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江陵 鶴山 金光坪) 이야기
1. 금광평(金光坪)의 풍광(風光)
선상지(扇狀地) 금광평(金光坪) / 월호평(月呼坪) 벌판 / 금광리 앞산 망덕봉(望德峰)
내가 자란 학산 금광평(金光坪)은 상당히 넓은 벌판으로 1948년, 내가 2살 때 우리 집이 강릉 안땔(노암동)에서 이곳으로 이사했고, 1950년 6.25의 발발로 나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사변(事變)을 고스란히 겪었다.
이곳은 주변에 비해 지대가 높은 벌판으로 태백준령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어단천, 학산천, 금광천을 이루며 동해로 흘러드는데 그 계곡물의 토사(土砂) 퇴적으로 생긴 벌판이니 선상지(扇狀地)이다. 선상지(扇狀地)는 하천(河川)이 산지(山地)에서 평지로 흘러나올 때 곡구(谷口)를 중심으로 동심원상의 등고선을 갖고 형성되는 충적(充積) 지형을 선상지(扇狀地)라고 하며, 흡사 부채(扇)를 펼쳐놓은 모양의 지형을 말한다.
대체로 면적이 2㎢ 이상이 되어야 선상지(扇狀地)로 인정하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상지로 꼽는 곳을 열거해 보면,
①강릉 금광평(金光坪), ②충북 제천(堤川), ③경주시 안강(安康), ④경북 경주시, ⑤경주시 입실(入室), ⑥울산시 가천(加川), ⑦경북 청도(淸道), ⑧대구 월배(月背), ⑨경남 합천 적중(赤中), ⑩전남 구례 천은사(泉隱寺), ⑪전남 구례 화엄사(華嚴寺), ⑫경남 사천(泗川), 그리고 ⑬경남 삼천포(三千浦)로 우리나라 선상지(扇狀地)로 모두 13곳이라고 한다.
이곳 금광평(金光坪) 선상지는 길이가 약 4㎞이고, 가로 너비는 약 3km인데 강릉시 북쪽 사천(沙川)도 선상지로 형성된 곳이라고 하며 길이가 약 2km, 너비는 4km 정도라니 금광평의 절반 정도 크기겠다.
금광평은 학산리에 속하며, 학산 본동(本洞/1리)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의 고장이고, 이곳 금광평은 우리가 이사(1948년)할 때까지도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던 곳이었다.
이곳 금광평(金光坪)은 구정면(邱井面)인데 학산리(鶴山里), 금광리(金光里) 및 동해(東海) 쪽으로는 월호평(月呼坪/오리똘), 납돌(申石) 등 상당한 부분을 포함하는 광활한 분지(盆地)라고 하겠다.
이곳의 풍광(風光)을 잠시 살펴보면,
태백준령 법왕사 골짜기(칠성골)와 큰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이면서 칠성지(七星池)를 이루고, 다시 어단리를 지나며 어단천(於丹川)이라 부르다가 금광평(金光坪) 북쪽 학산 본동(本洞) 쪽으로 흐르는 것을 학산천(鶴山川)이라고도 부른다. 또, 어단리(於丹里) 동막골(東幕谷) 인근의 작은 개울물이 합쳐져 금광평 남쪽으로 흐르며 동막지(東幕池)를 이루었다가 흘러내리는데 금광천(金光川)이다. 그 밖에도 학산 북쪽 여찬리(余贊里)에도 섬석천(剡石川)으로 부르는 개울이 있어 장현(長峴)저수지에 머물렀다 내려오며 모산봉(母山峰) 아래에서 학산천, 금광천과 세 물줄기가 만나 납돌(申石), 월호평(月呼坪/오리똘) 들판을 지나 동해 남항진(南港津)으로 흘러들며 이때 이름이 섬석천(剡石川)이다.
강릉시와 접경에 있는 오리똘, 혹은 월호평(月呼坪)이라 부르는 곳은 강릉비행장 옆의 제법 넓은 벌판인데 마을 가운데 오리를 올려놓은 솟대(蘇塗)가 있어 오리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또 마을 부잣집의 여종 이름이 월(月)이었는데 뜰에 나가 일을 할 때 주인이 담장 밖으로 목을 내밀고,
‘월아~, 월아~’하고 이따금 큰 소리로 불러서 월호평(月呼坪)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단다.
금광평(金光坪)은 어단천(학산천)과 금광천의 가운데 부분으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제법 넓은 분지(盆地)를 이루고 학산 본동과 금광리는 개울물이 흐르는, 조금 낮은 지역인 셈이다.
금광평 마을의 가운데에도 실개천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 도랑물이 졸졸 우리 집 앞을 흘렀다.
나는 학산 1리에 있는 구정국민(초등)학교 18기 졸업생인데 당시 사진이 있다.
18기 졸업사진(단기 4293년(서기 1990년), 남 31명, 여 28명. 계 59명)
구정(邱井)학교 18기인 우리는 전체인원이 60명 정도였다고 생각되는데 남자 1반, 여자 2반으로 두 반이 되었다가 언젠가는 합쳐서 한 반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