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우승택 금강경<서론> 강론 중에서
우승택 금강경<서론>
유식은 우리나라 스님들이 강원에서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유식은 중생의 입장에서 마음을 바라 본것이고 기신론은 보살의 입장에서 마음을 바라 본 것이기 때문에 스님들은 강원에서 유식을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금강경은 강원에서 모든 스님들이 공부하고 재가불자들도 왠만하면 모두들 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나도 쫄딱 망한 다음 원인을 찾기 위해 금강경을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이 책에 모든 것이 다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면 할수록 좀 더 공부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발원도 했다. 강의 제목은 32가지 경제지표로 배우는 금강경으로 정했다.
금강경은 32분으로 나눠져 있다. 금강경뿐 아니라 모든 부처님 법문에 32상 타파하고 여기에 속지 말라는 말씀을 끊임없이 하고 계신다. 부처님 상호가 32상 80종호다. 저 사람 상이 좋다 나쁘다 전부 이 말이다. 부처님께선 그런 데 속지 말라 그러신 것이다. 32는 불교에서 중요한 숫자다. 그래서 나도 경제지표 32가지를 들고 나왔다. 경제방송 들으면 무역수지가 어떻고 미국의 소비자 신뢰지수 판매지수 자동차 판매지수 수출입동향 GDP 이런 것들이 계속 나오면서 저런 것들이 도대체 주식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는데 상관이 있다. 경제를 아는데 금강경을 공부하는 이유가 있다.
32상 80종호 – 전륜성왕과 부처 될 이의 몸에 나타난다는 32가지 상호와 이를 다시 세밀히 나눈 것.
금강경에서 제일 먼저 고민하는 것은 역시 마음 心이다. 이 놈 하나 다스리지 못해 모든 화가 생기고 윤회에 빠진다. 지난 번 유식공부 했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유식에선 유식 3성으로 표현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의타기성이다. 다른 것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어떤 조건 하에서 일어난다. 이 조건이란 것이 바로 연기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연기와 무아 딱 2가지였다. 조건 지어 일어나는 연기 즉 인연으로 일어나는 것들을 우리가 착각해 내가 있다 남이 있다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매일 있다 없다 병에 걸려 있다.
유식 3성
변계소집성 – 주관의 색안경을 쓰고 대상을 잘못 분별하는 것
의타기성 – 자기의 원인만으로는 나기 어렵고 반드시 다른 연을 가다려서 나는 물심의 모든 현상
원성실성 – 원만히 성취한 진실한 자성. 진여를 말함.
제일 중요한 것이 연기와 무아인데 이 연기는 어떤 조건 하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자꾸 있다고 생각하면 이게 바로 변계소집성으로 가서 있을 有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有病이라 그러셨다. 무아야? 그러면 또 다 결국 공이고 망으로 없는 건 데 뭐 그러면서 빠지는 것이 無病이다. 그래서 용수보살은 차라리 아상을 지어 유병에 걸릴지언정 무병에 걸리지 말라 그러셨다. 영가선사도 유병을 피해 무병으로 오는 것은 물을 피하다 불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러셨다. 무병에 걸리면 불교 망한다. 금강경 공부하면 계속 없을 無 아니 非가 나온다. 있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연기로 다른 것에 의존해서 있는 거야 조건 하에 있는 거야. 그래서 여기서 아니 비 자를 그렇게 많이 쓰는 것이다.
용수보살<Nagarjuna> – 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로서 공의 논리를 체계화한 중관파의 시조.
강의 제목을 금강경으로 배우는 32가지 경제지표로 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저도 경전을 통해 제 직업을 공부해봤다. 안 됐다. 말은 그럴 듯 한데 안 된다. 그래서 거꾸로 32가지 경제지표로 배우는 금강경으로 정했다. 유병에 걸린 다음 무병으로 오기로 했다. 경제지표가 경제를 좌지우지 하지만 그 실상은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봄으로 해서 금강경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온다. 무병에 걸리면 대책이 없다. 아무 것도 안 한다. 금강경을 배우기 전에 좀 정리할 필수 한자가 있다. 心如相想法. 금강경 강의 마지막 날 정 끊는 공부를 말할 것이다. 부처님 본생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잘못 알면 불교와 정말 정 끊고 싶다. 心은 다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본생경< Jataka> - 부처님이 전생에 수행자였던 시절에 행한 일을 기록한 설화집.
금강경은 여시아문 如로 시작한다. 금강경에 여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마지막에 가면 부처님이 여여부동하게 살라 말쑴하신다. 탤런트 김혜자 선생님이시다. Tv 드라마 사상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사랑이 뭐길래 프로의 대발이 엄마다. 대발이 엄마가 시간만 나면 하염없이 듣던 노래가 타타타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걸쳤잖소. 우리네 거치른 인생살이… 그 타타타가 如如다. 인도 최대 재벌그룹 이름도 타타다. 그러나 타타타라는 노래의 가사는 굉장히 반불교적이다. 여여가 그렇게 허망하게 살다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 건졌으니 이것으로 되지 않았냐 그러면서 마지막에 허망한 웃음을 날리는 이 노래는 굉장히 반불교적인 노래다. 타타타가 바로 여여다. 여여 항상 그러함이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인데 그걸 못하는 것이다.
여시아문 – 나는 이렇게 들었다.
그 다음 금강경에 자주 나오는 글씨가 범소유상개시허망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相이다. 한 번은 현각스님의 영어 금강경을 듣는데 처음엔 어려웠다. 그런데 찾다 보니 너무 쉬운 것이다. 외국인 스님이 많은 충남 계룡사 갔다. 대봉스님이 주지 분이시다. 상좌스님은 대만 누구는 싱가폴 사람 주방 공양주들만 한국 말한다. 말이 안 되니 저절로 불립문자가 돼 많은 걸 배웠다. 스님께 물었다. 전생에 저는 미국 중이었나 봐요 어떻게 한문 금강경은 그렇게 많이 읽어도 잘 모르겠는데 영어 금강경은 이렇게 쉬워요? 대봉스님은 열반하신 숭산스님 제자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여러 나라 언어가 있는데 영어로 된 것이 제일 명확하다 그러신다. 왜냐하면 한자 我는 아로 끝나지만 영어는 I my me 해서 굉장히 어미 변화가 잘 돼 있기 때문이라 그러신다.
숭산스님<1927~2004> –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데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영어가 그런 장점도 있지만 이럴 수도 있다. 학창시절 영어사전을 찾아 본 횟수가 옥편 찾아본 횟수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영어사전은 찾는 훈련이 돼 있다. 그러나 서로 相 자 옥편에서 찾아본 기억 한 번도 없을 수 있다. 너무나 친구들 이름에도 있고 내 이름에도 있고 너무나 흔해서 아 저거 서로 상 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문 명확히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금강경을 공부든 무슨 공부든 영어로 하는 것처럼 딱딱 떨어지는 것이 없다.
相
그런데 불교경전에 나오는 相은 마음 혹은 생각이다. 머리 속으로 해내는 생각이 아니라 경험이나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컵 보면 이것은 컵이다 하고 내 마음 속에 그리는 이미지다. 그러니 서로 相이라 하지 말고 마음이라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쉽다.
想
또 하나는 생각 想이다. 똑같은 생각이지만 이 상은 지식이나 정보를 통해 들어온 생각이다. 학교에서 2의 자승=4. 8x7=56 이렇게 탁 생각이 나는 것이 바로 생각 상이다. 8에다 뭘 곱하면 56이 되지? 7이요. 이렇게 탁 생각이 나는 것이 생각 상이다.
法
또 하나 법이다. 내 마음에 내 눈과 귀에 들리는 모든 것 길다 짧다 예쁘다 못생겼다 갖고 싶다 버리고 싶다 평가하는 모든 것이다. 와 크다 폼난다 아름답다 예쁘다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다. 저 사람 참 멋지다 멋지긴 뭐가 멋져? 각자가 갖고 있는 그런 것이 법이다. 법하면 민법 형법 그런 경우도 있지만 경전에 나오는 법은 자기 마음 속에 그려지는 대상이다.
데이터 뒤에 숨은 논리를 찾아내는 눈
적벽대전 사실 이 영화 보지 못했다. 32가지 경제지표를 통해 금강경을 공부하자 그렇게 제목을 잡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사실 80까지 살지 90까지 살지 잘 모른다. 예전에 율곡 선생님이 인생에 3대 불행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첫 번째 소년 등과 두 번째 중년 상처 세 번째 불행은 노년 궁핍이다. 노년궁핍이 사실 제일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우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할지 모르는 자손 세대들은 더 현명해져야 한다. 금강경 얇은 책이지만 가장 많이 읽었다. 그 다음 많이 읽은 책이 삼국지다.
제갈공명과 노숙
제갈공명 하면 신출귀몰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오랫동안 내 마음 속 우상이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나으신 분이다. 하지만 이 분 평생 쑈로 사신 분이다. 그 유명한 동남풍 적벽대전도 하늘에 기도해서 한 것이 아니다.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무찌르는데 어떻게 무찌를 수 있나 해서 서로의 손바닥에 글을 쓴다. 불 火 자다. 서로 보고 맞다 한다. 불로 공격하면 되지만 바람이 동남풍이 아니라 북서풍이라 답은 아는데 답을 실행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오래 누워 있던 주유에게 내가 동남풍을 불게 해주겠다 말하고 제단을 쌓고 제를 올리고 3일 기도해서 바람이 불게 한다. 자기는 조자룡 배를 타고 도망가고 빨리 조조군을 공격하라는 내용이 삼국지 적벽대전이다.
