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36)가 마침내 핀스트라이프를 입는데 성공했다. 박찬호는 22일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고 밝혔다.
계약조건은 1년간 연봉 120만 달러에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30만 달러. 이는 당초 필라델피아가 제안한 300만 달러나 시카고 컵스의 200만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조건이다. 4선발에 각종 인센티브까지 제시한 워싱턴은 말할 것도 없다. 박찬호 본인 말마따나 “메이저리그 진출 초기 LA 다저스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액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찬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돈이 아니었다. “작년에 이루지 못한 우승을 달성하고 싶었다. 훌륭한 팀에서 명예롭게 우승에 도전해보고 싶다.” 박찬호의 말이다. 여기에는 그가 낮은 연봉을 감수하면서 양키스를 택한 이유가 드러난다. ‘우승’과 ‘명예’다.
실제로 지난해 챔피언 양키스는 올해 역시 가장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지난해 우승 전력에 하비에르 바스케스, 닉 존슨, 커티스 그랜더슨 등이 가세하며 완벽을 넘어 ‘과잉’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했다. 생애 첫 우승반지를 원하는 박찬호에게는 최적의 조건이다.
양키스는 통산 27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최고의 명문 구단이기도 하다. 이에 많은 선수들이 양키스 입단을 위해서라면 손해를 마다하지 않는다. 박찬호처럼 낮은 연봉을 감수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알렉스 로드리게스처럼 유격수 자리를 포기하는 선수도 있다. 어떤 선수들은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이나 긴 머리를 깎기도 한다. 이른바 ‘양키스 프리미엄’이다.
양키스 입단을 위해 박찬호는 연봉 외에도 선발 욕심까지 버렸다. 실제 그의 이번 계약은 ‘불펜투수’ 조건으로 이루어졌다. 만에 하나 양키스 선발진에 문제가 생겨도 박찬호가 선발로 투입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필립 휴즈, 채드 고딘, 세르지오 미트레 등 대체 선발 요원들이 풍부한데다 마이너리그에는 잭 맥칼리스터라는 유망주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이번 시즌 박찬호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풀타임 불펜투수’로 활약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몇 년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은 박찬호로서는, 스프링캠프 단계부터 불펜투수로 차분하게 시즌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박찬호의 성적에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찰리 매뉴얼 감독의 지적처럼 “연투가 불가능하다”는 약점도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언론의 희망에 가득한 보도와 달리, 박찬호는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양키스에는 필립 휴즈를 비롯해 데이비드 로버트슨, 알프레도 아세베스, 마크 멜란슨, 채드 고딘 등 우완 투수가 즐비한 상태. 처음부터 7~8회 셋업맨을 맡기에는 기존 경쟁자들의 벽이 꽤나 두터운 편이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시즌 초반 활약도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프라이머리 셋업맨 자리도 노려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8회를 담당했던 필립 휴즈는 선발 복귀 가능성이 높고, 멜란슨과 로버트슨은 제구력과 안정감이 떨어진다. 아세베스는 셋업맨보다는 롱릴리프에 가깝다(43게임 84이닝 투구). 실력만 보여준다면 결코 비집고 들어가지 못할 좁은 문은 아니다.
만일 마리아노 리베라 바로 앞에서 던지는 셋업맨 자리를 따낼 경우, 박찬호는 선발로 뛰는 것 못지않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전국구 인기 구단인 양키스는 방송과 신문을 통한 매체 노출도, 관중동원, 중계방송 시청률 등이 모두 최고 수준이다. 이는 팬들과 다른 구단에 박찬호가 자신의 활약상을 보여줄 기회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양키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올해 폭락했던 몸값은 얼마든지 만회할 기회가 있다.
New York State Of Mind
최고의 인기 구단인 만큼 양키스에서 뛰는 데는 부담도 따른다. 특히 극성스런 팬들과 지역 언론의 악다구니는 칼 파바노를 비롯해 수많은 선수가 양키스에 와서 무너졌던 원인.
