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10계명

[마음나무]

협상의 10계명(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의 기술) 저자:전 성철, 최 철규

글쓴이: 한 일영 수석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지난 7월 미국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CNN의 한 토크쇼에 나와 “북한은 내가 상대해 본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협상가들 가운데 하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덧붙여서 파월 전 장관은 “만일 당신이 지금까지의 북미 협상과정의 역사를 보게 되면 북한의 협상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당신을 미치도록 만들고, 당신의 성급함을 이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북한은 핵무기를 이용하여 미국와의 외교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등 협상에 있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같은 민족인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최근 FTA 협상에서 크게 개선됐지만, 우리나라는 늘 협상에서 약점을 보여온 것으로 기억된다. 정부간 펼쳐지는 협상은 물론이고, 외국기업과의 협상과 심지어는 포커판에서 벌어지는 개인 대 개인의 협상에서도 우리나라는 늘 약자였다. 한 때 심심풀이로 하던 라스베가스 포커판에서 돈을 잃고 상심하던 필자가 돈을 엄청나게 따 즐거워하는 중국인을 몹시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원래 협상에 약한 국민은 아닐까 상심하면서.
본 서적은 협상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협상을 예술의 차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예술처럼 같은 인풋으로 천차만별의 아웃풋이 나오는 분야가 아니라, 과학처럼 일정한 인풋이 있으면 대개 일정한 아웃풋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골프에서 좋은 샷을 날리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라는 일정한 인풋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협상도 연습을 하고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오랫동안 협상을 예술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노력보다는 재능이 중요하다는.

그러다가 1970년대를 전후하여 윌리엄 유리, 로저 피셔, 부르스 패튼 같은 하버드 로스쿨,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협상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에 ‘협상 열풍’이 일어났고, 이 연구들로 인해 협상이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협상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본 서적의 저자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과 최철규 부원장도 을 설립하여 이 연구들을 기반으로 협상의 기본적 원리와 접근법 10가지를 ‘협상의 10계명’이라 하여 가르치고 있으며, 이번에 서적까지 출판하게 됐다. 작게는 생떼를 쓰는 아들, 딸과의 협상에서 점심식사는 어떤 메뉴로 할지에 대한 협상, 크게는 수천억원의 매출과 관계한 협상과 국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FTA 협상 등 세상은 협상으로 가득차 있다. 이렇게 협상을 잘 하는 비결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상을 잘 살아가는 비결을 소개할까 한다.

제 1계명 : 요구에 얽매이지 말고 욕구를 찾아라
많은 사람들이 협상을 할 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상대방의 욕구가 아닌 요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요구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욕구는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칫 상대방의 욕구를 읽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목이 말라 시원한 청량음료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당신의 가게에 와서 “콜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고 치자. 콜라는 달라는 것은 그의 요구다. 그런데 마침 당신의 가게에 콜라가 다 떨어졌다면? 당신이 만일 그의 요구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콜라가 없습니다.”라고 할 것이고, 협상은 거기서 끝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의 욕구는 무엇인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원한 청량음료 하나를 마시고 싶은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의 욕구에 관심을 가진다면 “콜라가 없습니다.”로 끝내지 않고 “그런데 시원한 사이다는 있습니다.”라며 그의 욕구를 자극할 것이다. 아마도 그는 사이다로도 충분히 목을 축을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협상이 타결되는 것이다.

제 2계명 :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창조적 대안을 개발하라
사람들은 협상을 할 때 단 한 가지 방법만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제 1계명처럼 서로의 욕구를 찾아냈다면 서로의 욕구에 맞는 대안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대안을 협상 전문 용어로 ‘창조적 대안‘이라고 한다.
창조적 대안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평화협정 체결 협상이다. 1967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불과 6일만에 이집트가 항복을 하고 양국은 휴전에 들어갔다. 그 후 양국은 불안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평화협정 체결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의 처리 문제로 타결되지 못했다. 이집트는 무조건 100% 반환을 요구했으나, 이스라엘은 일부만 반환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 차이로 인해 협상은 타결되지 못하고 1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1978년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양측이 다시 만난 가운데, 양측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욕구를 만족시키는 창조적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집트의 욕구란 전쟁의 패배로 땅에 떨어진 자존심 회복을 위해 잃어버린 땅을 100% 찾는 것이었던 반면, 이스라엘의 욕구는 이집트와 자국 사이에 완충 지대를 원했던 것이다. 이때의 창조적 대안으로써 “시나이 반도는 100% 반환하되 유엔 평화유지군을 주둔하는 것”을 제시하였고, 양측의 욕구를 만족시켜 결국 11년의 긴 협상은 무난히 타결될 수 있었다.

