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문화 산책(49회)◈
|
♣ 청화백자매죽문호 靑華白磁梅竹文壺 ♣
-국보 제219호-
조선 전기에 제작된 높이 41㎝, 아가리 지름 15.7㎝, 밑 지름 18.2㎝인 청화백자 항아리.
종 목 : 국보 제219호
명 칭 : 청화백자매죽문호:靑華白磁梅竹文壺
유 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백자
지정일 : 1984.08.06
소유,관리 : 이건희 / 삼성미술관 리움
시 대 : 고려시대
아가리는 안으로 약간 오므라들었으며,
몸통 윗부분이 불룩하고 아랫부분이 잘록하게
좁아졌다가 살짝 벌어진 형태이다. 아가리 맨
윗쪽에 두 줄의 가로선이 있고, 그 아래에 꽃
무늬와 이중의 원무늬를 번갈아 그렸고 아랫
쪽으로 다시 한 줄의 가로선을 둘렀다.
어깨 부위에는 장식적이면서 화려한 연꽃무늬가
있고, 굽 바로 위쪽에도 같은 문양을 배치하였다.
중심 문양으로는 매화와 대나무가 몸통 전체에
그려졌는데, 가지가 교차하는 매화와 그 사이
사이의 대나무 표현이 세밀하며 뛰어나다.
특히 윤곽선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칠하는 구륵진채법이 돋보인다.
이 백자는 문양의 표현기법과 색, 형태 면에서
아름다운 항아리이며, 구도와 소재면에서 중국
명나라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 중엽 초기 청화백자 항아리로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여기 다 있다 ◈
◎ 이인성의 가을 어느날◎
김인성의 1934년작 캔버스에 유체 96x151.4cm 호암미술관 소장
◎ 이인성의 아리랑고개 ◎
아리랑 고개 1934년작 종이에 수채 57,5x77,8cm 호암미술관 소장
◎ 경주 산곡에서 ◎
▲ 경주 산곡에서 1935, 130.5X195.6cm, 캔버스에 유채, 호암미술관 소장
◎ 정물(해당화) ◎
1940녀대 후반 48,5X31,5 종이에 수채
◎ 이인성의 붉은 배경의 자화상 ◎
▲ 붉은 배경의 자화상(Self-Portrait in Red) 1940년대, 18X10.5cm, 나무판에 유채
* 이인성李仁星화가의 삶 *
유형 :인물
시대 :근대/일제강점기,현대
생멸 :1912년 ~ 1950년
출신지 :대구
대표관직(경력)
제1회 국전 추천작가 및 서양화부 심사위원
대구의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하지 못한 가운데 서동진(徐
東辰)으로부터 수채화 지도를 받았다.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뒤로 1936년까지 천부적 재능과 신선한 표현
감각을 발휘한 수채화와 유화로 입선·특선을
거듭하여, 천재적인 화가로서 각광을 받았다.
1937∼1944년의 마지막 조선미술전까지는 가
장 성공적인 위치의 추천 작가로 참가하였다.
그에 앞서 1931년에는 그의 특출한 재능을 아
낀 대구의 몇몇 유력자의 도움으로 동경에 갈
수 있었다. 1935년까지 머무르며 태평양미술
학교에서 데생과 그림의 전문적
수업을 쌓았다.
1932년 전일본수채화회전을 비롯하여 1933∼
1935년의 제국미술원전(帝國美術院展, 약칭
帝展), 1938년의 문부성미술전(文部省美術
展, 약칭 文展), 1933·1934년의 광풍회전(光
風會展)에 잇달아 입선하였다. 그 시기의 작
품들이 이인성 예술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1944년부터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미술 교
사로 재직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한때 이화여
자대학 미술과에 강사로 나갔다. 1948년 국화
회(國畫會) 회화연구소를 개설하여 수채화와
유화를 지도하고,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인
전을 가졌다. 1949년 제1회 국전에서는 추천
작가로 서양화부 심사 위원에 선임되었다.
1950년 6·25 전쟁 중에 비극적
죽음을 당하였다.
|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포스텍 교수 서양미술사 )
◈ 검은 정사각형에 구현한 절대 純粹 ◈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정사각형, 1915년, 캔버스에 유채, 106.2 ×106.5 ㎝,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국립미술관소장.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은 네모 하나가
덩그러니 있으니, 인쇄가 잘못됐나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전위 미술을 이끌었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1878~1
935)의 '검은 정사각형' 이라는 작품이다. '나도 그
릴수 있겠다'싶은데, 제목마저 성의가 없으니 은근
히 화가 날 법도 하다. 말레비치는 이토록 파격적인
추상미술을 '절대주의'라고 불렀고, '미술로부터 대
상(對象)이라는 부담을 덜어주려는 필사적인 노력
의 결과'라고 했다.
전통적인 미술은 늘 사물이나 사람과 같은 특정한
대상을 모방해야 했다. 회화는 실제로는 '하얀 캔버
스 위에 물감을 발라 만든 어떤 형상'인데도 불구하
고, 우리는 그와 같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어떤 사
물이나 사람, 즉 물감이 만들어낸 환영(幻影)만을 보
게 된다. 말레비치는 이처럼 눈속임을 목표로 했던
기존 회화로부터 벗어나, 아무런 내용과 의도가
없이 순수한 제로 상태의 회화를 추구했다.
검은 정사각형은 말레비치가 선택한 절대적으로
순수한 형태였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포괄한 색이
고, 정사각형은 돌리면 원이 되고, 나누면 직사각형
혹은 삼각형이되는, 근본적 형상이라는 것이다. 무엇
보다 검은 정사각형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상하좌우
의 구별이 없으니 방향의 옳고 그름도 없고, 보는 이
가 지식인이든 무지렁이든 '검은 정사각형'이외에
더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누구나 그릴 수는 있지
만, 누구도 다른 이들보다 빼어나게 잘 그릴 수
도 없다. 그 앞에서 결국 만인이평등해지는 이
그림은 혁명 직전, 유토피아를 기대하던 러
시아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
♣ 49회에 부치는 마음 ♣ * 추상회화의 선구자들 *
키레[Klee]는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와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도 추상 또는
비구상의 세계에 치우치지 않은 위대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고도의 기능화한 현대의 정신
적 극한 상황에 생명의 본질에 대한 창조적 직관
과 환상을 도입하여 상실된 삶의 꿈을 되살리게
했고 합리적인것과 비 합리적인것 환상과 각성.
우연성과 수학적 논리성의 대립을 상호 보완하
고 결속시킨 중앙지대 생성의 무한한 가능성
으로서의 예술의 의미를 깨우쳐준 위대한
개인주의 화가였다.
현대회화의 전개에 있어 클레 처럼 나비파
[Nabis]. 포비즘. 큐비즘. 또는 <에골드.파리>
에 아무 인연이 없이 성장하여 20세기 회화의
역사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 작가도 드믈다.
클레의 예술은 미래 지향적이고 다면적이다.
- 학우 정창근님이 보내주신 해설과 영상입니다 정창근님 감사합니다 -
-우산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