하고 곧 항복을 받아들였다. 다시 격문을 전하여 정나라와 진(陳)나라의 군주에게 채후(蔡侯)와 같이 겨울 10월 초하루에 궐맥(厥貉)에 모이라고 하였다. 한편, 진(晉)나라의 조돈은 정나라가 사태의 급함을 고하자 송(宋), 노(魯), 위(衛), 허(許) 등 네 나라에 사자를 보내 군사를 모아 함께 정나라를 구하자고 했다. 제후들의 군사가 정나라의 경계에 이르기도 전에 정나라가 초나라에 항복하고, 초나라의 군사들은 이미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진(陳)나라도 초나라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송나라 대부 화우(華耦)와 노나라 대부 공자수(公子遂)는 진나라와 정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청했다. 조돈이 말하기를, “우리가 사실 빨리 구하지 못해 두 나라를 잃었으니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차라리 군사를 되돌려 나라 안의 정치를 돌보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했다. 이에 군사를 돌려 돌아갔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누가 정권을 잡고 제후들을 호령할 것인가? 남쪽 오랑캐 초나라가 준동하기 시작했다. 오늘 정나라와 진(陳)나라가 앞다투어 초나라로 달려가니, 중원의 패기가 말없이 줄어들었다.” 했다.
再說,陳侯朔與鄭伯蘭,於秋末齊至息地,候楚穆王駕到。相見禮畢,穆王問曰:「原訂厥貉相會,如何逗遛此地?」陳侯鄭伯齊聲答曰:「蒙君王相約,誠恐後期獲罪,故預於此地奉候隨行。」穆王大喜。忽諜報:「蔡侯甲午,已先到厥貉境上。」穆王遂同陳鄭二君,登車疾走。蔡侯迎穆王於厥貉,以臣禮見,再拜稽首。陳侯鄭伯大驚,私語曰:「蔡屈禮如此,楚必以我為慢矣。」乃相與請於穆王曰:「君王稅駕於此,宋君不來參謁,君王可以伐之。」穆王笑曰:「孤之頓兵於此,正欲為伐宋計也。」早有人報入宋國。
한편, 진공공(陳共公) 삭(朔)과 정목공(鄭穆公) 란(蘭)이 그해 가을이 끝날 무렵에 식(息) 땅에 이르러 초목왕을 기다렸다. 이윽고 서로 만나 상견례를 마치자 초목왕이 묻기를, “원래 궐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찌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소?” 하니, 진공공과 정목공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군왕과 약속하여 혹시 날짜를 어겨 죄를 얻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미리 이곳에서 기다렸다가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했다. 초목왕이 크게 기뻐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채장공(蔡莊公) 갑오(甲午)가 이미 궐맥의 경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했다. 초목왕이 진(陳)나라, 정나라 군주와 함께 수레에 올라 달려갔다. 채후가 궐맥에서 초목왕을 영접하고 신하의 예로서 인사를 올려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진후(진공공)와 정백(정목공)이 크게 놀라 둘이서 소곤거리기를, “채후가 이렇듯 굽실거려 예를 하니, 초목왕은 반드시 우리를 태만하다고 생각할 것이오.” 하고, 이에 서로 의견을 모아 초목왕에게 청하기를, “군왕께서 어가를 이곳에 머물렀는데 송나라 군주가 뵈러 오지 않으니 군왕께서 마땅히 쳐야 할 것입니다.” 하니, 초목왕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곳에 와서 군사를 주둔시킨 이유는 바로 송나라를 정벌하려는 계책에서요.” 했다. 재빨리 어떤 사람이 송나라에 들어가 알렸다.
時宋成公王臣已卒,子昭公杵臼已立三年,信用小人,疏斥公族。穆襄之黨作亂,殺司馬公子卬,司城蕩意諸奔魯,宋國大亂。賴司寇華御事調停國事,請復意諸之官,國以粗安。至是,聞楚合諸侯於厥貉,有窺宋之意。華御事請於宋公曰:「臣聞『小不事大,國所以亡。』今楚臣服陳鄭,所不得者宋耳。請先往迎之。若待其見伐,然後請成,無及也。」宋公以為然。乃親造厥貉,迎謁楚王。且治田獵之具,請較獵於孟諸之藪。穆王大悅。陳侯請為前隊開路,宋公為右陣,鄭伯為左陣,蔡侯為後隊,相從楚穆王出獵。
그때 송성공(宋成公) 왕신(王臣)은 이미 죽고, 그 아들 소공(昭公) 저구(杵臼)가 새로 선지 이미 3년이 지났다. 소공은 소인을 믿고 임용하며, 공족들은 배척했다. 목공(穆公)과 양공(襄公)의 후손들이 난을 일으켜 사마 공자앙(公子卬)을 죽이자 사공(司空) 탕의제(蕩意諸)가 노나라로 달아나고 송나라에 크게 어지러웠다. 사구(司寇) 화어사(華御事)가 국사를 조정하고, 다시 탕의제에게 관직을 돌려주기를 청하여, 나라가 조금 안정되었다. 그때 초나라가 궐맥에 제후들을 모아 놓고 송나라를 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어사가 송소공에게 청하기를, “신이 듣기에,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초나라가 진(陳)나라와 정나라를 복종시켰으나 송나라만을 복종시키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먼저 궐맥으로 가셔서 초목왕을 영접하십시오. 만약 초나라의 정벌을 당한 후에 화의를 청한다면 너무 늦을 것입니다.” 했다. 송소공이 그렇다고 생각하여 이에 친히 궐맥으로 가서, 초목왕을 뵈었다. 또한 사냥 도구들을 준비하여 맹제(孟諸) 소택지에서 사냥대회를 열기를 청했다. 초목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진후(陳侯)가 선두를 맡아 길을 열고, 송공은 우측을 정백은 좌측을 맡고 채후는 후대를 맡아 초목왕을 모시고 사냥을 하게 되었다.
