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피크닉 신영호입니다.
다음은 독자나 청자들이 갖추어야할 기본 마인드이자 심법입니다.
물론, 강의자나 교육자는 교주 카르마나 교주적 마인드에 휘말려서
대중이나 청중들을 보이지 않는 가스라이팅 식으로 자신의 사상과 관념으로 세뇌시키거나 현혹시키면 안됩니다.
우리는 배우는 사람으로서 자기주도적이며 자존감있고 긍지와 확신으로 살아가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깨어나고 스스로 자각하는 주체적 인격이 되기 위해서
누군가에 의해 강요적으로나 강압적으로 또는 세뇌와 현혹으로 우리의 정신이 보이지 않게(또는 보이게) 장악되거나 잠식되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교육을 통해 그리고 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어나고 각성되고 지혜와 사상의 법탑(Tower of Dharma)을 구축(Build-up)하고 탑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강사나 리더의 마인드도 중요하고
강의를 듣거나 따르는 청자나 독자 그리고 멤버들의 마인드와 심법도 중요합니다.
우선, 공부나 교육의 본도를 따라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인드를 3가지 크게 청자들의 마인드로 분류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참고로, 강사나 리더 그리고 교주적 힘을 지닌 구루(Guru)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차후 별도의 섹션이나 아티클에서 다루고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청자(聽者)의 마음가짐, 경청하는 사람이 곧 우주의 통로이며, 누가 참된 고수인가라는 관점에서
즐거운 일독이 되셨으면 합니다.
강당에는 수많은 청중이 있다. 어떤 이들은 앞자리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강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적는다. 어떤 이들은 팔짱을 끼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말속의 허점을 찾으려 눈을 번뜩인다. 또 어떤 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의 울림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강사의 입이 아니라, 청자의 귀이다. 귀는 단순히 소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이 무엇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돈을 말할 때, 청중은 셋으로 나뉜다.
첫째, 질투하는 자.
이들은 타인의 성공을 자신의 실패로 오해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를 보고, 부당함과 불공평을 논한다. 그들은 부의 구조를 이해하기보다, 부 자체를 심판하려 한다. 교만하다 하고, 운이 좋았을 뿐이라 말하며, 자신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겠노라고 단정지으며 스스로 성장의 문을 닫는다.
둘째, 존경하고 찬탄하는 자.
이들은 화려한 성과에 눈이 멀어 표면의 영광만을 숭배한다. 그러나 찬양은 감정이지 통찰이 아니다. 외형은 흉내 낼 수 있으나, 마음과 경로는 쉽게 닮을 수 없다. 겉으로는 박수를 보내나, 실은 깊이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자가 말하니 옳다’고 믿으며, 자신을 지워낸다.
셋째, 진실한 청자.
이들은 부자의 마음을 본다. 돈을 벌기까지의 번민과 인내, 끊임없이 자신을 깨뜨리고 다시 세운 과정, 사람을 믿고 배신당했으나 다시 인연을 맺고 성장한 그 인연의 결, 기회를 보는 눈과 그것을 움켜쥘 용기. 이 모든 서사를 통찰하며 자신에게 스며들도록 사유한다. 그에게 부자는 사람이자 길이며, 자기가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인다.
선도(仙道)의 강의도 마찬가지다.
선도의 세계는 단순한 수련의 방법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혁명이며 생명에 대한 경외이다. 그러나 이를 듣는 사람들은 똑같이 갈라진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너무 위선적이다. 깨달았다는 이들이 왜 돈을 벌고, 제자들을 받는가.”
또 다른 이들은 말한다. “와, 정말 신기하다. 저는 스승님처럼 되고 싶어요.”
그러나 진짜 청자는 이렇게 묻는다.
“스승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는가? 그는 어떤 고통과 시험을 통과했는가? 왜 그 길을 지금도 혼자서 걷는가?”
그는 스승의 존재를 껍데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살아있는 도(道)의 화신’으로서 마주한다. 그렇기에 그 청자는 스스로 도를 짊어지고 갈 자격이 있다. 그는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후계자이자 우주의 반영자다.
성공한 이의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체에서 배어 나온다. 청자는 단순히 그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듣는 것이다. 고통의 흔적, 눈빛의 투명함, 말과 말 사이의 침묵까지도 듣는다. 이처럼 진정한 청자란, 말을 듣는 자가 아니라 진실을 감응하는 자다.
청자는 결국 자신의 수준만큼 듣는다.
시기하는 자는 자신의 상처를 듣고,
숭배하는 자는 자신의 열등감을 듣는다.
그러나 배우는 자는 우주를 듣는다.
강사는 흐르는 강물일 뿐이다.
그 강물을 독으로 받느냐, 향기로 받느냐,
아니면 우주의 순환으로 받아들여 샘물이 되느냐는
청자의 마음에 달렸다.
감사합니다.
피크닉 신영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