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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5권[1]
[서당 화상] 西堂
마조의 법을 이었고, 호주虎州에서 살았으며, 휘는 지장智藏이다.
어느 날 어떤 수재秀才가 와서 물었다.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다.”
“불보ㆍ법보ㆍ승보는 있습니까?”
“있다.”
“묻는 것마다 모두 ‘있다’고만 말씀하시니, 화상이 그리 말씀하신 것이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선사가 물었다.
“수재께서는 전에 어떤 노덕(老德:老宿)을 뵈었는가?”
“전에 경산徑山 화상을 뵌 적이 있습니다.”
“경산 화상께서 수재에게 무엇이라 하시던가?”
“온갖 법은 모두 ‘없다’고 하셨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수재는 혼자 몸인가, 다른 권속이 있는가?”
수재가 대답했다.
“저에게는 아내도 있고, 두 자식도 있습니다.”
“경산 화상께도 처자가 있는가?”
“그 경산 화상은 참으로 도인이어서 순일純一하여 잡됨이 없습니다.”
선사가 꾸짖어 말했다.
“경산 화상은 안팎을 잘 다스려 이치와 행이 구족하시니, 일체가 모두 없다 하여도 되지만, 공은 골고루 갖춘 삼계의 범부로서 처를 껴안고 자식을 기르니, 어떤 씨앗[種]인들 심지 않겠는가?
그 모든 것이 지옥 찌꺼기인데, 어찌하여 모든 것이 없다 말하는가?
만일 공이 경산과 같을 수 있다면 공도 없다고 말하는 것을 인정하리라.”
이에 수재가 뉘우치며 절을 하고 물러갔다.
마조가 선사를 보내 국사에게 서신을 전하게 했다. 도중에서 천사(天使:왕의 사자)를 만났는데, 천사의 만류로 남아서 함께 공양을 드는 차에 나귀가 우니, 천사가 “두타頭陀여” 하고 불렀다. 이에 선사가 고개를 돌리니, 천사가 나귀를 가리켜서 보이자, 선사가 도리어 천사를 가리켰다. 그러자 천사가 대답이 없었다.
또 국사의 처소에 이르렀을 때,
국사가 물었다.
“그대의 스승이 어떤 법을 말하던가?”
선사가 동쪽에서 지나와 서쪽에 가서 섰으니,
국사가 다시 물었다.
“그것뿐인가, 아니면 또 있는가?”
선사가 다시 동쪽으로 가서 섰으니, 국사가 말했다.
“그것은 마사(馬師:마조)의 것이다. 그대의 것은 무엇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벌써 화상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사가 전에 어떤 스님을 다비茶毘하였는데, 어느 날 그 스님이 몸을 나타내어 목숨을 내놓으라 하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죽었는가?”
“죽었습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이미 죽었다면 목숨을 내놓으라 하는 이는 누구냐?”
그러자 그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이 밖에는 기록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 없다. 칙명으로 시호를 선교宣敎 선사라 했고, 탑호를 원화정진元和正眞이라 하였다.
[아호 화상] 鵝湖
마조의 법을 이었고, 신주信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대의大義이며, 구주衢州의 수강현須江縣 사람으로서 성은 서徐씨이다. 나이가 차자 계를 받고, 선과 율을 모두 통달한 뒤에 강서로 가서 대적大寂을 뵈니, 비밀한 관문을 두드리자마자 현현한 진리를 활짝 깨달아 마음에 계합하였다. 홍주洪州에서 인연에 응하여 서울로 올라가니, 효문孝文 황제가 대내大內로 청하여 도를 물었고, 덕종德宗은 인덕전鱗德殿에서 법연法筵을 크게 열고 진리를 토론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마음이 있으면 여러 겁 동안 범부로 살게 되고,마음이 없으면 찰나에 묘각妙覺에 오릅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이는 양무제梁武帝의 말씀이다. 마음이 있다는 것은 있음에 걸리는 것이다.