穆王出令,命諸侯從田者,於侵晨駕車,車中各載燧,以備取火之用。合圍良久,穆王馳入右師,偶趕逐群狐,狐入深窟,穆王回顧宋公,取燧薰之。車中無燧。楚司馬申無畏奏曰:「宋公違令,君不可以加刑,請治其僕。」乃叱宋公之御者,撻之三百,以儆於諸侯。宋公大慚。此周頃王二年事。是時楚最強橫,遣鬥越椒行聘於齊魯,儼然以中原伯主自待,晉不能制也。周頃王四年,秦康公集群臣議曰:「寡人銜令狐之恨,五年於茲矣!今趙盾誅戮大臣,不修邊政。陳、蔡、鄭、宋,交臂事楚,晉莫能禁,其弱可知。此時不伐晉,更何待乎?」
초목왕이 제후들을 따라온 시종들에게 명령하여, 다음 날 동틀 때까지 수레를 준비하여 각기 부싯돌을 싣고 불을 사용할 때를 대비하게 하였다. 군사들이 사냥터를 에워싼 한참 뒤에 초목왕이 우측 군사를 몰아 여우 떼를 모니 여우들이 깊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초목왕이 송공을 돌아보며 부싯돌로 연기를 피우라고 했다. 그러나 수레에는 부싯돌이 없었다. 초나라 사마(司馬) 신무외(申无畏)가 아뢰기를, “송공이 명령을 어겼으나 군주를 벌할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종복을 치죄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이에 송공의 마부를 잡아 꾸짖고 300대를 매질하여 제후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했다. 송공이 크게 부끄러워했다. 이때가 주경왕(周頃王) 2년(기원전 617년)의 일이었다. 그때 초나라가 가장 강성하여 멋대로 나대었다. 초목왕이 투월초를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자기가 엄연히 중원의 패자라고 했으나, 진(晉)나라는 제어하지 못했다. 주경왕 4년(기원전 615년)에 진(秦)나라 강공(康公)이 군신들을 모이게 하여 의논하기를, “내가 영호(令狐)에서 당한 원한을 가슴에 품은 지 이제 5년이 되었소. 지금 조돈이 대신들을 도륙하느라 국경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소. 진(陳), 채(蔡), 정(鄭), 송(宋) 네 나라가 친근함을 바꾸어 초나라를 받들게 되었으나 진(晉)나라가 이를 막지 못하니, 그 약함을 알 수 있소! 이때 우리가 진(晉)나라를 정벌하지 않는다면 다시 언제까지 기다리겠소?” 했다.
諸大夫皆曰:「願效死力!」康公乃大閱車徒,使孟明居守,拜西乞術為大將,白乙丙副之,士會為參謀,出車五百乘,浩浩蕩蕩,濟河而東,攻羈馬拔之。趙盾聞報,急為應敵之計。自將中軍,遷上軍大夫荀林父為中軍佐,以補先克之缺。用提彌明為車右。使郤缺代箕鄭父為上軍元帥。盾有從弟趙穿,乃晉襄公之愛婿,自請為上軍之佐。盾曰:「汝年少好勇,未曾歷練,姑待異日。」乃用臾駢為之。使欒盾為下軍元帥,補先蔑之缺;胥臣之子胥甲為副,補先都之缺。趙穿又自請以其私屬,附於上軍,立功報效。趙盾許之。軍中缺司馬,韓子輿之子韓厥,自幼育於趙盾之家,長為門客,賢而有才。盾乃薦於靈公而用之。
여러 대부가 모두 말하기를, “원컨대 죽을힘을 다하겠습니다.” 했다. 강공이 이에 전차와 군사를 대대적으로 사열하여 맹명시에게 도성을 지키게 하고, 서걸술을 대장으로, 백을병을 부장으로, 사회를 참모로 임명하여 전차 500대를 동원하여 호호탕탕하게 황하를 건너 동쪽으로 와서 기마성(羈馬城)을 공격하여 함락했다. 조돈이 보고를 듣고 급히 적에 대응할 계책을 세웠다. 조돈은 스스로 중군을 거느리고 상군 대부 순림보를 옮겨 중군의 보좌로 삼아 선극(先克)의 빈자리를 메웠으며, 제미명(提弭明)을 차우로 삼고, 극결은 기정보를 대신하여 상군 원수로 삼았다. 조돈의 종제 조천(趙穿)은 진양공(晉襄公)의 사랑하는 사위였는데, 그가 상군의 보좌가 되기를 청했다. 조돈이 말하기를, “너는 용기가 있으나 나이가 어리고 아직 경험과 단련이 모자라니 잠시 후일을 기다려라.” 했다. 이에 유병(臾騈)을 상군 보좌로 삼았다. 난지(欒枝)를 하군 원수로 삼아 선멸의 빈자리를 메우고, 서신의 아들 서갑(胥甲)을 부수로 삼아 선도의 빈자리를 메웠다. 조천이 다시 자청하여 그 사병들을 데리고 상군에 소속되어 공을 세워 보답하고자 하니, 조돈이 허락했다. 군중에 사마가 비었는데, 한자여(韓子輿)의 아들 한궐(韓厥)은 어렸을 때부터 조돈의 집안에서 자라 장성하자 문객이 되었다. 사람됨이 어질고 재주가 있어 조돈이 이에 진영공에게 추천하여 사마로 임명했다.
