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소수자, 약자들에게도 설 땅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행이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싶어한다. 심지어는 가족 누군가가 장애가 있으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감추느라 급급하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장애인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그릇된 생각, 편견이 큰 몫을 했다. 장애로 인한 나나 가족의 불편은 그런 대로 참을 수 있겠는데, 아예 제도적으로 발붙일 곳조차 없애버린다든지,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기피하는 현실에 맞닥뜨리면 차라리 '쉬쉬'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를 도와주기는커녕 무슨 범죄자나 함께 어울려선 안 될 사람 취급하는 현실을 대하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도 그 아픔을 머리로만 조금 이해했을 뿐, 솔직히 가슴으론 잘 모른다. 그런데 언젠가 아이를 입양해 키우면서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웃들과 아이 자신에게까지 알리고 키우는 부모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처음엔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과연 저게 아이를 위한 일일까,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에 한 동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직은 쉽지 않은 도전일 것이다. 그러나 넘어진다고 해서 걸음마를 포기할 수 없듯이, 주위의 눈이 무서워서 숨어 지낼 수만은 없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물꼬 방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여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의 그늘에서 어둡게 살아온 이들의 힘찬 나들이가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여기 '아베' 가족의 삶을 읽으며, 우리도 같이 아파해 보면 어떨까.
1부 : 부모, 세 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던 '나'는 3년 10개월만에 G.I.가 되어 고국에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미국 사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간다. 나는 어머니가 한국에서와는 딴판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사는 이유가 바로 의붓형 '아베' 때문임을 알고는 그를 찾기 위해 고국으로 나온 것이다.
영내를 나와 전에 살던 서울 산동네 여관을 잡은 나는 예전의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소식을 기다리며 주유소, 세차장, 생선가게 등에서 일하던 미국 생활을 돌이켜보고 있는데, 여관 심부름하는 아이가 재두는 이사를 갔고, 형표는 군대를 갔으며, 석필이는 방위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 나는 미국에서 가져 온 어머니 노트를 펼쳐든다.
2부 :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6·25전쟁 직전 4대 독자인 최창배와 결혼했다. 나는 춘천 근처 샘골에서 아직 대학생이었던 남편과 일 주일을 보내고 시집살이를 하는데, 내가 입덧을 하자 시부모님은 지극 정성으로 나를 보살펴 준다.
전쟁이 일어났다. 부면장을 지낸 데다 지주였던 시아버지는 인민군에게 끌려가고, 몰래 들렀던 남편도 붙잡혀 시아버지와 함께 인민재판을 받을 처지가 된다. 내가 부녀자들 선전 교육에 나서고, 남편이 의용군에 지원하면서 겨우 풀려나는데, 시아버지는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퇴하던 인민군 총에 죽고, 시어머니와 나는 들이닥친 미군들에게 몸을 빼앗긴다. 가까스로 유산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일로 나는 여덟 달만에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불행히도 5대 독자는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로 자랐다.
전쟁이 끝나고 아들이,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우리에게 길 잃은 사내가 나타난다. 그는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어린 '아베'를 친자식 이상으로 아끼며 보살펴 주는데, 시어머니는 그가 '아베'를 그토록 아끼는 건 그가 친아버지이기 때문이라며 우릴 쫓아낸다.
피차 깊은 상처가 있었던 두 사람은 가정을 이루고 아베에 이어 4남매를 낳는다. 남편은 아베를 자기 자식과 똑같은 마음으로 키운다. 그러다가 우리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남편 여동생의 초청으로 스물여섯 먹은 아베를 버려두고 미국행을 택한다.
3부 : 방위병 근무를 마치고 나타난 석필은 다른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해 주는 한편, 4년 전 자기네가 몸을 빼앗은 여자와 자기 형이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여관을 나온 우리는 술을 마시며 4년 전, 퇴학을 당하던 일, 술먹고 담뱃불로 팔뚝을 지지고 강간을 하던 일 등을 잠시 추억한다. 석필은 미국민이 된 날 부러워하지만, 나는 미래가 없는 미국 생활과 아베를 찾으러 나온 사정을 고백한다. 미국으로 떠나기 이틀 전, 아베와 함께 사라졌던 어머니가 떠나는 날 홀로 돌아왔던 일을.
나는 마침내 미군 친구 토미와 아베가 갔음직한 샘골의 할머니집을 찾아 나섰으나, 샘골은 댐이 세워지면서 그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말았고, 조그만 집에 홀로 남은 할머니는 토지 보상금을 노린 강도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반년 뒤에는 며느리가 손자(아베)를 데리고 나타났다가, 소식을 듣고는 산소로 향했다는 것도. 나는 토미와 소주를 들고 무덤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아베를 찾는 일을 시작할 결심을 한다.