있음은 이미 있으니, 어떻게 해탈하겠는가?
마음이 없다면 묘각에 오르는 이는 누구이겠는가?”
선사가 여러 영재英才들에게 10호號를 풀이하여 말했다.
“유위有爲의 법과 같이 미혹한 이는 마침내 깨닫지 못한다. 무위無爲의 법과 같이 이미 깨달은 이는 마침내 미혹하지 않는다.”
이에 여러 영재들이 탄복하여 말했다.
“현현玄玄함이 견줄 데 없도다.”
선사가 석덕碩德들에게 물었다.
“움직임을 멈추고 쉬는 사이에 무엇으로 도를 삼는가?”
이에 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아는 것이 도입니다.”
선사가 꾸짖었다.
“식識으로 알 수 없고, 지智로 알 수 없는데, 어찌 아는 것이 도가 되리오?”
또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분별없는 것이 도입니다.”
선사가 꾸짖었다.
“모든 법의 모습을 잘 분별하되 제일의第一義에 이르러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어찌 분별없는 것이 도가 되리오?”
또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4선禪과 8정定을 도라 하겠습니까?”
선사가 꾸짖었다.
“부처님 몸은 함이 없어서 온갖 수효에 떨어지지 않는데, 어찌 4선과 8정을 도라고 하겠는가?”
대사의 뜻은, 일체 법은 일체 법으로서 성품도 없고 형상도 없는 데서 얻거나 잃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한 방향으로 치우친 것을 도라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정 짓지 않는 변론으로 일정하지 않은 집착을 버리게 하여 치우침이 없는 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선사禪師가 다음과 같이 송했다.
당장에 현묘한 진리를 안다 하여도
무늬를 만들고 각을 맺음이로다.
현현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는
공연히 보이는 것만을 쫓는다.
새소리가 빈 연못을 지키니
물고기 발아래를 지나도
새소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떤 경론을 전공하는 공봉供奉 대덕大德이 순종順宗 황제 어전에서 물었다.
“어떤 것이 4제諦입니까?”
선사가 성인(聖人:황제)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금 이것이 1제諦이니, 나머지 3제는 어디에 있소?”
대덕이 대답하지 못했다.
공봉 대덕이 또 물었다.
“욕계欲界에는 선禪이 없고, 선은 색계色界에만 있는데, 이 땅에서는 무엇에 의하여 선을 세웁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법사法師는 욕계에 선이 없는 줄만 알지, 선계(禪界:선의 세계)에 욕심이 없는 줄은 모르는구려.”
“선계에는 욕심이 없다니, 어떤 것이 선계입니까?”
선사가 손으로 허공에다 점 하나를 찍으니, 공봉이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황제가 말했다.
“겨우 점 하나인데, 법사法師께서는 어쩌지 못하는구려.”
선사가 원화元和 13년 무술戊戌 정월 2일에 입적하니, 나이는 74세였다. 조칙으로 시호를 혜각慧覺 대사라 하고, 탑호는 견성見性이라 하였다. 나라의 재상이 두터이 섬기어 비문을 지었다.
[복우 화상] 伏牛
마조의 법을 이었고, 북경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자재自在이며, 실록을 보지 못해 그 생애를 알 수 없다. 선사가 제자를 행각行脚의 길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송했다.
그대로 하여금 남쪽으로 행각해 큰 도시로 들어가
푸른 못 깊은 곳에 금비늘을 기르도록 놓아주니
부질없이 잡고기와 짝을 짓지 말고
용문龍門을 바로 뛰어넘어 몸을 벗어나라.
소사(小師:제자)가 대답했다.
고기와 용에게는 변함없는 뜻이 항상 있나니
변한다면 바다 기운 흐려 놓는다.
두 눈으로는 일찍이 작은 물을 엿본 적 없으니
일심으로 용문龍門을 뛰어넘기만을 생각하리다.