三軍方出絳城,甚是整肅。行不十里,忽有乘車沖入中軍。韓厥使人問之,御者對曰:「趙相國忘攜飲具,奉軍令來取,特此追送。」韓厥怒曰:「兵車行列已定,豈容乘車擅入?法當斬!」御者涕泣曰:「此相國之命也!」韓厥曰:「厥忝為司馬,但知有軍法,不知有相國也。」斬御者而毀其車。諸帥言於趙盾曰:「相國舉韓厥,而厥戮相國之車。此人負恩,恐不可用。」趙盾微笑,即使人召韓厥。諸將以盾必辱厥以報其怨。厥既至,盾乃降席而禮之曰:「吾聞『事君者,比而不黨。』子能執法如此,不負吾舉矣。勉之!」厥拜謝而退。
삼군이 바야흐로 강도(絳都)를 나가는데 매우 정돈되고 엄숙하였다. 십여 리도 못 갔을 때 갑자기 수레를 타고 중군 속으로 돌진해 오는 자가 있었다. 한궐이 사람을 보내 물어보니, 마부가 말하기를, “조상국께서 물잔을 가져가지 않아서 제가 군령을 받들어 가지고 오느라 특별히 이렇게 쫓아왔습니다.” 했다. 한궐이 노하여 말하기를, “부대의 행렬이 이미 정해졌는데 어찌 전차를 타고 멋대로 돌입할 수 있단 말인가? 군법에 따라 참수하라!” 하니, 마부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이것은 상국의 명입니다.” 했다. 한궐이 말하기를, “내가 황공하게 사마가 되었는데 단지 군법만을 알뿐이지 상국이 있는 것은 모른다!” 했다. 그리고 마부를 참수하고 그 전차를 부숴 버렸다. 여러 장수가 조돈에게 말하기를, “상국이 한궐을 천거했는데, 한궐이 상국의 전차를 부셔버리고 마부를 참수했습니다. 이 사람이 은혜를 저버렸으니 가히 쓸 수가 없습니다.” 했다. 조돈이 미소를 지으며 즉시 사람을 보내 한궐을 불렀다. 여러 장수가 조돈이 반드시 한궐을 욕보여 그 원한을 갚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궐이 도착하자 조돈이 자리에서 내려와 예를 취하고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군주를 모시는 자는 나란히 있어도 무리를 짓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그대는 군법을 집행하기를 이같이 하니 내가 천거한 뜻을 저버리지 않았소! 힘써 주시오!” 했다. 한궐이 절하여 감사하고 물러 나왔다.
盾又謂諸將曰:「他日執晉政者,必厥也!韓氏其將昌矣。」晉師營於河曲,臾駢獻策曰:「秦師蓄銳數年,而為此舉,其鋒不可當,請深溝高壘,固守勿戰。彼不能持久,必退,退而擊之,勝可萬全。」趙盾從其計。秦康公求戰不得,問計於士會。士會對曰:「趙氏新任一人,姓臾名駢,此人廣有智謀。今日堅壁不戰,蓋用其謀,以老我師也。趙有庶子趙穿,晉先君之愛婿。聞其求佐上軍,趙孟不從而用駢,穿意必然懷恨。今趙孟用駢之謀,穿必不服,故自以私屬從行,其意欲奪臾駢之功也。若使輕兵挑其上軍,即臾駢不出,趙穿必恃勇來追,因之以求一戰,不亦可乎?」
조돈이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후일 진(晉)나라 정사를 맡을 사람은 틀림없이 한궐이다! 한씨는 장차 번창할 것이다.” 했다. 진(晉)나라 군사들은 하곡(河曲)에다 진영을 세웠다. 유병이 계책을 드려 말하기를, “진(秦)나라 군사들은 그 날카로움을 수년간 축적하여 이번에 출정하였으니, 그 예봉을 당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저들은 오래 버틸 수 없으므로 반드시 물러갈 것이니, 그때 공격하면 틀림없이 이길 것입니다.” 했다. 조돈이 그 계책을 따랐다. 진강공이 싸움을 걸었으나 응하지 않으니, 사회(士會)에게 계책을 물었다. 사회가 대답하기를, “조씨가 새로 한 사람을 기용하였는데 성은 유(臾)이고 이름은 병(騈)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지모가 뛰어납니다. 지금 굳게 벽을 쌓고 싸우지 않은 것은 모두 그의 계책을 써서 우리 군사를 지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조돈의 사촌 동생 중에 조천(趙穿)이라고 있는데, 진양공의 사위로 총애를 받았습니다. 들으니 그가 상군 보좌를 원했으나 조돈이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유병을 그 자리에 앉혔다고 합니다. 조천은 분명 한을 품었을 것입니다. 지금 조맹(조돈)이 유병의 계책을 썼으나 조천은 틀림없이 불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가병을 이끌고 종군한 의도는 유병의 공을 뺐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가볍게 무장한 군사로 그 상군에 도전하면 유병은 나오지 않아도, 조천이 반드시 용기를 믿고 추격할 것입니다. 이로써 한번 싸우게 된다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했다.
