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국민학생도 데모하다
이영백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니면서 무척 즐거워하였다. 한문만 배우던 서당 다니다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서 여러 가지 과목을 배우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였다. 1957년 꿀 같은 1학년을 보내었다. 1958년 2학년, 1959년 3학년 때 사라호 태풍을 겪었다. 어느덧 1960년 고학년인 4학년이다. 사회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복잡하다는 것도 배웠다.
흔히 어떤 주장이나 뜻을 나타내어 관철하기 위해 성인들이 모여서 행진이나 시위하는 것을 “데모(demonstration)”라고 하였다.
우리나라가 근세조선 말에 일본이 침략하여 1910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식민지, 쉽게 말해 국권을 빼앗겼다. 그 36년간 나라 잃고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 학동기였던 1957년~1962년 사이에 문교부 산하 국민학교는 교육시스템도, 시설도 매우 열악하던 시기이었다.
하물며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모든 것이 “자유(自由)”라고 하여 행동을 마음대로 하였다. 산에 나무를 너도나도 톱 들고 가서 베어 나르기 시작하였다. 결과로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그 후유증이 사라호 태풍을 맞이하게 만든 큰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린 나이인 국민학교 학동으로 사회활동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었을까? 자유당, 민주당 등 정치하는 것도 딱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회 전반에 많이 시끄러웠던 시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해방되고 차츰 사회가 발전하면서 국민들이 “공정”에 대한 자유분출이 시작되었다. 신문, 라디오에서 대학생들이 데모를 한다고 하였다. 곧 고교 ․ 중학교 학생들도 함께 하였다. 급기야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도, 선생까지도 데모 대열에 모였다. 이제는 초등학교 학생들까지도 참가하는 희한한 양상으로 번졌다.
겨우 초교 4학년 때 정치가 무엇이라고 알 것인가? 형들이 하는 데모가 무엇이며 함부로 따라다녀야 하는지 아무런 정체성도 없이 행동하였다. 나라 운영에 얼마나 무능정치를 하였으면 그런 형편에까지 갔을까?
이승만대통령도 하야 하였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굳혀야만 튼튼한 민주주의가 이루질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1960년 4월 19일에는 그렇게 혁명이 일어났다. 요즘은 이를 “4․19혁명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