하지만 실상은 부하들 풀어 정보를 입수한다. 바람이 일어나기 전 징조를 가르쳐주는 사람에겐 큰 상을 주겠다 하니 한 노인이 말한다. 바람은 일년에 3~4일 정도 바뀌는데 바람이 바뀌기 시작하면 미꾸라지가 수면 위로 튀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동남풍은 바로 지금의 무역풍이다. 큰 바람이 불면 높이 튀어오르고 작은 바람이 불면 조금 뛰어오릅니다. 그러면 3~4일 내로 바람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그런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하고 공부한 다음에 주유한테 가서 쑈를 하는 것이다. 3일 동안 기도하다 바람이 바뀌니까 하늘에 기도해서 된 것처럼 된다. 이 사람은 굉장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어떻게 보면 변계소집성 쪽으로 가서 공부하는 사람이지 신출귀몰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현상과 현상 사이엔 분명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데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논리를 읽어내는 힘이 있던 것이다. 제갈공명은 도인처럼 망해가는 나라를 살린 것이 아니고 공부를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유명한 분이 한 분 계시다. 명문가 인촌 김성수 선생 집안이다.
인촌 김성수<1891~1955> - 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언론인 독립유공자.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경성방직 고려대학교 설립자.
다들 명문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집이 명문가가 된지는 불과 100년도 안 된다. 인촌 아버지는 굉장히 가난했다. 평생 새우젓 장사를 했다. 원래 전북 고창 분이다. 전남 담양으로 머슴 살러 간다. 외할아버지가 보니 괜찮아 딸과 결혼을 시킨다. 인촌이 부통령이 됐어도 새우젓 장사를 계속하다 돌아가셨다. 어느 날 인촌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끼룩 끼룩 열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를 듣는다. 아니 쟤들이 왜 이리 빨리 왔나? 그때 돈을 벌어 아들 공부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러기와 돈이 무슨 상관이 있나? 친정인 담양에 가서 돈을 다 빌려온다. 조선시대 이미 추수하면 쌀로 갚는 지금의 선물환 거래 입도선매가 있었다.
입도선매 – 벼를 논에서 거두지 않은 채로 팔아버리는 일
인촌 어머니는 기러기가 20일 정도 먼저 왔다는 것을 알고 흉년임을 안다. 추우니까 20일 먼저 오지 않았겠나? 분명히 냉해가 들어 싸그리 흉년이 날 것이다 아신 것이다. 그리고 돈을 빌려준다. 못 받는다는 걸 알고 돈을 주는 것이다. 예상대로 흉년이 들었다. 그러나 갚을 쌀이 없다. 괜찮아 다음 해 이자 처서 줘요. 그 다음 해 받는다. 한 달 받을 이자를 1년 2개월이나 이자를 받으신 것이다. 그것이 그 집안 요즘 말로 종자돈이 된 것이다. 그 돈으로 경성방직도 만들고 중앙중고등학교도 만들고 거기서 3.1운동도 다 주도하고 동아일보사 경성방직 그런 것이 다 인촌 선생 어머니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기러기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은 인촌 선생 어머니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갈공명의 미꾸라지 얘기나 김성수 선생 어머니의 기러기 얘기나 모두 데이터 뒤에 숨어 있는 논리를 찾아내는 밝은 눈이다.
남들이 못보는 것을 본다는 게 바로 있는 그대로 본다는 여여다. 옛날 결혼도 일찍했으니 연세 먹어야 얼마나 먹었겠나? 타고 났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못타고 났다. 그런데 저런 것을 후천적으로 갖게 해주는 가르침이 바로 금강경이다. 금강경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을 부셔버린다. 어떻게 보면 잔인하고 굉장히 폭력적이다. 다 까 부순다. 참 무섭다. 금강경 공부하려면 일단 지금까지 생각하던 내가 내가 아니란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기가 걸음마 처음 배우려면 한배 뒤집기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을 내가 떠오르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하라는 것이다. 나란 생각을 버리고 다른 각도에서 하는 것이다.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아 성적도 별로 신통치 못했던 이 놈이 또 하고 계속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여하게 세상의 흐름에 맞게 모든 것이 다 된다.
우리 몸은 이미 다 안다. 금강경이나 스님들이 말하는 점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데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알고 있다는 것만 다 버리면 되는데 바보 같이 못 놓는 것이다. 한 방에 다 놓으신 분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혜능스님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금강경에 도전한다.
우리 어머니도 금강경 잘 모르시는 분이다. 이 작은 책 한쪽은 금강경 한쪽은 능엄경이 써 있다. 예비고사 점수라도 높아지는 줄 알고 정말 열심히 들고 다녔다. 이 작은 복주머니에 신묘장구대다라니도 있고 엽전과 칠보도 있다. 가짜 부처님 사리도 있다. 좋다는 것은 다 있다. 금강경 수지독송하면 무량대복 받는다고 금강경에 나온다. 15년 갖고 다녔는데 무량대복 별로 안 생긴다. 무량대복 받으려면 금강경 제대로 공부해 부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그 말씀대로 살면 정말 무량대복 들어온다. 자신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에 막 끌려갔지만 지금은 아닌데 하면서 금강경과 다르게 행동하는 나를 보게 된다. 그것만 해도 관이 되는 것이라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어떤 스님이 대단하다 그러셨다. 그런데 대단하면 뭐하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차이가 없는데 그러니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나중에 철들고 우리 엄마도 참 웃기는 사람이다 이런 것 가지고 다닌다고 무슨 예비고사 점수가 올라가나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뭐지 그런 생각으로 공부하게 되니니까 그런 작은 인연을 가질 순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금강경 강의하지만 제가 불교학 교수도 아니고 많은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제가 쓴 심상사경 금강경을 지금 보면 내가 쓴 것 맞나? 왜 이렇게 잘 썼지 그런 생각도 하지만 엄청난 뻥도 들어가 있다.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도 아마 정확하지 않은 것이 있을지모른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시청자 여러분들께 현실생활과 부처님 가르침의 논리를 통해서 금강경을 각자 공부하는 것으로 이번 강의 목표로 삼겠다.
32가지 경제지표 향후 계획
1.무역수지 2.경상 및 자본수지 3.개인과 소득지출 4.건설지출 5.고용동향 실업률 6.GDP 7.내구재 주문 8.베이지 북 9.산업생산 10.산업재고 11.생산성과 단위노동비용 12.소매판매 13.소비자 물가지수 14.소비자 신뢰지수 15.소비자 신용 16.ISM지수 17.주택판매/착공 18.자동차 판매 등등
경제를 움직이는 32가지 팩트들을 말할 것이다. 32가지 중 어떤 것이 제갈공명의 미꾸라지와 김성수 선생 어머니의 기러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사실 금강경의 기본적인 주제는 보시다. 우리도 스님들에게 하안거 동안거 끝나면 보시한다. 보시의 대표적 인물이 기수급고독원의 급고독장자다. 급고독장자도 출가하겠다고 했지만 부처님이 출가를 안 받아준다. 금고독장자는 보시를 하다 하다 집안이 완전히 망한다. 집안이 온통 거덜나게 재산을 다 갖다 바치는데 한 번도 부처님이 그만 가져와라 그런 소리 안 하신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 웃음거리 된다. 나중엔 줄 게 없으니 집안 땅을 파서 흙도 갖다 준다. 당신 스승은 흙도 자시나. 그러거나 말거나 퍼다 준다. 그러나 끝까지 스님이 못 된다.
급고독장자<Sudatta> - 코살라국의 수도 슈라바스티 출신의 대부호로 부처님에게 기원정사를 지어드린 사람.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은 재물을 갖게 되면 그 재물을 가지려는 생각 때문에 남도 위태롭게 하고 자기도 위태롭게 하지만 너는 아무리 재물을 가져도 남도 위태롭게 만들지 않고 너 스스로도 위태롭게 만들지 않으니 너는 돈을 버는 것으로 수행을 해라 그러신다. 70년대 열반하신 청담스님도 그런 말씀하셨다.
청담스님<1902~1971> - 불교정화운동의 선구자. 조계종 2대 종정.
도를 얻고 싶으면 돈을 벌어 봐라. 그래서 돈을 못 벌면 돈은 너희들과 아무 상관도 없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런데 너희들이 돈을 잘 벌면 그것은 도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이 계속 돈으로 보이면 도는 얻되 지키지 못한 것이다.
너희들이 벌은 돈이 너희들 눈에 돌로 보이면 그때야 비로소 얻은 돈을 지켰다고 할 수 있느니라. 그래서 청담스님 제자들 중에 돈 벌겠다 그러다 망한 사람들 많다. 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세간 사람들 괜히 이 뭐꼬 잘 모르는 화두 하나 들고 수행할 것이 아니라 나도 괴롭게 남도 괴롭게 만드는 돈 이것이 도대체 뭐냐? 이것을 갖고 싶어 하는 나는 무엇이냐? 그것을 화두 삼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를 수 있다.
2회. 우승택 금강경<법회인유분 선현기청분> 1 강론 중에서
謀事在人 成事在天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 달려 있지만 일을 성사시킴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와룡 제갈선생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이분 일생 모사재인 성사재천이었다. 謀事在人= 변계소집성. 成事在天=맡기는 任病. 부처님께서는 불성 주인공 부모미생전 그 자리에 맡기라는 말 다 병이라 그러신 것이다. 제갈공명이 아무리 특출해도 자기 부모 복 그릇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한 차원 높아지면 일을 도모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모사재천 성사재인이 된다.
謀事在天=인샬라<Insha’ Allah>
알라가 뜻하는 대로라는 뜻의 아랍어로 일상용어. 주님의 뜻 하나님의 역사다. 그래서 주어진 대로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부처님이 無我임을 밝히기 이전까지 인도철학에서 가장 기본적 개념의 하나로 인간존재의 영원한 핵인 Atman 동양철학에서 우주의 본체인 태극의 맨 처음 상태를 이르는 말인 無極 서양 같으면 Idea 우리 같으면 하늘님 거기서 다 알아서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사람들의 종으로 사주팔자에 묶여 열심히 사는 것이 대부분 성인들의 뜻이었다. 그런데 오직 부처님이 그게 아니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무아를 부르짖고 나오신 것이다.
成事在人=我.