秦康公從其謀,乃使白乙丙率車百乘,襲晉上軍挑戰。郤缺與臾駢俱堅持不動。趙穿聞秦兵掩至,即率私屬百乘出迎。白乙丙回車便走,車行甚速,趙穿追十餘里,不及而返。怪臾駢等不肯協力同追,乃召軍吏大罵曰:「裹糧披甲,本欲求戰,今敵來而不出擊,豈上軍皆婦人乎?」軍吏曰:「主帥自有破敵之謀,不在今日。」穿復大罵曰:「鼠輩有何深謀?直是畏死耳!別人怕秦,我趙穿偏不怕!我將獨奔秦軍,拼死一戰,以雪堅壁之恥。」遂驅車復進,呼號於眾曰:「有志氣者,都跟我來!」三軍莫應。
진강공이 그 계책을 쫓아 즉시 백을병을 시켜 전차 100대를 거느리고 진(晉)나라 상군을 기습하여 도전했다. 극결과 유병은 모두 굳게 지키기만 할뿐 움직이지 않았다. 조천은 진(秦)나라 군사들이 몰려왔다는 말을 듣고 가병 전차 100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맞섰다. 백을병이 전차를 돌려 문득 달아나니 전차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조천이 10여 리를 추격하다가 미치지 못해서 되돌아왔다. 조천은 유병 등이 협력하여 함께 추격하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생각하여 즉시 군리를 불러 욕하기를, “양식을 싸고 갑옷을 입은 것은 본래 싸움을 하기 위해서다. 지금 적군이 쳐들어왔는데 나가서 싸우지 않으니 도대체가 상군은 모두 아녀자들이냐?” 했다. 군리가 말하기를, “원수께서 스스로 적을 깨뜨릴 계책이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했다. 조천이 크게 욕하기를, “쥐새끼 같은 놈들에게 무슨 깊은 계략이 있단 말이냐? 솔직히 말하면 죽음이 두려울 뿐이지! 다른 놈들은 진(秦)나라 군사를 무서워하겠지만, 나 조천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가 장차 혼자서라도 진(秦)나라 군사를 추격하여 목숨을 걸고 한번 싸워서 이렇게 굳게 지키기만 하는 치욕을 씻을 것이다.” 했다. 마침내 조천은 전차를 몰아 다시 나아가 군사들에게 큰소리로 외치기를, “용기 있는 자는 모두 나를 따르라!” 했으나, 삼군의 군사들은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惟有下軍副將胥甲嘆曰:「此人真正好漢,吾當助之。」正欲出軍。卻說,上軍元帥郤缺,急使人以趙穿之事報之趙盾。盾大驚曰:「狂夫獨出,必為秦擒,不可不救也。」乃傳令三軍,一時並出,與秦交戰。再說,趙穿馳入秦壁,白乙丙接住交鋒,約戰三十餘合,彼此互有殺傷。西乞術方欲夾攻,見對面大軍齊至,兩下不敢混戰,各鳴金收軍。趙穿回至本陣,問於趙盾曰:「我欲獨破秦軍,為諸將雪恥,何以鳴金之驟也?」盾曰:「秦大國,未可輕敵,當以計破之。」穿曰:「用計用計,吃了一肚子好氣!」言猶未畢,報:「秦國有人來下戰書。」
오직 하군 부장 서갑(胥甲)만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참으로 용기 있는 사내다. 내가 마땅히 도우겠다.” 하고, 출동하려고 했다. 한편, 상군 원수 극결은 급히 사람을 조돈에게 보내어 조천의 일을 보고했다. 조돈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미친 사내가 홀로 나서니 반드시 진(秦)나라의 포로가 될 것이다. 구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이에 삼군에 명령을 내려 일시에 함께 출격하여 진(秦)나라 군사와 싸우려 했다. 한편, 조천은 진(秦)나라의 보루를 향해 달려들어 백을병과 맞붙어 싸웠다. 약 3십여 합을 싸우는 동안 양쪽 군대는 서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서걸술이 바야흐로 협공하려고 하다가 진(晉)나라 대군이 일제히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다. 양쪽의 군사들이 감히 혼전하지 못하고 각각 징을 울려 군사들 거두었다. 조천이 본진으로 돌아와 조돈에게 묻기를, “제가 혼자서 진(秦)나라 군사를 깨뜨려서 여러 장수들의 치욕을 풀어 주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징을 울려 군사들을 거두셨습니까?” 했다. 조돈이 말하기를, “진(秦)나라는 대국이라 가볍게 볼 수 있는 적이 아니다. 마땅히 계책을 써서 격파해야 한다.” 했다. 조천이 말하기를, “계책을 쓴다, 계책을 쓴다고 하지만, 뱃속에서 부아만 납니다.” 했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보고하기를, “진(秦)나라에서 사람이 전서를 가져왔습니다.” 했다.
