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하기를 배우가 아닌데 배우일지에 올려야 하나, 연출일지가 아닌데 연출 게시판에 올려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배우일지를 누른다.
내가 버스 의자에 앉아 있다. 출구 뒤로 두 번째 좌석의 통로쪽이다. 목이 뻐근함을 느끼고 고개를 위로 쭈욱 빠르게 뺐다가(그순간 천장을 본 것도 같은데 너무 짧은 순간이어서 천장에 무엇이 있는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등을 한 번 쭈욱 펴고 원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버스가 좌회전을 하며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서 '버스랑 반대방향으로 몸이 쏠리나?' 생각했다. 버스가 달림에 따라 버스와 함께 몸이 흔들렸다. 진동을 함께 느끼기도 하고 좌우로 느리게 흔들거리기도 한다. 내 오른쪽 사람의 제스처가 시야에 들어온다. 모자에 갈색 너구리털 같은 것이 달린 주황색 코트를 입은 20대 중반쯤 보이는 여성이다. 청바지를 입고 밝은 주황색 끈을 묶은 검은 운동화를 신었다. 양손에 회색 장갑을 끼고 있는데, 왼손으로는 웬 대본을 접어 쥐고 오른손으로는 문장을 짚어 가듯이 툭툭 허공을 두드리며 입으로 혼잣소리를 소리 없이 외고 있었다. 뭘 외워야되나 보다, 근데 저거 뭘까 발표 같은 건가? 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든다. 그때 종이를 꽉 움켜쥐며 몸을 내쪽으로 틀기에 '아, 지금 내리려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내 몸을 통로쪽으로 열어 비켜주었다. 여자는 버스가 멈출 때까지 버스 복도에 서있다가 버스가 멈추고 내렸다. 새로운 사람들이 버스로 들어오기에 나는 얼른 창가쪽으로 엉덩이를 옮겼다. '이번 정류장은 달성공원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동산의료원입니다.' 라는 젊은 여성의 전자음이 들린다. 내가 하품을 한다. 입에서 단맛이 난다. 양치했는데,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글을 쓰는 동안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많아서 다 캐치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방금은 0365로 전화번호가 끝나는 곳의 광고음이 나왔다 사라졌다. 버스가 멈춰선 동안 웅웅웅웅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온다. 시동소린가. 창밖으로 다른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또 하품이 나왔다 사라졌다. 눈꺼풀이 피곤함을 느낀다. 피곤하다. 차가 다시 출발하자 두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쪽으로 서고, 곧 내 뒤에서 한 중년 남성이 일어나 출구를 향한다. 버스 문이 열리자 문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한 여성도 일어나 빠르게 내린다. 그러자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성이 통로쪽으로 엉덩이를 옮겼다. 버스 안에 햇빛이 비쳐든다. 내 가슴께까지 햇빛이 비친다. 언뜻 따뜻한 느낌이 든다. 코가 간지러운 느낌이 울컥 들며 기침을 두 번 했다. 코를 쿨쩍였다. '...다음 정류장은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입니다.' 라는 전자음이 들린다. 전 정류장에서 탄 중학생들이 작게 말을 나누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이라 그런가 버스라 그런가 되게 말이 없네, 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들은 이번 정류장이 바로 또 내렸다. 경북공고 정류장이라서 내렸나보다, 경북공고생들인가 보네, 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이번 정류장은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입니다.' 라는 전자음이 들린다.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4시 방향의 부저를 누른다. 띵똥, 띵똥, 소리가 들린다. 애초에 버스에 앉았을 때 음악을 듣기 위해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이어폰을 다시 가방 안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노래 듣고 싶었는데, 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몸을 일으키며 다 왔네, 몇 시지?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폰 홈버튼을 누르자 8:44라는 숫자가 보인다. 일찍 왔네, 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흐뭇하다.
첫댓글 일찍 왔는데 문이 안 열려있다 시벌 추어ㅓ
흔들리는 버스와 같이 흔들릴때의기분과 몸상태가 어땠는지도 궁금하네요 또 버스안에서몇몇 사람들의 모습은 정확하게 보이는데 버스안의 정경은 어땠는지 사람은 어느정도 있었는지도 궁금해용
...미래일기다 우와 신기한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네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