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국화
찻길을 가다 더러 파란 색 수레국화를 만나면 언제고 한번은 가차운 내 마당귀에 심어서 나란히 앉아보리라 했다.
인터넷 꽃씨 써핑을 나선 김에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포트에 상토를 담고 씨를 뿌려 물을 주고 신문지로 덮어 발아를 돕는 일은 아내가 한다.
본시 씨를 품고 낳아 기르는 것은 보다 여성성에 가까운 것.
펜넬
어제는 또 종일 마당에서 자잘한 일로 실랑이하면서
아내는 뒷터에서 뭘 심나 궁금했더니 한참 만에 취나물 한 주먹과 두릅 순 한 바가지를 따왔다.
이도 작은 생산의 하나. 내가 내키지 않는 일을 그녀가 대신 하면 꽤 기특하다.
쑥은 기왕지사 마당 안에서 캐면 오죽 좋을까. 도랑치고 가재잡는 방법으로라야 효율적이고
그나마 시골 텃밭이든 정원이 단정해지는데, 딸이고 마누라고 쑥은 꼭 바깥에 나가야 쑥이 되고
언덕이든 둔덕을 삼아야 나물 캐는 것인줄 아나보다.
그래서 난 쑥을 캐오면 시큰둥하며 쑥향이 좋다느니 맛이 상큼하다느니
쑥전이 먹고 싶다거니 하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패랭이꽃
그 흔한 패랭이꽃도 막상 야생에서 채취하는 것이 마뜩찮고 씨를 기다렸다가 구하자니
그 놈의 시간대가 날 허락하지 않고, 아내는 그런 패랭이를 또 좋아하니 낸들 어쩌겠나? 씨앗을 샀다.
저거 싹 틔우는 일은 그래도 내 일이 아니니 다행!
이런 날을 대비해 내가 꼼쳐놓은 용돈이 몇 백은 되었는데 엊그제까지 쉴새없이 사들이다 소나무 몇 사니 완전 바닥났다.
하여 돌아오는 내 생일선물로 옷 대신 나무를 사달래서 모자라는 돈을 메꾸었는데 기분이 묘하다.
구절초
나는 왜 소나무를 좋아할까. 돌뎅이와 소나무를 보면 딱 가서 매달리거나 마음이 들러붙어버린다.
사다 심어도 죽기 쉬우니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지지대를 받쳐주어야지
전지하여 철사로 수형도 잡아야지, 벌레방제 약에 발근제로 모셔야지,
어제는 소나무에 좋다는 막걸리를 부어주며 높은 양반 시중들 듯 했다.
타임과 라벤더
타임은 윌드타임이든 오렌지타임이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초생이다.
안 지도 몇 년 안 되고 심어 기른 것은 여기 이사와서부터이니 좋아하는 푸나무로 내놓기에는
아직 서먹한 편. 그러나 잡초 디딜 틈을 잘 내주지 않는 이 허브야말로
지피식물의 내 오랜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기막힌 바가 있는 축이다.
이 친구는 영하 20도에서도 살아남는 상록성이며 무엇보다 땅에 착 달라붙는 목본성이라는 것이 행복하다.
레몬벨가못
정원을 꾸미는데 요령이 자꾸 는다.
정원이 목적이라기보다 귀한 약초를 기왕이면 보기 좋게 가꾸고 난 잡초 매는 시간과 수고를 덜어서
그림쟁이의 후일을 도모하자는 심산이다. 그래서 빈 자리가 많으면 모두 잡초의 영역으로 바뀌니
아초에 나도 이들과 씨로 경쟁하자 싶었던 것. 그래봐야 얼마나 일을 줄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차이브
허브는 향기로운 식물이어서 노지에서 겨울을 나는 다년초로만 골랐다.
물론 바라보기 이쁜 녀석이 내 호주머니와의 경쟁을 이긴 멋쟁이들이다.
다른 잡초의 자리를 냄새로 어느 정도 밀어내는 힘도 믿거니와 이것들을 거두어
벗들과 차를 나누거나 종자를 퍼트려주거나 그래도 남으면 물에 끓여서 그 향기로운
욕탕에 드러눕고 싶은 계산도 일찍이 세워놨던 것.
안개초
저것들 심는 일만 해도 하루는 걸릴 것 같다.
물론 포트 한 칸의 한 덩이씩을 땅에 묻지만 이것들의 키가 얼마쯤 자라며 어디다 내려놓아야
훗날 뒤집니 바꾸니 옮기니 하는 수고를 덜 것 아닌가.
이런 것들 때문에 서성거리다 하루가 또 저물고 만다. 덩굴식물들의 아치는 이미 다 인원이 찼다.
사계절 덩굴장미, 멀꿀, 으름덩굴, 다래, 포도, 붉은인동, 능소화, 송악 등.
그래서 오미자며 시계꽃, 큰꽃으아리 같은 조금 작은 초본성은
발판 만들고 남은 쇠파이프를 이용해 십자형으로 예닐곱 개를 용접해놓았다.