趙盾使臾駢接之。使者將書呈上,臾駢轉呈於趙盾。盾啟而觀之,書曰:「兩國戰士,皆未有缺,請以來日決一勝負!」盾曰:「謹如命。」使者去後,臾駢謂趙盾曰:「秦使者口雖請戰,然其目徬徨四顧,似有不寧之狀,殆懼我也,夜必遁矣。請伏兵於河口,乘其將濟而擊之,必大獲全勝。」趙盾曰:「此計甚妙!」正欲發令埋伏,胥甲聞其謀,告於趙穿。穿遂與胥甲同至軍門,大呼曰:「眾軍士聽吾一言:我晉國兵強將廣,豈在西秦之下?秦來約戰,已許之矣;又欲伏兵河口,為掩襲之計,是豈大丈夫所為耶?」
조돈이 유병을 시켜 진(秦)나라 사자를 데려오게 했다. 사자가 전서를 바치자 유병이 받아서 조돈에게 건넸다. 조돈이 열어 보니 전서에 이르기를, “양국의 전사들이 아직 모두 건재하니 청컨대 내일 승부를 결정합시다!” 했다. 조돈이 말하기를, “명대로 합시다.” 했다. 진(秦)나라 사자가 돌아간 후에 유병이 조돈에게 말하기를, “진(秦)나라 사자가 입으로는 비록 싸움을 청하고 있지만, 그 눈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하여 편안하지 못한 모습으로 보아 우리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에 틀림없이 달아날 것입니다. 청컨대, 황하 건널목에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다가 그들이 강을 건널 때를 이용하여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니, 조돈이 말하기를, “그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오!” 하고, 바로 명령을 내려 매복시키려 했다. 서갑(胥甲)이 그 계책을 알고 조천에게 알렸다. 조천이 서갑과 함께 군문에 이르러 큰소리로 외치기를, “군사들은 내 말을 들어라! 우리 진(晉)나라 군사는 강하고 장수는 많은데 어찌하여 서쪽의 진군(秦軍)보다 못하다고 하는가? 진(秦)나라와 결전을 약속하고 다시 황하 건널목에 군사를 매복시켜 몰래 기습하려는 계책을 어찌 대장부가 할 짓이겠는가?” 했다.
趙盾聞之,召謂曰:「我原無此意,勿得撓亂軍心也!」秦諜者探得趙穿和胥甲軍門之語,乃連夜遁走,復侵入瑕邑,出桃林塞而歸。趙盾亦班師,回國治洩漏軍情之罪,以趙穿為君婿,且是從弟,特免其議;專委罪於胥甲,削其官爵,逐去衛國安置。又曰:「臼季之功,不可斬也!」仍用胥甲之子胥克為下軍佐。髯仙有詩議趙盾之不公。詩云:「同呼軍門罪不殊,獨將胥甲正刑書。相君庇族非無意,請把桃園問董狐。」周頃王五年,趙盾懼秦師復至,使大夫詹嘉居瑕邑,以守桃林之塞。臾駢進曰:「河曲之戰,為秦畫策者土會也。此人在秦,吾輩豈能高枕而臥耶?」
조돈이 듣고 그들을 불러 말하기를, “나는 원래 그런 뜻이 없으니 군심을 어지럽히지 말라!” 했다. 진(秦)나라 첩자가 조천과 서갑이 군문에서 소리친 말을 듣고 밤새 달려와 보고하자 진강공은 다시 하읍(瑕邑)을 점령하고 도림색(桃林塞)으로 빠져나가 귀국했다. 조돈도 역시 군사를 물려 국도 강성(絳城)으로 돌아가서 군사기밀을 누설한 죄를 다스렸다. 조천은 선군의 부마였고 또한 자기의 사촌 동생이므로 특별히 의논하지 않고, 오로지 그 죄를 서갑에게 씌워 그의 관작을 삭탈하고 위(衛)나라로 추방하기로 했다. 또 말하기를, “구계(서신)의 공을 생각해서 참하지 않는다.” 하고, 이어서 서갑의 아들 서극(胥克)을 하군 보좌로 삼았다. 염선(髥仙)이 조돈의 공정하지 못함을 시를 지어 이르기를, “함께 군문에서 외쳤으니 죄는 다르지 않은데, 서갑 혼자 법률에 따라 벌을 받았다. 재상이 종족들을 보호하려는 뜻이 없다고 못할 것이니, 청컨대 조천이 도원에서 진영공을 살해한 일을 기록한 동호에게 물어보아라!” 했다. 주경왕(周頃王) 5년(기원전 614년)에 조돈은 진(秦)나라 군대가 다시 올까 두려워서 대부 첨가(詹嘉)를 시켜 하읍(瑕邑)에 머물러서 도림색(桃林塞)을 지키게 했다. 유병이 나와 조돈에게 말하기를, “하곡의 싸움에서 진(秦)나라의 계책은 사회가 낸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진(秦)나라에 있으면 우리가 어찌 베개를 높이 베고 자겠습니까?” 했다.
