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우재 고개, 옛 이동통신사 기지국 자리에 위치한 고즈막한 단층건물, 이곳이 ‘담배건조실’과 ‘다작(多作)’ 화가로 유명한 신재흥(55) 화백의 화실이다.
들어서자, 세월의 두께와 내공이 녹아 있는 팔레트가 눈에 띈다. 17년 동안 1500여 점의 작품을 출산한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물감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낡은 청바지 차림의 화백은 세월을 비껴간 듯,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 준다.
화실 벽, 나무로 얽혀 흙 발라 지었던 ‘담배건조실’의 흔적들이 일상처럼 남아 있다.
사라져 가는 여정들… 그는 세월의 연륜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낡은 아날로그…고향의 일상
신재흥 화백의 모드 작업은 황토(黃土)를 매개로 이루어 진다.
음성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 온 신재흥 화백, 그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담담한 시선으로 우리의 고향을 그리고 있다.
햇살이 완연한 봄날, 이웃으로 마실 나가는 촌부의 설렘, 엄동에 모처럼 볕이 난 담벼락에서 서성대는 아낙, 춥고 건조한 겨울날 밭에 나와 언 몸을 녹이기 위해 군불을 때는 농부,
동파를 면하기 위해 스치로폼으로 수도파이프를 동여 맨 수도기와 우물, 마을 어귀에 세워진 가로등과 뒤편 가옥의 양철제 굴뚝의 대조들은 낡고 아날로그적인 우리 고장의 지극한 일상이다.
이처럼 신재흥 화백의 작업은 오롯이 일상성과의 교감을 통해 우리의 서정을 끌어 올리고 잔잔한 울림을 준다.
그림 속 할머니가 신었던 고무신이 주인을 잃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마루 밑에 덩그러니 놓인 광경,
그는 “갔던 곳을 또 가서 사생하는 경우가 많다. 갈때마다 달라지는 모습, 내 감성이 변화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운명처럼 받아 들였던 가난”
서울 토박이인 신 화백이 음성에 정착한 건 1996년 가을, 시골 행을 결심하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생활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시골 정취를 물씬 느끼며 그림을 그리겠다”는 신 화백의 환상은 사치였다. 그의 가족들을 기다린 건 ‘지독한 가난’이었다.
계속되는 생활고, 그는 가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상업 그림을 그려달라는 유혹이 많았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뿌리칠 수 있었다”며 “좋은 그림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해본 일이 없다”고 회상했다.
가난한 화가의 아내는 지난 2004년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먼저 갔다. 내게는 제일 큰 스승이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특히, 올해 대학을 졸업, 번듯한 직장인이 된 외아들 선호군에 대해 그는 “외로운 환경속에서 자랑스럽게 커 주었다. 항상 대견하다”며 “언제나 친구같은 아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삶의 애환과 정서가 가득 담겨 있는 사라져 가는 풍경을 통해. 그는 스스로를 관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고의 작품 1500여 점, 수 만장의 사진자료
신 화백은 유화 기법을 이용해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초창기만 해도 담배건조실은 이 풍경화 속 하나의 소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품활동을 하면서 “담배건조실은 이곳 어르신들에게는 황토 흙으로 지어진 높은 건물이 아니라, 추억이 담긴 소중한 보물상자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림 속 소품이었던 담배건조실에 갖가지 사연들이 곁들여 지며, 그의 감성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인고의 열정으로 작품 활동에 몰두, 농촌의 삶, 폐지줍는 할머니의 모습 등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현장 밀착형 작품들도 탄생시킨다.
그가 음성에 내려와 제작한 작품만 1500여 점, 사진자료는 수 만장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지역의 아린 풍경들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그는 “자꾸 나이가 들어가니까, 작품을 하면서 느꼈던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더욱 소중해 진다”며 “이를 전시할 미술관이나 문화공간을 마련, 지역 주민들에게 돌려 주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의 존재가 귀하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 신재흥 화백의 작품활동 및 경력
* 개인전 및 부스전 39회
(서울예술의전당 2회, 공평아트센터, 라메르갤러리, 청주예술의전당 4회 등)
* 충북우수예술인상 / 그랑프리대상 초대작가상 / 한국미술협회 공로상 수상
* 세계여성미술대전 심사위원 /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 / 대한민국미술공모대전 심사위원 / 반기문로조각 심의위원 / (사)한국미술협회 음성지부장 역임
* TV방영: KBS 문화현장 / MBC 사람과 사람들 / KBS2 삼색기행 / MBC 전국시대, SBS CJB 행복한 아침 등 방영
* 現)충북미술대전 초대작가 / 현대미술작가연합회 자문위원 / 남한강전 자문위원 / (사)한국미술협회 회원
첫댓글 신재흥화백님 멋찌십니다.
어릴적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을것같아 꼭 한번 가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