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5권
5. 아귀품(餓鬼品)
48) 장자 야달다(若達多)가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인하여 아귀에 떨어진 인연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당시 성중에 야달다(若達多)라는 장자가 한량없는 재보와 노비ㆍ사령과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 따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여행 도중 기환(祇桓)에 이르러 불 세존의 그 32상과 80종호로부터 마치 백천의 해와 같은 광명이 나타나서 온몸을 장엄함을 보고는, 곧 신심과 공경심을 내어 땅에 엎드려 예배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더욱 환희심을 내어서 그 길로 집에 돌아가 모든 권속들에게 도에 들 것을 말하였다.
이때 권속들이 모두 허락하니 다시 부처님 처소에 되돌아와서 출가하기를 구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여.”
그러자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의 모습을 이루었다.
이때 여러 친족과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가 본래 부호의 아들로서 출가했으니 옷이나 발우를 비롯한 갖가지 물자를 많이 보시하리라’ 했는데,
출가한 뒤에도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내어 심지어 범행(梵行)을 닦는 같은 동료들에게도 보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목숨이 끝나 아귀에 떨어졌는데, 아귀 속에 떨어져서도 자기의 옷과 발우만을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동료 스님들이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방문을 열어서 시체와 옷ㆍ발우를 수습하여 화장하려 하다가 그 방안에 몸이 촛대처럼 마른 어떤 아귀가 아주 무서운 모습으로 옷과 발우를 지키고 있어 누구도 접근할 수 없음을 보고는, 세존 앞에 나아가서 이 모든 사실을 아뢰었다.
세존께서 곧 여러 비구들을 거느리고 그 방에 들어가 아귀에게 말씀하셨다.
“졸렬하여 부끄러움이 없구나. 네가 전생에도 출가하여 도에 들어와 비구가 되어서도 재물과 이익에만 탐착하고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다가 마침내 아귀에 떨어져 이 추악한 몸을 받았거늘 어찌하여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다시 이곳에 와서 여전히 옷과 발우를 지키느냐?
인색하고 탐욕스러움은 그 무엇보다도 허물이 많은 것이므로 인색하고 탐욕스러워하는 중생은 다 나쁜 갈래에 떨어지게 마련이니라.”
그리고 세존께서 또 갖가지 법을 설하시니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그는 곧 깊이 부끄러움을 느껴 옷과 발우를 여러 스님들께 보시한 다음, 그날 밤에 목숨이 끝나서 다른 몸을 받되 날아다니는 아귀에 떨어졌다.
단정하고도 아름답게 온갖 보배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몸에서 나온 광명이 온 기환정사를 비추며, 마치 천신과 같이 허공을 자유로이 유행(遊行)하여 부처님 처소에 내려와 엎드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께서 곧 갖가지 법을 설하심으로써 그는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기쁨에 넘쳐 돌아갔는데,
이튿날 아침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젯밤 이 기환정사에 비춘 광명이 혹시 범천왕ㆍ제석천왕ㆍ사천왕의 광명이거나 28부(部) 신장들의 광명이 아니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시방 세계의 큰 보살들이 이곳에 와서 설법을 듣기 위해 비추는 광명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범천ㆍ제석천의 광명이나 28부 신장들의 광명이 아니고, 바로 이 사위성의 대부 장자 야달다가 출가 수도하던 도중 근일 목숨이 끝나 날아다니는 아귀에 떨어져서 향ㆍ꽃을 가지고 나에게 공양하는 것인데, 이는 그 광명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인연을 말씀하실 때 그 모임에 있던 비구들이 다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생사를 싫어하여 그 중에 혹은 수다원과를, 혹은 사다함과를, 혹은 아나함과를, 혹은 아라한과를 얻은 자도 있었으며, 혹은 벽지불의 마음을 내고, 혹은 위없는 보리심을 낸 자도 있었다.
다른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다 환희심을 내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