천 번을 그물 던져도 끝내 걸리지 않고
낚시를 만 번 드리워도 맹세코 안 걸리리다.
하루아침에 저에게 비늘이 갖추어진다면
비와 구름 몰고 와서 천지를 축이리다.
이때의 소사가 곧 제2세 복우이다.
선사는 또 불귀송不歸頌 세 수를 지으니, 다음과 같다.
애욕 끊고 어버이 하직하여 속세의 미혹을 여의니
구름보다, 학보다 더욱 훨훨 높이 날아
5호湖와 4해海에 인연 따라 가나니
간 곳마다 내 집이니, 이것이 첫째 불귀不歸니라.
애쓰고 노력해서 법의 위신 지키는데
다행히 선지식善知識 만나서 현묘함을 터득한다.
지혜의 등불, 어두운 거리 먼저 밝히어 환하게 하는 것만이
내 어버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니, 이것이 둘째 불귀니라.
가파른 석벽 깊은 골에 왕래가 끊겼는데
조각구름, 외로운 달이 서로 벗이 되도다.
거닐거나 앉았거나 한가하여 할 일 없이
도를 즐기며 소요消遙하니, 이것이 셋째 불귀니라.
[반산 화상] 盤山
마조의 법을 이었고, 북경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보적寶積이고, 성과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선사가 언젠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음에 일이 없기만 하면 만법이 나지 않는데, 경계가 끊어진 현묘한 기틀에 가는 먼지 어찌 일어나리오. 도는 본래 바탕이 없지만 도를 인하여 이름이 생기고, 도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을 인하여 호가 생긴다.
만일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 한다면 지금 당장 현미玄微에 들지 못한 것이고,
만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라 한다면 이 역시 발꿈치를 가리키는 극칙일 뿐이다.
위로 향하는 한 가닥 길은 천千 성인聖人도 전하지 못하는 것인데, 학자들이 헛수고를 하는 것은 마치 원숭이가 달그림자를 건지려는 것과 같다.
대도는 중간이 없는데 무엇이 앞이고 뒤겠으며, 넓은 하늘은 끝이 없는데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으리오?
허공도 이렇거늘 도는 말해 무엇 하리오?
마음의 달이 뚜렷이 밝아 그 빛이 만상을 머금었으나 광명이 경계를 비추지도 않고, 경계 또한 있는 것 아니니, 광명과 경계가 모두 없으면 다시 무엇이겠는가?
선덕禪德들이여, 비유하면 검을 휘둘러 허공에 던지는 것처럼 미치거나 미치지 못함을 따지지 못하나니, 이는 허공에 자취가 없고 칼날이 상하지 않는 경지이니라. 만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마음과 마음이 알음알이가 없어서 마음 전체가 부처요, 부처 전체가 사람이다.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도라 할 수 있다.
선덕들이여, 중도中道를 배워야 하나니, 마치 땅이 산을 받들고 있되 산의 높음을 알지 못하고, 돌이 옥을 머금고 있되 옥의 티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비로소 출가한 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도사導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은 본래 걸림이 없나니, 3제(際:과거ㆍ현재ㆍ미래)도 역시 그러하다’ 하셨다.
함이 없고 일없는 사람도 여전히 금쇄金鏁에 묶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신령한 근원이 홀로 빛나니, 도는 본래 남이 없고, 큰 지혜는 밝음이 아니며 진공眞空에는 자취가 끊겼다. 진여와 범성凡聖이 모두가 잠꼬대요, 부처와 열반이 모두 군소리다’ 하였느니라.
선덕들이여, 스스로가 살펴라. 아무도 대신할 이가 없느니라.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구하며, 4대大가 본래 공한데 부처가 어디에 의지하리오. 움직이던 고동이 움직이지 않으니, 고요하여 근원이 없어졌고, 마주 보면서 서로 드러내나니 다시 다른 일 없도다. 잘 있어라.”