趙盾以為然,乃於諸浮之別館,大集六卿而議之。(那六卿:趙盾、郤缺、欒盾、荀林父、臾駢、胥克。)是日六卿畢至,趙盾開言曰:「今狐射姑在狄,士會在秦,二人謀害晉國,當何策以待之?」荀林父曰:「請召射姑而復之。射姑雖堪境外之事,且子犯舊勳,宜延其賞。」郤缺曰「不然。射姑雖係宿勳,然有擅殺大臣之罪。若復之,何以儆將來乎?不如召士會。(士會順柔而多智,且奔秦非其罪也。狄遠而秦逼,欲除秦害,先去其助,言召士會者是。)」趙盾曰:「秦方寵任土會,請之必不從,何計而可復之?」
조돈이 그렇다고 생각하여, 이에 제부(諸浮)의 별관에서 육경을 모아 의논했다. (그 육경들이란 조돈(趙盾), 극결(郤缺), 난돈(欒盾), 순림보(荀林父), 유병(臾騈), 서극(胥克) 등이었다.) 그날 육경이 모두 모이자 조돈이 입을 열어 말하기를, “지금 호사고는 오랑캐 노국(潞國)에 있고, 사회는 진(秦)나라에 있소. 두 사람이 진(晉)나라를 해치려고 모의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야 되겠소?” 하니, 순림보가 말하기를, “청컨대 호사고를 불러 복직시키시기 바랍니다. 호사고가 본디 변방을 맡길 만하고 또 자범(호언)의 옛 공훈이 있으니 마땅히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했다. 극결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호사고가 비록 훈구대신의 아들이긴 하지만 제멋대로 대신을 살해한 죄인입니다. 만약 그를 복직시킨다면 장래에 무엇으로 경계를 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사회를 불러오십시오. (사회는 유순하고 지혜가 많은 사람입니다. 또한 진(秦)나라로 달아난 것은 그의 죄가 아닙니다. 적(狄)나라는 멀고 진(秦)나라는 가깝습니다. 만약에 진(秦)나라의 침략을 막으려면 먼저 진(秦)나라를 돕고 있는 자를 제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를 불러오는 것이 옳습니다.)” 했다. 조돈이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바야흐로 사회를 총애하고 신임하는데 우리가 비록 부른다 해도 틀림없이 따르지 않을 것이니, 무슨 방법으로 그를 불러온단 말이오?” 했다.
臾駢曰:「駢所善一人,乃先臣畢萬之孫,名壽餘,即魏犨之從子也。見今食邑於魏,雖在國中帶名世爵,未有職任。此人頗能權變,要招來士會,只在此人身上。」乃附趙盾之耳曰:「如此恁般……何如?」盾大喜曰:「煩吾子為我致之。」六卿既散,臾駢即夕往叩壽餘之門,壽餘相迎坐定。臾駢請至密室,以招士會之策,告於壽餘,壽餘應允。臾駢回復了趙盾。次早,趙盾奏知靈公,言:「秦人屢次侵晉,宜令河東諸邑宰,各各團練甲伍,結寨於黃河岸口,輪番戍守。並責成食采之人,往督其事,倘有失利,即行削奪,庶肯用心防範。」
유병이 말하기를, “제가 친한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이 옛날 진(晉)나라 대신이었던 필만(畢萬)의 손자이고 이름은 수여(壽餘)라고 합니다. 곧 위주(魏犨)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지금 식읍인 위(魏)에 살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의 명문세가 후손이지만 아직 벼슬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임기응변에 능하니 사회를 불러오려면 다만 이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했다. 그리고 조돈의 귀에 대고 말하기를, “이러저러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조돈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번거롭겠지만 나를 위하여 불러오시오!” 했다. 육경이 모두 흩어지자 유병이 즉시 그날 저녁에 수여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수여가 유병을 맞이하여 좌정했다. 유병이 밀실로 가기를 청하여, 사회를 불러올 계책을 수여에게 고했다. 수여가 응락했다. 유병이 돌아와 조돈에게 복명했다. 다음 날 아침에 조돈이 진영공에게 아뢰기를, “진(秦)나라 사람이 여러 차례 우리나라를 침범하니, 마땅히 하동의 성읍들을 다스리는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려 각각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을 훈련시켜 황하의 강안을 영채로 연결하여 번갈아 파수를 보도록 하고, 아울러 식읍(食邑)과 채읍(采邑)의 관리들에게 책임지고 그 일을 감독하게 하여, 만일 소홀히 한 자가 있으면 즉시 삭탈하시어 방비하는 데 힘을 쓰게 하겠습니다.” 했다.
