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소 장관
월산 윤 항 중
공수특전여단 인사참모로 근무하던 때 영관급 장교들의 보직이 매우 적체되어 너나할 것 없이 애로가 많았던 형편이었는데 나 자신도 지역대장으로 무려 24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다행히 여단본부 인사참모 자리가 공석이 생기는 바람에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 보직변경이 가능했던 기억이 난다.
헌데 지역대장 근무를 무려 36개월이나 해놓고도 적절한 보직자리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며 고통을 감수해오던 N 소령을 볼때마다 무척 마음이 아팠는데 마침 00 참모가 교육파견으로 전출하게 되어서,
“다음 주 간부 송년회식시 빙고게임 사회를 맡아달라. 00 참모 후보로 추천할테니 잘하라!”고 권유하여 동의를 얻었기에 여단장께 ‘빙고게임 사회자’로 추천하여 어렵게 승낙을 받았으니 1단계 작전은 성공이었다.
“정훈참모나 인사참모인 자네가 하는게 좋지않겠어?” 라는 여단장의 의견이 있었으나 N 소령의 실력을 한번 점검해 보시지요.” 라던 강력한 건의가 다행히도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N 소령이 사회자로 지명된 것을 전해듣고 정말 고맙다며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 눈물겨웠고
“여단장님의 사모님이 매우 까다로우신 분이니 각별히 신경을 써야할 것!”을 참고삼아 덧붙여주었다.
이윽고 군악대의 팡파레 연주속에 빙고대회장에 입장한 여단장 내외분이 자리에 앉자마자 개회선언을 하려고 N 소령이 뚜벅 뚜벅 단상으로 나아가 마이크 앞에 섰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단결! 제 0공수 특전여단 제1무임소 장관 소령 N 00! 빙고게임의 사회자로 명받았습니다. 단결!”
나는 금세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더란 말인가?
이건 전혀 사전 ‘씨나리오’에 없었던 돌발적인 해프닝(방송사고?) 이었다.
‘제1무임소 장관이라니?’ 여단장과 사모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상기되어 울그락 불그락 심지어 안면근육마저 경련을 일으키는 장면을 목격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사모님의 심기가 극도로 불편해지고 있음을 분위기로 어렵지않게 직감할 수 있었다.
‘제1무임소 장관’이라니...
평소 보직정체로 누적된 불만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순간이었으니 충분히 ‘항명이요 하극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N 소령은 지역대장 36개월이 지나도록 보직을 바꿔주지 않는 부대는 전군에서 유일무이하게 우리 부대뿐 이라며 불평이 잦았던터였기에 보직변경을 위해 시기적절한 ‘발탁의 기회’를 제공하려던 나의 주무 참모로서의 기막힌 작전이 잘 맞아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고놈의 입이 방정을 떨어 산통을 깨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혹떼려다 되레 붙인셈이랄까?
순식간에 실내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질식할 것 같았고 조용하다 못해 살벌하리만큼 공포의 도가니로 휩싸이고 있었다.
이윽고 몹시 분개한듯한 사모님께서 여단장께 귓속말로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고 얼굴이 더욱 새빨개진 여단장이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인사참모! 사회자 당장 바꿔!”
“알겠습니다. 즉시 정훈참모로 교체하겠습니다.”
잠시후 또다시 불려간 나에게 여단장의 하명이 재차 떨어졌다.
“내일 당장 보직해임시키고 타부대(전방)로 전출시켜.저런 버릇없는 놈은 당장에 쫓아버려야 해!”
묵묵히 뒷걸음으로 물러선 나는 그 후 ‘빙고게임’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나버렸는지 살필 기력조차 전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출근과 동시 나를 호출한 여단장,
“인사참모! 전출명령 기안해 오란말야. 당장 이 자리에서 작성해! 빨리! 내가 싸인할테니까 말야!”
“여단장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N 소령이 비록 말을 실수는 했습니다만 ‘무임소장관’이란 말이 사실상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대담하게 대들어 보았다.
“잔소리말고 당장 기안해 오란말야 ! ”
“안됩니다. 지금 타부대로 전출되면 그동안 준비해온 육군대학 응시자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뭐야? 저런 못된놈이 무슨 육대를 가겠다는거야? 네가 여단장이야? 왜 안된다는 거야?”
“여단장님! 저희 부대 영관장교 중에서 여단장님 슬하를 떠나기 원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동안 덕을 베풀어 주셨고 은혜와 사랑이 크셨기 때문입니다.”
“한달 후에 육대 시험이 있는데 응시기회를 주시지 않으시면 아마도 평생 원망을 듣게 될겁니다.”