떼칠 수 없는 삶의 뿌리, 아베 찾기
[아베의 가족]은 1979년 <한국문학>에 발표된 중편으로, [우상의 눈물]과 함께 전상국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제1부는 6·25전쟁을 겪지 않은 '나'(김진호)와 가족들이 겪은 한국과 미국에서의 생활이 펼쳐져 있으며, 제2부는 6·25전쟁 직후의 상황을 어머니의 수기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고, 제3부는 '나'가 아베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아들인 김진호(1부, 3부)와 어머니(2부)를 서술자로 내세워, 6·25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는 가족의 처절한 삶을 드러냄으로써 전쟁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비극적 운명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작품 제목에도 나와 있는 '아베'와 어머니이다. '나'의 의붓형이기도 한 '아베'는 '아…아…아…베'라는 말밖에는 할 줄 모르는 백치(白痴)이며, 사건 진행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 임신 중인 어머니가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해 여덟 달만에 선천적 불구로 태어나,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평생 지니고 사는 비극적 인물이다. 이 아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 바로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아베'와 '나'를 연결시켜주는 중간 고리이다. 6·25전쟁의 상처와 그로 인한 '아베' 때문에 자신에게 드리워진 운명에 맞서는 일에 삶의 모든 것을 바쳐왔다. 한편, 이 작품의 주요 서술자이기도 한 '나(김진호)'는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 지아이(미군 병사의 속칭)가 되었다. 미국에 가서도 '아베'를 가족이나 형이 아닌 짐승처럼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노트를 보고는 마음을 돌려, '아베'를 찾아 나선다.
이처럼 이 작품 제목은 '아베의 가족'이지만, 아베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아니었다. 특히, 아베로 인한 생활의 불편과 남의 손가락질 등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4남매에게 아베는 없어져 주었으면 하는 물건이었고, 사람이라기보다는 가두며 사육하는 짐승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난리 때 아베를 집에 두고 나오기까지 했던 것이고, 이민가던 날, 아베 없이 홀로 돌아온 어머니를 보고도 철모르는 막내말고는 아무도 아베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어머니에게 '아베'는 비극적 운명의 상징이며, 어머니를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와 같은 존재이다. '천벌'이나 다름없는 아베로 인해 어머니는 그 역사적 비극을 늘 곁에 끼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행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쟁 상처를 낫게 하고, 가족들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혹덩어리, 아베와 떨어질 수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의 꿈,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유야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기본적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깔고 있는 사회인 데다, 한국에서 이렇다할 기술이나 능력 없이 생활하던 그들의 삶이 갑작스럽게 나아진다는 것을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가족의 모든 생활을 건사하던 어머니가 자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아베' 없는 미국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삶의 의욕을 잃은 어머니는 틈틈이 '아베'와 함께 한 지난날을 공책에 정리하며 세월을 보낼 뿐이었다.
한국만 떠나면, 미국에만 오면 '만사 오케이!'일 줄 알았던 자신들의 생각이 여지없이 빗나간다. 어머니가 겪었던 '몹쓸 짓', 철부지 자신이 한국에서 저지른 짓을 고스란히 당하는 여동생 정희를 보며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에 진호는 갈등한다. 결국 진호는 버리고 떠난 '아베'를 찾기 위해 제 발로 한국에 나온다. 짐승이었던 아베가 그 가족들에게 '형'으로서, '황량한 들판에 던져진, 그 시든 나무들의 꿋꿋한 뿌리'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비로소 '아베의 가족'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왔건만, 가난과 범죄로 얼룩진 자신들의 과거가 있는 곳, 아베가 있는 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깨달음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역사와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전쟁이 주요 배경을 이루는 작품은 어김없이 처절하고, 서글프고, 참혹하다. [광장]의 이명준과 김은혜, [기억 속의 들꽃]의 명선이, [엄마의 말뚝]의 엄마와 오빠가 모두 그러한 운명을 맞았다. 간혹 남녀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엮어 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곁가지일 뿐, 사람을 죽이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전쟁의 본모습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한때, 미국 이민이 마치 우리 사회의 만병 통치약처럼 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원정 출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까지 자녀의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부류도 있었다. 역사와 사회를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역사 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뿌리를 내던지는 데 용감하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이민과 원정 출산에 앞장선 이들이 대개 많이 배웠다는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었다니. 그들에게 [아베의 가족]을 들이민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무튼 '진호의 아베 찾기' 결과는 작품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진호가 결국 아베를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사랑, 정은 그만큼 뜨겁고 질긴 것이기에. 뒤늦게 세상에 눈 뜨고 형을 찾아 나선 진호에게서 진한 믿음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현실과 역사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뿌리찾기를 시도
전상국(全商國)은 194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동행]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현재는 강원대 국문과 교수로 있으며, [아베의 가족]으로 대한민국 작가상과 문학상을, [우리들의 날개]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현실과 역사를 넘나들며, 전쟁으로 인한 고향 상실과 삶의 뿌리찾기 의식을 깊이 있게 다루어 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대학 입시만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기고 다른 모든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학교 현실을 통하여, 전체의 논리를 앞세운 위선이 가득 찬 우리 사회를 고발한 [우상의 눈물], 눈 쌓인 산길을 신분을 감추고 범인과 형사가 동행을 하다, 결국 범인의 신분이 밝혀지지만, 아버지 무덤가에서 자살할 결심을 한 억구에게 연민을 느낀 형사가 그를 놓아주는 [동행], 소년기와 청년기의 박덕수를 내세워 해방 직전에서 4·19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시련을 추적하며 전쟁의 폐해를 고발하고 인간다운 삶의 문제를 파헤친 연작 장편소설 [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