靈公准奏。趙盾又曰:「魏大邑也。魏倡之,諸邑無敢不從矣。」乃以靈公之命召魏壽餘,使督責有司,團兵出戌。壽餘奏曰:「臣蒙主上錄先世之功,衣食大縣,從未知軍旅之事。況河上綿延百餘里,處處可濟,暴露軍士,守之無益。」趙盾怒曰:「小臣何敢撓吾大計?限汝三日內,取軍籍呈報!再若抗違,當正軍法!」壽餘嘆息而出,回家悶悶不悅。妻子叩問其故,壽餘曰:「趙盾無道,欲我督戍河口,何日了期?汝可收拾家資,隨我往秦國,從士會去可也。」吩咐家人整備車馬。
진영공이 그러라고 하니, 조돈이 또 말하기를, “위(魏)는 큰 고을입니다. 위읍이 앞장선다면 여러 고을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즉시 영공의 명으로 위수여를 불러들여, 책임자를 독촉하여 군사를 훈련시켜 파수를 보게 했다. 위수여가 아뢰기를, “신은 선조들이 이룩한 공업으로 주공에게서 큰 읍을 하사받은 은혜로 의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군사의 일을 모릅니다. 게다가 하상(河上)의 백 리가 넘는 지역은 곳곳마다 건널 수 있으니, 군사를 내어 지키는 일은 무익합니다.” 하니, 조돈이 노하여 말하기를, “하찮은 벼슬아치가 어찌 나의 큰 계획을 어지럽히려 하느냐? 너는 사흘 안에 군사의 호적을 만들어 바쳐라! 만약 이 명령을 어긴다면 마땅히 군법에 따를 것이다!” 했다. 수여가 탄식하며 물러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고민했다. 수여의 처가 그 까닭을 묻자 수여가 말하기를, “조돈이 무도하여 나에게 황하의 건널목을 지키는 일을 책임지라고 하니, 기한 내에 내가 어찌 그 일을 해낼 수 있겠소? 그대는 집안의 가재도구와 재물들을 모두 수습하여 나를 따라 진(秦)나라로 달아납시다. 그곳에서 사회를 따르면 될 것이오.” 하고, 집안 사람에게 수레와 말을 정비하도록 분부했다.
是夜索酒痛飲,以進饌不潔,鞭膳夫百餘,猶恨恨不絕,言欲殺之。膳夫奔趙府,首告壽餘欲叛晉奔秦之事,趙盾使韓厥帥兵往捕之。厥放走壽餘,只擒獲其妻子,下於獄中。壽餘連夜遁往秦國,見秦康公,告訴趙盾如此恁般,強橫無道。「妻子陷獄,某孤身走脫,特來投降。」康公問士會:「真否?」士會曰:「晉人多詐,不可信也。若壽餘果真降,當以何物獻功?」壽餘於袖中出一文書,乃是魏邑土地人民之數,獻於康公曰:「明公能收壽餘,願以食邑奉獻。」康公又問士會:「魏可取否?」壽餘以目盼士會,且躡其足。
그날 밤, 위수여는 술을 달라고 하여 통음하고, 음식들이 불결하다며 트집을 잡아 요리사를 채찍으로 백여 대를 때리고 나서도 그 분함이 풀리지 않아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요리사가 도망쳐서 조씨부(趙氏府)로 달려가 수여가 진(晉)나라를 배반하고 진(秦)나라로 도망치려고 한다고 고했다. 조돈이 한궐을 시켜 군사를 끌고 가서 위수여를 잡아들이게 했다. 한궐은 수여를 도망치게 놓아주고 단지 그들의 처자들만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수여는 밤낮으로 달려서 진(秦)나라로 가서 진강공을 뵙고 조돈이 이러저러하게 했다고 고하고 강포하게 전횡하는 무도한 자라고 호소하며, “처자들은 잡혀서 감옥에 갇혔고, 저는 혼자 탈출하여 특별히 와서 투항합니다.” 했다. 진강공이 사회에게 묻기를, “참말일까요?” 하니, 사회가 말하기를, “진(晉)나라 사람들은 속임수가 많아서 믿을 수 없습니다. 만약 수여가 정말로 투항했다면 마땅히 무엇인가 공이 될 만한 것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했다. 수여가 소매 안에서 문서를 하나 꺼내었는데, 그것은 위읍의 토지와 백성들의 수를 적은 것이었다. 수여가 진강공에게 그것을 바치며 말하기를, “군후께서 능히 이 수여를 거두어 주신다면, 원컨대 이 식읍을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하니, 진강공이 다시 사회에게 묻기를, “위읍을 우리가 취할 수 있겠소?” 했다. 수여가 사회를 곁눈질하며 그 발을 밟았다.
