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9일(화) 06시, 신부님을 포함해서 33명 출발했습니다.
1.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
1) 한국천주교회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적게는 1만명, 많게는 3만명의 순교자가 있지만,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는 2,000명도 안 됩니다.
2) 2001년 인천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는 강화도에 '일만위 순료자 현양동산'을 조성해서 한국의 순교자들, 특히 무영순교자들에게 봉헌했습니다. 또 이곳은 인천교구가 2004년에 설립한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과 가까워서 젊은이들과 자연과 순교자들이 함께하는 '침물긔 순례지' 이기도 합니다.
2. 갑곶순교성지
1) 수도방어의 요충지인 강화는 고려시대부터 외세와 격렬하게 충동한 곳인데, 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병인양요와 병인박해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정부가 프랑스 신부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기 위새 갑곶 돈대로 상륙,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습니다.
조선군대의 격렬한 항전으로 프랑스 군은 후퇴했지만, 그 때문에 강화지방에 병인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박해로 1868년 최인서, 장치선, 박서방, 조서방 등이 강화 진무영에서 순교했고, 1871년 최순복, 박상손, 우윤집 등이 강화 갑곶진두에서 효수되었습니다. 성지에는 순교자 3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2) 또 여기에슨 아버지 박 바오로를 본받아,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순교자들의 삶을 정리하며 살았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1830-1911)의 묘가 있습니다.
3. 진무영순교성지
1) 강화 진무영은 조선시대 해상경비 임무를 맡았던 군영이었고,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였습니다.
2) 강화가 천주교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39년 기해학해를 겪으면서였습니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 강화 관청에서는 천주교인들에 대한 심한 고문이 자행되었고, 서울 애오개 회장 최인서요한, 장주기 성인의 조차 장치선, 박순집의 형 박서방, 조서방등이 진무영에서 순교했습니다.
4. 성체순례성지(김포성당)
1) 인천교구 2대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2015년 10월 16일, "성체성지 선포에 즈음하여" 하는 서한을 발표하고, 11월 1일 김포 옛 성당을 "성체성지"로 선포했습니다.
2) 김포 옛 성당 순례와 성체조배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5. 의정부교구 행정성당
1) 행주성당은 1899년 약현성당(현 서울 중림동) 의 공소로 출발했는데, 1909년에 명동성당, 약현성당에 이어 세 번째 본당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근현대 순교자로, 하느님의 종들인 이순성 안드레아 신부, 윤의병 바오로 신부가 사목한 곳입니다.
2)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특별한 영적 유대로 결합되어있고, 우리 교구와도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서, 우리 교구 성모당의 성모동굴 복제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6. 수원교구 구산성지
1) 이 성지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 포함 9명의 순교자 묘가 있습니다.
2) 1830년 김성우 성인과 동생들, 덕심, 윤심 형제들을 통해 뿌리내렸고 교우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더 잘 하기 위해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특히 김성우 성인은 1836년에 입국한 모방 신부를 집에 모시고, 한글과 풍습을 가르쳤으며, 박해 속에서도 교회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사하면서 전교회장직을 수행했습니다. 포도청에 압송되어 모진 고문 속에서도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오." 라는 고백과 함께 1841년 4월 29일 48세의 나이로 순교했습니다.
7. 수원교구 남한산성순교성지
1) 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고, 신유박해 때는 한덕운 토마스가 순교했습니다. 기해박해와 병인박해를 거치며 약 300명의 교우가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했지만, 그분들 중의 36명만 알려져 있습니다.
2) 병인박해 때 백지사형이 시작되었는데, 너무 많은 교우들이 잡혀 오니까 피 보는 일에 진저리가 나서 쉽게 죽이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