성사재인은 굉장히 노력하고 발전된 我를 말한다. 왜냐하면 일을 성사시키려면 굉장히 발전하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단전호흡 수련도 하면서 하늘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느닷없이 無我라 하신 것이다. 금강경 공부하는데 無我란 개념이 확실히 들어오지 않으면 진도 나가기 어렵다.
우리 보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없다 그러셨다. 당시 제자들 중에도 내 마음 내 몸이 있는데 왜 없다 그러나요? 그래. 몸이 없다는 것은 만물을 낳는 지수화풍 4대로 설명하니 알겠지만 마음은 어떨까? 있지요. 지금 내 마음으로 배우러 왔고 내 마음으로 일하고 내 마음으로 돈 버는데 내 마음이 왜 없어요? 그러면 네가 네 몸 보고 늙지 마라 배고프지 마라 눈 좋아져라 한다고 네 몸이 네 말을 듣겠느냐? 세상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찌 그 마음을 네 마음이라 그러느냐? 이렇게 마음이란 것도 인연에 의해 잠시 합쳐진 것으로 실상은 없는데 네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무아란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칠판 위 無我란 글씨. 무아란 글씨가 칠판이 없다면 존재할까? 무아란 글씨가 없다면 이 칠판의 존재가치가 있을까? 없다. 칠판과 분필로 쓰여진 글씨가 만나 無我란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우리 몸은 칠판에 쓴 글씨다. 그런데 글씨 말고 뭔가 하나 더 있다. 부처님께선 그걸 허공 같다 거울 같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어렵게 설명하신 것이다. 이렇게 글씨에만 집착한 것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다. 그런데 아! 이 글씨는 칠판의 존재가 있어서 쓴 것이라고 칠판의 존재까지 생각한 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세계다. 칠판에만 집착하면 無病인 원성실성에 걸린 것이고 글자에만 집착하면 有病인 변계소집성에 걸려든 것이다. 이렇게 칠판과 글씨가 서로 의존해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연기고 공이다.
無我래 그런 것이 아니다. 수행을 통해 정말 無我가 인정되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2단계 모사재천 성사재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다. 이 말을 제일 쉽게 풀이하자면 Just do it! No Expectation 그냥 해 바라지 말고 그런 말이다. 이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세계다. 분필 또는 글자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칠판 입장에서 하라는 말이다. 칠판에 성스러울 성 자 쓴다고 칠판이 성스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어지러울 난 자 쓴다고 칠판이 난잡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 머물지 말고 그냥 해! 그러면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오는 이상한 현상들이 모두 사실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내가 있다 생각하니 계속 속으며 사는 것이다. 지난 시간 여여를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바보같이 사는지 한 번 보자. 처음 여자라 봤든 게 여자인가? 꽃과 나비와 줄기다. 이런 것들이 조작이 돼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나무 밑 새 3마리도 여자로 보인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말 2마리와 새와 산. 백합꽃과 잎. 할머니=폭포 옆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의 누드. 할아버지=백마 탄 농부의 모습. 학자의 모습=아기를 안은 엄마와 할아버지와 강아지 모습. 성모상=세 천사와 밀짚 모자를 쓴 아빠와 터번을 두른 엄마와 노파. 자매가 서로 포옹한 장면. 착시를 일으키는 미술작품을 이야기한다기 보다 실제 우리가 보는 모습들이다. 이것을 계속 아니 非자를 쓰며 우리를 나무라시는 책이 금강경이다.
○ 法會因由分 第一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圓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법회가 열리게 된 이유.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 언제인가 한 때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대비구 1250인과 더불어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식사시간이 되어 옷을 입으시고 발우 그릇을 지니시고 사위대성으로 들어가셔서 걸식 곧 탁발을 그 성안에서 차례차례 하시고 다시 본래의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오셔서 식사를 마치시고 옷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 善現起請分 第二
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希有世尊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世尊 願樂欲聞
수보리가 일어나 묻다.
그때 수보리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편단우견 하시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놓으시고 합장하여 공경하는 자세로 부처님께 이르시기를 -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보살들을 잘 보호하시고 잘 챙기시고 해야 할 일을 위촉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우리 착한 남녀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심하고자 한다면 그 마음을 어디에 두고 또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나이까?
부처님이 탁발에 왜 수보리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희유하십니다 그러셨을까? 도대체 앞 부분의 부처님 어떤 모습에 그렇게 놀랐을까? 부처님도 참 대단하시다. 저 정도 되면 제자들이 갖다 주고 연세도 드셨을 텐데 직접 사위국 성안으로 탁발하러 가셨을까? 성불도 다 하셨고 열심히 해라 너희들도 깨달으면 나처럼 된다 그러니 깨닫기 전까지는 모두 고생해 하고 우무 것도 안 하셔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으셨을 텐데 부처님은 직접 자신이 하셨다. 성중에 들어가서 차제걸이 하셨다. 부자 집 가난 한 집 순서대로 차례로 걸식하셨다. 부자 집 음식만 탐착하실까 봐 7집씩 쭉 다녀야 하는 규칙이다. 그 규칙을 부처님도 다 지키셨다는 말이다.
이걸 보고 수보리가 깜짝 놀라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다. 부처님께서는 본인이 직접 탁발하셨지만 머리 속엔 하나도 번뇌가 없었다. 탁발할 때는 탁발하시고 밥 드실 때는 밥 드시고 발 씻으실 때는 발 씻으시고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하셨다. 우리처럼 밥 먹으며 회사 걱정하고 공부하면서 돈 걱정하고 이렇게 번잡하게 살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Mindful 항상 깨어 있는 모습에 장로 수보리가 쇼크를 먹었다는 말이다. 매 순간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에 쇼크 받았다는 말이다. 사실 집중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우리도 우리 생활 일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얻어야지 부처님 가르침 얻겠다고 자기 할 일 안 하게 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세족이 부좌이좌 팔리어 경전은 법문을 앞두고 부처님 발에 잎을 맞추는 의례가 있었기 때문에 미리 발을 씻으신 것이란 글이 있다.
귀의불양족존 –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급고독장자는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진 못했다. 보통 절에 가면 신중단 보고 반야심경 한다. 신장님들께 독송하는 것이다. 급고독장자는 대대로 부자였다. 부처님께 항상 뭔가 바쳤다. 그 많은 재산 땅 다 갖다 준다. 그런데 부처님 고맙다는 소리 한 말 안 하신다. 그만 갖고 와 너도 먹고 살아야지 그런 말씀 전혀 없다. 그러자 집 지키던 신장이 화현해 급고독장자에게 나타나 대대로 내가 이 집 신장이었는데 이대론 안 되겠다 절단 나겠다 돕는 것도 어느 정도지 하며 충고한다.
그러자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신장 놈 하면서 신장을 쫓아낸다. 급고독장자는 수행을 해 수다원과에 이미 오른 분이라 꾸짖을 수 있었다. 신장은 제석천을 찾아가 하소연 한다. 그러자 대홍수로 잃은 급고독장자 선대의 재물을 찾게 해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찾은 재물을 급고독장자는 또 갖다 준다. 마침내 부처님께서 버림으로써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니라 말씀하시며 칭찬하신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더 큰 부자가 된다.
수다원과<Srotapanna> - 열반의 흐름 속에 든 자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머리로 하지 않고 몸으로 딱 나오게 되면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당당한 모습에 희유하십니다 그러면서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우리도 당신처럼 살고 싶은데 도대체 당신 마음은 어디 머물러 있고 당신 마음은 도대체 무엇을 조복시켰길래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은 마음이 어디가 있는지 굳이 표현하자면 칠판에 가 있는 것이다. 금강경에 부처님 지칭하는 말로 불 세존 여래 我란 말을 쓰신다. 이게 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칠판 위에 임시적으로 그려진 호칭이다. 이렇게 부처님 마음은 항상 칠판에 가 있고 글자는 다 항복 받으신 것이다.
작년 9월부터 한국경제 위태롭다 달라 부족 말이 많으면서 환율이 1600까지 갔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일본 관광객들이 다시 오고 이젠 외환위기가 없을 줄 알았더니 또 생겼다. 3월 위기설 지나니 또 9월 위기설이 나온다. 한국의 화폐가치는 맨날 900원~1600원까지 요동을 친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이런가? 그래서 요즘 많은 이들이 한국의 무역수지에 포커스를 맞춘다. 32개 경제지표 중 첫 번째가 무역수지다. 2008년 1월 처음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자 수출비중이 70% 되는 나라에서 그때부터 외환위기 말이 있었다.
무역수지는 주식시장과 심리에 제일 먼저 반영된다. 2009년 1월 36억불 적자 났다. 그래서 환율이 1500원 난리가 났다. 그런데 3월 단군이래 월간단위 46억불 최대 흑자가 났다. 수출은 21% 수입은 36% 줄어서 생긴 흑자다.
수출이 늘어서 라기 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원자재 수입이 큰 폭으로 줄었다. 흑자라면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무역수지는 주식시장과 관련이 있나? 무역수지 잘 보고 주식 펀드 하면 잘 된다는 말은 부처님이 제발 갖다 버리라는 相이다.
<일본의 월별수출추이> -49.4% 작년 28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은 동경 올림픽 이후 모든 돈을 다 버는 것 같았다 그런데 28년 만에 적자가 났다. 그러면 28년 동안 주가가 올랐나? 28년 동안 모두 부유하게 살았나? 아니다.
<KOSPI 종합주가지수 주봉> 한국은 흑자 나면서 주가가 1300까지 쭉 올랐다. 나라가 잘못될 확률이 줄어든 것이다. 벌었건 쓰는 것을 줄였건 국가 부도사태 날 확률이 줄어든 것이다.
<일본니케이 지수 월봉> 일본은 28년 만에 무역수지가 적자가 났는데도 주가는 올랐다. 어떤 때는 무역수지가 주식시장과 가장 관련이 있지만 어떤 때는 관련이 없다.
