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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토문자와 일본어,인도어, 영어의 관계 일본황실에는 천황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들의 조상위패를 봉안해 놓은 신단이 있다. 그기에는 일본의 국조라 하는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천조대신天照大神)'를 필두로 역대 천황들 뿐만 아니라 의자왕 등 백제의 왕들까지 모셔져 있다.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정말 충격적인 건 그 위패들의 가장 수장으로서 바로 환인천제, 환웅천황, 단군성조께서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뿌리를 알고 있다. 또한 그 신단내에 있는 비밀금고에는 방대한 양의 보다 놀라운 사료들이 극비리에 보존되어 있는데 조만간에 일본은 그걸 공개할 수 밖에 없는 사태에 반드시 직면하게 된다. 원래 이는 일제가 조선으로부터 탈취한 사료들이다.(그들이 소각처분한 사료들은 가치가 다소 덜한 자료들이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진면목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극우바람은 벼랑끝에 몰린 자들의 무의식에서부터 배어져 나오는 마지막 발악이라고 본다. 한사모(한국사를 바로보는 모임) - Daum까페 ① 가림토 문자의 개요 단군조선시대에는 선대인 배달국으로부터 계속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움이 부족한 일반 백성들이 그 당시 녹도문을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또 음문자이며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인 녹도문만으로는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불편한 점이 많았지요. 그래서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조선의 문자인 가림토(加臨多) 문자가 탄생하게 되며, 가림토 문자(38자)를 토대로 더 쉽게 정리하여 4177년 뒤 재창조된 것이 바로 훈민정음(28자)인 것입니다. ② 가림토 문자는 훈민정음의 원형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가림토 문자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입니다. 그리고 근세조선 시대 세종 때에 이르러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재 창제되었으며, 최근에는 주시경 등에 의해 24자로 재정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문자가 되었습니다. 또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분국이었던 몽고로 건너가 "파스파"란 고대문자가 되었으며, 배달국의 분국이 있었으며, 그 후예들이 살고있는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스토 알파벳과 구라자트 문자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 가림토 문자 창제동기 <한단고기> '단군세기' 제3대 갸륵단군 때의 기록에 의하면, "경자2년(B.C, 2181년),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多)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고 가림토 문자의 창제동기가 나와 있습니다. ? ㅣ ㅡ ㅏ ㅓ ㅜ ㅗ ㅑ ㅕ ㅛ ㅠ X ∋ ㅇ ㄱ ∪ ㅁ ㄴ △ ㅈ ㅊ ∧ ∧ ㆆ ∧ M ㅁ ∪ ㅣ⊃ ㄹ ㅐ ㅒ ㅡ ㅡ ? ∧ ㄱ ㅜ ㅠ ? △ ㄱ ㅈ ∧ ? ㅡ ㅡ ㅍ ▶ 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 ①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非新字也>. 언문은 전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세종실록 103권 ; 세종 23년에 발표한 글) ②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 ③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한글 재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 상소문 중에서) ▶ 해외에 남아있는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 그러나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한단고기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나라들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지금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만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지요. ▶ 일본의 신대(神代)문자 일본에는 한글을 닮은 고문자가 있습니다. 대마도의 아히루 가문에서 전해져왔기 때문에 아히루 문자라고 하며 신들의 시대에 신들이 쓰던 문자라 해서 신대문자라고 합니다. 신대문자는 지금도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 등에 아직 보관되어 있습니다. 일본 이세신궁에 소장된 신대문자의 기록은 서기 708년의 유물입니다. 서기 700년 무렵은 대조영이 고구려 멸망 후 발해를 건국했을 무렵이며, 세종대왕은 1446년에야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그런데 단군조선 시대가 신화였고, 가림토 문자도 한단고기에 나왔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면, 1446년의 훈민정음에서 708년의 신대문자가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일본의 신대문자에서 훈민정음이 나왔다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일본의 오향청언(吾鄕淸彦 고쿄 기요히코)이란 학자 등도 708년의 신대문자의 유물을 증거로 들면서 "일본의 신대문자가 조선으로 건너가 훈민정음을 낳게 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고 그것을 연구한 결과, 자신의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조선 훈민정음의 뿌리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신대문자의 원형인 원시한글이 <한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일본의 천황가 자체를 비롯, 일본이 단군조선이래 한국인이 건너가 세운 나라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일본인들에게 사실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를 기본적으로 꺼릴 뿐 아니라 오히려 기회만 있으면 거꾸로 왜곡하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풍조 속에서 일본의 학자가 그때까지 자신의 주장을 뒤엎고 가림토 문자에서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나왔고 그 뿌리임을 학자적 양심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통 사학계와 국어학계에서는 아직도 "훈민정음이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는지 신하들과 함께 만들었는지" 논쟁 중인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제를 입증해줍니다. 단군조선이 있었다면 단군할아버지도 실제하셨던 민족의 조상임을 믿을 수 있고, 가림토 문자가 발견되는 곳은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가림토가 일본에 보급되어 아히루 문자가 된 것입니다. ▶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인도의 남방 구자라트 주에서 쓰이는 문자는 우리의 한글과 흡사한데 자음은 상당수가 같고, 모음은 10자가 꼭 같습니다.(ㄴㄷㅌㅇㅁㅈㅂ 그리고 ㅏㅑㅓㅕㅗㅛㅡㅣ등) 이 지역은 배달국 시대 우리 민족이 인도로 이동해가서 세운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 드라비다족의 후예가 사는 지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자라트인들이 사용하는 타밀어에 문자뿐 아니라 발음과 뜻이 비슷한 단어들(나-난/너-니/엄마-엄마/아빠-아빠/보다-봐/날-날/오다-와/나라-나르/너 이리와-니 잉게와 등)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편 산스크리스트어 알파벳은 우리가 국민학교 때 배운 한글과 너무나 흡사하고(찌커거.., 쪄쳐져..., 떠터더..., 뻐퍼버..., 셔허), 우리 한글처럼 "ㄱ"에서 시작해 "g"으로 끝납니다. ▶ 영어와의 관계 가림토 문자에는 X O M P H I 등 알파벳의 자모도 여러 개 보입니다. 가림토 문자가 4177년 전에 만들어진 반면, 알파벳의 역사는 겨우 3000년을 넘지 못합니다. 제후국의 왕 또는 어떤 지역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말인 한(汗)은 하늘을 뜻하는 글자인 한(桓)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즉 한(桓)에서 한(韓), 한(漢), 한(汗)이 나온 것이지요. 또 한(汗 : HAN)이 몽고로 건너가 칸(KAN : 징기스칸)이 되었으며, 징기스칸의 유럽 정복 때 서구로 건너가 킹(KING)이 되었으며, 그후에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하버드대학에서의 연구결과로도 발표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우리말과 우리의 고문자는 한단시대의 영역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독특한 환경과 조건들에 따라 변화되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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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홍익인간/대동아공영 원문보기 글쓴이: 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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