강 대사가 이 일을 들어서 복선福先에게 물었다.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옛사람들 가운데 이 종지를 배우는 이들은 공연히 그림자의 헛된 공功을 잡으려 했습니다. 만일 전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벌써 전한 것입니다. 전하지 못하는 길을 스님께서 틔워 주십시오.”
복선福先이 대답했다.
“반수(盤岫:반산)가 위로 향하는 종지를 높이 제창하니,이제까지 세상 나신 여러 성인들이 언설의 공을 잃었다. 그러나 그대가 이제 전하지 못하는 일을 물으려 하니,
물어라. 어찌 틔워 주지 못할 것을 근심하랴?”
어떤 이가 물었다.
“우두가 4조를 보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한량限量이 있는 일은 용과 귀신이 그 자취를 찾을 수 있느니라.”
“4조를 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한량을 벗어난 기개는 용과 귀신도 찾을 수 없느니라.”
“본 뒤에는 어찌하여 새들이 오지 않았습니까?”
“거문고의 실이 있으면 노래와 춤이 일어나지만 줄이 끊어지면 한순간에 멈추어지느니라.”
선사가 입멸할 때,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가 나의 초상을 그릴 수 있겠는가?
누군가가 나의 초상을 그릴 수 있다면 나에게 바쳐 보라.”
대중이 저마다 초상을 그려 화상에게 바치니, 선사가 모두 때려서 내쫓았다. 이때 보화普化라는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제가 스님의 초상을 그릴 수 있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노승에게 보여 달라.”
보화가 거꾸로 서서 걸어 나가니, 선사가 말했다.
“나는 너의 이러한 짓을 인정할 수 없다. 그대는 뒷날 다른 곳에 가서 미치광이의 짓을 하리라.”
선사가 평생 주지하는 동안 남다르게 규범이 엄격하여 천하에 그 이름이 높이 퍼졌다. 칙명으로 시호를 응적凝寂 대사라 하고, 탑호는 진제眞際라 하였다.
[마곡 화상] 麻谷
마조의 법을 이었고, 보주莆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보철寶徹이요, 성씨는 알 수 없다.
선사가 단하丹霞와 산 구경을 하다가 물속의 고기를 보고 손으로 단하 쪽을 가리키니, 단하가 말했다.
“천연(天然:단하의 이름)입니다.”
이튿날 선사가 다시 물었다.
“어제의 그 뜻이 무엇인가?”
단하가 벌렁 눕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아이고 하늘이시여, 아이고 하늘이시여.”
선사가 행각行脚을 할 때에 삼각산三角山에 이르니, 삼각 화상이 상당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일은 눈썹만 까딱해도 벌써 어긋나 버린다.”
이에 선사가 물었다.
“듣건대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눈썹만 까딱해도 벌써 어긋나 버린다’ 하셨는데, 어떤 것이 이 일입니까?”
삼각이 대답했다.
“벌써 어긋났다.”
이에 선사가 승상繩床을 거꾸로 메고 나가니, 삼각 화상이 때렸다.
어떤 이가 물었다.
“12분교는 제가 의심치 않는데…….”
이렇게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선사가 벌떡 일어나 가 버렸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大義입니까?”
선사가 양구하니, 그 스님이 석상石霜에게 가서 물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석상이 대답했다.
“그 주인이 너무 친절해서 도리어 그대에게 폐를 끼쳐 진흙을 끌고 물을 건너게 하였구나.”
[염관 화상] 鹽官
마조의 법을 이었고, 소주蘇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제안齊安이요, 성씨는 알 수 없다.
법공法公이라는 선사가 와서 선사에게 경전에 있는 온갖 진리를 두루 묻기에, 선사가 모두 대답해 준 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사가 오시니, 빈도貧道는 전혀 주인노릇을 못하겠군요.”
법공法公이 말했다.
“화상께서 주인노릇을 하시기 바랍니다.”