에키나세아
말하자면 이 시골에 이사를 와 도모한 첫 번째 학습이 '씨앗발아'이고 '삽목'이었다.
시간을 버는 일이 인내심 기르는 일하고 똑 같다는 것을 아침부터 밤까지 배운다.
저 쪼꼬만 것을 언제 키워 씨를 받을꼬 하면 귀찮고,
저 쪼꼬만 모종이 언제 큰 나무가 될꼬 싶으면 포기하기 딱 맞는 일이 농촌의 일이며 삶 같다.
그런데 저 씨가 살아나 세상에 눈을 뜨고 옳게도 주인을 알아보는가 싶을 때는 와짝 눈이 떠진다.
풍선초
이것들의 씨를 거두어 벗들을 부를 날이 올거다,
이것들을 먹는 차와 이것들을 마시는 약을 어떻게 짓는지 싹 가르쳐줄 일도 곧 올거다,
내게는 잘 난 체하는 이상야릇한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자랑만 하고 사라지는 얌체는 아니니 너무 경계 마시라!
언제고 나이가 들면 사방이 아프고 괴로워지는데 그 아니 된 스테로이드나 해열제나
진통제 같은 화공약독으로 겨우겨우 버티는 벗들이 내 눈에 삼삼하여 지금도 늘 밟힌다.
맥문동
나는 그에 관해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가 냉큼 멕여줄 수 있는 꿈을 가꾸는데 그 기분이 저 새싹 같다.
생각해보시라, 저 맥문동이 어떤 풀인지... 나이 들어 신허에 심화가 동하면 상기하면 폐가 나빠지고
몸에 음기가 모자라 자꾸 마르는 데 심장의 열을 내리고 신음을 보태며
몸에 진기를 늘리고 폐를 좋게 하는 천문동과 함께 천하의 명약 아닌가!
여주
여주는 내 어릴적 기분으로는 심고 싶지 않은 열매다.
그 빨간 열매가 맛도 별로였지만 갈라져 버글거릴 땐 징그러워 외면했던 덩굴이다.
그래도 그 추억 한 자리는 내 유년의 그림이 흐르고 있기 때문.
옛날을 잊고 사는 것이 오늘을 잘 사는 비결인 것을 잘 알지만 난 그림을 그릴 때도 추억을 담은
달착지근한 주제로는 사람들을 홀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독자들은 바로 이 추억의 언저리를 애태워하고 그리워하고 사무쳐 한다.
나도 사는 삶의 후미에서 유년의 싱그러운 그림 몇 덩이 대롱대롱 빈 하늘 가에 그려볼 심산이다.
신문지가 열리는 날은 싹의 초록 끝이 보이는 날이다.
아직 잠을 깨지 않은 몹시 궁금한 것들도 있다. 작년에도 실패했던 참당귀.
미선나무도 아직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적하수오를 한 보따리 구해왔는데
아내가 잃어버렸단다. 못 찾겠다는 말인데 난 아직도 마음 속으로 찾고 있는 중이다.
그 보따리를 찾기만 찾으면 지난 해 벌어들인 내 꽃씨 수집 행각이 다 드러날 판이다.
열은 넘고 스물은 안 될성 부른데 아내도 못 찾는 걸 내 무슨 수로 찾을까보냐...!
지금 교무실 내 책상 앞에는 적하수오의 줄기를 물컵에 담가 놓고 있다. 워낙 잘 사는 친구라
혹 뿌리를 내일지도 모른다. 듣자니 씨든 뿌리든 줄기든 꺾어 심으면 난다 했던 것을 들었던 것.
점심 먹고 오일 교환하고 팔자 걸음으로 걸어오는 길에 누구 집 담벼락에서 꺾어왔다.
우습지도 않다. 지난 광주 변두리 헌 집 마당에 심었던 것들이 아쉬웠던지 자꾸 그 집 마당이 아깝고,
어디 숲에서 보았던 것, 누구 집 마당가에 흔하던 거 다 떠올라도 막상 구하려니 어렵다.
내 흘린 용돈은 해를 거듭할수록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나무는 한해 한해 키와 몸집을 늘릴 것이고
풀은 수수많은 씨앗들을 매달아 내 손을 기다릴 것이니 모쪼록 지금은 종류가 중요했다.
아, 언제 이것들이 한 화단 가득 피어 밖으로 내보내는 날이 올까...
그러면 또 내 얼굴은 얼마나 폭 삭어 턱없이 시들어갈까...
벗들이 그리울수록 세월이 아프다.
다만 사는 동안 몸을 잘 닦아 자연의 몫으로 착하게 돌려줄 준비를 열심히 해야겠다.
나와 함께 그런 시간들을 기꺼이 함께 나눌 벗들을 좀 더 또렷이 요청해야겠다.
봄바람이 안에서 일어나니 소년처럼 설렌다...
첫댓글 싹을 밀어 올리는
씨앗들의 기특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기특하게 싹을 틔운 씨앗들을 칭찬하고 또 꼼지락거리며 애쓴 제 아내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