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미스트는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말이나 노래, 춤이나 의식을 통해 이들 모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
사냥꾼은 한 무리의 사슴데게 말을 걸어 그중 한마리에게 스스로 희생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사냥에 성공하면 사냥꾼은 죽은 동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
누군가 병에 걸리면, 샤먼이 병을 일으킨 정령과 접촉해 달래거나 겁을 줘서 쫓아버릴 수 있다.
샤면은 필요하다면 다른 정령의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소통 행위의 특징은 말을 거는 대상이 국지적 존재라는 점이다.
우주적인 신들이 아니라 특정한 사슴, 나무, 시냇물, 유령이다.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에 장애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사이에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단순히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다.
세계는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다른 특정한 부류의 존재를 둘러싸고 돌아가지도 않는다.
애니미즘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다.
수천 종이 넘는 종교와 사교와 신앙의 포괄적 이름이다.
이들 모두를 '애니미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세계에 대한 접근법과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아마도 애니미스트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대 이전의 농업종사자들이 대부분 유신론자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유신론(Thesm, 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theos'에서 유래했다.)이란
우주의 질서가 인간과 신(소수의 천상의 존재로 구성된 집단) 사이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견해다.
현대 이전의 농업종사자들이 대체로 유신론자였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 말만으로는 개개의 상세한 특징을 알 수는 없다.
'유신론자'라는 표제에는 18세기 폴란드의 유대교 랍비도 들어 있고,
마녀를 화형하는 17세기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도 포함된며,
15세기 멕시코의 아즈텍 사제, 1 2세기 이란의 수피 신비주의자, 10세기의 바이킹 전사,
2세기의 로마병사, 1세기의 중국인 관료도 들어 있다.
이들 각각은 다른 이들의 신앙과 관습을 기괴한 이단으로 보았다.
'애니미즘적' 수렵채집인들의 신앙과 관습 역시 이와 비슷하게 서로 퍽 달랐을 것이다.
이들의 종교적 경험은 논쟁과 개혁과 혁명으로 가득 찬 격동적인 것이 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조심스러운 일반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고대 영성의 상세한 특성을 서술하려는 시도는 어느 것이나 매우 사변적이게 마련이다.
길잡이로 삼을 증거가 거의 없는 데다 조금 있는증거(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숫자의 인공물과 동굴벽화)는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인들의 감정에 대해 안다고 자처하는 학자들의 이론은
석기시대 종교보다 그 주창자의 편견에 대해서 더 많을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무덤의 유물, 동굴벽화, 뼈로 만든 조각상의 의미를 침소봉대하기보다.
고대 수렵채집인의 종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그들이 애니미스트였을 것으로 가정하지만, 이것이 알려주는 정보는 많지 않다.
그들이 어느 정령에게 기도했는지, 어떤 축제를 기념했는지, 어떤 금기를 지켰는지 우리는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지어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난 가장 큰 구멍 중 하나다.
102-104