냉해는 기러기 울음 소리로도 알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아지랑이로도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사과 나무 개미 새 벌레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현상과 현상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누구한테 들은 대로 책에서 본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게 대표적인 상이다. 책 대로 과거에 했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보는 게 제일 좋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108배 해서 있는 그대로를 볼 수도 있다. 또 제갈공명처럼 사람들 풀어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전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봤던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이나 경제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섹터는 무엇인가? 보아도 답은 나온다.
작년 유식강의로 송구스럽다. 이번 세계경제 위기는 파생상품이나 모랄 헤저드 때문이 아니다. 2000년 IT버블은 IT가 뭔지 모르는 기업에 꿈으로 투자했다 현실과 맞지 않아 버블이 꺼진 것이다.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는 기업들이 IT때처럼 돈을 못 벌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부동산 문제로 미국과 전세계 금융기관이 완전 Stop되면서 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한국은 IMF 때 국가 부도가 났지만 국민이 정신 차려 종합주가지수 200에서 2000까지 올라 왔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미국사람들은 자기들 잘못은 극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불황이었다. 이 불황이 해결되면 미국은 20년 정도 올라간다. 한국도 과거 가공의 IT버블에 투자했던 상황과 전혀 틀리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생활수준 구매수준이 굉장히 틀려졌던 것처럼 중국 인도사람들의 구매력은 앞으로 엄청나게 틀려질 것이다. 구매력 강한 25억 인구들이 저렇게 버티고 미국의 세계 금융시스템이 셋팅이 되면 한국 종합지수 3-4000 간다. 지금 이 고통은 짧게는 올해 말 길게는 내년 말까지 간다 본다. 그러니 어렵다고 우울하게 올랐다고 너무 희망적으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
3회. 우승택 금강경<법회인유분 선회기청분> 2 .강론 중에서
금강경이 총 32분으로 돼 있지만 어떤 스님은 5분이면 끝이다 또는 17분까지 가면 끝이다 또 어떤 스님은 아예 1분이 끝이라 말씀하신다. 부처님께서 핵심적인 내용은 첫 장에 다 말씀하신 다음 중생들이 모르니 계속 부연 설명하신 것이다. 하지만 1~5분까지는 잘 생각해 가면서 들어야 한다.
한국은 지금 달라 부족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3월 무역수지가 46억불이나 났기 때문에 증권시장이 급 반등하게 됐다. 그러나 일본은 28년간 무역수지가 흑자였지만 주식시장과 경제가 매우 나빴다. 그러면 무역수지는 증시나 경제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금강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니 非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의타기성 즉 조건이 갖춰지면 명색이 일어나고 조건이 무너지면 명색도 무너진다는 뜻이다. 이름이나 형상에 휘둘리는 것이 명색이다. 명색이 지점장이나 되는 놈이 그렇게도 못 맞추냐? 그럴 수 있다. 名은 지점장 아빠 사장이란 타이틀이며 色은 내 눈에 보이는 그것이다.
일체 모든 것이 조건이 성립되면 명색이 일어나고 조건이 무너지면 명색이 사라진다. 그게 아니 非다. 그런데 그걸 우린 잘 모른다. 불교가 어떤 때는 참 혼란스럽다. 아니 非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해석하면 굉장히 헷갈린다. 금강경을 쉽게 외우려면 분에 대한 개념을 잘 잡아야 한다.
1분은 법회인유분 2분은 선현기청분 3분은 대승정종분이다.
대승정종분의 핵심은 조건이 일어나면 명색이 갖춰지고 조건이 무너지면 명색이 사라진다 이렇게 테마를 잡았다. 이렇게 금강경의 아니 非는 모든 금강경을 설명하는 아주 기본적인 중요 한자다.
非와 無는 전혀 틀리다. 無는 없는 것이다. 32가지 경제지표로 배우는 금강경은 각자 느끼는 현상 생활을 통해 금강경의 부처님 말씀으로 들어가자는 강의다.
人生無常
인생무상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 허무하다.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가을 낙엽 겨울 비 사라지는 쪽으로 많이 얘기한다. 한자 人生無常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자꾸 허망 허무 있던 것이 없어지고 건강했던 사람이 쇠약해지고 젊었던 사람이 늙어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한자를 보면 無常 항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부처님이 말씀은 사라지고 허망하고 가난하고 궁상맞게 살고가 아니다.
반대로 바보 같은 사람이 똑똑해지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고 몸 약한 사람이 건강해지고 아이가 커 어른이 되고 왜 그렇게 생각을 못하냐는 것이다. 언제부터 불교는 항상 없는 것 가난한 것 없어지는 것만 생각하나? 그래서 부처님은 그런 식의 생각을 단멸상이라 했다.
단멸상 - 아무 것도 없고 끊어져 없다는 생각.
불교를 자꾸 無 쪽으로만 몰고 가 無병에 걸린 것이 단멸상이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無常이라 말했지 이런 말은 안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경제를 통해 금강경을 공부하는 이유가 뭔가? 불교는 가난을 추구하는 종교야 그러니 경제 이런 것 필요 없어 다 번뇌야 그렇게 바보같이 살지 말자는 것이다.
제대로 보고 부처님 말씀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보면 금강경 2분 3분에 모든 게 다 나와 있다. 부처님 가르침에 3법인이 있다.
3法印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부처님 핵심사상이 뭔가? 無常 無我 苦다. 부처님은 모든 존재를 무상 무아 고로 풀이하셨다. 그런데 자꾸 無다 없다 해서 단멸상에 빠지지 말고 3가지 공부해서 잘 되라고 계정혜 3학을 주신 것이다. 불교신자들 그 어려운 신묘장구대다라니 같은 것은 잘 외우면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모르고 산다. 이런 핵심내용들이 금강경에 다 들어 있다.
아무튼 苦를 벗어나 樂으로 가려면 계정혜를 하라는 것이다.
계<Sila> 정<Samatha> 혜<Vipassana>
無常 無我 苦를 극복하는 방법 금강경에서 다 가르쳐주지만 자신이 방법을 정해야 한다. 지난 시간 부자 되려면 원각경 지혜로워지려면 금강경을 읽으라 했다. 왜냐하면 각 경전마다 수호하는 신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원각경을 수호하는 신장님은 이 경을 수지 독송하는 자는 항상 재물이 풍족하고 건강하게 해주겠다 발원하신 것이다.
금강경은 일체세간 천인 아수라 신장이 3번에 걸쳐 발원하신 것이다.
아수라<Asura> -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갈등하면 제대로 못 본다. 아수라 신이 조복했다는 말은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보려면 8년간 장좌불와로 그렇게 수행을 열심히 해야 하나? 부처님은 고행을 해서 득도한 분이 아니다. 부처님은 6년 고행 끝에 득도하신 것이 아니라 고행을 포기하고 우유 드시고 정상적인 생활 하시며 깨우치신 분이다. 그러니 그런 고행은 필요 없다 하신 분이다.
그래서 부처님 성도 전 함께 고행 수도했던 5비구 만날 때 5비구는 타락한 자가 온다 해서 모두 부처님을 싫어했다. 부처님은 이렇게 절대 고행해서 깨달은 분이 아니시다. 우리도 그렇게 고행할 필요 없다. 고행 말고 수행을 해야 한다.
장좌불와 - 드러눕거나 기대지 않고 하는 수행
○ 法會因由分 第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圓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법회가 열리게 된 이유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 언제인가 한때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대비구 1250인과 더불어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식사시간이 되어 옷을 입으시고 발우 그릇을 지니시고 사위대성으로 들어가셔서 걸식 곧 탁발을 그 성안에서 차례차례 하시고 다시 본래의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오셔서 식사를 마치시고 옷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자리에 앉으셨다.
현각스님 법문 보면 금강경은 1분이 다 끝이다 말씀하신다. 항상 깨어 있는 마음으로 잡념 없이 그때그때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금강경 공부하면서 회사일 생각하고 회사일 하면서 금강경 공부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런 식으로 산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신다. 부처님의 이런 당당한 모습을 보고 수보리 존자가 질문하는 것이다.
직접 탁발을 하시고 식사를 마치고 옷을 거두고 발우를 씻고 자리를 펴고 앉았다는 이런 일상적인 내용이 바로 부처님의 본 모습이다. 그 정도 연세 그리고 제자도 그렇게 많은 데 본인이 직접 탁발을 하실 이유가 없다. 아랫사람들이 해 오면 폼 나게 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부처님은 직접 하신다.
食時 식사도 정해진 시각에 하셨다. 부자 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차례차례 7집을 걸식하셨다. 그리고 식사는 거기서 한 것이 아니라 탁발을 해오셔서 절에서 드시고 그릇과 옷을 다 거두고 발을 씻고 법좌에 앉으셨다. 이렇게 모든 행동을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셨다. 우리도 잘 알지만 실천하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걸 보고 수보리 존자가 법문을 청한다.
`
○ 善現起請分 第二 수보리 존자의 회광반조 자세를 배우자
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希有世尊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世尊 願樂欲聞
수보리가 일어나 법문을 청하다.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들 가운데에 있다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한쪽으로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서 합장하여 공손히 인사 드린 후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호해주시고 또 잘 부촉하여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최고의 올바른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려고 한다면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도대체 뭘 봤을까? 부처님이 탁발 안 하다 어느 날 갑자기 가신 것이 아니다. 지금도 태국이나 버마 남방불교에서 보는 것처럼 탁발하러 가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일상적으로 있던 일에 수보리 존자가 갑자기 쇼크를 먹고 희유하다 했을까? 2분은 수보리 존자의 회광반조를 배우자로 정했다. 끼니 때마다 걸식하러 다니니 멀쩡한 집안에 태어나 잘 하는 일이다 꼴 좋다 그랬을 것이다.
부처님 동네 사람들이 저 사람 밥 주지 말라 해서 끼니를 굶은 적도 있고 이교도들한테 밥그릇 차인 적도 있었다.