士會雖奔在秦,然心亦思晉,見壽餘如此光景,陰會其意,乃對曰:「秦棄河東五城,為姻好也。今兩國治兵相攻,數年不息,攻城取邑,惟力是視。河東諸城,無大於魏者,若得魏而據之,以漸收河東之地,亦是長策。只恐魏有司懼晉之討,不肯來歸耳!」壽餘曰:「魏有司雖晉臣,實魏氏之私也。若明公率一軍屯於河西,遙為聲援,臣力能致之。」秦康公顧士會曰:「卿熟知晉事,須同寡人一行。」乃拜西乞術為將,士會副之,親率大軍前進。既至河口,安營了畢,前哨報:「河東有一枝軍屯劄,不知何意?」
사회가 비록 진(秦)나라에 있지만, 마음속으로 진(晉)나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회는 수여의 이 같은 행동을 보고 속으로 그 뜻을 알아채어 곧 대답하기를, “진(秦)나라가 하동(河東)의 다섯 성을 버린 이유는 진(晉)나라와 혼인을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양국이 군사를 동원하여 서로 공격하여 수년 동안 쉬지 않았습니다. 성을 공격하여 고을을 얻는 것은 오로지 힘에 의해서입니다. 하동의 여러 성 중에 위읍 만큼 큰 곳이 없습니다. 만약 위읍을 얻어서 그곳을 근거지로 하면 점점 하동의 땅을 거두는 것이 또한 긴 계획이 될 것입니다. 단지 걱정되는 바는 위읍의 관리들이 진(晉)나라의 토벌을 두려워하여 기꺼이 우리에게 복속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했다. 수여가 말하기를, “위읍의 관리들은 비록 진(晉)나라의 신하이지만 실은 위씨 집안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한 떼의 군마를 하서(河西)에 주둔시켜 멀리서 성원해 주신다면 신이 힘을 다해 설복시키겠습니다.” 했다. 진강공이 사회를 돌아보며 말했다. “경은 진(晉)나라의 일을 잘 알고 있으니 반드시 과인과 같이 가야 하겠소!” 하고. 이에 서걸술을 대장으로 삼고, 사회를 부장으로 삼아 친히 대군을 인솔하여 진군했다. 황하의 강안에 도착하여 진영을 세우니 정탐병이 보고하기를, “하동에 한 떼의 군마가 주둔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壽餘曰:「此必魏人聞有秦兵,故為備耳。彼未知臣之在秦也。誠得一東方之人,熟知晉事者,與臣先往,諭以禍福,不愁魏有司不從。」康公命士會同往,士會頓首辭曰:「晉人虎狼之性,暴不可測。倘臣往諭而從,是國家之福也。萬一不從,拘執臣身,君復以臣不堪事之故,加罪於臣之妻孥,無益於君,而臣之身家,枉被其殃,九泉之下,可追悔乎?」康公不知士會為詐,乃曰:「卿宜盡心前往。若得魏地,重加封賞。倘被晉人拘留,寡人當送還家口,以表相與之情。」與士會指黃河為誓。
위수여가 말하기를, “이것은 틀림없이 위읍의 사람들이 진(秦)나라 군사에 대비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제가 진(秦)나라에 몸을 맡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晉)나라 사정을 잘 아는, 동쪽에서 온 사람을 한 명 구하여 저와 함께 먼저 가서 유불리(有不利)로 그들을 설득하면, 위읍의 관리가 따르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니, 진강공이 사회에게 명하여 수여와 함께 가게 했다. 사회가 머리를 숙여 사양하며 말하기를. “진(晉)나라 사람들은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성질을 지녀서 포학하기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만약 신이 가서 그들을 설득하여 따르게 한다면 그것은 나라의 복이지만, 만일 따르지 않고 신을 억류한다면, 주군께서는 신이 그 일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처자에게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주군께도 무익하고, 저와 가족은 재앙을 입게 되니, 구천에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니, 진강공이 사회가 속이는 줄 모르고, 이에 말하기를, “경은 마땅히 정성을 다해 다녀오시오. 만약 위읍을 얻으면 봉작과 상을 더하여 주겠소. 혹시 진(晉)나라 사람들에게 억류된다고 하더라도 과인이 마땅히 그대의 가족들을 돌려보내어 그대와 함께 지낸 정을 표시하겠소.” 하며, 사회와 황하를 가리키며 맹세했다.
秦大夫繞朝諫曰:「士會,晉之謀臣,此去如巨魚縱壑,必不來矣。君奈何輕信壽餘之言,而以謀臣資敵乎?」康公曰:「此事寡人能任之,卿其勿疑。」士會同壽餘辭康公而行。繞朝慌忙駕車追送,以皮鞭贈士會曰:「子莫欺秦國無智士也,但主公不聽吾言耳。子持此鞭馬速回,遲則有禍。」士會拜謝,遂馳車急走。史臣有詩云:「策馬揮衣古道前,殷勤贈友有長鞭;休言秦國無名士,爭奈康公不納言。」士會等渡河而東。
진(秦)나라 대부 요조(繞朝)가 간하기를, “사회는 진(晉)나라의 꾀 많은 신하입니다. 이번에 보낸다면 큰 고기를 강물에 놓아주듯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수여의 말을 가볍게 믿으시고 지혜가 많은 신하를 적에게 보태주려 하십니까?” 하니, 진강공이 말하기를, “이 일은 과인이 맡긴 것이니 경은 의심하지 말라!” 했다. 사회와 수여가 진강공을 작별하고 길을 떠나자 요조가 황급히 수레를 몰아 쫓아와서 가죽 채찍을 사회에게 주며 말하기를, “그대는 진(秦)나라에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고 업신여기지 마시오. 다만 주공께서 내 말을 듣지 않으셨을 뿐이오. 그대는 이 채찍으로 말을 쳐서 속히 돌아가시오. 지체했다가는 화를 당할 것이오.” 했다. 사회가 절하여 감사하고, 수레를 몰아 급히 달아났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말에 채찍질하여 옷을 날리며 앞으로 달려와, 은근한 정으로 친구에게 긴 채찍을 선물하고는, 진(秦)나라에 인물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진강공이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했다. 사회와 수여가 황하를 건너서 동쪽으로 왔다.
未知如何歸晉,再看下回分解。
어떻게 진(晉)나라에 돌아갔는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