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를 알아보는 것은 ‘구분’의 문제가 아니고 ‘판단’의 문제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야자가 자살하다
이종문
누가 스승의 날에 큰 화분을 보내왔다
먼 나라 야자라는데, 딱 보니 가짜 같다
진짜는 저리 가라는, 그런 가짜 말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잎새 끝이 말라 있어
어라? 진짠가 싶어 손톱으로 째비봤다
그래도 알 수가 없어 더러 물을 주곤 했다
일 년을 물을 줘도 새잎도 아니 나고
말랐던 잎새 끝이 더 마르는 법도 없어
가짜야, 가짜일 거야, 하면서도 물을 줬다
하지만 삼 년 뒤에 진짜임이 드러났다
그 모질고 혹독한 수모 더는 참지 못했겠지
급기야 혀를 깨물고 죽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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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모파상의 단편소설 “진주 목걸이”의 주인공 마틸드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능력이 그녀의 “고운” 마음씨와 “양심”보다 탁월했다면 그녀의 삶이 그토록 고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호도 가짜일 리가 없다는 확신이 낳은 결과는 허탈하고 처참했다. ‘가짜’를 ‘진짜’로 오인한 죄는 젊고 매력적이던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시인이 ‘진짜’를 ‘가짜’로 몰아간 이유로 ‘야자가 자살했다’. 그것도 혀 깨물고....,
그럼에도 시인의 ‘딱 보는’ 안목에 반박할 수 없다. 작정하고 속이는 일, 예를 들면 보이스 피싱, 전세 사기, 위조 여권 또는 표절 등 수없이 많다. 시인은 화분을 받자 다짜고짜 ‘가짜’로 단정하는 패를 선택했다. ‘진짜’를 ‘가짜’로 오인하는 것과 ‘가짜’를 ‘진짜’로 오판하는 것의 결과는 사안과 “규모”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을 “구분”하는 자가 감당할 몫이다.
‘가짜’겠지만 “혹시”하는 마음에 ‘진짜’로 ‘물을 주곤’ 하는 일은 흔하다. 그 정도만 돼도 “성공한 가짜” 혹은 “목표를 달성한 진짜”라는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다. ‘가짜야, 가짜일 거야, 하면서도 물을 줬다’는 일말의 ‘진짜’를 위한 “반신반의”이며 “결정장애”가 낳은 행위예술이다.
식물을 넘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뒤늦게 혹은 사후에 ‘진짜’ 임이 드러났는지는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를 잘 못 만나, 대중의 일시적 뇌 정지로, 편견과 장벽으로 ‘가짜는 저리 가라는, 그런 진짜’들이 ‘모질고 혹독한 수모’를 겪는 일은 “소모”이며 “낭패”다. 최소한 그들이 내뱉는 몇 마디를 “혀를 깨물고”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가 내가 될 수 있고 내가 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를 알아보는 것은 ‘구분’의 문제가 아니고 ‘판단’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