참 어떻게 보면 궁상 맞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가 그걸 보고 참 희유하십니다 그러면서 끄집어낸 테마가 마음 心이다. 그래서 수보리 존자는 위대한 분이다. 이걸 뭐라 하냐 하면 회광반조라 하는 것이다.
회광반조 –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해 불성을 발견함
증권하면서 지금은 예탁금을 봐야 하나? 아니면 무역수지를 봐야 하나? 아니면 미국증시를 봐야 하나? 하고 모든 대상이 다 밖으로만 향한다.
이 사람을 만나면 좀 나을까? 저 사람을 만나면 더 낫지 않을까? 이 증권회사가 좋을까 아니면 저 증권회사가 좋을까? 하고 전부 대상만 본다. 그래서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가고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본다. 빛은 앞으로만 비춘다.
그런데 회광반조는 일단 자기 자신에게도 빛을 돌려 보는 그 놈을 보는 것이다. 빛을 돌려 비춰보는 것이 회광반조다. 여기서 수보리 존자가 회광반조를 끄집어 낸 것이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나보다 똑똑하고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싶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항상 내 옆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옆에 있다 해도 내 마음이 나보다 낫다고 본 것이지 그 사람이 나은지 훌륭한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꾸 자기한테로 끄집어 들이는 것이다. 중생의 마음과 보살의 마음을 딱 갈라놓고 나도 보살처럼 살려면 내 마음은 어떻게 버려야 하냐며 주제를 안으로 끄집어 들이고 있다.
자기 마음 항복 받고 보살들 마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어떻게 해야 얻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2분이 간단한 분이 아니고 매우 중요한 분이다.
○ 善現起請分 第二 수보리 존자의 회광반조 자세를 배우자
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希有世尊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世尊 願樂欲聞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재 선재라. 수보리야! 네가 지금 말한 바와 같다. 여래는 보살들을 잘 보호하고 잘 부촉하고 있느니라. 너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무르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느니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겨 듣기를 원하옵나이다.
핵심 내용인 마음을 끄집어 내니 착하다 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느냐에 대해선 금강경 전편에 걸쳐 계속 나온다. 그러나 마음을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하는 질문엔 만약 어딘 가 머무른다면 그것은 옳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며 부정하신다. 마음은 어디 머무르면 망하는 것이다. 그걸 스님들이 한 생각이 일어나면 업이 발동한다고 법문 하시는 것이다. 업력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끊지는 못해도 잘 觀해야 한다. 어디도 머물 수 없다는 내용 4분에 가면 바로 나온다.
수보리 마음이 우리 마음 항복 받는 일이다. 이렇게 대단한 수보리 존자도 부처님에게 엄청 깨진다. 지금도 그 마음 하나 보기 위해 산 속 선방에서 묵묵히 정진하는 이름 없는 수행자들 많다.
一合相
인간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봅시다. 맨날 잠만 자는 신랑. 으이그~. <손을 확대해 보면>
10m - 남자와 여자가 같이 공원에 소풍 온 그림. 그래 잘 자! 나는 비행기 타고 하늘을 난다. 아빠!
100m - 고속도로와 부두. 다른 사람들은 요트에 휴가에. 나는 어쩌다 저 인간하고 결혼해서 흑흑!
1Km - 도시가 보입니다. 아! 미천한 중생들. 세상살이의 아옹다옹에서 멀어져 간다.
10Km - 도시의 중심도 보이고 여러 가지가 보이는 군요.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구나! 누가 명품 옷을 입었는지 전혀 구별이 안 된다.
100Km - 시카고의 거대도시 영역. 더불어 호수의 끝이죠. 하늘나라에서 보는 중생계란 이런 것일까?
1,000Km - 상공의 낮은 궤도에서 관찰한 모습입니다. 1000만이 넘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보이지요?
10,000Km –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어두운 바다 갈색의 땅 동쪽으로 도는 지구. 1967년이 되어서야 인간은 지구를 지구 밖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부처님은 다 보셨다>. 겸허 대신… 우주를 정복하고픈 인간의 욕망이 생기죠?
100,000Km – 어? 많이 보던 모습 <10의 8승>.
1,000,000Km – 달의 궤도입니다. 그 작은 달이 저렇게 멀군요 <10의 9승>
10,000,000Km –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입니다 <10의 10승> 삼천대천세계의 三
1억Km – 다른 행성들의 궤도도 보이는 군요. 삼천대천세계의 千
10억Km - <~7AU> 태양계입니다. 다른 행성들은 잘 보이지 않지만 태양 하나는 참 잘 보이네요. 멀리 목성궤도가 보입니다. 삼천대천세계의 大
100억Km – 태양계 행성들 보일 건 다 보입니다. 삼천대천세계의 千
최근 명왕성은 행성에서 제외. 청화스님 스승이신 금타스님 말씀대로 행성의 숫자가 바뀌고 있다.
1000억Km – 태양도 작게 보이는 군요. 삼천대천세계의 世
1조Km – 오직 태양만 보인다. 삼천대천세계의 界. 이런 삼천대천세계가 계속 있다.
10광년 - <3파섹> 텅빈 공간 無
100광년 – 참 넓기도 한 우주 無
1000광년 – 슬슬 은하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無
1만 광년 – 커다란 별들도 전체적으로 봤을 땐 작은 입자 같다. 하나의 구름처럼 된 듯한 모양 無
10만 광년 – 無 <10의 22승> 뭐가 뭔지 모르겠다. 카오스의 세계다.
100만 광년 – 더 넓게 無
1000만 광년 - <3메가 파섹> 그렇게 거대한 운하도 하나의 점으로 無
1억 광년 – 우리 은하도 겨우 보이는 군요. 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하 시제항하사 영위다불? 모래알 수만큼의 갠지스 강이 있고 또 그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알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가 있다.
10억 광년 – 대부분의 공간이 이렇게 비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 먼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뭘 느끼시나요? 三千大千世界!
1m – 사람들의 일반적인 스케일. 10월의 따뜻한 날 한 남자가 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군요. 이 사진의 작은 사각형 안의 공간이 다음 사진 내용이 되는 겁니다. 우리들이 항상 보는 내용. 이 그림을 잘 기억해주세요.
10Cm – 더 조밀한 비율입니다. 우리가 혼자서 스스로를 이렇게 보죠.
1Cm – 손등의 그림을 더 확대한 모습. 손등의 주름은 그만큼 손이 유연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답니다. 돋보기로 볼 수 있는 세계.
0.1Cm - <1mm> 살 아래엔 작은 혈관이 흐르겠죠?
0.1mm – 머나먼 별이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몸이라고 해도 이렇게 확대된 부분은 익숙하지가 않군요.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 땀 구멍에서 삼천대천세계가 열려 보살들이 나온다.
0.01mm – 하얀 림프구 세포. 우리 몸 안에 이런 것이 엄청나게 많지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1 마이크로 m – 세포의 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라는 것이 이해되세요?
1000 옹스트롬<0.1 마이크로m – 0.0000001m> 기다란 분자구조가 얽히고 설켜서 세밀한 DNA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DNA구조는 모든 세포 내의 핵에 존재합니다.
100 옹스트롬 – DNA의 이중 나선구조지요. 업이라는 것! 뭉쳐 있는 것! 조건 지어 있는 것!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은 오직 이중 나선구조로 돼 있다고 합니다. 생선도 나무도.
10 옹스트롬 – 분자단위의 스케일. 업력이라는 말 아세요? 바닷가 방파제 돌들 같지 않으세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네요.
1 옹스트롬 – 원자단위 스케일. 핵 주변으로 전자구름이 보인다. 여시사등항하수 세계가 내 몸 안에?
0.1 옹스트롬 – 탄소원자입니다. 삼천대천세계가 혹시 내 몸 안에?
1 피코m - <0.000000000001m> 원자의 핵. 아무 것도 없어요! 허공 우주 법계! 無 空!
0.1 피코m – 애네들도 뭉쳐 있네요. 그래서 중생이죠. 무리 지어 사는 존재. 眞空妙有!
0.01 피코m –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는 원자의 핵입니다. 부수고 또 부수어도 업이란 놈은 우리만 몰라 그렇지 뭉치고 또 뭉치고… <衆生=무리 지어 산다 거듭 태어난다. 계속 윤회를 한다>
0.001 피코m – 현대물리학에서 최근 탐구하기 시작한 양성자의 안쪽 부분이지요. 이제 묘법연화의 세계 모든 존재의 화려함이 보이시나요? 法華! 사람은 절대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
머리에 털 난 짐승은 도와주지 말라 그런 말 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법화다.
0.0001 피코m – 더 확대해 보면 무엇이 있을까요? 부처님의 화엄경의 세계! 꽃이 만발한 4월 초파일 연등 같기도 하죠? 화려함이 장엄하죠?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죠?
우리는 그걸 모르고 부처는 알고…
법화경 화엄경이 그냥 이름 지은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다 보시고 지으신 것 같다. 대상을 통해 밖을 보는 것은 10의 25승까지 보여주었고 안으로는 -10의 16승까지 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我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원래 우린 없다. 불교의 있다 없다는 절대 변하지 않는 자성이 없다는 것이지 인연으론 있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절대불변의 나는 없지만 단지 조건 지어 있는 나를 무아라 표현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기들끼리 연결돼 있다.
부처님 말씀은 절대 변하지 않는 자성 불성 주인공 아트만 이런 것이 없다는 말이다. 단지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명색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조건이 사라지게 되면 명색이 흩어져 없다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힘이 뭔가?
다 애네들 사이에 존재하는 업력 때문이다. 이것을 의타기성이라 한다.
아트만<Atman> - 인도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의 하나로 인간 존재의 영원한 핵
依他起性
다른 것에 의지해 일어나는 성품이다. 다른 것에 의지하게 하는 힘이 뭐냐? 업력이다. 전기 자석간에 서로 당기는 힘이 있다. 한쪽이 자성을 잃어버리면 저절로 끊기듯 무아가 되면 업의 고리가 끊어져 버린다. 저렇게 뭉치게 하는 힘이 바로 업력 Karma다. 저걸 바꿔주라는 가르침이 3학이다.
