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우듬지에 휘파람새
- 신헌경 선생님
“......이번에 떨어진 놈은 각오해.
우수학급 안 되면 단체기합!
이런 말씀은 정말 싫다. 매 맞기 싫어서가 아니라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더 커졌지만
마음의 절망과 쇠약해짐도 함께 느낀다.
오늘도 이런 생각으로 가을밤이 깊어간다......”
이 글은 1989년 9월, 제가 펴낸
순천금당고 학생판화집 <깜지에 뜨는 별>의 첫머리에 실은
황경훈 학생 시의 일부입니다.
‘자신의 커진 몸에 매를 맞는 초라함’이라...
손꼽아보니 야가 인자 오십대 중반이겠네요!
지금의 경훈이 보다 한참 어린 꽃나이
제 마흔 살 즈음
광주 변두리 시골마을에 집을 한나 지었더랍니다.
오월 밤 논두렁의 오만 풀벌레들과
참개구리 맹꽁이 황소개구리들의 합주가
와글와글 찌르르 옥닥옥닥 오케스트라인데
그 틈새로 “히-이이 히-이이”
기괴한 호각소리가 긴 밤을 새웁니다.
“도대체 이 놈의 정체는 모야!”
여름을 싹 지우고서야 알았죠.
모두 그냥 귀신새라 부르는 ‘호랑지빠귀’였죠.
그런가 하면 날이 새기 바쁘게
날마다 또 내 창문을 쪼아대는 달고
귀한 목청의 메조소프라노 가수와도 함께 살았지요.
“호오 호오 호르르깍꿍”이 미친 귀여움의
이름인 즉‘휘파람새’랍니다.
난 그날의 내 사십 자신 나이를
프러시안블루 빛 청춘의 가절이라 불렀죠.
거무레한 미몽의 벌떡증? 헤픈 제 2의 사춘기?
저 호랑지빠귀의 부리처럼 내 불혹을 비웃었고
공연히 또 시심이 도져 밤낮을 끌어안고 몸살을 치면
호르르~ 휘파람새 쓱 나타나 조단조단 재잘재잘
한 새벽을 달래주었던 시절.
아, 마침내 몸의 집을 벗은 마음 한 자락 걸치고
한 선사의 뒤를 조용히 밟았죠. 거기서 홀연
내 존재의 바다를 물었습니다.
‘父母未生前本來面目’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첫새벽의 어스름을 깨고 오래 고개 숙인 화두 하나
무등산 새벽 별빛 아래 성성적적 허리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기필코 깨치고야 말리라!
차마 분별없어지는 자리 수평선다운 허공으로
시간이 깨어지고 공간이 허물어지는 지평선의 나락으로
가뭇없이 분심을 내었습니다.
내 짐작에 신 아무개라는 동지도 얼추 그 무렵 아니었을까.
몸 상하고 마음 허문 허허로운 들녘 한 가운데 서서
학교를 향하던 긴 걸음 딱 멈추고
오래 접혔던 신발의 뒤축 바로 세워 홀연히
선도의 산정, 그 지극한 천지 율려의 수행으로 깊었을까 혹
묵음의 고요를 타고 선선히 내려앉은
중도의 평화로 길을 잡았을까
차마 묻기 어려웠지만 그 길 따라 오래
말 몸 술 벗 길 숲 꽃 꿈들 완성한 화두삼매인 즉
어지간히 가슴 벅찼으리라 짐작은 하였습니다.
당신과 나 이 두 비슷한 시공의 교차 속에서 만난 새는
저 꼭두새벽의 환희, ‘휘파람새’였으리라 아멘.
시공을 타파한 듯 그 때 문득 그가 보고 싶어졌고
그도 나를 감응하여 도술을 부려
도토리 상수리 마수리처럼 또르르 웃었을 겁니다.
“어아 어아
착한 마음 큰 활 되고 악한 마음 과녁 되네~“
배달나라 제천의 얼노래 부르며
우리 착한 딸들 다 같이 떨쳐 일어서고 함께 나아가
떼창 부르고 떼춤 추면서 그 옛날 우리가 그러했듯이
새 세상 신 새벽을 여는 빛보라를 일으켰지 않았습니까.
민중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하늘 높이 제 우듬지 하나씩 꺾어들고 응원봉처럼 흔들며
호랑이 꼬리 움켜쥐듯 가슴껏 시위를 당기던 우리들의 그날도 오,
“백백 천천 한마음 되니 배달나라 영광이로세~”
참세상의 거룩한 꿈을 정열적으로 실현해주셨던
오늘 이 자리, 강인하고 뜨거운 동지들이여 형제들이여!
당신들은 검지 중지 손깍지에 끼인 뜨거운 화살이었습니다.
오늘 오롯 신헌경 전우시여!
당신은 압도적인 전사의 심장으로
수많은 그 전장의 대오를 이끌었고
집회와 시위의 일백 가지 구호를 자유자재로 선창하였습니다.
새벽 상경, 휴게소의 허기, 경찰서 구치, 명동단식들 속
악머구리 저항을 끝으로 탈진해버렸으니
그날 벳구레 앞뒤가 바짝 붙어버린 당신의 허리춤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내 부족도 함께 위로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전교조 호 먼 항해의 믿음직스러운 나침반이자
낭만의 마도로스파이프 자랑스러운 선장이셨습니다.
신헌경 선생님...
아시는 대로 나 지금은 화순도암중학교 뒷동산
밤나무 숲정이를 삽니다.
종종 아래 중학교 밤톨들의 운동장을 굽어도 보고
교문 통을 갸웃거려 우리 상수리들의 구령대도 살펴보다가
가만히‘참교육의 함성’을 콧노래 부르며
필구야 형남아 미숙아 그 얼굴을 하나 둘 불러내곤 했어요.
“살아 숨 쉬는 교육 교육민주화 위해 가자
교원노조의 깃발을 힘차게 휘날리자 투쟁 투쟁 투쟁!”
광주 오월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민주화운동의 대오는
결코 십년을 넘기지 않았죠.
그리하여 애오라지 촛불의 바다를 건너
빛의 혁명으로 귀환한 지금,
오디세우스 우리들...
존경하는 오늘 신헌경 도반님...
전선에서 부상당한 몸 겨우 추스려
이제금 높은 도의 너럭바위를 찾았으리니
혹여 지난날 서운했고, 내 약략스러웠던 문장이 떠오를지라도
수염에 불 끄듯 털어버리시게나.
아직도 우리는 태양 같은 하나요
아직도 우리는 북두칠성 같은 어깨들임을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세나.
크고 곧아서 참이요,
스스로 몸을 살라 새 세상의 구들을 덥히리니
나무공양이요,
그 약미 영험하다는 참나무겨우살이들의
하늘 집 노래이면서
아무 날 시큼한 막걸리 한 사발에
도토리묵 한 볼테기까지
키 훤칠하고 몸빛 고운 오늘
조선 참나무 한 그루 당신께 선사합니다.
노안에 잘 보일지 모르겠네만
지금 내 왼 가슴 저고리 섶으로는
그대를 향한 입부리 어여쁜 새 한 마리 앉아있다네.
“내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시게” 내 걸게 한 잔 삼세!
환기 9223년 단기 4359년 가실
참세상 바라던 뭇 꿈들의 벗, 참나무 할배
삼가 신헌경선생님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