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6장 1-36
고라와 남쪽 진영의 반란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들어 왔다. 시내산을 출발하여
광야로 들어서자 마자, 이스라엘 백성들 굶주림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자, 애굽을 그리워하며, 애굽에서 먹던 것을 요구하며, 모세에게 도전한다(11장). 그리고
12장에서는 아론과 미리암이 다시 모세의 지위를 시기하여, 미리암은
문등병에 걸린다. 더욱 불행한 사건은 13장에서, 10명의 정탐꾼의 잘못된 판단력과 거짓 된 보고서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20세
이상의 세대가 결국 40년동안 광야에서 죽을 운명에 처해지고, 그들의
요구대로 가데스 바네아에서 발길을 돌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세가지 사건 모두 모세의 중보의 기도를 통하여 모두가 전멸되지 않은 사건들이다. 그리고 고라의 사건은
네 번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가지 사건이 아무리 하나님을 향한 적대적인 상황을 드러냈다
할 지라도, 우리가 앞으로 보아야할 고라, 즉 한 사람의
반역의 사건을 통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심판(15,000명)을
경험한 이야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드문 사건이다.
16장은 반란의 주동자와 가담자를 먼저 언급한다. 고라와 그를 따르던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르우벤 족속의 3명과 250명의지도자들이 함께 가담하는 반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역을 도모한 것은 고라 였다. 그것을 암시하는 단어가
16장 1절의 첫 단어(וַיִּקַּ֣ח ), “취했다”, “took” 인데, 그것의 의미를 개역개정은 생략하고 있지만, 새번역은 이 단어를 “반역하다”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에 근접한 의미로 본다면, “고라는
공동체와 스스로를 분리하여, 시기의 감정 때문에 인생에서 길을 바꾸는 것을 택하였다”, 로 해석한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 전개될 어떤 상황에서도 고라는 스스로 택한
자신의 길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과는 다른 방향에 이미 서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라의 길에 동참한 대표적인 르우벤 족속의 구성원 역시 그들의 도모가 옳다고 항변하지만, 그들 역시 이미 이스라엘과는 다른 방향의 길을 택한 것이며, 250명의
지도자들 역시 같은 목적을 도모하고 있다.
먼저 이들의 공통적인
도전의 주제는 3절의 “당신들만 거룩한 백성인가? 모두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런데 왜 공동체들 위에 자신을
높이고 있는 것이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이미 하나님께서 회막을
중심으로 진영을 배치할 때,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그리고
레위지파 역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회막에서 해야할 일이 배정되었다. 만약 이들이 모든 이들의 동들의
지위를 요구한다면, 하나님의 계획된 배치의 질서에 정면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는
분명히,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 10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고라의 의도는 바로 제사장 직분이었고, 반면에, 야곱의 장자, 루우벤의 족속인 다단과 아비람의 주장인 13절을 보면,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즉 그들은 유다 지파와 동시에 모세의 지도자의 권리에 대한 반역이었다. 또한
그들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이끈 것은 모세가 아니라, 야훼라는 것을 잊은 상태였다. 이것은 그들의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모세는 분명히 12절에서 다단과 아비람을 만나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이 고라와 도모에서
떠날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 역시 고라와 반역에서 떠날 계획을 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모세는 모든 반역자들, 먼저는 고라와 그를 따르던 레위인들에게
향로에 항을 피워 회막에 오면 하나님은 누가 제사장이며 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가? 를 결정 할 것을
선포한다(나답과 아비후를 회상). 그리고 그들이 회막 앞에
모였을 때, 하나님은 땅을 갈라지게 하여 고라와 반역자들과 그들의 모든 가족들이 산채로 땅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250명은 불이 삼켜버렸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죄는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는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확산한다는 것이다. 남쪽
진영의 배치를 보면 고라(고핫의 후손들)와 가장 근접해 있던
지파가 르우벤의 지파였다. 고라의 불평의 원인은 제사장과 동시에 족장의 지위에 대란 불만이다. 모세는 아버지의 형제들 중 네 번째인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을 족장으로 임명한다(3장 27절). 고라는
두 번째, 이스할의 아들이었다. 친족 등용의 서열에서 밀려난
것이다. 르우벤 역시, 장자이지만, 유다에게 밀려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반역의 도모는 수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가까이 있지 아니했다면, 고라는
반역을 이끌지 못했을 것이다. 죄의 확산은 근접성과 연관성을 가진다.
두 번째, 고라와 함께 도모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불만은,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생각한 지도자는
계급적인 서열을 통한 지배 구조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으로 모세는 사실,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다. 이들의 번역의
도모에 대한 모세의 행동을 보면, “그는 땅에 엎드렸다”(4절, 22절). 모세의 지도력은 그의 겸손에서 왔다. 12장에서 모세의 지도력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그 사람
모세는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 보다도 매우 온유했다”(3절). 모세의
마지막 생애를 두고 그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신명기 34장은 모세를 “여호와
종”으로 그리고 있다. 모세는 결코 군림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세 번째, 모세는 소유의 탐욕에서도 거리가 먼 사람이다. 12절-14절에서 다단과 아비람은 불만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14절 마지막 부분에서는 “눈을 뺄 작정이오?” 하고 불만의 언어의 최고조에 달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상황적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는 비난의 어조이지만, 신명기 16장 19절에서는
이 단어는 뇌물을 받는 것과 연관된 표현이다. 그래서 모세는 15절에서
이러한 사실에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나는 저 사람들에게서 나귀 한 마리도 빼앗은 적이 없으며, 어느 한 사람에게도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청렴함을
주장한다.
네 번째 이들은
모세와 아론은 마지막까지 중재자로 서게 된다. 고라의 죄에 대한 죽음의 형벌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하여 모세와 아론은, “죄는 한 사람이 지었는데, 어찌 온 회중에게 진노 하십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회중들을 남쪽
진영에서 멀리 떠날 것을 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라, 다단, 그리고 아비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경멸한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한 말에 동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역자들 모두와 가족들을 스올로 데리고
갔다(30-33절).
결론,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민수기 26장의 두 번째의 인구조사에서, 다단과 아비람의 스토리는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증거 되지만, 고라의
후손은 여전히 살아남은 후손이 있는 것으로 증거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고란의 진영에서 떠나면, 살 것을 약속 했을 때,
그 약속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후손들은 심판에서 제외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고라의 죄에서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에 시편에서는 고라의 후손들의 찬송의 시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의 봉사자로 살게 된다.
우리의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죄에서, 죽음에서 자유함과 생명을 얻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사건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의 사건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더 이상 죄의 삶을 돌아가서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