우린 알고 보면 저렇게 없고 무상한 데 자꾸 항상하다 생각하고 내가 없는 데 자꾸 있다 생각하며 사니 매사 苦에 휘둘리게 된다.
무상 무아니까 부처님은 고통이 없으셨겠네? 아니다. 부처님도 데바닷다 굴린 돌에 피나고 잘못된 음식 공양에 식중독도 걸리셨다.
데바닷다<Tevadatta> - 부처님의 위세를 시기하여 아사세왕과 결탁하고 스스로 새로운 부처님이 되려다 이루지 못했다.
부처님이 苦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하셨나? 그 유명한 화살을 두 번 맞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들은 바보 같다는 것이다. 독화살을 맞았는데 어떤 독인지 누가 쐈는지 화살촉이 어떻게 생긴지 알기 전엔 내 몸에서 뽑지 말라는 바보 같은 사람을 비유하면서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 당부하신 것이다. 부처님도 우리와 똑 같이 고를 받는다.
아프다 즐겁다 맛있다 신난다 하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느낌은 받지만 느낌 다음으로 이어지는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느낌도 받지만 그 감정에 그냥 끌려가 버린다.
기분 나쁠 때 방 문 열면 공기가 말도 아니게 독하다. 단순히 땀 냄새 담배 냄새 마늘 냄새라고 하긴 아닌 것 같다. 분한 마음 열 받는 마음이 다 그렇게 독하다. 無常 無我 苦인데 고를 다루는 방법을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느낌이 와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 금강경의 참 주제다. 반야심경도 똑 같다. 오온이 다 비어 있음을 알고 일체 고통을 넘는다 그랬다. 끝은 일체 고를 다 없애는 것이다. 부처님도 우리처럼 형체를 다 보시고<色> 느낌을 받으시고<受> 생각도 일어난다<想>.
그런데 그 다음 일어나는 行을 끊어버린 것이다. 감정에 들러 붙어버린 것이 行이다. 그렇게 부처님은 우리와 달리 쓸 데 없는 아뢰야식을 만들어 놓지 않는 것이다.
오온 – 생멸 변화하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색수상행식>
아뢰야식 – 일체 법의 종자를 갈무리하고 일으키는 근본 심리작용.
금강경은 우리가 보던 대로 보고 듣던 대로 듣던 습관적으로 행동해 오던 모든 것들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하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젠 우리도 부처님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자.
4회.우승택 금강경<대승정종분> 강론 중에서
금강경의 핵심은 대승정종분에 있다. 대승정종분을 이해하면 금강경 전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게 머리 속으로 정립이 안 되면 귀신이 있는 거야 영혼이 있는 거야 나는 뭐야 이런 문제들을 쉽게 해결하지 못하지만 알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기도도 잘 할 수 있다. 1분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2분은 수보리 존자의 회광반조를 배우자.
3분은 조건이 갖춰지면 명색이 일어나고 조건이 무너지면 명색도 사라진다고 했다.
부처님은 3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을 말씀하셨다. 무아 하면 무아지경이란 말도 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 음악가 기업의 사장 이런 사람들 보면 다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너무 내세우면 주변사람들한테 미움 받는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크게 성공한다. 그런데 예술은 무아가 아니고 몰아다. 몰입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몰아로 성공한다. 몰아 자신에게 빠지다 함몰시킨다는 뜻이다. 네가 그런 생각 그런 감정이면 나는 이런 생각 이런 감정이야 네가 그렇게 표현하면 나는 이렇게 표현해 그런 사람들이 예술가다. 그렇게 항상 새로운 패러다임을 낸다. 피카소 마그리뜨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 상식에서 벗어나 자꾸 다른 걸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게 몰아다. 우리가 갈 곳은 몰아가 아니고 무아다. 하지만 일단 몰아를 알아야 무아로 간다.
○ 大乘正宗分 第三 조건이 갖춰지면 명색이 일어나고 조건이 무너지면 명색도 사라진다.
佛 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대승의 바른 가르침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 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느니라. 존재하는 바 일체의 중생 무리들 곧 알로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태로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습기에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그 모습이 다른 모양으로 변해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형상이 있는 존재이거나 형상이 없는 존재이거나 생각이 있는 존재이거나 생각이 없는 존재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이거나 나는 그들 모두로 하여금 번뇌의 남음이 없는 열반에 들게 하여 멸도에 들게 하리라.
이렇게 무량무수무변한 중생들을 다 멸도에 들게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하나도 없느니라. 어째서 그러한가? 만일에 보살이 나다라고 하는 아상이나 사람이다라고 하는 인상이나 나도 중생에 불과하다고 하는 중생상이나 나도 한 생명밖에 없다고 하는 수자상이 있으면 이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무변서원도 -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 -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치료를 다 해줬는데 치료를 받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참 헷갈리게 만든다. 왜 그런가? 하고 부처님이 설명해주신다. 그런데 답이 더 어렵다.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 독실한 후배 기독교인이 물었다. 기계는 다 인간이 편하고자 만든 것인데 인간이 만든 기계 중에 제일 나쁜 기계 하나만 고른다면? 냉장고. 저는 에어컨. 기독교인과 불교인의 차이다.
왜? 에어컨은 내가 시원하자고 열을 밖으로 뽑아 남을 덥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냉장고는 뭐가 문제인가요? 만약에 냉장고가 없었다면 사람이 고기를 잡아도 먹을 만큼만 잡았을 텐데 이 놈의 냉장고가 생긴 뒤로는 남의 것까지 모조리 잡아 냉동시키기 때문이지. 이 냉장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고통 받는지 아니? 아 그렇겠네요.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불교인들은 동물 식물 심지어 귀신까지 온갖 구류중생에 대한 생각을 하는데 다른 종교인들은 인간에 대한 생각만 한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참 많이 틀리다는 생각을 한다. 그 구류중생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 다 나와 있다.
그런데 나는 제도를 하나도 안 했다. 보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처음이 무아다. I save you다. 그런데 내가 없다. 마이크로 매크로 그림처럼 사실은 You도 없다.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는 것이 불교다. 동사만 있다. 인간들의 행위인 업만 있다. 금강경 3분의 핵심은 이것이다. 나도 없고 너도 없다. 그런데 우주 사이엔 만유인력과 중력이 있는 것처럼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이뤄지는 행위만이 쌓여서 그림 사이에 업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업을 져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금강경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걸 머리로만 생각하면 무지 힘들다. 나란 존재를 잊어버리고 고정된 생각을 탈피해서 달리 어떻게 봐야 하는지 수행자들은 안다. 인터알리아 Art Director 이진숙 실장님을 모시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작품세계를 한 번 보자.
르네 마그리뜨<Rene Magritte 1898~1967> -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벨기에의 화가.
자신의 지적이고 점잖은 사진을 찍었다. 같은 한 장의 사진에 자신의 모습을 정면과 측면을 Overlap시켜 찍었다. 하나의 시선으로만 보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Treachery of images<1928~1929>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그림에 써 넣었다.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뭘 의미하나? 눈에 보이는 것 화면 위에 재현된 것을 단순히 믿지 말라는 말이다. 이것은 재현된 그림일 뿐 사물 그 자체가 아니다. 20년 뒤 그림자까지 함께 그려 더 사실감 있는 파이프를 그린다. 그리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청동판에 새겨 팻말로 붙여놓았다. 방금 네가 내린 판단에 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고 그림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 말은 사태의 본질에 제대로 도달한 것인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 그림에 대단히 감동을 받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책을 썼다.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 -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에서 인간 사고의 基底를 구했다. 그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말과 이미지 현실과 본질에 관해서 철학적 탐구를 하게 된다.
두 가지 신비<The two mysteries 1966>
이것은 그림입니다 라고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그림 속에 파이프를 그린 이젤을 그려 넣었다. 그렇다면 이젤 밖 회색 모양 파이프는 뭘까? 뭔지 대답하기 이전에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젠 함부로 그것은 파이프입니다 라고 한 단어나 문장으로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갤러리 벽 위에 그려진 파이프지만 그것도 그림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그림의 대상이 됐던 파이프는 어디에 있나? 그 파이프는 누가 보았나? 파이프를 두 번이나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에 대해선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빛의 제국<The empire of lights 1954>
그림은 아름답고 진실하고 나를 속일 수 없다는 이런 편한 생각들이 그림을 아름답게만 보게 만든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있다. 밤의 풍경인데 하늘은 낮이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 낮과 밤이 만난 순간이다. 그런데 하나의 그림 속에 들어가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인다. 서양의 그림 그리기 관습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서양의 많은 작가들이 태어나 비너스란 것을 보지도 못했지만 너무 그럴 듯 하게 그려 넣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그림을 믿는다. 실제 비너스는 흑발인지 금발인지 키가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는 거짓 이미지가 반복되고 있다. 마그리뜨는 보여진 이미지는 단순한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그림을 그리겠다고 시작한다.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된 늘 일방적인 모습의 이야기나 판단들 그런 상식의 세계가 과연 진실일까? 하고 물으면 굉장히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인간의 조건 <La condition humaine 1933>
그림 속 풍경과 창 밖 풍경의 일치. 이젤을 드러내면 하얀 공간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이 든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림이고 이것은 창밖에 펼쳐진 풍경이란 확신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그림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그림 감상방법이 달라졌다. 이것도 그림이고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도 결국은 마그리뜨가 그린 그림일 뿐이다. 단지 그림을 보고 의심하라 라는 말을 배웠기 때문에 저것이 진실인가 하는 의심만 하는 상황에 거꾸로 직면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그린 이미지 속에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진실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 계속 답을 내리기 보단 과정을 찾으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In praise of dialectics <1937>
아까는 건물 안에서 창 밖을 내다 봤다. 실제 캔버스 뒤를 보니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창 밖의 풍경이다. 반대로 창 밖에서 건물 안을 들여다 봤다. 그러면 우리는 응접실 서재 식탁 같은 실내 풍경을 기대한다. 창 밖의 문을 열고 보니 다시 건물이 나왔다. 창 안에서 창 밖을 봤을 때 앞뒤로 보이는 광경이 거꾸로 창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창 문을 열면 꼭 집 안이 보이리라는 것은 우리의 편견 선입견이다. 가끔은 상처라 하기도 한다.