선사가 말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방으로 돌아가 편히 쉬었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시오.”
이튿날 선사가 사미를 시켜 법공法公 선사를 모셔 오게 했다. 법공이 즉시 선사에게로 가니, 선사가 사미를 꾸짖었다.
“이놈의 사미 아이가 철이 없어서 법공 선사를 모셔 오라 했는데, 어째서 객실이나 지키는 중을 데리고 왔는가?”
어떤 스님이 뵈러 오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법흔法忻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를 모르겠구나.”
“어떤 것이 본신本身 노사나불盧舍那佛입니까?”
“나에게 그 동병銅甁을 집어다오.”
스님이 동병을 집어 오니, 선사가 말했다.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어라.”
스님이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본신 노사나불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옛 부처님이 지나가신 지 오래니라.”
대중大中 황제께서 잠룡(潛龍:왕위에 오르기 전)하던 날, 스승으로 모시면서 문답한 일이 매우 많은데 모두가 어록에 기록되어 있다. 칙명으로 시호를 오공悟空 선사라 하고, 탑호를 서진棲眞이라 하였으니, 탑이 굉장하여 예사롭지 않았으며, 북쪽에는 분주汾州가 있고, 남쪽에는 염관塩官이 있었다.
[오설 화상] 五洩
마조의 법을 이었고, 월주越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영묵靈嘿이요, 성은 선宣씨이며, 상주常州 사람이다.
선사가 출가하기 전에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 이르러 대사를 뵙고 절을 하니,
대사가 물었다.
“수재秀才는 어디를 가시오?”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갑니다.”
“수재는 너무 멀리 가는군요.”
“스님, 여기에도 과거를 보는 곳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지금 무엇을 꺼리는 것이오?”
수재가 물었다.
“관리를 뽑기도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수재뿐 아니라 부처라도 붙이지 않으리라.”
이 일로 인하여 대사에게 귀의하여 출가하려 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의 머리를 깎아 주는 것은 되겠지만, 대사인연大事因緣은 어쩔 수 없노라.”
이로부터 섭수攝受되어 계를 받았다.
어느 날 대사께서 대중을 거느리고 서쪽 담 밑을 거닐다가 갑자기 오리 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대사께서 주위를 돌아보고 물었다.
“저것이 무엇인가?”
정政 상좌가 대답했다.
“오리 떼입니다.”
“어디로 갔는가?”
“날아갔습니다.”
대사가 정 상좌의 귀를 잡아당기니, 상좌가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아직 여기에 있는데 언제 날아갔단 말인가?”
정 상좌가 활짝 깨달았다. 이 일로 인하여 선사는 호기好氣가 없어져 대사에게 말했다.
“저는 이러한 업을 버리기 위해 대사께 귀의하여 출가했는데, 오늘에 이르러 전혀 진전이 없습니다. 아까 정 상좌와는 그러한 절차가 있으셨는데, 대사께서 자비로 가르쳐 주십시오.”
이에 대사가 대답했다.
“만일 출가한 스님이라면 노승이 바로 그이겠지만, 깨우쳐 주는 스승이라면 사람이 있다. 그대가 나귀 해 동안 내 곁에 있더라도 얻지 못하리라.”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러면 화상께서 종사가 계신 곳을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여기서 7백 리를 가면 남악南岳 석두石頭라는 선사 한 분이 계시는데, 그대가 거기를 간다면 반드시 소득이 있을 것이다.”
선사는 대사를 하직하고 석두에게 이르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한마디에 계합되면 여기서 살겠지만, 계합되지 않으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그리고는 신을 신은 채 방석을 들고 법당으로 올라가서 예배하고 문안한 뒤에 모시고 섰으니, 석두石頭가 말했다.
“어디서 왔는가?”
선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했다.
“강서에서 왔습니다.”
“어디에서 공부를 했는가?”
