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수정해야 함)
인사동(책p.398), 명동, 이태원, 광화문
명동 : 예전 파스쿠치 지점(중구 충무로 네이처 리퍼블릭), 명동 성당(132), 신세계 백화점 본점(책p.118) - 명동 교자(620), 명동 돈가스(622), 명동 충무김밥(624)
종로 : 1.2,3,4가 동사무소, 종로 귀금속거리(책p.448)
이태원(책p.394) : 이슬람 사원
광화문 : 세종로(책p.380)
강남 : 서래마을(책p.376)
동대문 시장(책p.422)
* 을지로 : 인쇄출판업
* 세종로 : 도로원표, 세종문화회관(외관)
영등포 - 타임스퀘어
신세계 백화점 본관(책p.118)
한국 최초의 백화점인 미쓰코시백화점은 1930년대 경성을 방문한 사람들이 반드시 가 보는 명소였다. 2007년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쳤다.
신세계백화점 본관이 있는 충무로 일대는 1930년대 경성 최고의 번화가로, '혼마치'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이 혼마치 거리에 크고도 화려한 '미쓰코시백화점'이 있었고, 당시 소비문화에 한참 젖어 있던 사람를은 너나 할 것 없이 근대 상품의 진열장과도 같은 이 백화점을 중심으로 혼마치 거리를 부유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이들을 일컫는 '혼부라'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미쓰코시백화점은 일제가 식민지 경영의 필요에 의해 들여온 대표적인 민간 상업자본으로, 일본의 자본이 물밀듯 밀려들어오던 1906년, 현재의 명동 사보이호텔 자리에 처름 설립되었다. 이후 1927년 경성부 청사가 현재의 서울시청 자리로 옮겨가자 공터로 남아 있던 그 자리에 백화점을 신축한 것이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관 건물이다.
한국의 최초의 백화점은 미쓰코시백화점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상업 건물인 데다 당시로서는 진귀한 구경거리여서 경성을 방문한 사람들이 반드시 가 보는 명소였다. 이 초대형 건축물은 겉보기에도 으리으리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 홀에서 이어지는 하얀 대리석 계단과 좌우로 펼쳐진 매장들, 엘리베이터, 옥상정원 등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별세계로 보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상권 한가운데에 앉아 있던 미쓰코시백화점은 광복 후 동화백화점으로 바뀌었고, 6.25전쟁 당시에는 미군의 PX건물로 쓰였다. 잘 알려진 소설, 이상의 <날개>와 박완서의 <나목>에는 각각 1930년대와 50년대 이곳 풍경이 등장한다.
옛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이 지금처럼 신세계백화점이 된 것은 1963년 삼성이 인수하면서부터다. 이후 한동안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2007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쳤다. 다행히도 백화점 측이 건물의 문화재적 가치를 외면하지 않아서 리모델링하면서도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했다. 특히 백화점 중앙에 편리한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대신 기존의 중앙 계단을 그대로 살렸다.
고전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이 계단을 이용해 6층까지 걸어 올라가면 옥상정원이 나온다. 옛날 미쓰코시백화점 옥상에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신세계백화점 옥상정원에도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 작품이 젅시되어 있다. 옛날과 달리 벽이 높아 옥상에서 거리를 내다볼 수 없는 대신, 이곳이 도심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명동 성당(책p.132)
종교적, 건축사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명동성당.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작은 부분까지 정성을 담아 지은 건물임을 느낄 수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리는 명동. 복잡한 명동 거리 동쪽 언덕에는 이와 대조적으로 차분히 쉴 수 있는 곳이 있다. 명동 성당이다. 공식 이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교회'. 한국 천주교의 총 본산이자, 최초의 본당으로 1898년에 완공했다.
명동성당은 이 땅에 뿌리내린 천주교를 대표하는 곳으로 종교적 의미가 큰 곳이다. 또한 고딕양식 건축에 있어서 성당 건축에 적용해야 할 규범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비롯해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흐름과도 함께해 온 뜻깊은 장소다. 한 번쯤은 이러한 의미를 하나씩 짚어가며 명동성당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이곳은 복잡한 명동 나들이 끝에 잠시 들러 차분히 쉬었다 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지친 다리를 쉬는 동안 어느새 마음도 평화로워진다.
명동성당은 이 땅에 천주교가 뿌리내리고 꽃핀 곳이다. 명동은 조선시대에 '명례방'으로 불렸는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천주교 신도들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여 정기적인 신앙집회를 가졌으며, 한국인 최초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흥훈이 다른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 1890년 주교관이 먼저 건립된 것을 시작으로, 1892년부터 6년간의 긴 공사를 거쳐 1898년 명동성당이 완공되었다.
고딕식 성당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명동성당의 와관은 붉은색과 회색 벽돌로 마감했다. 100년 넘는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빛이 바랜 벽돌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을 올려다볼 때면 웅장한 인상을 받는다. 또한 건물 외관을 이루고 있는 벽돌 하나 하나를 쌓아 올린 모양새는 어찌나 섬세한지 미끈하기만한 현대인의 건축술로는 흉내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명동성당은 멀리서만 보지 말고 꼭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자. 유리창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창틀의 문양 등 구석구석 작은 부분까지 정성을 담아 지은 건물임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성당 주변에는 여러 부속 건물과 계성여고 등 일제시대 이후에 들어선 건물들이 포진해있는데, 하나같이 비슷한 분위기의 벽돌로 마감해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느껴진다.
명동 거리와 달리 차분함이 감도는 명동성당. 그러나 이곳에서는 요즘도 심심찮게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를 볼 수 있다. 민초들이 최후의 보루로 명동성당을 찾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삶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