그 많은 상처 중엔 너무나 많은 편견과 단편적인 생각들이 그대로 고착돼 우리 머리 속에 딱지 같이 앉아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 머리 내 마음 속에 있는 진실은 도대체 뭘까?
The key to the field 1936
건물 안에서 창 밖을 내다 보니 기대한 대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유리창이 깨져 있다. 깨진 유리창 조각이 바닥에 날카롭게 박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깨진 유리 조각에 창 밖 나무풍경의 지문이 묻어 있다. 유리 조각에 소나무가 있다. 창 밖 나무풍경이라 본 것이 사실은 잘 그린 그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가짜 풍경이 지워지고 나서 진짜 풍경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거짓된 생각들이 깨어져 나가고 새로운 진실된 모습이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회화사적으로 이것은 굉장히 큰 미술사에 대한 도전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인들은 회화란 세계를 비추는 창이라 생각했다. 마그리뜨의 창 그림을 봤듯이 서양인들은 이렇게 창을 통해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합리주의 철학에 근거한 이성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이성에 대한 확신으로 서양문명이 발전하지만 20세기 초반 결정적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모든 것이 고정돼 있고 계산 가능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서양사람들은 과학이 발전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사물의 교훈 <Drawing>
한 신사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인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자를 벗은 순간 모자와 함께 얼굴까지 벗겨졌다. 그 다음 순간 다시 모자를 썼다. 그런데 쓰고 나니 모자와 얼굴 부분이 서로 뒤바뀌었다. 큰 일 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사이 어떤 마법이 일어나 이것은 얼굴 모양의 모자고 얼굴의 검은 선은 흰 것이 돼 이 사람은 생각보다 안전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모든 사물을 아무리 연속적으로 보고 있다 해도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외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 외관을 이렇게 3가지로 압축해 놓은 것이다. 진실은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르네 마그리뜨의 말
눈 앞에 있는 사물이 보여주는 것에 의해서 감추어져서 안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예절을 보지 못한 채 누군가 모자를 벗어서 인사하는 것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사물을 보아야 하는가?
통찰력<Perspicacity 1936>
알을 보고 갈매기를 그리는 화가 그림. 놀라운 통찰력이다. 절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지 말라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듯 보인다. 마그리뜨는 이런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사실 이 알은 누구 알일까? 이 알에서 반드시 갈매기가 나올까? 닭이 나올 수도 악어가 나올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알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감히 상상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명제란 것이 있다.
만약 A=B라면 A=C가 되기 어렵다. A=B라고 단정하는 순간 사람들은 B가 아닌 것에 대해서 A가 왜 C야? A가 왜 E야? 라고 반문하게 되고 그 반문이 거부감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A라는 사물의 본질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갈매기의 알이다 하는 순간 이것은 더 이상 닭의 알이 아닌 오로지 하나가 된다. 그런데 동양적 사상은 그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는 것이다. 마그리뜨보다 더 한 사상적 힘을 갖고 있다.
대화의 기술<The art of conversation 1950>
거석 아래 두 신사의 대화. 주제는 대화의 기술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대화를 할 것인가? 거석 글자 모양이 REVE<꿈>이다. 꿈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겐 중요한 대상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우리의 낮의 공식적인 활동은 이성에 의해 지배되고 무의식과 본능은 이성에 의해 억압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80%의 욕망이 터져 나오는 것이 꿈이라 보았다. 그래서 밤에 꾸는 황당한 꿈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하지 않으면 인간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이는 이성적 외관 이상의 본능적 충동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초현실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그리뜨는 욕망 이상의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림의 거석 앞 부분을 잘 보면 TREVE<멈춤> 더 자세히 보면 CREVE<죽음> 이란 말도 들어가 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란 뜻이다. 이 3단어의 직접적인 연관은 찾아도 좋고 안 찾아도 좋다.
여기서 마그리뜨는 단지 이게 닭의 알인지 갈매기의 알인지 그 어떤 것도 선입견을 갖고 먼저 규정하면 대화가 되지 않으며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끊임 없는 대화 속에서 진실을 찾을 뿐이다. 이렇게 열린 사고를 하다 보면 정말 새로운 사물들을 그려 넣을 수 있고 상호 이해하고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눈물의 맛<The flavour of tears 1948>
바다가 펼쳐진 해안가에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다. 위는 새인데 아래는 식물이다. 이 새풀 혹은 풀새의 존재는 일단 풀로 자라서 새의 형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 풀새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벌레에 심장을 파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어떤 관계인가. 원래 이 존재는 풀이었다. 풀은 벌레가 와서 갉아 먹는다. 그런데 새가 되면 벌레를 잡아먹게 된다. 벌레는 풀을 먹고 새는 벌레를 먹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비로소 이 새는 자신이 벌레에 먹히는 풀이 되어 봄으로써 벌레의 고통을 알게 되는 것이다.
풀 새 벌레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서로 뗄 수 없이 얽혀 있다. 풀이 없었다면 벌레가 없었을 것이고 벌레가 없었다면 새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이란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마그리뜨의 결론이다.
붉은 모델<Red model 1934>
발과 신발이 합쳐져 있다. 발과 신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신발이란 놈 때문에 발은 늘 가려져 있다. 자신의 얼굴을 어디 내놓지 못한다. 그러나 신발 입장에서 보면 발이 명령하는 대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발은 신발이 없으면 늘 상처를 받는다. 반대로 발이 없으면 신발은 그 존재 이유가 없다. 나와 너는 같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는 동양적인 사상에 도달한 것 같다.
이제 금강경 공부 다 했다. 말과 형상에 속지 말라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런 말이다. 32개 경제지표에 속지 말라. 바보들은 바보들의 특징이 있다. 남의 말을 잘 믿는다. 귀가 얇다. 그러나 기독교도 일단 믿음이 먼저고 불교도 신위도원공덕모 믿음이 먼저다.
문제는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 아무도 믿지 말라. 신문도 방송도 모두 믿지 말고 자기 자신도 믿지 말라. 그렇기 때문에 깨닫기 전엔 자기 자신도 믿으면 계속 실패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은 중생을 믿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 뭘 믿고 따라가나? 그러면 부처님은 믿지 말라 하셨나? 아니다.
믿음을 넘어서라 그러셨다. 무조건 믿지 말고 믿음을 넘어 서라.
신위도원공덕모 -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모든 공덕의 어머니다.
그림을 보는 방법을 통해 세상 보는 방법을 공부했다. 동양사상 하지만 부채에 일체유심조 써서 천 원 이 천 원에 파는 게 현재 동양사상 현재 한국의 수준이다. 그러다 동양이 서양에 먹힌 것이다. 저런 그림 하나에 수십억 한다. 무병에 걸리지 말고 차라리 유병에 걸리라는 영가선사 말씀처럼 예술이나 경제나 지금 하는 일을 명확히 Mindful 하게 하면 불자로서 좀 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다.
5회. 우승택 금강경<묘행무주분> 강론 중에
○ 大乘正宗分 第三 조건이 갖춰지면 명색이 일어나고 조건이 무너지면 명색도 사라진다.
佛 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대승의 바른 가르침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 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느니라. 존재하는 바 일체의 중생 무리들 곧 알로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태로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습기에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그 모습이 다른 모양으로 변해서 태어나는 존재이거나 형상이 있는 존재이거나 형상이 없는 존재이거나 생각이 있는 존재이거나 생각이 없는 존재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이거나 나는 그들 모두로 하여금 번뇌의 남음이 없는 열반에 들게 하여 멸도에 들게 하리라.
이렇게 무량무수무변한 중생들을 다 멸도에 들게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하나도 없느니라. 어째서 그러한가? 만일에 보살이 나다라고 하는 아상이나 사람이다라고 하는 인상이나 나도 중생에 불과하다고 하는 중생상이나 나도 한 생명밖에 없다고 하는 수자상이 있으면 이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I save you. 아상 인상 중생상이 없다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오직 동사인 행위만 남는다. 그것이 업이 된다. 여기서 재가자와 출가자의 길이 갈린다. 우리와 스님들 다른 점이 뭐냐? 우리 재가자는 자꾸 이 말을 머리로 이해하고 말로 풀려고 한다.
그러나 스님들은 정말로 내가 없고 남이 없는지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보겠다고 출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믿고 들어가야 한다.
相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相은 마음 개념 이미지다. 서로 相으로 이해하면 평생 공부해도 불교와 거리가 멀다. 우리가 그렇다고 알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相이다. 저 사람 만나면 좋은 일 있을 것 같아. 미국 가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아. 종교 바꾸면 더 좋아질 것 같아.
좋은 학교 가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아. 그게 다 相이다. 그래서 금강경을 破相經이라고도 한다. 다 때려부수는 것이다. 우리가 잘못되게 그릇되게 알고 있는 것 심지어 사주팔자 운명 숙명 다 때려부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왜 그렇다고 알고 있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딱 한 놈만 살아남는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느낌은 부처님도 다 받는다. 그러나 느낌 뒤에 오는 감정처리가 부처님은 우리와 다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우리 느낌이다.
좋다 나쁘다 이상하다. 고락사 3수<과보에 대해 느끼는 苦樂捨 3가지 느낌>다.
느낌은 본능적으로 苦樂無記 좋을 것 같다 싫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다.
좋을 놈일 것 같다 樂 나쁜 놈일 것 같다 苦 뭐가 뭔지 몰라 판단을 못해 취하지 못하는 無記가 3가지 受의 모습이다. 이 3受 뒤에 찾아오는 두 번째 화살이 뭘까?