하지만 역대 양키스 원정에서 박찬호의 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2차례 등판해 12.2이닝을 던지는 동안 2승 무패 2.13의 방어율에 피안타율 2할 8리. 박찬호에게 ‘뉴욕 프레셔’를 우려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오히려 교민의 수가 많고 그만큼 많은 응원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면에서, 박찬호에게는 뉴욕이란 '큰 물’이 나을 수도 있다(필리스 홈인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양키 스타디움보다 더 시끄러운 곳으로 유명하다).

이번 계약으로 박찬호는 5년 만에 아메리칸리그로 복귀하게 됐다. 사실 과거 텍사스 시절 박찬호의 AL팀 상대전적은 형편없었다. 또 양키스가 속한 AL 동부지구는 투수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 아메리칸리그에서 내셔널리그로 옮겨서 성공한 투수는 많아도, 그 반대의 경우 성공사례는 드물다. ‘리그 적응’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최근 박찬호의 아메리칸리그 상대전적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 박찬호는 인터리그 8경기에 등판해 피안타율 .188/평균자책 3.12로 비교적 호투했다. 특히 보스턴을 상대로는 3이닝 5탈삼진 무실점, 볼티모어 상대 2이닝 무실점, 토론토전 3.1이닝 1실점 등 AL 동부지구 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탬파베이전에서는 부진(0.1이닝 2실점)했지만, 이는 고작 세 타자를 상대로 한 성적일 뿐이다.
박찬호가 약했던 AL 동부 타자
마이크 카메론(보스턴) - 21타수 6안타 2타점 .286/.423/.476
J.D.드류(보스턴) - 21타수 6안타 1홈런 5타점 .286/.348/.524
칼 크로포드(탬파베이) - 11타수 3안타 .273/.273/.545
윌리 아이바(탬파베이) - 6타수 2안타 .333/.500/.500
박찬호가 강했던 AL 동부 타자
애드리안 벨트레(보스턴) - 11타수 2안타 3삼진 .182/.250/.273
마르코 스쿠타로(보스턴) - 7타수 무안타 .000/.222/.000
제레미 허미다(보스턴) - 10타수 2안타 .200/.200/.300
카를로스 페냐(탬파베이) - 4타수 무안타 3삼진
팻 버렐(탬파베이) - 14타수 2안타 8삼진 .143/.294/.214
알렉스 곤잘레스(토론토) - 12타수 2안타 6삼진 .167/.286/.167
미겔 테하다(볼티모어) - 20타수 4안타 .200/.200/.300
양키스 주전 포수가 호르헤 포사다라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해마다 수비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는 포사다는 지난 시즌 도루저지율 28%, 바운드볼 블로킹 성공률 85%로 메이저리그 최하위권. 주무기인 브레이킹볼에 지난해부터 체인지업을 집중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한 박찬호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지난 2년간 든든한 포수들(마틴-루이즈)과 함께했던 박찬호로서는, 이번 시즌 포수와의 호흡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찬호는 애덤 라로쉬와 함께 이번 오프시즌 최악의 선택을 한 FA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양키스행으로 박찬호는 ‘돈’을 포기한 대신 무엇보다 값진 실리인 ‘명예’를 얻을 기회를 갖게 됐다. 박찬호는 과연 자신의 희망대로 명예와 우승반지를 얻을 수 있을까. 핀스트라이프를 입은 그가 보스턴과의 라이벌전 마운드에 서는 모습이, 벌써부터 몹시 기다려진다.
세이버메트리션들의 2010년 박찬호 예상 성적
Bill James - 43경기 66이닝 3승 4패 ERA 5.32 삼진 51
CHONE - 53경기 58이닝 3승 3패 ERA 4.50 삼진 47
Marcel - 81이닝 4승 4패 ERA 4.33 삼진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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