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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47강
출애굽기 21:7-11
아내로 삼은 여종
종의 자유에 대한 규례는 사람을 상대하는 처세술, 원리 그런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복음의 진리를 담아서 주신 언약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율법을 행동으로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 의미는 언약을 성취할 자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이라는 죄의 종에서 빼내신 것은 은혜에 의한 구원으로 의의 종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의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죄의 종에서 자유하게 하심으로 온전히 성취된다. 그러므로 종의 자유에 대한 규례를 통해 의의 종, 곧 아들로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이 율례의 말씀을 통해 이 율법을 결코 행동으로 지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뜻, 곧 의에 종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새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고 문자의 율법에 매였다. 다시 말해서 언약을 무시하며 살았던 것이 이스라엘 역사이다. 현실적으로는 손해를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신 15:13-14)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를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렘 34:13-16)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드기야 왕에게 전한 메시지이다. 선지자가 전한 것은 단순히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는 것은 언약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따라서 바벨론에게 멸망 당함이 저주가 아니라 그들이 언약의 말씀을 무시한 그 자체가 심판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이후 남은 자를 통해 언약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신다는 것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이다(렘 31:7-14). 결국 종의 자유에 대한 언약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신다.
“사람이 자기의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지며”(7절). “여종”의 ‘아마’는 ‘하녀, 여자 노예, 첩’이라는 뜻이다. 신명기 15장에 보면 여종이라도 주인을 사랑함으로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에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신 15:17)라고 말씀한다. 그러니까 신명기 15장의 말씀은 여종으로 살았을 때를 의미하고 오늘 본문에서 여종은 빚 때문에 팔려 온 자가 아니고 주인의 필요에 따라 값을 치르고 사 온 종으로 결혼 관계 안에 있는 아내(첩)의 신분이다.
고대 사회에서 가난에 몰린 부모는 딸의 미래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부유한 가정에 팔 수 있었다. 딸의 매매는 주인이나 그의 아들과의 결혼을 전제한다. 그래서 자유인 여성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7절)을 ‘이쉬’(남자, 사람)로 표현하여 씨 가진 남자인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 되는 결혼 관계를 언약으로 말씀한 것이다. 즉 여종은 교회를 상징한다. 그러기에 육 년간 일한 남종이 일곱째 해에 자유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하지 아니하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이나 상전이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니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요”(8절).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의 ‘라아’는 ‘나쁘다, 악하다’라는 뜻인데 문자적으로 ‘눈에 들지 않는다’라는 말로 ‘그녀와의 관계를 나쁘게 하면’이라는 말이다. “상관하지 아니하면”의 ‘야아드’는 ‘지명하다, 정하다, 모으다, 소집하다, 만나다’라는 뜻이다(여기서 회중, 모임, 떼, 무리라는 뜻의 ‘에다’, ‘증인, 증거’라는 뜻을 지닌 ‘에드’가 유래하였다 - 출 12:3).
“속인 것이 되었으니”의 ‘바가드’는 ‘불성실하게 대하다, 배반(배신)으로 대하다, 반대로 대하다’라는 뜻이다. 관계를 나쁘게 한다는 것과 불성실하게 대하였다는 것은 동침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 즉 몸값을 지불하고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암 노크리’는 문자적으로 ‘바깥에 있는 동포’라는 말로 ‘가문 밖의 다른 집안 사람’을 의미한다.
주인은 한 번 사 온 여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팔아서 가문 밖에 다른 집안의 종이 되게 할 수도 없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율례나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은 결코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은 불쌍히 여기심에 있기 때문이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아파르)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2-14)
구원이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흙으로 돌아가는 체질을 가진 육체가 한 행위로 인하여 구원이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체질이 먼지로 ‘아파르’라는 사실을 다 아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9절). 사 온 종을 아들의 아내로 준다는 것 역시 혼인을 말하는 것이다. 주인이 아닌 아들이 혼인을 하더라도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아들은 주인과 같은 위치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순히 여종에 대한 율법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결혼 관계 안에 있다는 뜻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계시한다.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10절).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지라도”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면 ‘상전이 다른 이를 취할지라도’라는 말이다(여자라는 단어도 없고, 장가라는 단어도 없다). 주인이 새로운 여종을 택하여 그녀를 또 다른 아내(첩)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할지라도 주인은 이전에 아내로 취했던 여종에 대하여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취하는 주체는 상전(히, ‘아돈’)이다. 그러기에 주인이든 아들이든 혼인이라는 언약의 관계 안에서 남편이 되어 끝까지 보살피고 책임져야 함을 의미한다.
“음식”의 ‘셰에르’(고기, 음식, 살, 육체, 몸, 혈연관계)는 일반적인 식사를 뜻하는 ‘레헴’과는 다른 의미의 표현인데 좋은 음식으로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좋은 음식을 공급한다는 것은 육의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의복”의 ‘케수트’는 ‘덮는 것, 의복’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좋은 음식을 공급하고 의복을 제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음식과는 다른 특별한 하늘의 양식과 의의 옷으로 덮어주는 은혜를 자신의 몸 된 교회에 계속 베풀어주신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래서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라고 말씀하여 아들을 낳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어 진리 안에서 하나 됨으로 진리의 아들을 낳아야 한다. 이 규례를 통해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시며 언약의 성취는 야훼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말씀한다.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느 9:31)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8-40)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그가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여자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11절). “이 세 가지”란 ‘주인과의 결혼, 또는 그의 아들과의 결혼, 그녀가 속량 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4-9)
율법에서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다는 의미는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즉 인간은 아내나 여종을 버리는 존재이나 하나님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행하지 아니하면”이라는 표현은 시행할 수 없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이기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시행하신다는 반어법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이 세상에 남종으로 보내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제자들을 남종으로 보내셨다(요 20:21). 그리고 십자가로 언약을 성취하여 자기 영을 넘겨줌으로 성령에 의해 남종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여종으로 진리의 아들을 낳는다. 세상에 대하여는 남종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여종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에 대하여는 남종(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주인이 공급해 주시는 진리의 양식과 죄악을 덮어주시는 은혜 안에서 여종으로 또한 아내가 된다(2026030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