선사가 대답하지 않고, 바로 소매를 떨치고 나와서 막 문턱을 넘어서려는데, 석두石頭가 소리를 질렀다. 선사가 한 발은 문 안에, 한 발은 문 밖을 디딘 채 고개를 돌리는 찰나에 석두가 뺨을 때리면서 말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놈이 그 놈인데, 고개를 돌려서 무엇 하려는가?”
선사가 이 말에 활짝 깨닫고 화상 앞에서 몇 해를 시봉하고, 나중에 오설五洩 화상이라 불리게 되었다.
후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동산洞山에게 물으니, 동산이 말했다.
“오를 때에 오설이 아니었다면 알아듣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하나 아직도 길거리에 머물러 있도다.”
나중에 장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험했도다.”
정수淨修 선사가 이 일을 들어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장경이 말한 뜻이 무엇이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 대답했다.
“그가 알고 있는 경지가 틀렸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장남漳南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놈이 그 놈이다’ 했는데,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장남이 대답했다.
“지옥의 찌꺼기도 만든 사람이 있을 뿐이다.”
“화상의 깊은 뜻은 알겠사오나,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그저 그러한 놈일 뿐이다.”
“그렇다면 앞의 것은 잊었고, 뒤의 것은 잃었겠습니다.”
장남이 대답했다.
“머리 위는 벗겨진 데가 없고, 뱃속에는 독이 없느니라.”
스님이 다시 말했다.
“하늘 위의 달구경을 탐내다가 방 안의 등불을 잊은 격이로소이다.”
장남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천지보다 큽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느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다듬을 수는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손을 한번 써 보라.”
월주越州의 관찰사觀察使가 사람을 시켜 다음과 같이 물어 왔다.
“스님은 선禪에 의해 주지住持하십니까, 율律에 의해 주지하십니까?”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적적寂寂해서 율을 지키지 않고
도도滔滔해서 좌선도 하지 않는다.
진한 차 두서너 잔에
내 생각 주전자에게로만 쏠리누나.
관찰사觀察使가 다시 호미 백 자루를 인편에 보내왔는데, 선사가 그 인편을 보자마자 방망이로 쫓아내면서 말했다.
“나에게 있는 호미 한 자루를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하는데, 누가 너더러 이것을 나에게 전하라 하던가?”
심부름꾼이 돌아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전하니, 관찰사가 멀리서 절을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이 문중에서는 처음과 마지막의 일이 어떠합니까?”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가 말해 보라. 눈앞의 것이 이루어진 지 얼마나 되었는가?”
스님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이곳에는 그대가 아까 물은 것이 없느니라.”
“화상께서 사람을 제접하시는 일이야 어찌 없겠습니까?”
“그대가 요구한다면 제접하리라.”
“화상께서 제접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무엇이 부족한가?”
선사는 원화元和 13년에 교화할 인연이 다하자, 깨끗이 목욕하고 향을 피우고 승상繩床에 단정히 앉아 대중을 모아놓고 간곡히 뒷일을 당부하였다. 문도들을 깨우치고 격려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묘한 빛은 참되고 항상하여 본래부터 생멸이 없고, 법신은 원만하고 적멸하니, 어찌 가고 옴이 있으랴?
1천 성인이 같은 근원이요, 1만 신령이 같은 궤도이다. 내 이제 멸도하는 모습을 보이나니, 슬퍼하지 말라.구태여 겉모양만을 수고로이 할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만일 이 명령을 따르면 진실로 나의 은혜를 갚는 길이겠지만 만일 기어코 이 말을 어긴다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갈 곳이 없느니라.”
“저는 어찌하여 보지 못합니까?”
“눈으로 볼 바가 아니니라.”
동산洞山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작가作家로다.”
선사는 똑바로 앉아 손바닥을 포개고, 안광을 거두고는 한순간에 바로 열반에 들었다. 향년享年 72세요, 법랍은 31세이고, 사문 지한志閑이 비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