고통 뒤에 뭐가 올까? 화가 난다. 진심이다. 좋은 감정 뒤엔 뭐가 따라 오나? 계속 갖고 싶은 것이다. 탐심이다. 뭐가 뭔지 모르면? 어리석어진다. 치심이다. 이 3가지를 없애 감정처리를 잘하자는 것이 불교의 핵심내용이다.
아무리 복잡한 것 같이 보여도 우리는 이 중 하나를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그래서 우리 안에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相이다. 그렇다고 알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거도 없다. 금강경은 바로 이것을 깨부수는 것을 가르치는 경이다.
염라대왕은 우리 사후 심판관이다. 지장보살과 여러 시왕이 모셔진 명부전에 가면 누가 염라대왕인지 잘 모른다. 머리 위에 금강경 책 얹고 계신 분이 염라대왕이다. 금강경은 경전 중 최고의 경전이다.
천수경 보면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라는 구절 나온다. 사실 알고 보면 죄도 相이다. 마음도 相이다. 그래서 마음이 없어지면 죄도 없어진다고 경전에 나와 있는 것이다.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운가 그런 말 한다. 염라대왕은 그렇게 보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머리 위에 항상 금강경 올려 놓고 계신 것이다. 49제 때 스님들이 열심히 금강경 독송하는 이유는 비록 이 중생 죄를 졌지만 그 죄 또한 허망함을 알고 이제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니 극락왕생하게 해달라고 아부하는 것이다. 염라대왕 역시 금강경을 수지독송 하는 분이다.
사찰 입구 동자상들이 보통 들고 있는 책이 금강경이다.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금강경은 중생과 떨어질래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책이다. 불자들 금강경 많이 보지만 금강경의 진정한 의미를 받아들여 현생의 삶을 Upgrade시키는 덴 조금 부족하다. 새로 조성된 오세암 동자상 이야기는 무조건 관세음보살을 믿는 동자승 얘기다.
우린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그렇게 독송하면서도 개념이나 만화로 생각한다. 그러나 발심 출가한 스님들은 그냥 믿어버린다.
이산혜원선사 발원문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저희들이 참된 성품 등지옵고 무명 속에 뛰어들어 나고 죽는 물결 따라 빛과 소리 물이 들고 심술궂고 욕심 내어 온갖 번뇌 쌓았으며 보고 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 지어 잘못된 길 갈팡질팡 생사고해 헤매면서 나와 남을 집착하고 그른 길만 찾아 다녀 여러 생에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 삼보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 바다 헤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
이 세상의 명과 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 세상 불법지혜 무럭무럭 자라나서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 바른 신심 굳게 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조실부모 해서 아이로 출가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사실 자신이 없다. 3~4살에 출가하면 좀 처량해 보인다. 어떤 학승 한 분이 3~4살 때 출가한 스님들과 붙으면 판판이 깨진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항상 누군가 그들을 지켜주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천일기도 해도 부처님을 어떤 개념으로 갖고 하지만 그 분들은 그냥 불상 전에 업어진다.
아무리 머리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하긴 3~4살 때 조실부모 한다 해도 무슨 복으로 절에 떡 맡겨지겠나? 고아원으로 홀트 아동복지로 갈 수도 있는데. 나도 없고 너도 없고 행위만 있다고? 박사 학위 수백 개 있어도 개념으론 다가갈 수 없는 세계다. 정신희유분의 저 맑은 믿음 때문에 독경 사경 염불하는 것이다. 나도 몸으로 한 번 확인해 보겠다. 그러면 그게 발심이다.
○ 妙行無住分 第四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도 모르게 하라.
復次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 可思量不不也 世尊 須菩提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 不也 世尊 須菩提 菩薩 無住相布施 福德 亦復如是 不可思量 須菩提 菩薩 但應如所敎住
또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의하여 응당히 머무름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하느니라. 소위 형상에 머물러 보시하지 말 것이며 성향미촉법에도 머물러 보시하지 말 것이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보시를 하기에 어떤 相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어째서 그러한고? 만일 보살이 相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생각할 수도 없이 크느니라.
수보리야 동방 허공의 끝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혹은 남서북방 그리고 그 사유와 상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相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하면 그 복덕 또한 그렇게 끝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단지 가르친 대로만 행해야 할 것이니라.
부처님의 묘한 행동이 묘행이다. 현각스님 금강경 법문 중 경허와 제자 영성스님 얘기다. 어디 갔다왔냐? 제가 개구리 다 방생해줬어요. 그러면 지옥 가겠구나. 착한 일을 했으면 착한 복을 받아야지 지옥엔 제가 왜 가요? 네가 했다며 네가 놓아주었다며. 무서운 얘기다. I save you. 주어인 영성스님이 있었단 말이다. 주어인 영성스님이 있으니 분명히 어떤 기대나 보답을 바랄 것이다.
지옥 간다는 것은 고통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 소리에 깨달으셨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어가 없이 행동할 수 있나? 이것이 상에 머무름이 없는 無住相 보시다. 내가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좋을 것이라 생각한 내가 그럴 것이라 생각한 相이 경허스님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이다.
불교는 툭하면 삼천대천세계 동방허공 하면서 뻥을 치는데 정말일까?
10억 광년 - 대부분의 공간이 이렇게 비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 먼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뭘 느끼시나요? 삼천대천세계.
1미터 사람들의 일반적인 스케일이죠. 10월의 따뜻한 날 한 남자가 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군요. 이 사진의 작은 사각형 안의 공간이 다음 사진 내용이 되는 겁니다. 우리들이 항상 보는 세계. 이 그림을 잘 기억해주세요.
또 하나의 소우주. 인간이란 존재를 통해 안과 밖이 같아진다.
1피코미터<0.000000000001미터> 원자의 핵. 아무 것도 없어요. 허공! 우주! 법계!
無 空.
0.0001피코미터 더 확대해 보면 무엇이 있을까요? 부처님의 화엄경의 세계. 꽃이 만발한 4월 초파일 연등 같기도 하죠?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죠? 우리는 그걸 모르고 부처는 알고.
좋은 일 하면 보상 받는다. 1:1 Give &Take가 인지상정이다. 1:10좋은 말이건 돈이건 내가 10명에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이 뭔가? 내가 1이 아니라 0이다 너도 1이 아니고 0이다 말씀하셨다.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면 모두 0이다. 내가 없으면 10명이 있으나 100명이 있으나 모두 없는 것이다.
수학적으로0:0또는 0/0은 부정이다. 너무 많아 정의할 수 없음 너무 많아 셀 수 없음 이다.
적덕지가 필유여경 – 덕을 많이 쌓은 집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
반면 나는 무아가 됐는데 상대는 확실한 1이 딱 있다. 나는 없고 남은 1이나 10이 확실히 있다. 일방적으로 보시만 하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 복 받을까? 어떤 이들은 돈 빌려주고 못 받고 자기 것을 다 못 챙긴다. 0:1또는0:10은 수학적으로 불능이다. 말이 안 된다는 소리다. 남편이 맨날 바람만 피우고 속 썩인다.
저 인간이 보살인가 봐. 맨날 참고 뒷바라지 하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
진심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치심에 걸린 것이라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의 악업을 강화시키는데 그 어리석은 치심 때문에 복은 무슨 놈의 복을 받느냐는 것이다.
나는 무아인데 상대는 무아가 아니라면 항상 여기서 한 방 먹일 것인가? 잘 판단해야 한다. 남편의 선업이 강화될 것으로 보면 참아야 한다. 그러나 저 무식한 중생이 더 날뛰고 악업이 더 강화될 것이라면 쳐야 한다.
그것이 관세음보살의 섭수와 절복의 방법이다. 자는 즐거워서 자고 비는 슬퍼서 비다.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엄마 같이 안아만 주는 분인가? 섭수는 안아주고 절복은 쳐버린다는 말이다.
<섭수: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거둬 들여서 보살핌. 절복: 나쁜 사람이나 외도를 꺾어 절복시킴>
멸업장진언 참회 많이 하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사람들이 다가와 내 간 다 빼간다. 관세음보살님은 그런 식으로 업장을 소멸시켜주시는 분이다. 기도하면 나쁜 일부터 생긴다. 업장소멸 때문이다. 환자들이 주사나 약이 쓰다고 도망가는 것과 같다. 중생은 업장소멸 자체를 두려워한다.
나는 버렸는데 상대가 더 강력하게 치고 들어오면 업장소멸 때문인 줄 알라. 탐진치 중 치심이 제일 문제다. 무주상보시를 하면 엄청난 복덕이 생긴다. 무량대복을 받는 사람들 있다.
주식=돈.
은행은 채권을 사면서 돈을 푼다. 달러 약세는 돈을 찍어 풀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풀려 있어야 주식시장의 주식이 올라간다. 돈이 없으면 주식시장의 주식은 못 올라간다.
종합주가지수와 고객예탁금
2008년도 주가지수가 2080 갔을 때 시장의 돈이나 지금이나 돈의 양은 대략 11조다. 주식이 오르려면 시장에 돈이 많아야 한다는 점은 틀림 없지만 꼭 돈이 많다고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고객예탁금과 종합주가지수는 관계가 있지만 조건이 맞으면 올라가고 조건이 안 맞으면 못 올라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님들 말씀대로 미리미리 자세히 봐야 한다.
그런데 예탁금도 나눠 보면 예탁금도 있고 남의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융자잔고도 있다. 융자잔고는 언젠가 갚아야 하는 시장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종합주가지수와 보통예금보다 이자가 많이 나오는 MMF 상품도 있다. 상황에 따라 역할이 다 다르다. 고객예탁금과 증권시장은 또 하나의 相이다. 종합주가지수와 주식형수익증권의 관계도 있다.
시장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의 돈이 있고 욕심 많은 사람의 돈이 있고 급한 돈이 있고 갚아야 하는 돈이 있으니 돈이라고 해서 다 돈이 아니고 그 이름이 돈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