제 3계명 : 상대방의 숨겨진 욕구를 자극하라
모든 협상에서 양쪽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양측 모두에게 있어 ‘경제적 이익’이 가장 큰 욕구라면 제로섬에 의해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능력이 바로 ‘상대방의 숨겨진 욕구를 자극해 설득하는 것’이다.
2008년 1월 한국석유공사와 삼성물산이 연합해 멕시코만 유전 인수에 성공한 사례를 보자. 이상한 것은 경쟁자인 미국의 아파치와 스폰사보다 낮은 가격으로 입찰하고도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한국의 컨소시엄이 멕시코만 유전의 주인인 테일러 에너지사 CEO의 숨겨진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테일러 에너지의 설립자는 고 패트릭 테일러로서 고학생을 위한 장학사업 등 많은 사회사업을 했으며, 현재의 CEO 필리스 테일러 역시 남편의 회사를 이어받아 사회사업을 중시하였다. 이런 정보를 입수한 한국 컨소시엄은 인수 제안 시 회사연혁에 설립자의 사회사업 공적을 포함시키는 한편, 인수 이후에도 사회사업을 지속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이런 제안 덕분에 테일러 에너지사의 ‘사회 기여’라는 숨겨진 욕구를 자극했고, 인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 4계명 : 윈윈 협상을 만들도록 노력하라
협상이란 이렇게 숨겨진 욕구들을 자극함으로써 상대방의 본래 욕구를 희석시키고 그를 통해 상대방이 지닌 융통성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협상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윈윈 협상’을 성립시키는 기초 작업이 된다. 좋은 협상이랑 결코 상대방을 쥐어짜서 나의 이익을 취하는 과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협상을 통해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협상에 성공해놓고도 결과적으로 오히려 손해를 볼 때도 있다.
‘상대를 이기기만 하는 협상‘이 얼마나 큰 손해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승전국들은 패전국들을 상대로 전쟁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협상을 벌였다. 승전국들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했고, 협상은 일방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는 동안 패전국들은 배상금을 다 갚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까지 파탄을 맞게 되었다. 승전국들 역시 배상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또한 패전들의 어려움은 승전국들에 대한 원한을 낳았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 5계명 : 숫자를 논하기 전에 객관적 기준부터 정하라
협상에서 객관적 기준에 먼저 합의하는 것도 합리적 협상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제로섬이라고 하는 기초적인 협상의 결과 때문에 서로 협상상대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협상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 의심의 눈초리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게 객관적 기준이다.
객관적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중 먼저 ‘시장가격’이 있다. 현재 시장에서 매매되고 있는 일반적인 수준의 가격을 말하는 것으로 아파트 매매 시 인터넷에 기재되어 있는 가격이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다. 둘째로 흔히 쓰이는 것이 ‘제3자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다. 제 3자에게 기업의 가격을 매기게 한다든지 주택의 경우에는 감정사로 하여금 가격을 결정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세 번째로 세월의 지혜가 축적된 결과인 ‘관례’라는 것도 좋은 기준이 되는데, 예를 들어 합작법인이 연구개발한 기술을 합작 파트너가 도입하고자 할 때 ‘업계관행’인 25% 수준 같은 식으로 협상 기준을 삼을 수 있다.

제 6계명 : 합리적 논거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라
협상은 기본적으로 데이터와 논리의 게임이다. 훌륭한 협상가는 큰소리로 상대방을 협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R&D(Rationale & Data), 즉 합리적 논거를 많이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을 단순하게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논거를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훌륭한 협상가다. 이런 합리적 논거는 협상대에서 지렛대 역할을 하여 큰 힘을 발휘한다.
물론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되는 가장 유용한 근거는 객관적인 데이터이다. 예를 들어 연봉 협상 시 다른 회사가 제시하고 있는 구인조건과 연봉 수준에 관한 데이터라든지 전문가나 학자가 제시하고 있는 논거 등이 있다. 다만, R&D는 협상 테이블에서 바로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결국 협상은 많이 준비하는 자가 주도권을 쥐게 되어 있다.

제 7계명 : 배트나를 최대한 개선하고 활용하라
동대문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만일 당신이 찾는 물건을 파는 가게가 딱 한곳뿐이라면 당신의 협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가게에서도 얼마든지 같은 물건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의 협상력은 강해진다. 반면, 가게 주인은 어떨까?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물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면 강한 협상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면 협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협상에서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가 중요한 이유다. 배트나란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대신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을 말한다. 또한,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양보하느냐 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배트나의 수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배트나를 끊임없이 개선에 나가야만 협상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프랑사의 할인점 체인인 까르푸는 2006년 한국에 있는 모든 점포를 이랜드에 팔고 완전히 철수했다. 그런데 업계에서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그들이 아주 좋은 값을 받고 성공적으로 매각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배트나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적절히 알린 덕분이었다. 1996년 한국에 진출한 까르푸는 2005년 롯데마트와의 합병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전혀 뜻밖의 모습을 보였는데, 점포 수를 계속 확대했던 것이다. 사실 어떻게 하면 한국까르푸의 인수가격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물밑에서의 고민 결과였다. 인수의향을 가진 기업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 이마트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당시 이마트는 롯데마트와 까르푸가 합병하더라도 시장 1위인 이마트와 큰 차이를 보여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까르푸는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 신규점포 개점을 통한 규모 확대였고, 매각이 공식화되자 이마트도 본격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이랜드까지 인수전에 끌어들여 결국 이랜드에 인수되었는데, 이 협상과정에서 이마트와 롯데마트를 배트나로 활용하여 제값을 받고 매각하게 된 것이다. 배트나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적절히 사용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협상법으로 ‘협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그 외에도 제 8계명 : 좋은 인간관계를 협상의 토대로 삼아라, 제 9계명 : 질문하라, 질문하라, 질문하라, 제 10계명 : NPT를 활용해 준비하고 또 준비하라 등 협상의 10계명을 통해 과학적 협상법에 대해 본 서적은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협상의 10계명을 실제 사례에 어떻게 활용하는 지 케이스 스터디 4건도 제공하고 있다.

본 서적은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협상은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협상에 주눅이 들었던 것은 협상을 과학이 아닌 예술이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다. 좋은 협상가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이다. 하지만, 협상에는 그 안에 원리와 법칙이 있다. 그리고 원리와 법칙을 이해하고 많은 연습을 하면 협상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과학적 협상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선진국은 이미 약 30년전부터 협상의 이러한 과학적인 특성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효과적인 협상법을 만들어 나갔다. 그 결과 교육을 통해 그 능력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것이고, 능력이 향상될수록 결과 역시 좋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협상은 과학이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첫 발자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