“기왕에 덕을 베푸시는것! 끝까지 관용을 베푸시고 노여움을 푸셔야 합니다. ”
나로서는 어쩌면 처음으로 식은 땀을 흘리면서 갖은 아첨과 아부를 뒤섞어가며 온갖 실력을 총동원하여 ‘구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전속부관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여단장님 사모님 전화 와있습니다.”
“당장에 타부대로 보따리 싸서 보내지 않고 도대체 뭣들하고 앉아있는거냐?”는 사모님의 호통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여보! 나요. ...응 그래 그러지않아도 지금 인사참모를 불러서 호통을 치고 있어요. 허허 내 참. 잘 알았다니까 자꾸만 그러네...”
평소에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공처가, 엄처시하’로 소문난 게 여실히 입증되는 광경이었다.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
그렇지만 나는 ‘임전무퇴’ 정신으로 완전무장하고 달려드는 주무참모였던지라 ‘전출불가’라는 ‘초지관철’에 성공하였으니 그 얼마후, 현직에서 육대에 응시하여 ‘합격’의 영예를 안게 된 N 소령이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감사해 했었다.
다행히 희망했던 00참모로도 보직이 결정되어 ‘분골쇄신’의 자세로 근무하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은인’으로 평생 보답하며 살고싶다던 그의 과찬의 말을 뒤로하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결국 ‘무임소 장관’발언이 빚었던 웃지못할 해프닝치고는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를 뻔 하였는데 천만다행히도 불상사를 모면하고 목적을 달성(보직변경)할 수 있었으니 이런때 소신껏 밀어붙일 수 있었던 주무 참모로서의 역할이 마냥 뿌듯했다.
그후 수년이 지나 전방지역 대대장 근무를 마치고 사단 작전참모로 보직을 받은 나는 사단이 1군 지휘검열을 받게되어 주무참모로서 동분서주하며 예하부대를 독려하고 있었는데 마침 0 연대 장병의 ‘야간 사격측정’시 유감스럽게도 지휘관도 모르게 부당한 방법(이른바 베트콩 사격)으로 사격성적을 올려보려던 불명예스런 사건이 현장에서 검열관에게 적발되어 사격이 중단된채 사태수습에 말초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피를 말리는 순간이 다가왔다.
상황보고를 접수하자마자 놀라서 현장에 달려간 나는 해당 연대장의 처참한 몰골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부끄럽게도 야간사격 성적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상부의 잘못된 방침 때문에 있어서는 안될 ‘베트콩 사격’이 적발되어 엄중한 문책을 면할 수 없었던 가슴아픈 예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대대장 시절 ‘야간사격술 향상방안’ 1군 시범을 주도했던 자신의 책임감을 통감하기도 했는데...
“내 군생활 중에 이렇게 부끄러워 본 적이 결코 없었네. 이것도 내 운명이니 처분대로 따르겠소!”
머리를 숙인채 허이탄식을 하는 선배 연대장이 애처로워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참모장 대 대대장으로, 그리고 나서 나를 작전참모로 발탁해 준 고마운 선배이었기에 더욱 뵙기가 민망했다.
그런데 이게 웬 구세주란 말인가?
천만 뜻밖에도 검열 책임자로 현장에 출동했던 왕년의 N 소령이 어느새 육군대학 교육을 이수하고 군사령부 감찰부 검열과로 보직(중령)되어 사격측정 책임자의 신분이 되어 그 자리에 나타났던 것이다.
금번 사격측정이 끝나면 정식으로 나를 찾아오리라고 별러왔는데 이렇게 빨리 그 기회가 왔다면서 인사가 늦었지만 그 옛날 ‘검은베레모’시절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간직해 왔노라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다더니 고심끝에 그가 모종의 비장한 결심을 했던지 이윽고,
칼자루를 쥔 격이된 N 중령이 내 소매를 잡더니 구석진 곳으로 은밀히 이끄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길이 있다더니...
“윤 형! 옛날 특전부대에서 무임소장관 시절 베풀어주신 은혜를 이제야 갚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둘만 조용히 눈감아 버립시다. 문제삼지 않고 이 문제는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부끄러워 할 말이 없네 자 이제 군생활 그만하라는 운명인 것으로 알고 집에가서 보따리나 싸야겠네...”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연대장이 머리를 떨구면서 돌아가는 모습이 애처러웠는데,
“연대장님! 다행스럽게도 상황이 순조롭게 종료되었습니다. 검열과장 N 중령이 저와 옛 베레모 동기거든요. 걱정마시고 발 쭈욱 뻗고 주무십시오.”
“작전참모! 고맙네. 검열관님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휴우! ” 연대장의 안도의 한숨 소리...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요 인생하처 불상봉(人生何處 不相逢)이란 말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첫댓글 예전에는 사모님들의 치마 바람이 좀 있었지요.
지금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분의 치마바람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대단한 것이었지요. 지금이야 정말 어림없고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